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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세계를 모험하다 -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전략으로 지구를 누빈 식물의 놀라운 모험담
스테파노 만쿠소 지음, 임희연 옮김, 신혜우 감수 / 더숲 / 2020년 11월
평점 :
국제 식물신경생물학연구소 소장인 스테파노 만쿠소가 식물계의 문외한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입문서를 내놓았다. 수십 장의 수채화로 장식한 이 놀라운 ‘식물 모험담’은 전 세계에 퍼져있는 식물의 생존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두 6개의 장으로 구성된 식물의 모험담은 때로 놀랍기도 하고 경이롭기조차 하다. 1장에서는 식물이 극한의 추위와 더위, 지형을 가리지 않고 번성하여 모든 곳을 정복하였고 계속 정복을 이어나가는 탁월한 개척 유기체로서, 화산섬의 개척자인 흑사초, 체르노빌 원자력발전 사고의 전투원인 콩, 원자폭탄의 생존자인 히바쿠주모쿠(被暴壽木) 등을 예로 들었다.

2장에서는 외래종 식물은 물론 우리 곁에 항상 있어 주변 환경의 일부라고 믿었던 식물 대다수가 실제로는 이민자였음을 밝히며 그 좋은 예로 토마토와 바질을 언급한다. 침입 식물의 자격 조건은 씨앗을 다량 분산하는 능력, 매우 빠른 성장 속도, 다양한 생태형을 만드는 능력, 복합적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 인간과의 제휴 능력. 종을 효율적이고 유연하며 저항력을 키우는 특징을 지니며 저자는 이를 가리켜 식물에 ‘지능’이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국화, 벼, 부레옥잠과 같이 인간을 비롯한 동물을 씨앗 확산의 매개체로 활용한 식물들을 일컬어 새로운 영토를 정복한 도망자들이라 정의한다.
3장에서는 망망대해 무인도에서 번성하는 코코넛 야자의 유입 과정을 추론하며 이들을 용감한 선장들이라 칭한다. 4장에서는 기원전 로마와 이스라엘의 투쟁사를 함께 했던 역사의 증인이자 시간 여행자인 대추야자를 소개한다. 5장에서는 극악할 만큼 추우며 최소한의 일조량을 지닌 남극의 한 섬에서 살아남은 가문비나무가 강제로 심어져 살아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공룡의 번성기에는 최적화되었으나 멸종 이후의 변화에 걸맞지 않게 과육에 비해 지나치게 큰 씨앗을 지녀 인간에게 의존하게 된 시대착오적 아보카도의 어두운 미래를 살펴본다.

서기 66년 로마 정부에 맞서던 유대인들이 점령했다가 로마에 의해 파괴된 이스라엘 마사다 요새의 고고학적 발굴에서 발견된 ‘시간 여행자’ 씨앗의 사례는 기억에 남을 만큼 매우 흥미롭다. 로마군에 포위된 사람들의 식단 일부였던 이 씨앗은 중동에서 수백 년 동안 멸종된 피닉스 닥틸리페라(대추야자) 종에 속한다. 2005년 호기로운 두 명의 연구자가 거의 2천 년 동안 방치되었던 씨앗 중 세 개를 심었고 놀랍게도 그 가운데 하나가 발아했다. 이는 마치 동토층에서 출토된 공룡알에서 새끼 공룡이 부화하는 것과 맞먹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는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피격에서 살아남은 나무 ‘히바코주모쿠’의 존재이다. 1945년 8월 6일 원폭 투하 지점에서 불과 1,370 미터 거리에서 4000°C가 넘는 지상 온도를 견뎌내고 아직도 살아있는 생존자이다.

이 책은 저자가 나열한 일화와 흥미로운 정보로 가득 찬 식물 생활에 대한 멋진 찬가임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생각해 볼 점을 남겨놓는다. 첫째, 제시되는 일화들의 풍부함에 비하여 과학적으로 탐구한 내용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다. 분명히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뜻밖의 식물계 모험담’이지만 이를 다루는 용어의 범위가 매우 한정적이다. 둘째, 유명 삽화가가 그렸다는 그림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책 내용에 잘 연결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수채화가 아름답긴 하지만 저자가 어떻게 생긴 식물을 말하고 있는지 궁금한 독자들에게는 이렇다 할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나뭇잎 모양으로 세계 지도를 그린 것 같기도 한데 장식용이라기에는 분량이 너무 많다. 셋째, 각 챕터의 도입부에 보이는 단색의 식물 정밀소묘보다는 사진 자료가 더 효과적일 것 같다. 특히 오랜 기간 살아남아 싹을 틔웠다는 고생대 식물의 씨앗 모양은 설명만 듣고 모양을 어림짐작하자니 상상력의 한계가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는 라틴어 학명과 더불어 공룡을 비롯한 고생대 동식물의 이름이 수없이 등장하는데, 사실 일반 독자들에게 라틴어는 물론 명칭부터 생소한 것이 많아 정보의 과잉으로 보이며 가독성을 감소시키는 요인이다.

이러한 지적질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말처럼 식물은 인류가 동물에게 보인 관심의 정도와는 상대도 되지 않은 채 지구 전체의 역사를 조용히 목격해왔다. 그들은 인간이 초래한 지질학적 시대와 환경 재앙의 흔적을 지니고 있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계속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식물은 물과 바람뿐만 아니라 동물과 인간의 방식을 따라 가장 영리한 방법으로 삶터와 후손을 먼 곳으로 확산시켰으며, 진화를 거치는 동안 그들의 자손, 즉 씨앗을 보호하고 종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을 개발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 방사성 물질 피폭으로 인간의 흔적이 사라진 체르노빌의 폐허를 뒤덮고 있는 식물을 보면, 이 행성의 진정한 주인은 자신을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는 인간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선명해진다.
#식물학 #식물세계를모험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