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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을 지킬 권리
강원상 지음 / 경향BP / 2019년 12월
평점 :
비 오는 날 비를 맞고 걷는 이에게 우산을 받쳐주면 위로가 되고, 우산을 손에 쥐여주면 동정이 되지만, 함께 비를 맞아주면 공감이 된다. 저자는 공감이란 상대의 창을 통해 객관적인 입장으로 최대한 견지해 보려는 노력이며, 상대가 충분히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곁에서 함께할 줄 아는 이성적 기다림이라 말한다. (p.8)

이 책은 각기 제법 긴 제목을 단 전체 6개의 장으로 나뉘었다. 길어야 세 장을 넘지 않는 짧은 수필과 산문이 주를 이루고 간간이 자작 시를 곁들여 읽는 재미가 아기자기하다. 사랑의 경험과 본질을 드러내 주는 초반부 글의 느낌은 15세기 영미 시인들의 감미로운 낭만 시 같기도 하고 통찰과 해학, 성장통이 함께 녹아있는 인생 소설 혹은 부담 없이 읽히는 철학책 같기도 하다. 각 장의 독특한 제목과 함께 받은 느낌으로 간략히 주석을 달아보았다.
1장 사랑을 할 때 우린 가장 나다워질 수 있다
=타인을 사랑하려면 자신에 대한 사랑이 먼저 충만해야 한다.
2장 남을 바라보는 시선을 돌려 나를 들여다보다
=외부의 요인으로는 자신의 빈 자리가 채워지지 않으니 스스로 차올라야 한다.
3장 선택을 멈추지 않는 한 우린 주인공이다
=자기 일은 자신이 주인으로 선택하고 책임진다
4장 당신과 멀어지고 나와 가장 가까워졌다
=관념의 대상에서 멀어질수록 나는 객체가 된다
5장 넓게 바라볼 때 가장 깊게 이해할 수 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6장 좋은 사람을 찾는 것보다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에 드는 대상 찾기에 매몰되지 말고 상대와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줄 알아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나다움이란 외부의 기준과 영향에 의해 자신을 타자화시키지 않으며 생각하는 힘과 질문을 통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살기 좋은 세상이라며,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무감각해져 나를 잃어버리기에 십상인 세상에 휩쓸리지 말라고 한다.
평범함을 뜻하는 ordinary의 어원은 베틀 위에 같은 간격으로 놓인 줄을 뜻하며, 나의 줄이 양쪽 다른 줄 사이에서 얼마나 질서 정연한지가 중요했다. 즉 모든 기준은 내가 아닌 주변에 놓인 나였다. 내가 그들과 일치시키면 지극히 평범해지는 것이며, 내가 그들과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이상해지는 것 ‘나다움을 지킬 권리는 바로 평범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시작했다.’(p.295)

책 표지에 보이는 에필로그의 일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평범함을 거부하고 자신의 색깔대로 살아가라고 한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자신다움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어느 집단에서건 발견되는 보편적 현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자마자 과거 내 주변에서 나다움을 지킬 권리에 집착하여 집단에는 별반 도움을 주지 못하던 좋지 않은 사례가 떠올랐다.
나 그대로를 인정해 줄 사람들을 반드시 가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불편한 것을 거부할 줄 아는 거절만큼 스스로의 자존감을 확인하는 방법은 없고..(p.82)
어느 조직이든 그 구성원은 조직의 존속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해낼 것을 요구받기 마련이고 또 구성원은 대개 그 기대에 호응하려 노력하기 마련이다. 한데 이 사례의 주인공인 그 선배에게는 현재의 불편을 거부하는 거절의 기준이 남달랐던 모양이다.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자신의 권리에는 충실했지만 이에 따르는 책무는 잊어버리는 아주 세상 편한 이기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업무상 기본적으로 자신에 주어진 몫조차도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며 거부하기 일쑤였다. 결국, 그가 거부한 업무는 마땅한 제제가 없다는 강렬한 인상과 함께 동료와 후배의 몫으로 돌아갔다.
상식선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해지는 걸 죄악시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도덕성 의심스러운 흐린 윗물이 아랫물 보고 맑아지라 하니 역한 감정이 들어서였는지 알 수 없었다. 회의 석상에서 왜 선배가 후배에게 먼저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느냐는 등 업무협조 거부 의사를 밝히며 하도 자존심을 거론하길래, 도대체 그놈의 잘난 자존심은 당신에게만 있고 우리에게는 없어서 우리가 ‘평범’한 오류를 범하는 거냐고 들이받았다. 이후 그 선배는 후배들로부터 존경과 존중의 대상에서 멀어져갔음은 물론이다. 그가 생각했던 자신다움의 권리는 평범함에 대한 거부를 잘못 이해한 데서 생겨난 아집으로 보였을 뿐이다.
나다움의 권리는 세상이라는 바다를 건너는 배의 선장과도 같은 존재다. 어디로 어떻게 얼마나 빨리 또는 천천히 갈 것인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라는 배의 선장임을 잊지 말고 살아가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