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시민들
백민석 지음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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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사진작가인 저자가 홀로 여행을 떠난다. 서툰 영어조차도 전혀 통하지 않는 눈과 불곰과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로 그것도 무려 3개월 동안. 주요 이동 수단은 일주일씩이나 걸린다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다. 중간 기착지에 내려 하루 이틀 묵으며 동네를 구경하고 모스크바에는 장기 체류한다. 전체 여행 기간은 3개월 가량.


여행은 금전적 여유나 계획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떠날 수 있는 용기라고 했다.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용기도 부러운데 무려 혼자다. 짝을 이루어 둘이 떠나면 서로 챙겨주고 도와주겠지만, 저자는 자기 마음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말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내서 대신 여행 수필을 쓰며 자신에게 너그러워지고 용서하는 일을 익히는 행복을 누리기로 한다. 혼자라서 관광객인지 여행자인지 조금은 애매한 처지이지만 여행의 한계를 잘 알고 있으므로 최대한 관광객이고자 한다.


러시아는 내륙 철도가 잘 발달한 나라다. 육상권 지배자가 곧 해상권을 지배한다는 정치 수뇌부의 신념에서 촘촘한 철도망으로 내륙을 연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 유독 한국인들에게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일종의 환상적 존재인데 아쉽게도 저자의 이동 경로 정보가 없어 지도를 첨부해 보았다. 이 책은 항공기로 모스크바에 내린 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들렀다가 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까지 왕복하며 촬영하고 남긴 사진과 글이다.


저자가 촬영한 사진에는 거의 예외 없이 사람이 있다. 책 제목 ’러시아의 시민들‘처럼 다양한 러시아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람이 없으면 하다못해 도심지 길거리에 그 흔하다는 동상이라도 등장한다. 물론 현지인들에게 사전 양해를 구했으며 우리가 흔히 사진 찍을 때처럼 무릎을 굽히면 그들도 따라서 무릎을 굽히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는 얘기는 흥미롭다. 촬영에 응한 러시아 시민들의 표정은 대개 밝은 편인데 무작정 접대용 미소를 띠지는 않는다. 서구인 특유의 오만함이나 과장된 웃음과 달리 매우 순박하면서도 기품이 있어 보인다.


이들은 또 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혁명을 겪었던 나라의 국민으로서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살아있다고 한다. 어렵던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도 의료와 교육은 거의 무료였고 물가는 낮아도 안정적이었던 때문으로 보인다. 대체로 러시아인들은 자신을 자유국가의 자유로운 민족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규제하는 모든 법규와 법률을 내려다보는 경향이 있다. 신체에 위해가 되지 않는 한 까다롭게 굴지 않아 공중질서 의식이 느긋해 보인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서구와 단절된 채 70여 년을 보내어 그런지, 우리나라처럼 잘 먹고 잘사는 서구식 목표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화려하고 부티 나지는 않지만 높은 수준의 정신세계를 가진 그들 특유의 민족적 자부심이 엿보인다. 세계적인 대문호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세계가 곧 이들의 국민적 성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아도 좋겠다.



대다수 러시아인의 생활상은 서구 유럽인들과 비교해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지만, 이들의 민족성과 관습이 여타 국가들과 비교해 다소 음습한 악당의 이미지(?)를 지니는 것은 러시아만의 특이한 역사, 특히 한때 세계를 이념으로 양분하던 냉전 시대와 소련의 붕괴 이후 경제 위기를 겪었고 현재는 세계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등 격변기를 겪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현재 40대 이상의 러시아 국민은 소비에트 연방 시절 공산주의 교육을 받고 격변기를 지나온 사람들이다. 비록 90년대 초 민주주의로 돌아섰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던 러시아인들의 성향은 여타 유럽국가에서 민주주의 교육을 받아온 국민과 비교해 색다른 국민성을 지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가 촬영한 수많은 사진 자료를 통해 러시아를 조금 엿볼 수 있어 좋았다. 한편으로 저자가 목표한 대상이 러시아 시민들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직접 이용했던 이동 수단인 횡단 열차, 매일 접해야 했던 현지 음식, 학교나 도서관처럼 실제 시민들이 이용하는 공중 시설의 모습, 그리고 피곤하고 지친 관광객의 모습으로 한 장쯤은 찍었을 법한 그 흔한 저자의 셀카를 볼 수 없었던 점은 살짝 아쉽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낯설고 물선 이국인들의 모습을 바라본들 우리는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보고 들은 내용을 곁들인 수십 장의 사진으로 색다른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행안내서라기보다 수필로 다가오는 이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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