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문 안에서 -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수필 쏜살 문고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리문 안에서"는 일본 근대 문학의 대가인 나쓰메 소세키가 쓴 수필집이다.

1867년에 태어나 도쿄 제국 대학을 졸업한 후에 1900년부터 1902년 영국 유학까지 갔던 저자 나쓰메 소세키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마음" "도련님" 등등 일본 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다. 소세키는 특유의 섬세한 필체로 마치 저물어가는 여름 햇볕을 쬐는 것 같은 나른함이 가득한 분위기를 자아내 모든 게 바뀌어가는 근대화에 정처 없이 휩쓸려가는 한 개인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나쓰메 소세키는 일상에 치여 바쁘게 살아가는 내게 있어서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이 "유리문 안에서"에서도 역시 여름 햇살의 나른함이 가득한 책이었다. 다른 점이라곤 작중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작가 본인이라는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수필'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창작 활동 중 하나라고 한다. 글을 쓰는 방식에 따라서 일상을 그린 '생활 수필'과 편지 형식으로 쓴 '서간 수필', 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을 쓴 '기행 수필'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책의 소제목이 '마음 수필'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지금까지의 소설과 다르게 비교적 자유로운 형태의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읽으면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의 행동을 살피는 것에 집중해 왔지, 정작 작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책을 읽는 내내 '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아니라 '인간 나쓰메 소세키'가 확 와닿았다.

집에서 키웠던 개 '헥토르'의 이야기, 형과 누나들에게서 들은 이야기, 어린 시절 이야기들은 단순히 멀게만 느껴진 몇 백 년 전 사람을 바로 옆에서 보는 것 같았다. 


"숨이 막힐 듯 괴로운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날 밤 오히려 인간다운 흐뭇한 기분을 오랜만에 경험했다. 그리고 그것이 고귀한 문예 작품을 읽은 뒤의 기분과 똑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 이야기가 다소 지루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의 말처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 겪은 이야기를 듣다보면 괴롭고 지루해도 어느 샌가 하나의 '문예' 작품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게 된다. 글로서 사람과 소통하는 것도 어찌보면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만큼이나 보람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옮긴이의 말에는 이것 외에 자전적 작품인 "한 눈 팔기"라는 책이 있다던데, 나중에 반드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뭔가 앞으로 그의 소설보다는 그의 인생을 다루는 책들을 읽게 될 것 같다. 인간 나쓰메 소세키의 경험을 또 겪고 싶을 따름이니 말이다.

죽지 말고 살아계세요. - P25

계속 중인 것은 아마도 내 질병뿐만이 아니리라. 내 설명을 듣고 농담이라 여기며 웃는 사람, 영문을 모른 채 잠자코 있는 사람, 동정심에 휩싸여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사람, 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또한 그들 자신조차 깨닫지 못한 계속 중인 무엇이 얼마든지 잠재되어 있는 건 아닐까. 만약 그들의 가슴에 울릴 만큼 큰 소리로 그게 한꺼번에 파열한다면 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 P87

한가로움을 사랑한다.
자그맣게 빈둥빈둥 지내고 싶다.
밝은 게 좋다. 따스한 게 좋다.
성격은 신경과민한 편이다. 세상사에 대해 지나치게 감동하여 곤혹스럽다.
세상사에 대한 애증은 많은 편이다. 가까이 두고 쓰는 도구에도 마음에 드는 것과 싫은 게 많으며 사람이라도 말투나 태도, 일 처리 방식 등에 따라 좋아하는 사람과 싫은 사람이 갈린다. - P1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