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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희망 그는 왜? 변했을까 - 유토피아를 무너뜨린 균형과 반작용의 슬프고 기쁜 이야기
한수산 지음 / 삶과지식 / 2021년 1월
평점 :
책 제목처럼 인류의 희망이라고 칭한 그는 과연 누구일까 궁금했다. 저자는 ‘그’를 인류에게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해주었던 나 자신, 그때 그 사람, 역사 속 인물, 선망했던 사회 시스템일 수 있다고 들어가는 말에서 밝히고 있다. 마치 실재하지 않는 인물 테스 형에게 세상이 왜 이렇냐고 묻는 요즘 노랫말의 ‘그’처럼 들리는데, 그의 실체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며 열린 질문을 던진다. 먼저 묻고 스스로 답하는 작가들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난 참신함이 다가온다.
에세이 형식의 쉬운 글로 쓰인 이 책은 1부 동전의 앞면에서는 순리와 인류가 경험했던 다양한 유토피아를 정리하였고, 2부 동전의 뒷면에서는 자연의 순리 혹은 근본원리라고 말하는 대립물의 균형과 그로 인한 다양한 삶의 그림들을 묘사하며, 특별부록에서는 대한민국이 근대 이후 가지고자 했던 유토피아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처럼 쉬운 말로 빨리 읽히지만, 내용마저 쉽지는 않다. 철학, 사회학, 종교, 예술, 경제, 문화, 역사 등 세상을 읽어내는 기존의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한 저자의 내공이 곳곳에 묻어난다.

저자의 호는 평균(平均)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수나 같은 종류의 양의 중간값을 갖는 수를 뜻하는 바로 그 평균 맞다. 이 책의 요점은 플러스마이너스제로, 작용과 반작용, 음과 양, 정반합 등저자가 인류사를 관통하는 현상을 통찰하여 칭한 ‘대립물의 균형’이라 할 수 있다. 원대한 시야로 바라보자면 지난 2500년간 일어난 인류사의 부침은 이러한 대립물의 균형을 맞추느라 일어난 현상이며 그의 호는 이를 잘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대립물의 균형이라는 개념도 신선하지만, 양 당사자 간의 대립 관계에 균형을 맞춰주는 제삼자의 길을 택하여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을 살찌웠던 역사적 사실에 관한 해석도 매우 흥미롭다. 19세기 초 절대왕권과 사회주의가 경합을 벌이는 사이를 파고들어 신흥 강자로 자리매김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나,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이렇다 할 피해 없이 짭짤한 재미를 보았던 제3세력이 되어 세계 최강국에 오른 미국이 그 좋은 예다.

기원전부터 서구를 중심으로 인류는 오랫동안 이상향을 꿈꾸어왔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의해주는 악당 대장이 늘 필요한 미니언즈처럼 ‘이것이 정답이오’를 외치며 이상향의 깃대를 높이 올린 자들을 추종해왔다. 그들 대부분은 인류의 정신세계에 심대한 영향을 준 인물들로 플라톤, 공자, 헤라클레이토스, 노자, 자라투스트라 등의 철학자, 케인즈, 마르크스와 같은 경제학자, 인류 최대의 이상주의자 예수 등이다. 이들의 추종 세력이 이끄는 이상향 찾기 행보는 오늘도 진행 중이지만 세상 어디에도 이상향을 찾았다는 소식은 없다. 본래 그리스어의 ‘없다’(U)와 ‘장소’(topia)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유토피아’는 결국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 혹은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향을 말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대립물의 균형’ 개념은 서양 철학의 변증법, 동양 철학의 음양 조화로 설명되며, 프랑스 혁명이 자유, 평등, 박애를 내세웠다면 순리의 철학은 자유, 평등, 균형으로 요약된다. 어느 순간부터 인생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면 반대로 인생이 꼬이게 되는 에너지 역시 동시에 응축되고 있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둘이 합하여 평균을 이룬다는 게 핵심이다. 인류의 염원인 이상향이 절대 올 수 없는 이치가 여기에 담겨있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 값싸고 질 좋은 상품 등 모든 요소를 동시에 만족할 수 없으며 설령 지금 그렇다 하더라도 잠깐의 현상에 불과하다. 기나긴 영겁의 시간 속에서 바라보면 모든 부침은 결국 평균으로 수렴한다는 뜻이다. 인생 새옹지마요 열흘 붉은 꽃 없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자칫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소용없다는 염세주의로 들릴지 모른다. 지금 배불리 먹어 봐야 곧 배는 꺼질 텐데 식사가 대체 무슨 소용이며 어차피 죽을 인생인데 아등바등 살아봐야 무슨 의미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배곯고 죽음이 닥치더라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평형상태(equilibrium)를 유지하려 든다. 태어나자마자 생을 마감하고픈 유기체는 없는 법이다. 인류가 2,500년 전과 똑같은 상태로 살고 있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2,500년에 걸쳐 유토피아를 찾아가기로 한 합리적 선택과 실험 이후, 찾지 못한다는 결론 혹은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면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야 합당하다고 말한다. 유일한 정답은 없는 대신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며 모든 존재하는 것은 변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불과 수백 년 전 풍만한 육체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오늘날은 유력한 성인병 대상자인 것과 같다.

그럼 우리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저자는 정답과 유토피아가 없는 상황에서 인생의 중요 포인트는 각자의 행복이며 삶의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유명 가수의 노랫말처럼 인생 즐기는 내가 챔피언이다. 정해진 답이 없는 인생이므로 반드시 정답을 찾으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스스로 인생을 즐기는 가운데 행복을 느끼되 꼭 100점을 받으려 너무 애쓰지 말고 80% 정도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가 바라는 유토피아는 없을지언정 목마른 하루를 쉬어갈 오아시스는 있는 법이니,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인생을 살아보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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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고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