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 : 고대~근대 편 - 마라톤전투에서 마피아의 전성시대까지 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
빌 포셋 외 지음, 김정혜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처럼 어려운 경제 시국에 돈벌이만 해도 힘겨운데 자기 세대의 가사와 양육은 물론 부모 세대까지 챙기느라 지쳐가는 그대 이름은 아저씨.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반쯤 내리고 알코올흡입과 운동 부족으로 배는 점점 불러오고 세월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이마는 점점 넓어진다. 어느 바람 차가운 겨울밤 분리배출 쓰레기를 치우고 아파트 주차장 한구석에 쪼그려 앉은 채 잠시 반딧불을 반짝이다 부르르 몸을 털며 일어서다 30년쯤 전 스쳐 지나간 인연이 문득 생각난다. ‘내가 그때 널 잡았더라면 너와 나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마지막에 널 안아줬다면 너와 나 지금까지 함께 했을까’ 노랫말이 시린 손처럼 목덜미에 훅 들어왔다가 사라진다. 누구나 흑역사 한 가지씩은 있는 거라는 푸념을 뒤로 총총히 집으로 향한다. 아파트 현관 거울에서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위해 추우나 더우나 먹이 찾으러 떠나는 외로운 늑대를 본다.


그때 만약 다른 사람을 택했어도 지금처럼 살고 있을까 하는 희미한 질문이 눈 녹듯 아련히 사라져간다. 남녀 간의 일이야 그들만의 역사가 되고 집안 내력이 되겠지만, 만약 전쟁, 정부, 기업, 그리고 경제 등 인류 역사의 각 분야에서 사소한 실수로 빚어진 엄청난 결과가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만약 ~했더라면’을 전제로 펼쳐질 만한 내용을 대체 역사라고 부른다) 당연히 인류는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저자가 보기에 잘못된 결정과 선택으로 간주한 실수들로 인해 그 이후의 역사가 얼마나 다르게 펼쳐졌을지를 추측해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주된 논조는 "만일...이였다면 백 배는 더 좋았을 텐데."라는 일말의 아쉬움과 함께 긍정적인 결과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인류는 십중팔구 또 다른 실수를 저질러 새로운 흑역사를 쓸 테고, 만약 그때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래저래 좀 더 낫지 않을까를 타령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본래 이 책은 고대로부터 2천년대에 이르는 101가지 인류의 흑역사를 단권으로 묶었으나 편의상 1924년을 기준으로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1권에 속한다. 대부분은 대표 저자 빌 포셋이 썼지만 저명한 대체 역사가 및 SF 작가들과 함께 쓴 에세이 모음집이다. 흑역사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들은 스페인 원정대에게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제국의 멸망을 초래했던 아즈텍 황제 몬테수마 2세의 우유부단함이나, 자신이 혁명에 이용당했음을 알게 되자 동지였던 스탈린을 숙청하고자 했으나 먼저 사망함으로써 혁명과는 거리가 먼 악명높은 독재체제와 세계적인 공산주의 파급효과의 물꼬를 터준 레닌의 일화 같은 유명한 역사적 실수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저질러진 때로는 터무니없는 실수와 그 여파로 생겨난 결과들을 바둑 복기하듯 되짚어 보고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 혜안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저술 목적이다.



여러 작가의 에세이 모음 형식을 지향하는 가운데 찰스 E. 개넌은 유일한 예외로 단편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 1274년 일본을 침략했으나 태풍으로 원정에 실패한 여몽 연합군이 만약 일본을 정복했더라면 그 이후의 동아시아 정세는 판이하게 흘러갔을 거라는 상상은 자못 흥미롭다. 만약 그랬더라면 일본 근대화의 기점인 메이지유신도 없었을 것이고 오늘날처럼 반성할 줄 모르는 전범 국가라는 오명을 얻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혹시 누가 알겠는가, 그날 그때 그 순간의 선택이 후대의 역사를 어떻게 좌우하게 될지.



감춰졌던 흑역사를 읽고 독자들은 역사상 위인들 역시 어쩔 수 없는 실수투성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겠지만, 두 가지 짚어볼 사항이 있다. 첫째, 역사란 사람들이 내린 수백만의 결정과 선택의 조합이므로 그 가운데 겨우 101가지 실수를 찾아내기란 옥에 티 같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로마 제국의 쇠퇴와 몰락을 다룬 부분에서 군사행동이 필요한 대치 상황이 자주 등장하는데 저자는 종종 지휘관들의 지나친 소심함을 비난한다. 결정과 선택의 순간에는 그것이 바보 같은 경솔함이었는지 아니면 존경할 만한 대담한 태도였는지는 후세에 가서야 분명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미래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한 위태롭고 급박한 순간에 결정을 내려야 했음을 고려하면, 그 결정자가 얼마나 똑똑하고 경솔하고 신중했는지보다는 얼마나 더 많은 운이 작용했느냐가 더 큰 변수로 작용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둘째, 무엇보다 역사는 우발적 행위의 연속이므로 본래 엉망진창이라는 점이다.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개를 퍼덕이면 캐나다에서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 효과’처럼,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여파는 생각보다 강력하다는 점이다. 지금보다는 나으리라는 결과를 기대하며 현시점을 기준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논리를 과거에 대입함으로써 얻은 결과는 그 기준이 아무리 논리적이라 하더라도 좋든 나쁘든 우리의 기대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어쨌든 흑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개인의 역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위에 언급한 짚어볼 점 두 가지를 생각해보자. 결혼 역시 수백 번의 선택과 결정의 조합이니 잘살고 못살고 결과는 세월이 지나 봐야 입증될 테고, 어느 사람과 결혼하더라도 기본적인 유부남의 생활상은 정도만 다를 뿐 본질에서 큰 차이가 없다. 아련한 기억 저편으로 흘러간 과거일 뿐인 흑역사를 자꾸 복기하기보다는, 앞으로 어떤 수를 둘 것인지를 생각하며 살아야 여러모로 이로울 것 같다. 어쨌든 삶을 계속 이어가야 하니까.

#세계사 #101가지흑역사로읽는세계사고대근대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어 회화의 결정적 상황들 영어의 결정적 시리즈
룩룩잉글리쉬 지음 / 사람in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을 비롯해 어떤 언어 학습자이든 대동소이한 입장이겠지만, 외국어 사용이 어렵게 다가오는 이유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반드시 해당 외국어로만 소통해야 하는 조건에서 오는 압박감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문제의 상황을 가정하여 가장 보편적이고 이해가 쉬우며 사용 빈도가 높은 표현을 반복 숙달하여 자동화시키는 것 아닐까. 그 좋은 예로 How are you? 라는 인사말에 자동 반사되는 I’m fine and you? 처럼 공교육을 받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기본으로 장착한 강력한 매크로 기능을 들 수 있겠다. , 일회용이라는 단점은 빼고.



 

사실 말하는 행위 자체는 호흡과 함께 성대, , 입술 같은 조음 기관을 움직이므로 운동의 범위에 들어간다. 듣고 이해한 내용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말할지는 대뇌에서 판단하지만, 조음 기관을 작동시키는 데 관여하는 신체의 모든 움직임은 소뇌에서 주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참 동안을 떠들고 나면 장거리를 뛴 것처럼 힘들기 마련인데, 밤새도록 대화가 가능한 여성들의 경우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운동 효율성을 지닌 것 같다.



 

이 책은 빈도 높은 다양한 상황별로 주제를 정하고 가장 그럴싸한 담화 내용을 포함하는 20개의 유닛으로 구성되었다. 가장 흔히 쓰이는 표현은 곧 가장 표준적인 소통 규약을 의미하며,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는 대화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기에 그렇다. 또한, 화자가 굳이 자신만의 색다른 방식을 고집하며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 바탕에는 언어의 경제성과 보편성이 깔려있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 어디를 가더라도 식사할 때 사용하는 수저의 형태가 거의 같은 형체를 지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요즘 회화 교재는 음원을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내려받는 추세를 지나, 아예 QR 코드를 통해 음원과 영상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이 책 역시 출판사 블로그에 학습자의 편의를 위한 수능 영어 듣기 수준과 자연스러운 대화의 두 가지 속도로 음원을 제공할 뿐 아니라, 무자막 듣기-자막 듣기-자막과 해설 듣기-무자막 듣기의 순서로 제작된 원어민 대화 영상을 보고 듣고 따라 말하면서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해당 블로그에 서로 이웃을 걸어두면 매우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주어진 대화문에 관련하여 다양한 의미로 확산하는 관용적 표현, 구 동사(phrasal verb 또는 two-word verb)로 확장 가능한 응용 패턴, 최소한의 핵심문법, 원어민의 발음 링크를 색색의 소단원으로 제공하는 등 단 한 문장도 남김없이 꼼꼼히 짚어줌으로써 청해는 독해 공부와 병행해야 한다는 원리에 충실하다. 실제로 내용어에 대한 이해 없이 소리에 노출돼 봐야 익히 알고 있는 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는다. 라디오 영어 뉴스를 온종일 들어도 귀에 들어오는 단어는 매우 제한적인 경험을 해보셨으리라. 문자 정보의 습득 없이 소리만 듣는 행위는 가학 내지는 고문인 셈이다. 낯선 단어를 익힐 때 소리와 함께 익혀두지 않으면 문장 자체가 낯선 소리의 연속이므로 듣고도 모르는 상황만 반복하게 된다. 따라서 반드시 대화문에 연결된 QR 코드로 문자와 소리를 함께 익힐 것을 권해드린다.



 

말미에도 밝혔듯 저자가 책을 펴내면서 염두에 두었다는, 물 흐르듯 중간에 막힘없이 말하는 유창성(fluency)과 스스로 문장을 자유롭게 만들어 내는 능력의 원천은 결국 연습(exercise)보다 더한 훈련(drill)의 반복이다. 훈련이 고될수록 실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괜찮은 수준과 내용의 교재를 만났으니 무한 반복은 학습자의 몫이다. 훈련이 힘들고 지겨워질 때면 박지성 선수의 화려한 축구 실력 뒤에 가려진, 엉망으로 부르튼 평발을 떠올려보자.

 

 

#영어회화 #영어회화의결정적상황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식물, 세계를 모험하다 -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전략으로 지구를 누빈 식물의 놀라운 모험담
스테파노 만쿠소 지음, 임희연 옮김, 신혜우 감수 / 더숲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제 식물신경생물학연구소 소장인 스테파노 만쿠소가 식물계의 문외한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입문서를 내놓았다. 수십 장의 수채화로 장식한 이 놀라운 식물 모험담은 전 세계에 퍼져있는 식물의 생존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두 6개의 장으로 구성된 식물의 모험담은 때로 놀랍기도 하고 경이롭기조차 하다. 1장에서는 식물이 극한의 추위와 더위, 지형을 가리지 않고 번성하여 모든 곳을 정복하였고 계속 정복을 이어나가는 탁월한 개척 유기체로서, 화산섬의 개척자인 흑사초, 체르노빌 원자력발전 사고의 전투원인 콩, 원자폭탄의 생존자인 히바쿠주모쿠(被暴壽木) 등을 예로 들었다.



 

2장에서는 외래종 식물은 물론 우리 곁에 항상 있어 주변 환경의 일부라고 믿었던 식물 대다수가 실제로는 이민자였음을 밝히며 그 좋은 예로 토마토와 바질을 언급한다. 침입 식물의 자격 조건은 씨앗을 다량 분산하는 능력, 매우 빠른 성장 속도, 다양한 생태형을 만드는 능력, 복합적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 인간과의 제휴 능력. 종을 효율적이고 유연하며 저항력을 키우는 특징을 지니며 저자는 이를 가리켜 식물에 지능이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국화, , 부레옥잠과 같이 인간을 비롯한 동물을 씨앗 확산의 매개체로 활용한 식물들을 일컬어 새로운 영토를 정복한 도망자들이라 정의한다.

 

3장에서는 망망대해 무인도에서 번성하는 코코넛 야자의 유입 과정을 추론하며 이들을 용감한 선장들이라 칭한다. 4장에서는 기원전 로마와 이스라엘의 투쟁사를 함께 했던 역사의 증인이자 시간 여행자인 대추야자를 소개한다. 5장에서는 극악할 만큼 추우며 최소한의 일조량을 지닌 남극의 한 섬에서 살아남은 가문비나무가 강제로 심어져 살아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공룡의 번성기에는 최적화되었으나 멸종 이후의 변화에 걸맞지 않게 과육에 비해 지나치게 큰 씨앗을 지녀 인간에게 의존하게 된 시대착오적 아보카도의 어두운 미래를 살펴본다.



 

서기 66년 로마 정부에 맞서던 유대인들이 점령했다가 로마에 의해 파괴된 이스라엘 마사다 요새의 고고학적 발굴에서 발견된 시간 여행자씨앗의 사례는 기억에 남을 만큼 매우 흥미롭다. 로마군에 포위된 사람들의 식단 일부였던 이 씨앗은 중동에서 수백 년 동안 멸종된 피닉스 닥틸리페라(대추야자) 종에 속한다. 2005년 호기로운 두 명의 연구자가 거의 2천 년 동안 방치되었던 씨앗 중 세 개를 심었고 놀랍게도 그 가운데 하나가 발아했다. 이는 마치 동토층에서 출토된 공룡알에서 새끼 공룡이 부화하는 것과 맞먹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는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피격에서 살아남은 나무 히바코주모쿠의 존재이다. 194586일 원폭 투하 지점에서 불과 1,370 미터 거리에서 4000°C가 넘는 지상 온도를 견뎌내고 아직도 살아있는 생존자이다.

 



이 책은 저자가 나열한 일화와 흥미로운 정보로 가득 찬 식물 생활에 대한 멋진 찬가임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생각해 볼 점을 남겨놓는다. 첫째, 제시되는 일화들의 풍부함에 비하여 과학적으로 탐구한 내용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다. 분명히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뜻밖의 식물계 모험담이지만 이를 다루는 용어의 범위가 매우 한정적이다. 둘째, 유명 삽화가가 그렸다는 그림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책 내용에 잘 연결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수채화가 아름답긴 하지만 저자가 어떻게 생긴 식물을 말하고 있는지 궁금한 독자들에게는 이렇다 할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나뭇잎 모양으로 세계 지도를 그린 것 같기도 한데 장식용이라기에는 분량이 너무 많다. 셋째, 각 챕터의 도입부에 보이는 단색의 식물 정밀소묘보다는 사진 자료가 더 효과적일 것 같다. 특히 오랜 기간 살아남아 싹을 틔웠다는 고생대 식물의 씨앗 모양은 설명만 듣고 모양을 어림짐작하자니 상상력의 한계가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는 라틴어 학명과 더불어 공룡을 비롯한 고생대 동식물의 이름이 수없이 등장하는데, 사실 일반 독자들에게 라틴어는 물론 명칭부터 생소한 것이 많아 정보의 과잉으로 보이며 가독성을 감소시키는 요인이다.



 

이러한 지적질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말처럼 식물은 인류가 동물에게 보인 관심의 정도와는 상대도 되지 않은 채 지구 전체의 역사를 조용히 목격해왔다. 그들은 인간이 초래한 지질학적 시대와 환경 재앙의 흔적을 지니고 있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계속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식물은 물과 바람뿐만 아니라 동물과 인간의 방식을 따라 가장 영리한 방법으로 삶터와 후손을 먼 곳으로 확산시켰으며, 진화를 거치는 동안 그들의 자손, 즉 씨앗을 보호하고 종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을 개발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 방사성 물질 피폭으로 인간의 흔적이 사라진 체르노빌의 폐허를 뒤덮고 있는 식물을 보면, 이 행성의 진정한 주인은 자신을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는 인간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선명해진다.


 

#식물학 #식물세계를모험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시아의 시민들
백민석 지음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가이자 사진작가인 저자가 홀로 여행을 떠난다. 서툰 영어조차도 전혀 통하지 않는 눈과 불곰과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로 그것도 무려 3개월 동안. 주요 이동 수단은 일주일씩이나 걸린다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다. 중간 기착지에 내려 하루 이틀 묵으며 동네를 구경하고 모스크바에는 장기 체류한다. 전체 여행 기간은 3개월 가량.


여행은 금전적 여유나 계획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떠날 수 있는 용기라고 했다.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용기도 부러운데 무려 혼자다. 짝을 이루어 둘이 떠나면 서로 챙겨주고 도와주겠지만, 저자는 자기 마음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말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내서 대신 여행 수필을 쓰며 자신에게 너그러워지고 용서하는 일을 익히는 행복을 누리기로 한다. 혼자라서 관광객인지 여행자인지 조금은 애매한 처지이지만 여행의 한계를 잘 알고 있으므로 최대한 관광객이고자 한다.


러시아는 내륙 철도가 잘 발달한 나라다. 육상권 지배자가 곧 해상권을 지배한다는 정치 수뇌부의 신념에서 촘촘한 철도망으로 내륙을 연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 유독 한국인들에게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일종의 환상적 존재인데 아쉽게도 저자의 이동 경로 정보가 없어 지도를 첨부해 보았다. 이 책은 항공기로 모스크바에 내린 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들렀다가 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까지 왕복하며 촬영하고 남긴 사진과 글이다.


저자가 촬영한 사진에는 거의 예외 없이 사람이 있다. 책 제목 ’러시아의 시민들‘처럼 다양한 러시아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람이 없으면 하다못해 도심지 길거리에 그 흔하다는 동상이라도 등장한다. 물론 현지인들에게 사전 양해를 구했으며 우리가 흔히 사진 찍을 때처럼 무릎을 굽히면 그들도 따라서 무릎을 굽히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는 얘기는 흥미롭다. 촬영에 응한 러시아 시민들의 표정은 대개 밝은 편인데 무작정 접대용 미소를 띠지는 않는다. 서구인 특유의 오만함이나 과장된 웃음과 달리 매우 순박하면서도 기품이 있어 보인다.


이들은 또 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혁명을 겪었던 나라의 국민으로서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살아있다고 한다. 어렵던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도 의료와 교육은 거의 무료였고 물가는 낮아도 안정적이었던 때문으로 보인다. 대체로 러시아인들은 자신을 자유국가의 자유로운 민족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규제하는 모든 법규와 법률을 내려다보는 경향이 있다. 신체에 위해가 되지 않는 한 까다롭게 굴지 않아 공중질서 의식이 느긋해 보인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서구와 단절된 채 70여 년을 보내어 그런지, 우리나라처럼 잘 먹고 잘사는 서구식 목표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화려하고 부티 나지는 않지만 높은 수준의 정신세계를 가진 그들 특유의 민족적 자부심이 엿보인다. 세계적인 대문호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세계가 곧 이들의 국민적 성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아도 좋겠다.



대다수 러시아인의 생활상은 서구 유럽인들과 비교해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지만, 이들의 민족성과 관습이 여타 국가들과 비교해 다소 음습한 악당의 이미지(?)를 지니는 것은 러시아만의 특이한 역사, 특히 한때 세계를 이념으로 양분하던 냉전 시대와 소련의 붕괴 이후 경제 위기를 겪었고 현재는 세계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등 격변기를 겪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현재 40대 이상의 러시아 국민은 소비에트 연방 시절 공산주의 교육을 받고 격변기를 지나온 사람들이다. 비록 90년대 초 민주주의로 돌아섰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던 러시아인들의 성향은 여타 유럽국가에서 민주주의 교육을 받아온 국민과 비교해 색다른 국민성을 지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가 촬영한 수많은 사진 자료를 통해 러시아를 조금 엿볼 수 있어 좋았다. 한편으로 저자가 목표한 대상이 러시아 시민들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직접 이용했던 이동 수단인 횡단 열차, 매일 접해야 했던 현지 음식, 학교나 도서관처럼 실제 시민들이 이용하는 공중 시설의 모습, 그리고 피곤하고 지친 관광객의 모습으로 한 장쯤은 찍었을 법한 그 흔한 저자의 셀카를 볼 수 없었던 점은 살짝 아쉽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낯설고 물선 이국인들의 모습을 바라본들 우리는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보고 들은 내용을 곁들인 수십 장의 사진으로 색다른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행안내서라기보다 수필로 다가오는 이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사의 시선
김태현 지음 / 교육과실천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년 전 문득 한 가지를 결심하고 실행하여 완수한 지 두 달쯤 지났다. 바로 책 100권 읽고 서평 쓰기였다. 일단 일을 벌여놓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자신이 대견스럽긴 했다. 이런 추세라면 더 높은 목표를 세워도 해 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한 가지 놓친 것을 이제야 발견한다. 100권의 독서와 서평이라는 목표 달성에 집중한 나머지, 스스로 만족할 만한 목적은 이루지 못한 것 같다. 어디를 향할 것인가 방향과 무엇을 할 것인가 목표는 옳게 정했지만 어떤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볼 것인지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다 교사의 시선이라는 책 제목에 시선이 머물렀다.


 

저자는 반갑게도 동종업계 종사자, 즉 현직 고등학교 교사이자 작가이다. 이미 수업과 삶에서 나를 만나자는 두 권의 전작을 냈는데, 수업 이야기는 다분히 기술적 측면의 내용이 많았고 삶의 이야기는 교사의 몸 챙김과 마음 챙김을 말하고 있다. 눈길 닿는 곳에 마음이 있어서일까? 수업과 삶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말들을 보태 세 번째 내어놓은 책의 주제가 교사의 시선이다.



 

방학과 신분보장이라는 세간의 부러움을 뒤로한 채 이 책에 등장하는 80여 편의 회화와 조각품 그리고 직접 찍은 사진을 통해 독자는 매일 반복되는 감정노동을 통해 주위로부터 매일 상처받는 교사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1) 단순히 바라만 보는 게 아니라, 그림이 말하는 상황과 배경 속에 교사의 현재를 겹쳐 투영함으로써 피사체와 별반 다를 바 없이 관찰당하는(?) 처지를 깊이 들여다본다.(2) 작품을 만들어 낸 예술가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통해 교사들이 겪는 아픔을 공유하고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3) 비슷한 처지의 다수가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자는 생각을 실제 책방을 열고 학교 현장에서 드러내지 못했던 재주와 끼를 풀어내는 장소로 구현한다.(4) 수업 내용은 바로 선 교사 자신의 삶이어야 하고 그를 말할 수 있는 담대함의 필요성을 제시한다.(5) 마지막으로 학습자를 환대하는 마음과 그럴 수 있는 용기를 담아 수업을 설계하자고 말한다.(6)

 


교사를 일컬어 천직, 혹은 전문직이라고들 한다지만 사실 그에 걸맞지 않은 처우를 받는지도 모른 채 자신을 잃어가며 타성에 젖어 무기력하다. 군사부일체는 이미 옛말이고 밟지도 말라던 스승의 그림자는 이미 지워졌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교육의 세 주체라면서 교권은 늘 인권과 학습권보다 뒷전이다. 그나마 공립 학교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호라도 받고 단체의 목소리라도 낼 수 있지만, 사립 학교는 소리 내면 잡아먹히는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교사들은 뭔가를 배워야 할 이유도 의지도 없이 교사만큼이나 무기력하게 책상에 엎어져 있는 아이들을 일으키기에는 너무 지쳐있다. 가정에서 부모도 손을 못 대는 아이들을 학교에서는 더더욱 어찌할 도리가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이 책은 쉬운 글로 쓰였지만 쉽게 읽히지 않는다. 교직과 관련 있는 독자라면, 특히나 독자 자신이 교사라면 진솔하고 꾸밈없는 저자의 글에 그래 이건 바로 내 이야기잖아라며 이따금 농도 짙은 감정이입이 일어나 울컥해지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아픔과 상처를 드러내어 공유하는 민망함을 뒤로하고, 마침내 저자는 이를 극복하며 일어섰던 경험을 말하고 있다. 아마도 교사로서 가장 힘든 점이라면, 교사의 책임과 권한에 대한 마땅한 규정이나 범위가 매우 추상적임에도 불구하고 요구받는 잣대의 기준이 매우 구체적이라는 것일 텐데, 저자는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시선을 두어 마음을 함께 나누고 있다. 그 아픔에 공감한 결과가 소소한 책방이요 연구 공동체일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파편화된 교사들의 마음을 한 데 묶어 연대할 필요성을 깨닫는다. 함께 하면 멀리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