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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4
카밀로 호세 셀라 지음, 정동섭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평점 :
내가 이 작품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교에서 서양고전문학을 한참 배우던 때였다.
예전부터 서양고전문학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아침 일찍 시작되는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다녔던 것으로 기억된다. 강의 마지막 시간이 스페인 문학이었는데, 그동안 미국, 영국, 러시아의 문학만 생각했었던 나에게 있어서 스페인 문학은 생소했기 때문에 대충 들었었다. 그렇게 졸기 일보 직전이었던 내 귀에 문뜩 ‘전율주의‘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그때 교수님께서는 한참 스페인 내전을 설명하시면서 이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이 그러한 내전의 참상 당시 사람들의 정신을 대표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를 ‘전율주의‘라는 새로운 장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단어가 당시 내게 묘하게 흥미롭겠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흥미는 곧 사라졌고, 졸업을 하고 나서는 아예 기억의 저편에 묻히고 말았다.
그러다 내가 이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을 떠올린 것은 비교적 최근이었다. 읽을 책을 고르던 와중에 생각이 났는데, 마침 배송비도 깎을 겸 또 추억 팔이 겸 한번 읽어보자,하고 구매해 읽어보았다.
200페이지 남짓의 짧은 분량의 소설이었지만 이틀 만에 겨우 읽은 이 작품은 다 읽고 나서 왜 ‘전율주의‘라는 단어가 나왔는지 이해가 갔다.
그만큼 이 책은 읽는 이의 소름을 돋게 하는 전율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불운한 운명에 갇힌 주인공 파스쿠알과 그가 벌이는 발작적인 살인 행위들은 충격 그 자체였다.
몇몇 사람들은 파스쿠알의 기행에 대해, 이 책에 대해 ‘더럽고‘ ‘잔인하며‘ ‘범죄자의 변명거리로 가득한 책‘이라고 혹평하기도 하지만 내 생각에는 선정적인 것을 둘째 치더라도 파스쿠알이 처한 상황이라든지 그가 느끼는 감정 및 정신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즉, 파스쿠알은 잔인한 범죄자가 맞지만 제삼자에 해당하는 우리들(독자들)에게 있어서 그를 비난하는 것보다는 왜, 어째서 그런 짓을 벌일 수 있었는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내가 알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하지만 실제로 살다 보면 타인보다 더 못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가까운 친구일 수도 있고, 나와 피를 같이한 가족일 수도 있다. 이들은 나와 깊은 관계성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만약 내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면 타인 못지않게 지옥이 되기 쉽다. 마치 ‘이래서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해‘ ‘이래서 가정환경이 중요해‘라는 말처럼 말이다.
이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내가 봤을 때 ‘가족‘이라는 이름의 지옥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보였다.
틈만 나면 술을 퍼먹고 아내를 때리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와 맞서면서 똑같이 술을 퍼먹고 자식들에게 무관심한 어머니, 동생들의 잇따른 죽음과 불행 등등 파스쿠알 곁에는 온통 불안과 공포, 비극만이 존재한다. 그러면서 점점 파스쿠알도 폭력에 익숙해지고 본능과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채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신기한 점은 파스쿠알이 느끼는 어떠한 ‘충동‘이다. 저자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비롯해 여러 책을 봤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파스쿠알의 행동은 묘한, 인간 내면의 불안을 그대로 보여주는 충동이 존재한다. 아직 심리학에 대해 잘 모르는 나라서 그 충동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본 작품은 뛰어난 인간 내면을 묘사한 점에서 고전문학으로 불려야 하고 또 내면의 범죄적 충동과 사회적 및 가정환경의 중요성을 내포했다는 점에서 범죄심리학/ 가정폭력 분야에서도 읽기 좋은 책으로 불려야 한다고 본다.
간만에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비록 ‘전율주의‘이라는 무시무시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내게 스페인 문학이라는 새 장르를 열어주게 한 것 같아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 언젠가는 동명의 저자가 쓴 ‘벌집‘이라는 작품도 읽어봐야겠다!
산속을 헤매는 늑대 떼를, 구름까지 날아오르는 송골매를,또 돌 틈에 숨어 있는 독사를 볼 수 있나요? - P114
불행은 즐겁고 정겹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영혼의 일부가 되어 버린불행을 넓은 유리 광장 위로 질질 끌고 가면서 아주 즐거워합니다. 암노루처럼 도망가거나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날 때, 우리는 이미 악에 물들어 버린 겁니다. 그러면 이제 해결책도, 그것을 되돌리기 위한 수단도 없는 법이지요. 그때 아찔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다시 살아서 일어설 수 없습니다. 아마 마지막에 조금 일어설 수도 있겠군요. 머리부터 지옥으로 떨어지기 전에 말입니다. - P173
이 글의 저자가 자신을 죽이러 왔을 때 그를 "가엾은 파스쿠알" 이라 부르며 미소 지었던명문가 귀족 토레메히아 백작, 돈 헤수스 곤살레스 델 라 리바를 추모하며,
-파스쿠알 두아르테-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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