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안전한 세상 - 세계질서의 위기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G. 존 아이켄베리 지음, 홍지수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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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정치에 공헌하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칭찬할 만한 정치학자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이자 저자인 존 아이켄베리와 동료 다니엘 듀드니에게는 그들이 함께 1999년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개념을 세운 공이 있다. 세상에 선보인 뒤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이 문구는 서구의 외교 정책 엘리트들이 건설하고 방어하고자 하는 세계를 상징하는 말로 채택되었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개념은 강대국들이 국제기구를 통해 상호 이익을 위해 협력하기로 동의하는 상황을 뜻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과 마지막 인간>을 펴낸 이후 수십 년 동안,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의 핵심을 강타한 비자유주의 정권의 부상과 세계적 위기를 보아왔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대내외적 도전으로 얼룩진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 독트린의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와 국제 질서를 열렬히 옹호한다. 그는 이 교리의 발전 과정과 그것이 자신을 진단하는 현재 상황, 권위주의적인 중국과 같은 외부 위협 및 대중영합주의와 같은 내부 위협에 직면하여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를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에 대한 현실주의자들과 수정주의 비평가들의 도전을 다룬다. 이 책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교리를 옹호하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독자들에게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많은 의문을 남긴다.

20년 전, 이 개념은 세계 정치와 경제를 운영하는 합리적인 설명인 동시에 기후변화와 같은 새로운 과제들을 다루어 줄 그럴듯한 열망처럼 들렸다. 그러나 지난 5년간의 세상은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신봉자들에게 친절하지 못했다. 지금의 세상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거인 미국과 중국 모두 국제공조 개념에 반기를 들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은 세계보건기구(WHO)와 파리 기후협정 등 여러 국제기구와 협정에서 탈퇴하고 중국에 무역전쟁을 일으켰다. 한편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히말라야에 이르는 안보 문제에 대해 점점 더 일방적이고 공격적인 접근법을 취했다. 함께 어울려 지내기에 버거운 이웃을 자임한 모양새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관한 생각은 세 갈래 방향, 즉 민족주의 우파, 반제국적 좌파, 그리고 서구 밖의 비자유주의 국가들로부터 지속적인 이념적 공격을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친 '미국 우선주의' 민족주의자들에게 진보적 국제주의자들은 미국의 이익을 팔아먹은 '글로벌리스트'에 불과했다. 현재 세계 질서는 착취적인 신자유주의의 방어와 제국주의 시대에 뿌리를 둔 국제적 권력 구조와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비판 일부는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가 단지 미국의 주도권을 위한 코드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러시아 등의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저자는 이 무시무시한 정치적, 지적 공격에 대응하고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방어하려는 뜻에서 이 책을 써냈다. 그는 2세기에 걸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의 진화를 추적함으로써 이것이 냉전 승리 이후 생산된 승리주의 풍미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사상의 집합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의 다양한 측면을 설명하는 매우 명확한 공식을 개발하였고 이 용어를 ‘자유민주주의의 안보, 복지, 진보를 강화하고 촉진하는 방식으로 국제 질서를 조직하고 개혁하려는 생각과 행동의 전통’으로 정의한다. 그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광범위한 의견을 아우르는 한편, 두 가지 핵심을 꾸준히 강조해왔다고 설명함으로써 이를 더욱 세분화한다. 여기에는 국제적 개방성(무역 및 외교 측면), 다자간 규칙 기반 기관, 민주적 연대 및 협력적 안보, 진보적 사회 목표 등이 포함된다. 나아가 서구 민족국가, 자유민주주의, 기술변화, 영미 패권주의라는 독특한 역사적 이념적 결합을 인정한다.

이 책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에 대한 현실주의와 수정주의 비판 모두를 다루고 있다.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싸움으로 서술하지는 않지만, 그들을 지적인 경쟁자로서 인정한다. 국가의 무정부 상태 대처 방법으로 현실주의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근대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사고학파로 정의한다. 역사를 가로지르는 권력과 질서의 순환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자들과 달리, 자유주의 국제주의자들은 진보와 재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과학·기술 진보와 사회 변혁이라는 계몽주의 프로젝트의 계승자들임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기술, 사회, 정치혁명과 함께 현대 세계의 결과로 생겨난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저자는 주요 용어와 매개변수를 설정하고 정의한 후, 18세기와 19세기 초기 기반을 발판삼아 현대로 진입하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의 역사적 과정을 도표로 보여주면서 이 책의 두 주연급 배우인 우드로 윌슨과 프랭클린 루즈벨트에게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윌슨의 이상주의적 비전과 전쟁 사이의 혼돈을 통해 국제주의의 진로를 도표화한 그는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른다. 국제질서가 훼손된 근본적인 원인을 냉전 종식 이후 자유 질서의 세계화로 규정하면서 냉전 시대에서 나타난 전후 질서와 복잡한 현대 국제주의의 위기를 탐구한다. 그러나 자유 질서의 세계화는 실제로 성공적이지 못했고, 그 실패는 질서의 지배기반뿐 아니라 정당성과 사회적 목적 또한 훼손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공동의 이익을 하나로 묶는 실용주의적 접근 아래 교리의 활성화를 지원하면서 국제질서가 직면한 문제들이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이 책의 강점 중 하나는 저자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의 이념적으로 복잡한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이론가들은 자신들의 교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교리의 실제 적용은 다른 외부 교리에 의해 영향을 받아왔음을 인정한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질서의 복잡성을 논하고 그것이 어떻게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와 현실주의의 결합에서 생겨났는지를 설명할 뿐 아니라,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와 연관된 복잡한 인종적, 제국주의적 유산 역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에 대한 이념적 비판을 다루기 위한 저자의 강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종종 역사적 문제를 덮고 지나친다. 예컨대 1800년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규정하는 데 도움을 준 파머스턴 경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과 같은 현대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만, 주요 인물인 우드로 윌슨과 프랭클린 루즈벨트에 관련된 역사적 사건 역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윌슨의 결점, 그중에서도 인종적 관점을 거리낌 없이 논하면서도 대통령의 전체적인 모습을 다루지는 않는다.

저자는 ‘민주주의가 안전한 세상이어야 한다’는 윌슨의 이상적인 호소에 대해, 이는 서구 자유민주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전후 국제 질서를 개혁하자는 요구이며 민주주의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위험에 맞서라는 외침이라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대서양 헌장에 구체화된 루스벨트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와 4가지 자유의 세계적 ‘보편성’에 대한 찬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많은 역사적 질문들을 회피하고 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중 일본, 독일, 이탈리아 시민들을 수용하는 동시에 소련을 인정했던 것과 비교할 때,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의 상반된 측면을 독자들은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괜한 트집 잡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을 정당화하기에는 충분한 역사적 공백이 있는 것 같다. 또한, 이데올로기의 역사를 추적할 때에도 주요 이론가들의 행동이 이데올로기와 일치하는 정도는 언급할만하다.




한편, 독자의 이념적 선호에 따라 이 책은 세간의 호불호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국제 개방, 다자간 제도, 협력적 안보 협정을 통한 민주적 연대는 일반적으로 현대 외교의 기반이라고 여겨졌다. 심지어 현실주의 비평가들도 일반적으로 이러한 원칙들의 일반적인 건전성에 대한 저자의 평가에 동의할 것이다. 대부분 국가는 독특한 자국 환경에 따른 사소한 변화에도 이러한 일반적인 원칙에 동의할 것이다. 다만 저자는 진행 문제를 논할 때 다소 난관에 봉착한다. 이 책은 정부가 사회경제적 진보의 아바타로서 자유민주주의의 역할을 해내는 매개체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에 의해 그리고 무엇에 의해 정의되는 진보란 말인가?

그가 칭찬하는 많은 경제적, 사회적 개혁들은 그가 앞서 인용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에게는 모욕일지 모른다. 저자가 거듭 인용하는 1848년 혁명 이후 노동권과 국가 워크숍을 비난한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루스벨트의 뉴딜을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짐작만 할 뿐이다. 역사적 의미를 넘어, 저자의 진보에 대한 의견은 정부의 역할과 국가가 이러한 불만을 해결할 책임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정책적 의문을 제기한다. 진보국가의 비전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면 저자가 정부의 역할에 얼마나 열정을 쏟을지 궁금하다. 대외정책 측면에서 세계가 인식된 진보의 전조, 즉 서구를 지속해서 추격할 가능성을 남겨둔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개방 무역, 다자 기관, 집단 안보를 지지하는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의 민주주의 국가가 지닌 진보 개념이 독일, 프랑스, 미국이 가진 진보에 대한 최신 개념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 배척되어야 마땅한 것인가?

만일 바이든 정부가 이 책의 의미와 적용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이 책이 말하는 철학을 미국 국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미국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꿀 기회는 국정 실무자들의 손에 달려있다. 따라서 미국 행정부는 저자의 실용주의, 어쩌면 약간 현실주의적인 비전을 따르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미국 정부는 자신을 이상적인 사회를 향한 세계적 행진의 원대한 비전이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실용주의적이고 개혁 지향적인 접근법으로 정의해야 한다.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를 건설하고 수호하려는 노력은 유별난 이상주의적 행위가 아니라, 자유와 번영과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꼭 필요한 노력이다. 결국, 절대자의 도시가 아닌 ‘인간’의 도시에 사는 우리가 천국을 땅으로 끌어 내릴 도리는 없다는 말이다.

#사회사상 #민주주의가안전한세상 #존아이켄베리 #국제정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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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안전한 세상 - 세계질서의 위기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G. 존 아이켄베리 지음, 홍지수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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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과거와 현재를 바로 보게 해주는 정통 진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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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스완 - 회복과 재생을 촉진하는 새로운 경제
존 엘킹턴 지음, 정윤미 옮김 / 더난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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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갑작스레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우리의 삶에 지각변동이 일었다. 요식업과 여행, 관광산업을 비롯하여 특히 사람이 군집을 이뤄야 하는 모든 종류의 업종이 타격을 입었고, 소비 활동이 줄어들면서 생산을 멈춘 제조사들의 매출이 폭락하는 등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세계 경제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위기를 맞는 것을 '블랙 스완(black swan)'이라 부른다. 이와 비슷한 경제 용어로 최근 그린 스완(green swan)이 등장했다. 지속가능성의 대부라는 별명을 지닌 이 책의 작가는 지금까지 관련 분야에서 20권을 책을 썼으며 지난 30년간 기업 책임 운동의 핵심으로 묘사된다. 그의 최신 저서인 이 책은 앞으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자본주의의 변화를 모색한다. 그는 문제와 해결책을 검정, 회색, 녹색 3개의 색상으로 분류하고 식별한다.

 


블랙스완용어는 미국 뉴욕대 교수 나심 탈레브가 2007년 그의 저서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일찍이 찾아볼 수 없던 검은 백조가 호수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것처럼 경제 영역에서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 일어나 세계 경제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탈레브 교수가 그의 저서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7년 미국의 초대형 주택담보대출 사업자들이 파산하면서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한 사건)를 예측하면서 블랙 스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유명해졌는데, 이후 미국의 9·11테러,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코로나19로 인해 초래된 경제 위기에도 이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스완이라는 단어를 다음과 같이 색깔별로 구별하고 위기로 바꾸어 읽으면 더욱 이해하기 쉽다.

 

블랙 스완(black swan): 발생 확률이 매우 낮아서 예측하거나 대비하기 상당히 어려우며 일단 발생하면 경제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경제), 홀로코스트와 HIV 바이러스(사회), 곤충 멸종 사태와 세계 해양의 플라스틱 오염(환경) .

화이트 스완(white swan): 예측이 가능함에도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반복되는 위기 상황.

그레이 스완(gray swan):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나 위기 상황에 대해 적절한 대안이나 해결책을 찾지 못해 그러한 문제가 지속하는 상황.

그린 스완(green swan): 전 세계적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해결책이자 긍정적이며 기하급수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해결책. 초기 단계의 개념, 사고방식, 기술, 도전, 혁신 또는 궤적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선악의 방향성을 가르는 미운 오리 새끼 같은 개념. 휴대용 전화 기술과 인터넷 보급, 태양열과 풍력발전, 전기 자동차(경제), 의무 교육 시행과 백신 기술, 환경 보호, 사회적 기업, 성장 투자 중시(사회), 환경호르몬과 오염, 지속가능성, 순환 경제, 생체 모방(환경) .




그린 스완은 사회와 사람, 지구에 이로운 기술이며 미래로 갈수록 더 많은 사람에게 만족을 가져다줄 것이라 한다. 이따금 그린 스완이 블랙 스완으로 변하는 사례도 있다. 엔진 노킹 방지 기술이 처음 개발되었을 당시 무연 휘발유는 획기적인 발전이자 차량 연비 향상의 핵심으로 주목받았으나, 도심지 어린이들에게 납 중독을 일으키면서 블랙스완으로 판명되었다. 또 다른 예로는 안전성과 여러 유의미한 이점을 지닌 화학물질로 주목받던 클로로플루오로카본(CFC)의 일종인 프레온(Freon)이 있는데, 지구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준 유일한 유기체로 묘사됐다. 공교롭게도 이 두 가지는 유명한 화학자 토마스 미글리 주니어가 개발하여 100개 이상의 특허를 획득했으며, 그는 GM과 듀폰을 위해 일하기도 했다.

 

인구가 수십억 명 수준으로 유지되는 한, 인류세는 계속된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어느 시점부터 지구는 인류를 먹이고 인류가 초래하는 피해를 흡수하지 못할 것이다. 그 시점을 넘어서면 사악한 문제, 그레이 스완과 블랙 스완이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151)


저자는 특히 바다를 오염시키는 플라스틱 쓰레기와 미세플라스틱, 새로운 질병인 비만을 부르는 살인자 칼로리, 슈퍼버그 문제를 초래하는 항생제의 남용, 기온 급상승의 원인인 탄소 배출량, 심각한 증가세의 우주 쓰레기 등 다섯 가지를 지구 전체에 닥친 위협 상황이라 지적한다. 그가 지목하는 플라스틱 하나만 보아도 인류는 이미 위기 상태에 놓여있다. 휴대폰, 노트북, 포장재, 물병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 조각 하나하나가 엄청난 양의 오염물질을 배출하며 재활용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립 차원을 넘어 바다로 유입된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은 야생동물의 생존에 끔찍한 위협이 되며, 소금물과 자외선에 노출되면서 분해된 미세플라스틱은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태평양 환류 지대처럼 해류가 만나는 곳마다 이미 거대한 쓰레기 섬이 여럿 형성되었다. 세계보건기구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일부 생수 브랜드를 분석한 결과, 90% 이상 제품에 미세 플라스틱이 포함되어있으며, 가정용 수돗물은 물론 북극의 얼음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심지어는 인간 젖먹이의 생애 첫 영양분인 모유에서도 발견되어 경악스럽기 그지없다. 우리가 실제 이런 상황을 애써 외면하는 동안 지구의 건강은 계속 악화하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이런 재앙적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며 이를 직접 나서서 해결할 당사자는 기업이라 말한다. 이는 기업이 존립하기 위한 이윤 창출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며, 이를 위해 미래 환경에 적응하는 기업 정신으로 퓨처 핏(Future Fit) 개념을 제시한다. 기업이 전 세계 경제의 엔진이며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업을 독려해 그들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변화에는 저항이 따르듯, 기업이 퓨처 핏 수준에 이르는 과정은 전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이에 저자는 기업들이 오랜 시간을 거쳐 내부적 스완(위기)을 극복해가는 다섯 개의 과정을 소개한다




거부(블랙스완 또는 그린 스완의 가능성 수용을 거부함. 삼성전자의 백혈병 발병 인정과 노동자 배상 과정), 책임감(여전히 현상에 중점을 두고 있는 FAANG), 복제(더 나은 변화를 위한 대승적 협력관계), 회복력(지역사회, 도시 및 운영 국가의 붕괴를 회복), 재생(모든 사람과 지구의 개선을 위해 모든 지속가능성 문제를 해결)이 그것이다. 단계가 좀 복잡해 보여도 저자가 말하는 접근법의 뉘앙스를 간단히 말하자면 미래형 기업 발굴에 전념하라는 것이다. 그는 능숙하게 개념을 설정하고 현재의 사고방식을 이야기한 다음 개념과 논리를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예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현재 환경이 미래와 직면할 때 기업과 정부 모두에게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할 사항은 기업만 혼자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가 번영해야만 기업도 성공할 수 있고 그래야만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지구를 보호하라고 기업에 요구할 수 있다. (251)


끝으로, 저자는 우리에게 기술의 빠른 진화는 흥미로우며 우리가 금세기에 직면하는 많은 중심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으므로 매우 희망적이라 말한다. 최근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후 재앙은 우리 모두를 두렵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궁극적으로 인류에게 닥친 위기를 해결할 사람은 바로 우리뿐이라는 결론을 거듭 확인하게 될 것이다.

 

#경제경영 #그린스완 #지구환경 #기후재앙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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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스완 - 회복과 재생을 촉진하는 새로운 경제
존 엘킹턴 지음, 정윤미 옮김 / 더난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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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재앙으로 일대 위기를 맞은 자본주의에게 갈 길을 제시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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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 글쓰기 수업 - 논픽션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
잭 하트 지음, 정세라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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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다. 한 장짜리 메모를 적든, 일기를 쓰든, 동화나 에세이를 쓰든, 전공 분야 책을 쓰든, 하다못해 SNS에 올릴 내용을 업데이트하든 작문이라는 예술은 참으로 난해하다. 그러나 대개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제시해주는 해결책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글쓰기 기술을 연마하려면 좋은 안내서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모든 글쓰기 안내서가 모든 이의 글쓰기를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스타일의 안내서인가가 중요하다. 또한, 글쓰기 초심자일수록 안내서에 의존하다 보면 그 자체로 글쓰기 작업을 구속받게 된다. 미국 작가 포스터 월리스의 주장처럼 초보 작가라면 지루할 정도로 독창적이지 못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최근까지 접했던 글쓰기, 편집, 출판에 관한 서적들이 주로 정보나 전략적 선택 또는 전반적 흐름을 소개하는 것이었다면, 서술식 논픽션 글쓰기에 관한 한 이 책은 언급한 것 이외에도 읽는 재미를 더한 최고의 안내서라 하겠다.

인간의 뇌에는 스토리를 추구하는 본성이 각인되어 있다.

- 대니얼 스미스, 진화인류학자

이 책의 저자이자 작가인 잭 하트는 오레곤 대학교 언론학 교수이자 지난 25년간 유명 신문사인 ‘오레곤’에서 편집장, 편집 교육자, 그리고 글쓰기 코치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서술식 글쓰기와 특별 기고문 수상자들을 포함하여 4명의 퓰리처상 최종 후보들을 키워낸 저력 있는 인물이다. 또한, 2001년 퓰리처 공공서비스 부문과 2006년 뉴스 속보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경력과 더불어 논픽션 분야의 권위자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독자에게 다가가는 가장 중요한 힘은 틀을 짜는 능력에서 나온다.

- 리처드 로즈, 퓰리처상 수상 논픽션 작가

이 책의 부제처럼, 서술식 논픽션이란 무엇인가? 논픽션은 소설과 같이 지어낸 이야기(허구)가 아니라는 뜻이므로 철저히 사실에 입각한 실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나 논픽션은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언제, 왜 그런지에 대한 전통적 신문 기고 방식으로 쓰이지 않기 때문에 좁은 범위의 글쓰기로 인식된다. 그런데도 소설처럼 읽히는 특징이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인간적인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례로 어떤 작가는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나야 하는 퇴거민과 같은 미국 도시의 빈곤 문제를 다루기 위해 몇 달 동안 가난한 노동자 계급의 삶으로 들어가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도 한다. 결국, 서술식 논픽션은 실화와 진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의 창의적인 글쓰기이다.

작가의 일이란 결국 인간의 캐릭터

그리고 인간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다.

- 리처드 프레스턴, 베스트셀러 작가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면 특히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독서를 좋아하지 않으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없다. 저자는 ‘글쓰기란 독서에 대한 우월한 헌신’에서 나온다는 주장에 동의하며 ‘어떻게 하면 나쁜 글을 쓰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함께 결국 ‘좋은 작가는 헌신적인 독자’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저자의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독서 없이 좋은 작가가 되기는 불가능하다는 적나라한 진실은 피할 수 없다. 글쓰기 연습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소설가 릭 리오든의 인용구로 충분하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다. 연습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1984, 동물농장 등으로 유명한 작가 조지 오웰의 글쓰기에 대한 5가지 규칙은 마음에 새겨둘 만하다.

1. 동등하다는 뜻의 ‘어깨를 나란히 하다‘, 약점을 뜻하는 ’아킬레스건‘ 같은 진부한 비유법은 삼간다.

2. purchase 대신 buy처럼 길고 어려운 단어 대신 쉽고 짧은 단어를 사용한다.

3. 단어 개수를 줄일 수만 있다면, 항상 줄인다.

4. 수동적 표현보다 능동적 표현을 활용한다. (그는 개에게 물렸다. vs. 개가 그를 물었다)

5. 외국어 문구, 전문 용어 대신 쉽고 보편적인 단어를 쓴다.

 

스토리는 모두 똑같은 것 같지만

저마다 다르다는 점에서 눈송이를 닮았다.

존 프랭클린, 퓰리처상 두 차례 수상

이 책은 서술식 논픽션을 쓰는데 사용될 수 있는 다양한 구조를 묘사하는 가장 도움이 되는 특징들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글쓰기의 접근법과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백과사전식 구성으로 독자가 원하는 특정한 영역으로 바로 이동하여 구체적인 조언을 구할 수 있으며, 관점, 목소리와 스타일, 캐릭터 개발, 대화, 이야기 서술, 설명적 서사 등의 주제로 수상 경력이 있는 출판 작품에서 가져온 예들로 가득하다. 특히, 이 책은 크게 서술과 설명이라는 두 관점에서의 논픽션 글쓰기를 다룬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단편소설, 짧은 문구 등 다양한 논픽션 유형에 대해 요약된 논점을 제공하며 글쓰기와 윤리적 측면 등의 쟁점도 논의한다. 저자가 인용한 많은 사례에서 보듯 수준급 예문들이 대거 등장한다. 가독성이 좋아 책 두께에 비해 빨리 읽히는 속도도 괜찮다. 가볍게 읽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아 주제와 딱 들어맞는다. 오랜 세월 한 분야에서 갈고 닦은 저자의 실력과 명성이 곳곳에서 드러남으로써 자신이 하는 일에 정통한 저자의 글임을 확인할 수 있다. 방대한 주제 영역과 분량도 놀랍거니와 저자의 조언을 나의 글쓰기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 일이 있었든가, 그렇지 않든가 둘 중 하나다.

테드 코노버, 스토리텔링의 대가

마지막으로, 이 책은 흥미롭고 매력적인 구성과 함께 창작 논픽션을 시작하거나 개선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조언으로 가득 차 있다. 간결하면서도 깊은 느낌을 주기 위해 책 전반에 걸쳐 저자가 제시하는 예시문들은 각 주제의 개념이 잘 떠오르도록 의도된 것으로 보이는데, 상당히 마음에 든다. 글쓰기의 초기 아이디어부터 이들이 생명력 있는 작품으로 살아난 배경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있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주로 논픽션 작가와 언론인에게 최적화되어있다. 비단 직업적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창의적이거나 서술적인 논픽션 글쓰기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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