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성서를 쓰지 않았다 - 천 년에 걸친 인류사의 기록 다시 읽기
카럴 판스하이크.카이 미헬 지음, 추선영 옮김 / 시공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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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수렵 채집하는 소규모 집단생활에서 거대한 익명의 사회에서 정착 생활하게 된 사건을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실수’라고 표현한다. 성서는 인류학적 접근 측면에서 인간의 세 가지 본성-감정과 직관(자연적), 사회적 습관(문화적), 합리적 측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성서는 인류가 기록한 일기장이며 인류의 조상에게 닥쳤던 문제와 해결책 모두 기록되어 있다. 인류 문명의 기록을 통해 문화가 진화해온 면모를 재조명하려는 의도에서 저술되었다. 이 책은 전체 5부로 구성되어 창세기로 시작하는 1부와 2부는 히브리 성서 가운데 ‘율법’을 의미하는 <토라>를 논의한다. 2부는 모세오경 중 나머지 네 권을 다루며 3부에서는 ‘예언서’를 뜻하는 느비임에 주목한다. 4부는 ‘성문서’를 뜻하는 케투빔을 다루며 마지막 5부에서는 신약성서를 들여다본다. 이 책의 순서는 히브리 성서 <타나크>를 따르되 성서의 구절을 인용할 판본으로는 가장 유명한 성서인 King James Bible을 채택하였다. 생물학적 진화는 고통스러울 만큼 느리고 주변 여건의 변화를 따르지 않는 반면, 문화적 변이는 특정한 필요를 충족하거나 특정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출현하므로 다양하고 급진적이며 인류 보편적이다. 저자들처럼 불가지론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처럼 새로운 시각으로 수십 년 전 제쳐두었던 인류 기록물로서의 성서를 재발견하는 계기로 삼게 되어 매우 감사하다.

사회 통념상 새 자동차에 문제가 있다면 품질관리, 즉 리콜과 수리는 제조사의 책임이다. 과감하게도 하느님의 리콜 대책은 아담의 갈빗대였다. 이브가 아담의 두 번째 아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는 얘기도 재미있거니와, 떠나간 첫 번째 아내의 빈자리를 아담의 갈빗대로 셀프리콜하고 이를 시행착오 과정이라 칭하는 것도 흥미롭다. 만일 이브가 없었더라면 외로운 아담은 수간도 서슴지 않았을 것이고 실제 당시에는 흔했던 인간 본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를 통해 정착 이후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아내를 맞이할 수 없는 가난한 남성들의 실존적 생활사를 그려볼 수 있다.

하느님의 행동에 일관성이 없는 이유는 성서보다 오래된 이야기에서 동방의 유산을 솎아내고 새로운 종교에 걸맞은 이야기로 재탄생시키기 위함이었다. 막스 베버가 말한 탈 마법화 과정이 완료되었다면 말하는 뱀도, 선악과를 따먹는 우발적 행위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수의 신 가운데 먼저 세력을 얻어 유일신임을 선포한 것으로 하느님은 애초부터 유일신이 아니었다. 또한, 선악과를 맺었다는 생명의 나무는 이미 중동 지역에 퍼져 있던 익숙한 설화였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쫓겨난 진짜 이유는 과거 동물들과 가까이 지내던 수렵 채집 시대에서 정착 생활로 환경이 바뀌면서 신의 모습을 닮고 신에 말씀에 귀 기울여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정착 생활과 더불어 잉여 산물과 사유물의 개념이 싹트고 부와 사회질서가 재편되면서 일대 혼란을 겪게 되자, 일관성 없고 때로는 지상 최대의 폭력을 행사하는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 질서에 순응하지 않으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정도로 사회 규약이 엄해지고 철저히 지킬 것이 요구되었다. 역설적으로 익명의 대규모 사회로 변모하는 만큼 경쟁, 불평등, 폭력이 난무하는 혼돈과 무질서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그 정도 또한 가중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벨을 살해한 카인이 지은 엄청난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으로부터 각별한 보호를 받는 과정처럼, 형제살해는 그 극단적인 질서유지의 방편이요 정당성 획득의 수단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성서는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이자 기준, 또는 실천 강령의 역할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이토록 의미 깊고 소중한 종교의 존재가 타락하여 혹세무민하는 사회의 독소가 되었을 때의 혼란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겪어왔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혼란한 사회상을 틈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면서 자신이 하느님이 되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며 거대 사회악이 된 소위 종교계의 거물들과 자식들에게 세습하기에 골몰하는 기업화된 교회를 우리는 오늘도 지켜보고 있지만, 그들은 별다른 사회적 저항이나 법적 조치도 받지 않는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이런 괴물들이 만들어진 데에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자화상이 이쁘기만 하다고 여기는 다수의 지지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회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신의 존재와 역할이 영혼에서 신으로 격상하였는데,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에게는 더욱 강력한 하느님이 필요한 것일까? 대홍수 이후에도 카인과 아벨 시대의 대혼돈은 여전했고 사람들의 행동거지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고 하지 않나. 이런 사례를 보면 인류 역사상 가장 정보가 발달했다는 현세에서조차도 구원은커녕 재난을 통제하는 종교의 힘이 거의 한계에 도달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그러나 사실은 종교 자체가 아니라, 종교를 잘못 이해한 사람들의 인식이 문제의 핵심이리라.

언어 관련 전공자로서 성서에 언급되는 바벨탑 이야기는 언제나 말이 되지 않는 의문투성이 이야기였다. 삶의 터전이 도시로 옮겨오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종교가 도시 여건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요령을 제공한 것이다. 신의 저주로 파괴된 바벨탑은 수많은 인류가 단일 언어와 어휘로 소통할 수 있었다는 가당찮은 얘기라기보다는, 언어로 표현되긴 하였어도 삶의 기준이 되는 신의 목소리와 다른 소리를 냄으로써 강력한 규칙에 따르지 않던 인간들의 모순된 모습을 나타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또한, 보이지 않는 영혼에서 하늘나라에 앉아계신 구체화한 신의 반열에 오른 하느님으로 그의 위상이 커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니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이 땅에 다녀간 지 벌써 2천 년이 더 지나도록 인류 평화는커녕 인간의 언어 한 가지도 원상복구 해놓지 못했다고 힐난할 일은 아니다.

대부분 문명국가가 더 이상 부족사회를 유지하지는 않지만 부족사회 시대의 족장들이 가졌던 부와 권력은 여전히 존속하며 다양한 형태로 발견된다. 예나 지금이나 족장처럼 부와 권력(오늘날에는 재력)을 지닌 인물들에게는 어느 사회건 예외적으로 관대한 모습을 보인다. 복잡하게 얽힌 가족력과 족보, 재산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장치는 바로 장자상속제다. 올해 초 큰 인기를 누렸던 케이블TV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재벌 회장으로 발전한 족장 지위의 뒤틀린 후계 구도와 장자상속제를 번복 선언함으로써 생기는 가족 내 유혈 투쟁을 다루었다. 이는 전통적으로 복수와 더불어 가장 흔하고 인기 만점인 드라마의 소재인 동시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잘 짜인 이야기의 힘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법률상으로는 불법이라 하면서도 극소수 족장들 사이에 엄연히 실재하는 일부다처제가 사회 지도층의 일반적 결혼제도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내용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농업과 더불어 인류 최대의 실수인 영구 정착이 시작되면서 많은 새로운 현상이 기존 삶의 방식을 방해하게 되었다. 더 많은 질병이 발생했고, 재산과 사회 계층의 도입으로 폭력과 불의가 발생했으며, 결국에는 노골적인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모든 현상은 인간의 직관적인 본성과 충돌하는 '불일치'로 경험되었다. 종교에서는 이러한 충격적인 변화에 대한 해답을 찾아냈으며, 새로운 악을 막기 위한 예방 시스템도 개발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를 지적 제도화 종교의 도래라고 부른다. 유대 민족과 성경의 경우, 과거의 정령 숭배나 다신교와 같은 직관적인 종교와는 달리 급진적인 유일신교를 발명하였으며 토라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충실히 반영한 중요한 기록물이다. 예컨대 이스라엘 민족이 대규모로 이집트를 탈출했다는 이야기도 기록 한 줄조차 없어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그보다는 율법 탄생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배경 설정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또 한편으로 하느님이 왜 그토록 폭력적이고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였는가에 대한 의문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니, 저자들의 참신한 시각이 매우 놀랍다. 이쯤 되면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사회를 건강하게 존속시키기 위해 인간의 특성을 덧입힌 절대적 존재가 필요했었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을 지닌다.

이 책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데, 토라가 그토록 세세한 인간의 생활까지 간섭(?)하는 이유는 토라 자체가 하나의 규범이자 사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안전장치였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토라가 쓰인 목적을 폭력 방지, 질병 예방, 시스템 보호, 모르는 죄로 인한 벌을 피하는 방법, 제물과 제의의 확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값비싼 신호’, 또는 정체성에 관한 언급을 통해 일부 기독교인들이 보이는 편협한 태도가 떠오른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를 가질 자유를 무시라도 하는 듯,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여야만 한다며 어떻게 하느님을 믿지 않을 수 있느냐는 이상한 주장을 종종 목격한다. 개인적으로 교인이라면 얼마나 진실한 자세로 살아가느냐가 최우선 과제라고 본다. 주변에 그런 진실한 신자가 훨씬 많은데도 불구하고 교인이 아니거나 심지어 해외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까지 찾아가 좋은 말씀 전한다며 열심이다. 소위 이교도의 나라에서 선교사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경우가 있다. 사실 그 나라에서는 기독교가 이교도다. 이교도가 개종을 권하니 마찰이 없을 수 없다. 애초부터 세상은 유일신 체제가 아니었음에도 유일신 체제가 되도록 매우 도전적으로 포교하고 결과적으로 우리 이웃의 참된 봉사자들 명예를 실추시킨다. 종교에 대해 진지함을 증명하는 데 다반사로 도를 넘으니 아마 전 세계에서 한국만큼 세속화된 곳이 없을 것 같다. 복을 받고 천국 가는 조건으로 신을 믿다니, 거래라도 하자는 것인가. 끊임없이 타락을 유혹받는 인간 본성을 다스리기 위해 토라는 그래서 여전히 쓸모 있고 유효한 장치일 것이다.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의 문턱까지 몰고 갔던 주변 제국들 틈새에서 이들 최약체 민족이 살아남는 데 필요한 것은 천둥과 번개로 무장하고 침략자들을 무자비하게 응징할 수 있는 막강한 군대 같은 신이어야 했다. 그래서 야훼는 불기둥의 모습으로 나타나 용광로처럼 내뿜고 산을 녹여내는 국가와 민족과 왕조 모두의 신이 되었다. 다신교 체제에서 당시 최강국이던 아시리아 왕을 야훼의 모델로 삼았으며 독재적 성격을 지닌 아시리아 군주의 절대 통치 사상을 종교에 활용했다는 설명은 매우 흥미롭다.

저자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수렵채집인이었을 때 인간 심리의 기저가 그 형태를 갖추었다고 가정한다. 수만 년 동안 이 기간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의 생각과 느낌 등 우리가 현재 주로 직관(우리의 첫 번째 본성)에 기인하는 것들, 즉 집단 결속의 중요성, 동료 인간에 대한 배려, 정의감, 평등주의 및 민주적 토론 경향, 종교성, 사물 뒤에 존재하는 더 큰 힘을 확인하려는 직관에 깊이 고정되어 있다고 본다. 또한, 성경의 저자들이 매우 심오하고 충격적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단계에 걸쳐 급진적 일신론을 도입한 누적된 문화적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성경 이야기를 자세히 확대하여 보여준다. 이 익명의 저자들은 피에 굶주리고 잔인한 야훼를 선두에 두고 점차 오래된 성서 본문을 다시 썼다. 그러나 이 지적 제도적 종교가 직관적인 종교성과 충돌하면서 부드럽고 자비로운 신의 이미지가 도입되었다. 종합하면 성경은 직관적 종교와 지적으로 제도화된 종교가 싸우는 과정을 반영한 기록이다.

다신교 체제가 월등히 지배적이었던 시대에 유일신을 모시는 신흥 종교가 끈질긴 저항 끝에 결국 승리를 거두는 경이로움이 인류의 믿음 체계를 흔들어놓았고, 서구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마침내 서구인들의 세계관을 기초하게 되었다. 이는 오늘날 다양한 인종과 민족적 배경을 지녀 다원성에서는 으뜸이라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체제 유지의 방편으로 강력한 연방법과 법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세태를 연상시킨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명에 따라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고, 예수가 자기 믿음을 지키려 십자가에 못 박혔던 두 장면은 죽음의 위협을 바탕으로 한 절대적 진지함을 구축하려는 지성적 종교가 자기 신뢰도를 높이려 한 궁극의 증거이다.

토라가 요구하는 율법을 모두 지켜낸 이스라엘 왕은 역사상 단 한 명도 없었다. 왕국의 출발은 전도유망했으나 끝에 가서는 권력, 부, 여자에 대한 욕망으로 처절하게 몰락하였다. 하느님이 왕들의 방종을 내버려 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폭주하는 왕권을 제대로 견제할 장치가 없었다. 판관의 뒤를 이은 예언자들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더욱 강력하게 고삐를 틀어쥠으로써 아사비야(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집단적 연대)의 복원을 실현하고자 한 것으로 이해된다.

신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가 갖춰야 할 사회적 미덕은 대가 없이 언제든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 즉 이상적인 대의명분에 헌신하고 자신의 임무에 대한 확신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며 초자연적 행동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이런 카리스마적 권위를 확보하느라 그들의 삶은 매우 고단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오늘날 신의 예언자를 자처하는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고대 예언자의 삶과는 매우 딴판인 모습을 볼 때마다 종교의 참뜻을 흐리는 듯하여 안타깝다. 예언자가 나타나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배경으로 문화적 진화 과정을 대입 설명하는 부분은 저절로 이해를 자아낸다.

야훼가 현대인의 시각에서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야만적인 지상 최대의 폭력을 전담함으로써 신의 섭리를 거스른다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닥치리라는 공포와 함께 인간 심리의 마지노선을 정한 셈이다. 모든 악행과 불안을 주관함으로써 사회를 하나로 결속시키고 악행과 불안을 초래하는 인간의 행위에 철퇴는 가하는 전지전능한 신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종교는 인간의 타고난 도덕성 위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인간과 공존할 수 있게 되었다. 남은 일은 하느님이 인간의 도덕을 인정해주는 것이며, 신의 인정을 받는 최선의 방편은 종교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눈 귀 어둑한 신자가 하느님의 말씀이라면 설령 누군가로부터 잘못 전달되고 사악한 의도가 있더라도 맹종하는 단점이 종종 발견되는 이유일 것이다.

천주교는 제사 의식 허용은 물론 신도가 주인이 되는 신앙생활을 장려한다. 반면 (특히 우리나라) 기독교는 대체로 제사와 조상신을 부정하며 신자에게 주어지는 선택의 여지가 적은 편이다. 조상의 불멸성을 믿고자 하는 인간의 첫 번째 본성을 굳이 억제하면서 우상을 섬긴다고 매도하는 편협한 자세가 교세 확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성공적인 확산과 포교를 원한다면 제도적 지성적 종교가 왜 기복신앙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지 통렬히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하느님이 개인뿐 아니라 민족과 국가의 구원자가 되고 못되고는 종교의 본질 자체와는 큰 관련이 없다. 사회에 미치는 종교적 영향력은 신자들이 얼마나 의식적으로 깨어있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착하게만 살던 욥에게 형용할 수 없는 고난을 부여한 하느님의 가혹함 뒤에는 인간으로서 이해하지 못할 하느님만의 사정이 있었고, 고난을 몇 배로 곱하여 보상한 후에는 인간을 위한 하느님만의 계획이 있었노라고 말한다. 하느님은 역경과 보상을 동시에 주관함으로써 전지전능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며 신성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진화하였다. 주어진 고통을 감내함과 동시에 공개적으로 하느님을 비난하며 반기를 드는 욥은 직관적 종교에서 제도적 종교로 진화하는 과정상의 마찰을 상징한다. 절대 선의 맞은편에 절대 악을 세움으로써 피조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하느님과 이를 시기하는 사탄의 갈등과 경쟁을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본래 절대 악은 존재하지 않으나 절대 선 존재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면 없는 악도 만들어내는 미국-오늘날 대표적 기독교 국가임을 자처하는-의 대외정책을 보면 쉽게 체감할 수 있다.

어릴 적 성서를 읽다가 난데없는 ‘승리하리라’, ‘군대여 일어나라’, ‘적을 섬멸하고’ 등 대단히 호전적인 용어들을 접하고 당황스러웠다. 인제 보니 다신교로부터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필승 전략의 하나였고, 성서의 이런 분위기가 현재 우리나라의 남북분단 현실에서 전쟁을 부추기고 갈등을 조장하는 극우적 발언에 이용당하는 듯하다. 천국과 지옥 이분법은 삶과 죽음이라는 서구 이원적 세계관의 연장선이며, 종교도 결국은 인간의 필연적 사망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서의 저자들은 ‘저승’ 시스템, 즉 선한 사람은 보상받지 못한 채 죽고 악한 사람은 처벌받지 않고 죽는 현실에 대한 보상 체계를 도출한 게 아닌가 싶다.

과연 종교란 신이 있다고 믿는다면 있는 것이고 없다면 없는 것인가? 인류 초기에 하느님을 믿지 않거나 죄를 지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생각은 실현 여부를 떠나 분명 사람들의 도덕심을 자극하고 공포를 연상시켰을 것이다. 만물을 창조하고 전지전능하다는 하느님이 저승만큼은 예외적으로 악마의 관할구역으로 인정한다니 참으로 기발한 발상이다. 하느님 아니라 누구라도 저승에 간 이후의 세상을 설명할 수는 없지 않나. 성서는 이렇게 죽음과 저승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신성성에 복속시키려는 고도의 장치로 진화하였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미국의 사이비 기독교나 광신도를 소재로 한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매우 보편적인 소재가 바로 종말론일 것이다. 미국 텍사스 주 와코시의 집단 자살, 일본 오옴 진리교의 사린 가스 지하철 테러, 한국의 휴거 재림 사기극 등 성서를 곡해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역시 광신도의 엽기적인 연쇄살인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악마를 대상화하고 강력범죄를 일으킨다는 종말론적 특징을 보인다. 예수가 추종자들에게 제시한 ‘악’은 ‘재앙’을 뜻하며 본래 인간세계를 괴롭히는 가뭄, 전염병 그리고 온갖 종류의 폭력을 말한다. 역설적으로 이 책의 근본 주제는 재앙이 문화적 진화를 촉진하는 원동력이라는 데에 있다. 끊임없이 인간을 괴롭히는 재앙을 극복하기 위해 영혼이 유일신으로 탈바꿈한 것처럼, 재앙 역시 악마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스도교 이외의 대상, 특히 이슬람과 같은 이교도를 악마로 규정하고 절정의 증오심을 보여주었던 십자군 원정은 그리스도교의 성공 비결로 작용한 이중성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이다. 십자군 원정은 이슬람의 서유럽으로의 팽창을 저지하고, 민족주의와 시민계급 성장의 바탕이 되었으며, 유럽식 세계관의 지평이 확대되고, 선교적 관심을 끄는 데에 일조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 정신의 본질인 사랑을 버리고 참혹한 전쟁을 신성한 것으로 만들려 했던 인간의 어리석음과 탐욕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성전(聖戰)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전쟁은 최고의 악이며 이교도들을 무력으로 결코 돌이키게 할 수는 없었다. 앞서 언급한 종말론과 인간의 민감한 반응은 종교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심리 구조에 있으므로 종교를 탓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성서에는 그리스도교가 다신교에서 유일신으로 거듭나는 오랜 시간과 과정이 녹아있다. 그리스 철학의 로고스가 ‘말씀’이 되고 모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영광을 하느님에게로 돌리는 발상의 전환은 서구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드디어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도교 신학은 서로를 보완하며 지원하는 생산적 관계로서의 공생 관계를 구축한 것이다. 이로써 하느님은 현실 초월적 존재가 되었고 현실과의 연계는 예수, 마리아, 악마 그리고 모든 천상의 존재들이 맡게 되었다. 이후 진정한 의미의 삼위일체 개념은 하느님 아버지, 성모마리아, 아들 예수의 구도로 굳어졌다.

직관적 종교와 지성적 종교의 융합인 그리스도교가 언제든 폭발할 가능성의 딜레마는 첫째, 예수가 인간의 형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때부터 하느님은 인간이 되었는데 영원불변한 존재가 인간 세상에 등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며 둘째, 전지전능 완전체 하느님이라는데 왜 세계는 이토록 많은 고통이 존재하는가 하는 점이며 셋째, 예수가 자신을 희생하여 모든 죄를 짊어지고 인류를 구원했다는데 구원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에 있다.

문화적 진화의 관점에서 지금 인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그 추세를 살펴보면 첫째, 종교와 과학이 갈등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둘째, 규범을 제시하는 유일한 제도로서 종교가 누리던 특권은 사라져도 도덕의 감시자로 활동할 필요성은 남는다. 셋째, 인간의 첫 번째 본성에 호소하는 영적 믿음을 뒷받침하는 종교적 다원화가 발생한다. 넷째, 전통적 교회는 종교의 영성화와 개인화를 꾸준히 비판하며 단순한 제도로의 전락을 부정한다. 다섯째, 내부적으로는 집단의 결속을 다지고 외부적으로는 집단의 문을 닫아거는 단절성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종교는 항상 하나의 실체로 존재해온 것이 아니며 직관적 개인적 종교와 지성적 제도적 종교로 구성된다. 부글대며 끓어오르는 문화적 수프로 비유되는 문화적 진화는 전문화와 차별화의 길을 걸으며 과학으로 분화되었다. 문화적 보호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첫째, 종교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값비싼 신호로 기능하기 때문이며 둘째, 종말론적 기반으로 모든 일의 이면에 행위자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며 셋째, 집단의 결속(아사비야)을 이루는 사회의 접착제 역할 때문이다.

성경에 관해 말하자면, 종교적 경외심과 세속적 경멸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어려운 과제일 수 있다. 기독교 신자라면 성경을 비판적 분석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신의 신성한 메시지로 간주하기 마련이다. 비종교인들 역시 성경을 시대에 뒤떨어지고 무지한 글의 모음집으로 무시하거나 심지어 위험한 책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진화 인류학자 카렐 반 샤이크와 역사학자 카이 미셸은 이 책에서 그러한 격차를 해소하고 성경이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책이라는 논지를 대담하게 옹호한다. 두 사람 모두 불가지론자이지만 성경이야말로 우리 인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열쇠라고 믿는다. 인지 과학, 진화 생물학, 고고학, 종교사의 렌즈를 통해 성경이 인간의 본성과 우리 종의 문화적 진화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내려 한다.

저자들은 종교적 의미와는 상관없이, 성경에서 우리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성경은 우리가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큰 불행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정의에 대한 우리의 깊은 열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가르쳐 준다. 우리가 익명의 대규모 사회에서 어떻게 생존하는 법을 배웠는지, 왜 현대의 삶이 때때로 무의미하게 느껴지는지, 그리고 낙원에 대한 갈망으로 묘사해야 할 대상에게 왜 그리 자주 잔소리해대는지를 보여준다. 후광을 걷어내고 보면 성경은 모든 인류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성경 분석의 대부분은 호모 사피엔스가 수렵 채집 생활에서 오늘날의 좌식 생활방식으로 전환한 인류 문화 진화의 중추적 순간에 근거하고 있다. 이 새로운 삶의 방식은 무수한 사회적 스트레스 요인과 불평등을 초래하여 먼 조상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좌식 생활하는 우리의 생활방식이 만들어낸 어려움으로, 너무 새롭고 시급해서 사람들은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문화적 해결책을 개발해야만 했다고 설명한다.

저자들은 아담과 이브, 카인과 아벨, 바벨탑, 출애굽, 모세와 모세 율법, 욥기, 선지서, 시편, 신약성경 등 성경 전체에서 이러한 ‘문화적 해결책’을 찾아낸다. 저자는 생물학적-인류학적 관점에서 이러한 텍스트를 읽으면서 도덕과 정의, 그리고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기 위한 인류의 투쟁에 대한 통찰을 드러낸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성경적 폭력에 관한 장이다. 저자들은 구약성경을 잔인하고 보복적인 신의 메시지로 투영하며 용서할 수 없는 폭력적 텍스트로 묘사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오히려 구약성경에 표현된 도덕성은 인류의 문화 진화에 있어 중요한 진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결국, 성경은 인간 본성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적나라한 기록이며 문화가 진화해 온 흔적의 결과물이다. 녹록지 않은 내용에다 읽는 데 오래 걸리긴 했어도 굉장히 흥미롭고 유익한 시간이었음에 감사드린다.


#한달한권할만한데 #성서 #구약 #신약 #인류문화 #종교진화 #한달의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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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성서를 쓰지 않았다 - 천 년에 걸친 인류사의 기록 다시 읽기
카럴 판스하이크.카이 미헬 지음, 추선영 옮김 / 시공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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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원제처럼 ‘인간 본성에 관한 좋은 책‘ 으로 냈어도 좋았을 뻔. 조금 어렵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인류 문화 진화의 기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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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밤의 우주 - 잠들기 전 짤막하게 읽어보는 천문우주 이야기 ㅣ Collect 22
김명진 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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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우주 방위 특공대 이야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의 등장인물 가운데 별 또는 우주와 관련 있는 이름이 있다. 악당의 딸이었으나 회개(?)하고 착한 편이 되기로 한 네뷸라(nebular)는 별의 구름인 성운을 뜻한다. 머리 회전이 엄청 빠르고 다루지 못하는 무기가 없으나 자신의 정체성이 너구리임을 뒤늦게 깨닫는 영특한 동물의 별명은 로켓(우주선)이다. 모두 우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내용에 잘 어울리게 지은 이름이다.

 

『우주에 대한 탐구는 곧 우리의 존재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위대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함입니다. 은하는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등불에 해당하지요.』 (33쪽)

 

영화의 등장인물처럼 이 책은 우주와 관련하여 90가지나 되는 이름 또는 주제에 천연색 사진을 곁들이고 각각의 사연을 달아 거의 화보 급으로 구성하였다. 현직 천문학자들이 협업으로 만든 책이라 두께감과 무게감이 제법 묵직하다. 난해하고 지루할 것 같은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 써놓아 책의 부제처럼 잠들기 전 짤막하게 읽어보는 아이들 베갯머리 이야기책으로도 손색이 없겠다. 필자가 어릴 적에 이런 책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곤 했다면 벌써 천문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착각은 자유다.




『진짜 과학 기술의 가치는 당장 돈이 되지는 않더라도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 경제적인 이익은 잠시 뒤로 하고 협력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경제적으로는 각국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과학계는 나름 치열하게, 쉼 없이 움직이는 지구를 관찰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289쪽)

 

90개의 주제를 4부로 나누어 구성한 이 책의 1부 ‘유니버스’는 별, 은하, 행성, 오로라 등 낭만과 신비로 가득한,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일반적인 소재로 천문학 입문을 다룬다. 2부 ‘스페이스’는 지구 밖의 세계를 알아내고픈 인간의 본원적 욕구인 우주 탐사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우주 산업에 관련된 이야기를 엮었다. 3부 ‘코스모스’는 우주 거대 구조, 블랙홀, 시간 여행 등 우주 그 이상의 우주, 그리고 우주 관측에 필요한 이론적 배경과 천문학자들에 얽힌 사연을 소개한다. 4부 ‘우주, 그리고 천문학자’ 에서는 이 책을 엮은 천문학자로서 사람 냄새나는 저자들의 삶을 담았다. 각 부의 명칭이 모두 우주이기도 하고, 우리가 한글로는 그저 ‘우주’ 한 가지로 통칭하고 있지만 사실 영어로 우주를 표기할 때의 용어와 사전적 정의는 조금씩 다르다.

cosmos : 잘 정돈된 전체로서 발견되는 우주

universe : 현존하는 모든 물질과 공간을 전체로서 고려한 우주

space : 비어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연속적인 영역 또는 공간

galaxy : 은하계. 은하수의 뿌연 모습이 우유 같다(Milky Way)는 데서 우유를 뜻하는 그리스어 galax 에서 유래.

90개의 주제 전체는 아니지만 굵직한 소재의 끄트머리마다 QR 코드를 활용한 추가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부터 인터넷 동영상, 각종 우주 전문 기구의 홈페이지 등 참고해볼 만한 자료가 가득하니 활용해볼 만하다. 애초 이 책의 목적처럼 천문학 기초상식과 교양을 쌓는 읽기 자료로 그만이다.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원자는 우주 대폭발, 별의 중심, 혹은 초신성 폭발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주 먼지로 떠돌던 다양한 원자들이 태양계가 형성될 당시 지구에 뭉쳐져 지금의 우리 몸속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죠.』 (358쪽)

 

지금까지 알려진 우주의 크기를 분류하면 ‘지구<태양계<우리은하<국부은하군<은하단<초은하단<관측가능한 우주’의 순서다.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는 약 1억 5천만 km이고 이를 1천문단위(AU. Astronomical Unit)로 정의한다. 태양이 거느린 8개의 행성을 통틀어 태양계라고 하며 지구와 해왕성 사이의 거리는 약 30AU이다. 별이 1년 동안 이동하는 거리인 63,241AU를 1광년(LY. Light Year)이라 한다. 태양계는 수백억 개의 별 무리를 거느린 우리은하에 속해있고, 태양은 우리은하 중심에서 약 3만 광년 거리에 있다. 우리은하를 포함한 40여 개의 은하가 모여 5천만 광년의 국부은하군을 이루고, 다시 국부은하군은 수백 개의 은하단과 무리를 지어 초은하단을 이룬다. 은하 약 10만 개를 거느린 초은하단은 현재까지 알려진 우주의 가장 거대한 구조로, 천문학자들이 추산하기로는 10의 27승 크기이다. 상상조차 안 되는 이 엄청난 규모를 생각하면 지구에 사는 우리 인류는 그야말로 먼지만도 못한 존재로 여겨진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광대무변한 우주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지고 겸손해진다. 이토록 넓은 우주인데 생명의 징후라고는 지구밖에 없다니 이 또한 신비롭기 그지없다. 저절로 고개가 숙어지고 경외감이 들 수밖에 없다. 온갖 오만한 생각이 들 때마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봐야 하는 이유다. 천문학자를 꿈꾸는 이들뿐 아니라 지구과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천문학 길라잡이 또는 입문서로 안성맞춤이다. (2023-05-29)

 



#천문학 #90일밤의우주 #동양북스 #리뷰어스 #책추천 #리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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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밤의 우주 - 잠들기 전 짤막하게 읽어보는 천문우주 이야기 ㅣ Collect 22
김명진 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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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를 꿈꾸는 이들뿐 아니라 지구과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천문학 길라잡이 또는 입문서로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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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 - 미국 중앙은행은 어떻게 세계 경제를 망가뜨렸나
크리스토퍼 레너드 지음, 김승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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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분야 전문기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연준이 미국 경제 정책 결정의 중심 동력이 되었다고 경고한다. 그는 전 캔자스시티 연준 총재이자 FDIC 부의장인 토마스 호니그의 완고한 우려를 중심으로 연준의 양적완화 정책이 은행의 위험 감수를 증가시키고 자산 거품을 부추기며 자산을 소유한 부자와 빈곤층 간의 격차를 확대하는 '배분 효과'를 일으켰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호니그는 금융 위기 당시 연준의 개입을 지지했지만, 연준의 단기적 위험성과 지속적인 완화 통화 정책의 장기적 영향을 우려한 제도주의자로, 양적완화를 "악마와의 거래"로 규정했다. 저자는 호니그를 존경하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연준 정책에 대해 논평하고, 양적완화와 제로 금리에 대한 그의 예측이 이후 10년 동안 현실화하였음을 우려한다.

양적완화의 수혜자는 이 정책을 가장 강력히 옹호한 월스트리트, 부동산 개발업자, 채무자(가장 큰 수혜자는 미국) 등이라고 설득력 있게 말한다. 양적완화는 초저금리 고수익을 추구하기 위해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도록 부추겨 자산 거품을 만들고 결국에는 터질 수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저축에 대한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는 등 금융 억압을 가한다. 의회는 연준을 설립하고 연준의 임무로 물가 안정, 고용 극대화, 장기 금리 적정화를 명시했다. 미국 대통령이 임명하는 7명의 연준 총재와 뉴욕 연준 총재, 나머지 11개 지역 연준의 순환 총재 4명으로 구성된 중앙은행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ederal Open Market Committee)는 이 임무를 뒷받침하는 통화 정책을 시행한다.

중앙은행 총재들은 이 의무를 이행하는 방법과 구속력의 정도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연준에는 인플레이션을 반대하는 매파와 양적완화를 지지하는 비둘기파가 공존하고 있다. 반인플레이션 매파는 비둘기파에 비해 중앙은행이 경제에서 더 광범위한 역할을 맡는 데에 회의적이다. 동정심이 많고 경제와 근로자를 돕고 싶어하는 비둘기파가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는 반면, 매파는 가혹하고 엄격하며 연준이 사람들을 돕지 못하게 막으려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비둘기파의 관념적 동정심에는 큰 대가가 따른다.

중앙은행은 돈을 찍어내면 시장이 살아나고, 일자리와 부를 창출하며, 문제가 있는 금융 기관과 기업을 구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 있다. 그러나 연준은 가치를 창출할 수 없으며, 연준이 경제를 관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오만이다. 연준의 전략가들이 아무리 똑똑해도 시장의 방대한 분산 지능과 자정 능력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월스트리트는 끊임없이 연준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재닛 옐런, 제롬 파월 등 최근 연준 의장을 역임한 4명의 연준 의장 아래서 연준은 의무적으로 시장에 개입했다. 하지만 시장이 불안해할 때마다 개입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1951~1970)와 폴 볼커(1979~1987) 연준 의장은 경제가 쉽게 돈을 벌 수 있도록 유지하는 것이 중앙은행의 임무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마틴은 연준의 임무는 파티가 한창 달아오를 때 펀치볼을 빼앗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볼커 이후 어떤 연준 의장도 파티를 망치려 들지 않았다.


다른 듣기 좋은 완곡한 표현과 마찬가지로 '양적완화'라는 경제용어는 위기를 피하고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는 안도감을 불러일으킨다. 벤저민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연준 할인 창구에서 현금을 조달하는 대형 은행들을 위해 금리를 제로 수준(또는 그 이하)으로 유지하기 위해 만든 이 용어는, 현재 진행 중인 금리 연착륙 시도와 함께 깔끔하고 면밀하게 검토된 법의학적 느낌을 전달한다. 한마디로 ‘이제 모두가 잘하고 있다.’라는 뜻으로 읽힌다. 저자는 양적완화 시대와 그 유산을 흥미진진하고 면밀하게 보고한 이 책에서 양적완화의 숨은 의미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자산 거품을 만들어낼 테다’에 훨씬 가깝다고 밝힌다.

​

버냉키는 2008년 경제 붕괴 이후 더디게 굴러가던 경기 회복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특히 약 2년이 지난 지금도 두 자릿수에 육박하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사실상의 양적완화 정책을 개척했다. 연준은 대침체가 한창일 때 담보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전례 없이 불안정한 담보 부채를 직접 매입하면서 이 정책을 처음 실험했다. 하지만 2010년 버냉키 의장은 훨씬 더 광범위한 조치, 즉 주요 은행에 무이자 대출을 제공하여 경제 전반에 새로운 현금을 공급하는 계획을 제안했다. 연준은 단 몇 달 만에 6,000억 달러의 양적완화 자금을 경제에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는 위기 이전에는 그 정도의 달러를 통화 기조에 추가하는 데 약 60년이 걸렸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연준의 통화 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한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버냉키는 투자자들이 더 잦은 빈도로 더 많은 금액을 소비하도록 투자자들의 안전한 자산을 압류하였다. 이제 은행은 원하든 말든 돈을 빌려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양적완화는 돈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피난처를 제한하는 동시에 금융 시스템에 돈이 넘쳐나게 한다. 2010년 부진한 경제 성장으로 양적완화는 더 많은 돈과 더 저렴한 대출, 쉬운 신용으로 시중에 자금을 공급하여 은행이 이전에는 자금을 지원하지 않았던 새로운 비즈니스에 자금을 지원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러나 양적완화가 향후 10년 동안 국가의 기본 통화 정책으로 자리 잡으면서 매우 다른 역학 관계가 시작되었다. 시장에 걷잡을 수 없는 현금의 물결이 넘쳐나면서 투자 경제는 점점 더 필사적인 돈세탁 작업과 비슷해졌고, 실제 경제 성과와 상관없이 투자자와 규제 당국에 서류상으로는 생산적인 기업처럼 보일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작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따라서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수익성 있는 투자 공식이 기능적으로 역전되어, 무분별한 자본이 더욱 기발하고 위험한 상품으로 빠져나가고 실물 경제의 기초 자산은 악의적인 방치 상태로 침체하였다.

첫 1분기 경제성장률 결과는 분명 모호하고 고무적이지 않았다. 일자리 증가는 여전히 빈약했고, 주류 경제 언론은 실현되지도 않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걱정했다. 이에 버냉키는 2012년 여름 더 큰 규모의 새로운 양적완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연설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공짜 자금이 공급될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한편, 그는 연준 의장의 정책 권고안을 승인하는 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12개 지역 위원들에게 ‘5,000억 달러 규모로 시작하되 이후 경제 상황에 따라 개방형으로 진행하겠다’는 새로운 양적완화에 대한 단합된 입장을 제시하기 위해 조용히 로비 활동을 펼쳤다.


투표에 앞서 버냉키는 일부 연준 경제학자들에게 월스트리트에 더 많은 양의 공적 자금을 공급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에 대한 발표를 준비시키는 동안, ‘이 새로운 자금 공급은 긴급한 조치이고 쉽게 철회할 수 있으며 위기 동안 연준이 관리해 온 익숙한 통화 정책 채널 내에서 억제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저자는 방대한 문서로 작성된 이 예측이 거의 모든 중요한 예측에서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였음을 지적한다. 그는 2013년과 2014년까지 제로 금리를 유지한 후, 단기 금리가 4.5% 이상으로 점차 성장 친화적이지만 덜 과열된 현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 주장했다. 실제 2016년 말 금리는 0.4%에 불과했고 2018년 중반에는 2% 미만으로 새로운 양적완화 구상에서 목표한 금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실질적으로 가상 수요의 공짜 자금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던 월스트리트는 더 많은 자금에 대한 끝없는 욕구를 드러냈다. 연준이 5천억 달러로 제한하였던 양적완화 규모는 2013년 말 1조 달러 이상으로 급증했고, 연준 대차대조표의 자산도 급증하여 2016년에는 4조 2천억 달러로 늘어났으며, 그 후 2년 동안 그 수치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반면, 냉정한 FOMC 보고서는 새로운 양적완화 정책의 첫 상반기 동안 3조 5,000억 달러로 정점을 찍고 2019년에는 1.9조 달러로 소폭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거시 경제 예측과는 별도로, 버냉키 계획의 또 다른 큰 문제는 이 모든 현금이 어디에 축적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버냉키는 침체된 노동 경기를 부양하려고 했지만, 제로금리정책이 주로 투자 세계의 최상위층에 윤활유를 공급했다.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은 양적완화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인데 정확히 바로 그 자체가 목표였다. 자산 가격 상승이 경제 전반으로 파급되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부의 효과'가 기대되었다. 연준의 고위 지도자들은 부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최상위 부유층에게 먼저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연준의 자체 분석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자산을 광범위하게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12년 초, 미국인 중 상위 1% 부자가 전체 자산의 25%를 소유했고 하위 절반의 미국인은 전체 자산의 6.5%만 소유했다. 연준이 한 일이라고는 자산 가격을 부추기면서 극소수 최상위층을 도와준 것뿐이다.

2013년 버냉키가 양적완화 축소 계획을 조심스럽게 발표했을 때, 전반적인 성장세가 둔화되고 노동 경제의 일부가 회복될 조짐을 보였다. 월스트리트는 패닉 상태에 빠졌고, 경제 전문가들은 버냉키가 연준 지원 자산 거품에서 살짝 벗어난 데에 경의를 표하였으나 곧 '테이퍼 탠트럼'이라고 부르는 시장 침체를 겪게 되었다. 투자자들은 연준이 그동안 유도해 온 고위험 자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국채 금리는 급격히 치솟았다. 테이퍼 탠트럼은 연준에게 양적완화를 지속하는 데 더욱 전념할 것을 강요했다. 매입을 계속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매입을 이어갔으며 계속 그러리라는 확신을 시장에 심어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실행했다. 은행 시스템에 현금이 계속 넘쳐나자, 민첩한 브로커와 펀드 매니저들은 전이되는 부채를 잡기 위해 이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금융 상품인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으로 몰려들었다. 2008년 세계 경제를 무너뜨릴 뻔했던 악명 높은 담보부 대출채권과 마찬가지로, CLO는 위험하고 모호한 레버리지 부채를 트랜치로 재포장하여 대형 펀드들이 계속해서 더 큰 수익과 은행 수수료로 전환하는 데 활용하였다. 물론 문제는 호황을 누렸던 CLO 시장이 부채담보부증권(CDO)의 전신과 마찬가지로 투기 열풍으로 변질되면서 실제 경제 상황과 괴리되었다는 점이다.

정크본드의 사기성과 무능을 밝혀내 투자자들이 정크본드를 버리거나 이자를 올려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몰두하는 정크본드 분석가인 비키 브라이언은 2014년과 2015년 투기 광풍이 한창일 때 자신의 연구 결과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이는 연준이 2010년에 시작하여 이후에도 계속했던 일의 결과다. 인위적인 바닥이 있고, 그 바닥의 더 높은 부분은 연준이 설정한 것이다. 따라서 이 시장에서는 손실을 볼 수 없는 구조이다. 손실 없는 시장은 있을 수 없다. 양적완화 시기의 CLO 시장은 2010년 3,000억 달러에 불과하던 것이 2018년 6,17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성장하였다.

시장을 휩쓸었던 또 다른 주요 버블 지표는 주식 환매였는데, 환매는 막대한 부채 위험 때문에 외환위기 이전에는 비교적 드물었던 수단이다. 2010년대 바닥을 쳤던 시장에서는 자사주 매입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는데, Forbes에 따르면 대표적인 사례로 맥도날드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210억 달러의 채권과 어음을 차입한 후 투자자들에게 500억 달러 이상의 자사주 매입을 제안했으나 310억 달러의 이익만 실현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장에서 훨씬 덜 튼튼한 기업의 경우, 이 새로운 거꾸로 된 부채 조달 논리는 자기 자본을 직접적으로 먹어 치웠고, 경기 침체와 인수 입찰에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밀워키에 본사를 둔 산업 부품 제조업체 렉스노드의 운명을 살펴본다. 대부분의 거품 금융과 마찬가지로, 이 회사 이름에 큰 의미나 근거는 없다. 2006년 제롬 파월 당시 미 연준 의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규모 사모펀드인 칼라일 그룹이 이 회사를 인수한 후, 렉스노드는 연이은 부채 중심의 인수 입찰에 휘청거렸다. 칼라일은 회사를 다른 대형 증권사인 아폴로 그룹에 매각했고, 아폴로 그룹은 다시 회사를 중심으로 수많은 CLO 상품을 출시하는 등 저자가 ‘위험 기계’라고 칭한 월스트리트의 부채 조립라인이 무너져 내렸다. 그 결과 렉스노드는 완전히 새로운 경제적 존재 이유를 얻게 되었으며, 저자의 표현대로 사모펀드 업계의 상징이 되었다. 더 이상 빚을 내서 목표를 달성하는 회사가 아닌, 부채 상환을 목표로 하는 기업이 되었다. 2014년 기업 부채가 20억 달러에 달했던 해에 렉스노드는 1억 9,000만 달러의 이자를 지불하였고 수익은 3,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기존의 시장 논리를 모두 무시하고 이사회는 2015년에 2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승인했으며, 향후 2년간 1억 2,100만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추가로 승인했다. 월스트리트의 대부호들에게 매력적인 회사로 보이기 위해 렉스노드는 인디애나폴리스에 있는 주요 볼 베어링 공장을 폐쇄하고 공장과 300명의 일자리를 멕시코 몬테레이로 이전했다.

저자는 댈러스의 집에서 15시간을 운전해 면접을 보러 온 후 그곳에 고용된 기계 운전사 존 펠트너의 격정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펠트너와 그의 아내는 인디애나폴리스 외곽 교외에 정착할 주택 구입을 위해 저축을 시작했다. 펠트너는 렉스노드에서 노조 대표를 맡고 있었고, 2016년 선거 기간 동안 도널드 트럼프가 인디애나의 또 다른 대형 제조업체인 캐리어 에어컨 회사가 700개의 일자리를 더 저렴한 글로벌 노동 시장으로 이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규모의 공허한 싸움을 벌였을 때 펠트너는 공화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펠트너와 동료 노동자들이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처지에 알리고 트럼프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으나 캠페인은 실패로 돌아갔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실직 노동자들의 대의를 선전하려는 그의 관심은 예상대로 위축되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제롬 파월을 연준 의장에 임명함으로써 일부 시장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파월은 월스트리트와의 긴밀한 관계 덕분에 연준 공개시장위원회에 합류했을 때 초기 양적완화 회의론자였다. 그러나 테이퍼 탠트럼 이후 파월은 버냉키의 프로그램을 사실상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러한 확신은 연준의 '레포 시장'위기에 직면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레포 거래에서는 위험을 회피하는 투자자들의 안전한 피난처인 국채가 대출 담보로 제공되었다. 그러나 2019년 9월, 이 거래의 금리가 놀라운 속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은행이 대출을 감당할 수 있는 현금 보유액이 부족하다는 대출 기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대개 레포 금리가 0.3% 인상되면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졌으나 지금은 2.5~3%까지 상승했고 결국 9%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되었다.

투자 경제의 전반적인 변화를 주도한 헤지펀드가 레포 자금을 인출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설상가상으로 헤지펀드는 소위 그림자 금융 시스템의 주도 기관으로서 장부 내용을 연준에 공개할 의무가 없었기 때문에 연준은 손실 규모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었다. 다만, 다른 종이 경제와 마찬가지로 레포 시장에서 헤지펀드 거래가 2008년 약 1조 달러에서 2019년 약 2조 달러로 양적완화 하에서 급격히 확대되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또 다른 시장 붕괴의 유령이 구체화하면서 파월의 연준은 또 다른 대규모 구제금융을 조율했는데, 이 구제금융은 연준 정책의 지루한 관료주의적 논리에 가려있어 저자는 이를 ‘보이지 않는 구제금융’이라 부른다.


저자가 위기 상황을 다룬 한 법의학 보고서를 요약한 바에 따르면, 레포 시장이 헤지펀드에 폐쇄되면 헤지펀드는 2008년에 청산한 금액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에서 국채와 모기지 증권을 청산해야 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다시 말해, 수년간의 양적완화 끝에 연준은 2008년 끔찍한 폭락 당시의 두 배에 달하는 강제 청산 사태를 간신히 피한 셈이다. 게다가 이 모든 일은 시장이 안정적인데다 상승 중인 날씨 화창한 시장 호황에 벌어진 일임을 지적한다. 당연히 당황한 연준은 붕괴가 우려되던 첫날 750억 달러를 레포 시장으로 옮겼고, 한 달 반 후 레포 시장을 하루에 100억 달러씩 부양하고 있었다.

이듬해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고 미국 경제의 상당 부분을 봉쇄하는 긴급 공중 보건 조치가 취해지면서 경제가 본격적으로 추락했다. 연준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의회가 미국 기업과 가계에 대한 소득 이전 자금을 직접 지원하는 2020 케어스 법안을 통과시켰을 때, 미국 정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공공 자원의 최대 지출을 감독했다. 그러나 2020년의 경제 회복은 특정 기관에만 자금이 흘러 들어가는 게이트형 회복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산층은 소득력, 협상력, 임금에서 길고 깊은 하락세를 경험했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이 궤적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경제는 성장했으나 그 성장의 혜택은 점점 더 적은 인구가 나눠 가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결과는 충분히 예상된 결과였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현대 역사상 최초로, 그리고 가장 강력한 종속 규제 기관, 즉 공익을 위해 억제해야 할 대상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연방 감독 기관 중 하나이다. 진보적 개혁가들은 통화 가치에 노동과 농작물 교환에 가중치를 두려는 포퓰리스트당의 급진적 하위 재무부 계획에서 그 구조를 차용했다. 금융 부문의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 새로운 연방 준비 제도를 설계한 사람들은 산업화 시대 미국에서 광대하고 점점 더 많은 경제적 불안정의 원인인 은행 산업에 전권을 넘겼다. 이러한 시장 경련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인 계층의 대표자는 공개시장위원회에 배정되지 않았고, 그들의 곤경은 일반적으로 실업률과 원자재 가격 변동을 감시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Fedspeak에서 다루어졌다. 연준 정책 엘리트와 금융 저널리즘계 모두의 골칫거리인 인플레이션조차도 일반적으로 레포 시장에서 헤지펀드가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관대한 조건으로 대출받아야 하는 채무자에게 유리하다. 통화 가치가 하락하면 대출 기간의 이자를 적게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19세기 포퓰리스트 운동이 금본위제에 반대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2010년 미국 민주주의 붕괴를 반영하고 분열을 가속하여 타락한 미국 미디어 생태계 덕분에 양적완화 시대의 모든 함의가 실시간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했음을 냉철하게 지적한다. 연준이 수십 년 동안 쉽게 돈을 찍어내면서 초래한 막대한 경제적, 사회적 피해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옳은 지적이긴 하나, 아쉽게도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 금융 평론가 및 경제학계 역시 연준이 심각한 결함이 있는 도구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강력한 연준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비둘기파적인 연준의 정책은 버냉키의 후임자인 경제학자 재닛 옐런의 재임 동안 대부분 지속되었다. 하지만 2017년부터 연준은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자산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제롬 파월이 옐런을 대신했다. 금리 매파는 아니었지만, 파월은 냉철하고 사려 깊었으며 사모펀드에 대한 배경을 고려할 때 양적완화의 매력과 위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 팬데믹과 정부에 의한 봉쇄 조치가 시작되었다. 파월의 연준은 2020년 6월 10일까지 대차대조표가 7조 2,000억 달러에 달하는 등 유동성 공급의 소화전을 열었다. 그리고 당파 싸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악연에도 불구하고 의회는 2020년 3월 25일 2조 달러 규모의 CARES 법안을 통과시켰다. 봉쇄 조치 이후 연준은 계속해서 쉽게 돈을 풀고 있다. 2022년 3월 말까지 대차대조표는 8조 9,000억 달러로 늘어났고 인플레이션은 1981년 12월 이후 최고치인 8.5%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의 기록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여전히 시장의 자기 조절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현대 국가는 신뢰할 만한 형태의 통화가 필요하므로 자유 은행을 ‘미치광이’라고 가볍게 일축하며 중앙은행 없이는 모든 것이 작동불능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역사와 최근의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마법 같은 존재가 아니다. 1913년 연준이 설립된 이래 미국은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여러 차례의 경제 및 금융 위기를 겪었으며, 그중 상당수는 연준이 직접 초래한 것이었다. 밀턴 프리드먼은 미국의 어떤 주요 기관도 이렇게 오랫동안 저조한 실적을 기록하면서도 대중의 평판이 높았던 기관은 없었음을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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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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