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가끔 나한테 옛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한다. 그 중에서 특히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에 대해 말하시는 것을 좋아하셨다. 어머니의 어머니, 즉 외할머니는 어머니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아들이 아닌 딸이었기 때문. 당시에는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다고들 하지만 특히 외할머니는 심하셨다. 간혹 어머니와 상의없이 방의 물건을 함부러 버린다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어머니에게만 화를 냈다. 반면에 외할아버지는 어머니를 애지중지했다.다른 형제들과 달리 말썽도 안피우고 공부도 잘하는 어머니에게 새 책가방을 사주거나 용돈을 주셨고 외할머니가 어머니에게 함부러 할 때 어김없이 어머니 편을 들어주셨다고 한다. 올해 60이 되가시는 어머니의 기억 속에 아직까지도 살아있는 외할아버지의 정은 세월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오늘 읽은 ‘제시 이야기‘도 과연 1940년대 일인가 싶을 정도로 양우조/최선화 부부의 자식 사랑이 느껴지는 그런 책이었다.‘제시 이야기‘는 독립운동가 양우조 선생님과 그의 아내인 최선화 부부가 1940년 일제강점기 시절에 중국에서 쓴 딸 ‘제시‘와 ‘제니‘의 육아일기이다. 임시정부의 일원으로서 험난한 타지에서 아기를 키우는 일이 여간 쉽지 않았을 것인데 이들의 일기는 딸의 사랑과 독립에 대한 의지로 가득하다.딸 제시가 처음으로 ‘엄마‘라는 말을 할 때의 기쁨, 가족들이 함께 서로를 꼭 껴안고 자장가를 부르는 일 등등, 세월을 초월하는 이들의 부모의 정은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던 1940년대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더욱 가까워지게 만든 책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그래픽노블로 읽었지만 다음에는 글로 읽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