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 : 고대~근대 편 - 마라톤전투에서 마피아의 전성시대까지 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
빌 포셋 외 지음, 김정혜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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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어려운 경제 시국에 돈벌이만 해도 힘겨운데 자기 세대의 가사와 양육은 물론 부모 세대까지 챙기느라 지쳐가는 그대 이름은 아저씨.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반쯤 내리고 알코올흡입과 운동 부족으로 배는 점점 불러오고 세월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이마는 점점 넓어진다. 어느 바람 차가운 겨울밤 분리배출 쓰레기를 치우고 아파트 주차장 한구석에 쪼그려 앉은 채 잠시 반딧불을 반짝이다 부르르 몸을 털며 일어서다 30년쯤 전 스쳐 지나간 인연이 문득 생각난다. ‘내가 그때 널 잡았더라면 너와 나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마지막에 널 안아줬다면 너와 나 지금까지 함께 했을까’ 노랫말이 시린 손처럼 목덜미에 훅 들어왔다가 사라진다. 누구나 흑역사 한 가지씩은 있는 거라는 푸념을 뒤로 총총히 집으로 향한다. 아파트 현관 거울에서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위해 추우나 더우나 먹이 찾으러 떠나는 외로운 늑대를 본다.


그때 만약 다른 사람을 택했어도 지금처럼 살고 있을까 하는 희미한 질문이 눈 녹듯 아련히 사라져간다. 남녀 간의 일이야 그들만의 역사가 되고 집안 내력이 되겠지만, 만약 전쟁, 정부, 기업, 그리고 경제 등 인류 역사의 각 분야에서 사소한 실수로 빚어진 엄청난 결과가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만약 ~했더라면’을 전제로 펼쳐질 만한 내용을 대체 역사라고 부른다) 당연히 인류는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저자가 보기에 잘못된 결정과 선택으로 간주한 실수들로 인해 그 이후의 역사가 얼마나 다르게 펼쳐졌을지를 추측해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주된 논조는 "만일...이였다면 백 배는 더 좋았을 텐데."라는 일말의 아쉬움과 함께 긍정적인 결과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인류는 십중팔구 또 다른 실수를 저질러 새로운 흑역사를 쓸 테고, 만약 그때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래저래 좀 더 낫지 않을까를 타령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본래 이 책은 고대로부터 2천년대에 이르는 101가지 인류의 흑역사를 단권으로 묶었으나 편의상 1924년을 기준으로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1권에 속한다. 대부분은 대표 저자 빌 포셋이 썼지만 저명한 대체 역사가 및 SF 작가들과 함께 쓴 에세이 모음집이다. 흑역사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들은 스페인 원정대에게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제국의 멸망을 초래했던 아즈텍 황제 몬테수마 2세의 우유부단함이나, 자신이 혁명에 이용당했음을 알게 되자 동지였던 스탈린을 숙청하고자 했으나 먼저 사망함으로써 혁명과는 거리가 먼 악명높은 독재체제와 세계적인 공산주의 파급효과의 물꼬를 터준 레닌의 일화 같은 유명한 역사적 실수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저질러진 때로는 터무니없는 실수와 그 여파로 생겨난 결과들을 바둑 복기하듯 되짚어 보고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 혜안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저술 목적이다.



여러 작가의 에세이 모음 형식을 지향하는 가운데 찰스 E. 개넌은 유일한 예외로 단편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 1274년 일본을 침략했으나 태풍으로 원정에 실패한 여몽 연합군이 만약 일본을 정복했더라면 그 이후의 동아시아 정세는 판이하게 흘러갔을 거라는 상상은 자못 흥미롭다. 만약 그랬더라면 일본 근대화의 기점인 메이지유신도 없었을 것이고 오늘날처럼 반성할 줄 모르는 전범 국가라는 오명을 얻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혹시 누가 알겠는가, 그날 그때 그 순간의 선택이 후대의 역사를 어떻게 좌우하게 될지.



감춰졌던 흑역사를 읽고 독자들은 역사상 위인들 역시 어쩔 수 없는 실수투성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겠지만, 두 가지 짚어볼 사항이 있다. 첫째, 역사란 사람들이 내린 수백만의 결정과 선택의 조합이므로 그 가운데 겨우 101가지 실수를 찾아내기란 옥에 티 같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로마 제국의 쇠퇴와 몰락을 다룬 부분에서 군사행동이 필요한 대치 상황이 자주 등장하는데 저자는 종종 지휘관들의 지나친 소심함을 비난한다. 결정과 선택의 순간에는 그것이 바보 같은 경솔함이었는지 아니면 존경할 만한 대담한 태도였는지는 후세에 가서야 분명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미래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한 위태롭고 급박한 순간에 결정을 내려야 했음을 고려하면, 그 결정자가 얼마나 똑똑하고 경솔하고 신중했는지보다는 얼마나 더 많은 운이 작용했느냐가 더 큰 변수로 작용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둘째, 무엇보다 역사는 우발적 행위의 연속이므로 본래 엉망진창이라는 점이다.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개를 퍼덕이면 캐나다에서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 효과’처럼,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여파는 생각보다 강력하다는 점이다. 지금보다는 나으리라는 결과를 기대하며 현시점을 기준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논리를 과거에 대입함으로써 얻은 결과는 그 기준이 아무리 논리적이라 하더라도 좋든 나쁘든 우리의 기대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어쨌든 흑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개인의 역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위에 언급한 짚어볼 점 두 가지를 생각해보자. 결혼 역시 수백 번의 선택과 결정의 조합이니 잘살고 못살고 결과는 세월이 지나 봐야 입증될 테고, 어느 사람과 결혼하더라도 기본적인 유부남의 생활상은 정도만 다를 뿐 본질에서 큰 차이가 없다. 아련한 기억 저편으로 흘러간 과거일 뿐인 흑역사를 자꾸 복기하기보다는, 앞으로 어떤 수를 둘 것인지를 생각하며 살아야 여러모로 이로울 것 같다. 어쨌든 삶을 계속 이어가야 하니까.

#세계사 #101가지흑역사로읽는세계사고대근대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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