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적 삶의 권유 - 자기 절제와 간헐적 결핍이 주는 의외의 행복
마르코스 바스케스 지음, 김유경 옮김 / 레드스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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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약이 입에 쓰듯 재미는 없지만 인생의 지침이 되어주기에 충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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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여서 다행이다 - X세대 교감의 MZ세대 바라보기
이창수 지음 / 에듀니티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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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공교육에 몸담은 교원은 대략 44만 명이며, 이들은 평교사와 흔히 관리자로 불리는 교감, 교장으로 구성된다. 여느 직장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연령대의 구성원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데, 업무상 따르는 책임과 권한이 비교적 명확하고 다양한 직급을 가진 기업과는 생태가 조금 다르다. 기본적으로 학교는 아이들을 키워내는 곳이고, 경쟁보다는 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분명한 경계를 지닌 조직인만큼 대화와 협동이 더욱 간절한데, 현실적으로 필요를 충족하기 쉽지 않다. 교감(校監)은 한 교육기관의 관리자로서 교직원 및 학부모들과의 관계 또한 잘 조율해야 하니 어깨가 무겁고 업무량 부담이 크지 않을 수 없다. 담임교사가 자기 학급의 학생들을 잘 보살펴야 하듯, 교감은 평교사들을 잘 아울러야 한다. 담임들의 담임인 셈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듯이 우리가 쓰는 말이 곧 그 사람의 존재를 결정짓는다. (중략) 모든 이를 아울러야 하는 교감에게 말하는 방식, 언어 감수성은 특히 신경 쓰이는 문제다. (149)


이 책은 저자 이창수 교감님이 그의 어려운 형편의 어린 시절부터 교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와 초등학교 교감이 된 이후의 희로애락 일상을 소재로 삼아 쓴,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자전적 수필집이다. 제목처럼 그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천생 교사이고, 그가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삶의 자세는 교사여서 다행이라는 말로 압축된다. 책 읽기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의 별명은 책에 미친 교감을 뜻하는 독감이다. 이 책은 수필집이면서도 교사로서 처할 수 있는 상황에 걸맞은 책 열아홉 권을 선정하여 추천하고 있다. 물론 그가 읽은 서평 또한 포함되어 있으며 책에 미친 교감답게 책을 통해 교감(交感)하고자 한다.


비단 책뿐만이 아니다. 30년 전 시골 초등학교 담임일 때 가정을 방문하고, 방과 후 집에 가 봐야 아무도 없는 아이들을 위해 돌봄을 실천하고, 무모하게 동네 교회의 봉고차를 빌려 현장학습을 다녔던 그가 교감이 되어서는 행정실과 교무실로 직접 내린 커피를 배달하고, 용무가 있어 자리로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벌떡 일어나 환대해준다. 교사에게 주어진 권위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기대에 어쩌면 이렇게 충실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그는 외부적 조건을 따지지 않고 그저 교사로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교사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호칭이고, 교사여서 다행이라면서.

 

세상 변화를 따라가려면 느긋할 틈이 없다. 부지런히 읽고 쓰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노력해가며 부족함을 만회할 기회가 남아있다는 게 감사하다. 교사여서 다행이다. (187)


교감 자신은 X세대인데 교사들은 MZ 세대(속칭 민지)로 연령 차이가 크다. 연장자로부터의 일방적인 가르침이 주도적인 시대는 이미 지났다. 지금은 학부모, 교사, 학생 그리고 젊은 세대와 교감하려면 자신부터 바꾸고 그들에게 맞춰야 하는 시대이며, 고장 난 컴퓨터처럼 예전에 입력된 내용만 반복해서는 예측불허의 미래에 대비할 수 없음을 그는 잘 알고 있다.


불편한 과정을 회피한 채 서둘러 절충안을 찾고 합의하려는 강요된 화해는 안 된다. 우리가 무언가에 대한 공통의 합의에 이르기 위해선 더 가차 없이 나의 옳음의 근거를 확보하고 상대방의 틀림을 논박하는 논의 과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189)

 

추측건대 시대의 흐름을 읽고 맞추어가는 힘은 독서에서 왔을 것이다. 책을 좀 읽는다고 하루아침에 어떻게 되지는 않지만, 자신을 꾸준히 변화시키는 힘의 원천인 것은 분명하다. 책 권하는 사람이야말로 자신과 주변을 변화시키며 함께 이끌어 갈 힘을 지닌 사람이다. 차 한잔 마시며 담소를 나누어도 한 시간은 금방이다. 평교사로서 함께 일해보았으면 싶은 진솔한 교감님과 함께하는 즐거운 대화에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다.


#교단수필 #교사여서다행이다 #에듀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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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읽는 주제통합 영어 수업 - 학생들의 삶과 연결되는 교사 교육과정과 범교과 프로젝트
김치원 지음 / 에듀니티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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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고등학교 영어 시간이라면 무엇을 연상하시는가. 학생의 참여 없이 교사 혼자 떠드는 설명 일변도의 문법-번역식 수업? 공부는 학원에서 하는 거라며 학교에서 학원 숙제하는 학생? 초등학생 때 이미 영어 포기자가 되어 무기력하게 책도 없이 앉아있거나 엎드려 자는 아이들? 그 와중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소수의 성실한 학생들? 아마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인터넷 환경과 세련된 멀티미디어 기기 그리고 확연히 줄어든 학생 수 아닐까.

 

본래 어학이란 잡학이고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학문은 없다. 영어 시간에는 영어라는 언어 자체를 배우기도 하지만, 영어로 표현되는 세상을 공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단지 언어만 다를 뿐 인간 세상의 모든 학문이 그 속에 들어가며, 조금 민감할지는 몰라도 정치와 종교를 비롯한 사회 분야 역시 다루게 된다. 그런데도 수업 중에는 시험을 전제로 한 지문 풀이가 수업 중 영어 교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예전 성립 자체가 어불성설 같은 학생들의 서술형 교원평가에서, 우리의 현실 정치에 관심이 필요함을 강조했더니 정치 이야기 좀 그만하시고 교과목을 사회로 바꾸는 게 낫겠다는 내용도 접해보았다. 그렇게 자란 학생들이 국민을 속이고 국고를 탕진하는 정치인들을 뽑아주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래서 요즘처럼 진학과 시험을 위한 영어 공부에 매몰된 학생들에게 사회를 읽어내는 힘 키우기는 어느 때보다 절실한지도 모른다.

 

흔히 학교를 사회의 축소판에 비유한다. 그렇다면 학교는 얼마나 사회적인가? 학교 담장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갈 아이들에게 영어 시간에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만 하고 있다면, 이 책에서 부분적이나마 해답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고등학교 수준에서 절실한 제도인지 아직도 확신이 부족하지만, 선택형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로 학생들이 배울 교과목을 학생들이 선택하는 시대가 왔다. 학교 역시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위주로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데, 절대평가와 학생의 학습 선택권으로 여타 지식 과목보다 특히 어학 도구 과목은 더욱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동종 업종의 현직 영어 교사다. 오랜 세월 자신만의 방식에 굳어져 살아왔기 때문인지 그에게서 일종의 개혁가 같은 모습이 보인다. 그의 수업 철학과 학생들의 좋은 삶을 위한 생각을 접해보니, 같은 학교 울타리 내에서조차 수업 내용과 각종 고민을 공유하지 않던 불문율 뒤에 안주하던 우리의 민낯을 보는 듯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수업 방법은 오랜 세월 동안 더 나은 수업과 학생들을 위한 진지한 고민에서 나온 정공법이다. QR 코드로 제공되는 수업 자료를 당장 나의 수업에 도입하여 시도해볼 만한 여지가 무척 많다. 물론 저자의 방식이 온전히 내 것이 될 수는 없음을 안다. 진정한 고수는 하수에게 자신의 비결을 공개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하수가 고수의 비결을 손에 넣는다고 하더라도 시행착오를 거듭하여 자신의 방식으로 거듭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기고사에 대비한 팍팍한 진도 확보와 수업 중에만 실시해야 하는 수행평가에 떠밀려 교사와 학생이 인생이 만날 시간은 좀처럼 확보하기 쉽지 않은 우리 현실을 고려해볼 때, 이 책은 단순한 비결 그 이상의 것이다. 우리의 영어교육은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는 소통을 목적으로 한 외국어가 아닌, 대학 입학시험의 한 교과목으로 전락(?)하였다는 서글픈 지적을 우리는 매일 접하고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학생들에게 영어라는 언어를 통하여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도록 학생들의 삶을 담아내는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실천하고 결과를 얻어낸 보고서라 할 수 있다. 한편 수업 중 교사와 학생이 주고받는 대화문은 현실 세계의 남자 고등학교에서라면 매우 이례적일 것이라는 상상도 해본다.

 

흔들리는 영어교육에 대한 걱정과 희망을 말하며, 영어라는 그릇에 삶을 담는 방법을 고민하고, 삶을 가꾸는 데 도움이 될 영어 수업을 다루는 본문보다 더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바로 책 끝에 제자들이 저자에게 보내온 편지와 감사의 글이다. 단언컨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제자들의 감사와 인정을 받는 이상의 보상은 없을 것이다. 사람을 키워냈다는 보람 하나가 모든 어려움을 상쇄하는 게 교직이기도 하지만, 모든 교사가 그러한 보람을 오롯이 느끼지 못하는 것 또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이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처럼 학생들이 가진 잠재력을 밖으로 끌어내는 방법에 목말라 있는 영어 교사라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시라 추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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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인문학 - 위태로운 존재들을 위한 견고한 철학적 기초
마틴 하글런드 지음, 오세웅 옮김 / 생각의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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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철학계의 주목받는 스타이자 예일대학의 젊은 인문학과 교수인 마틴 하글런드의 이 책은 매우 광범위하고 견고한 인생 철학 영역을 다루는 야심작이다. 40쪽이 넘는 장황한(?) 도입부만 보더라도 그가 철학적인 삶의 의미와 이론을 제시하려는 시도를 눈치챌 수 있다. 서론에서 언급하듯 그의 이론적 기초와 구조는 다른 여러 사상가로부터 끌어낸 밀도 있고 심오한 성찰로 가득하며, 주로 카를 마르크스와 헤겔의 연구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의 이론의 주요 구성 요소 중 하나는 고정성 개념이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 최종결정을 강조한다. 우리는 죽음이 임박해서야 비로소 우리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묻는 어려운 질문에 맞설 의욕을 가지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소중하기 때문에 최대한 잘 활용하려 한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영원히 지속할 수 없고 우리의 삶은 연약하다는 깨달음 덕분에 서로를 잘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빛을 발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생각을 떠받드는 두 개의 큰 줄기를 통속적 믿음과 정신적 자유로 구별 지어 말한다. 이 용어는 정신과 육체, 또는 신앙과 경제학으로도 바꿔 말할 수 있다.

 

1부에서 저자는 도덕적이거나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고차원적 질서나 현세의 초월이 필요하다는 종교인들의 일반적인 주장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 반대를 말한다. 영원함과 비교했을 때 우리 인간의 삶은 실로 하찮아 보인다. 우리의 삶은 무능하고, 낭비된 시간은 결코 회복할 수 없으며, 죽음이 영원한 종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우리가 하는 일에 진정한 신념을 갖게 된다. 이처럼 위험과 무능함에 얽매인 사람들이 일에 전념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가 정의하는 통속적 믿음이다. 종교적 믿음은 영원함에 기초하기에 영원한 시간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으며 인간이 그 유한함을 경험하는 순간 곧 종말을 의미한다. 무엇이든 시작과 끝이 있다는 긴장감이 없으면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

2부에서는 우리 삶의 목표가 정신적 자유의 확장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가진 시간으로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당위가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우리는 자신에게 할 일을 물어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부를 축적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배고픈 새는 먹이를 찾느라 지저귈 여유가 없으며, 등 따시고 배부를 때 노래를 흥얼거리는 법이다. 저자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경제사상으로 독자를 이끌기에 앞서 카를 마르크스, 존 스튜어트 밀, 메이나드 케인스의 사상에 대한 실질적인 토론을 제공한다



그의 사고의 주된 추진력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견해다. 자본주의는 사람을 자본 획득 수단인 임금 노동에 의존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정신적 자유를 저해한다고 말한다. 역설적이게도 임금 노동은 이윤을 창출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임금 노동에 대한 우리의 의존도가 자유 시간을 줄이고, 우리가 가진 자유 시간의 양이 우리의 정신적 자유를 결정한다. 그는 이윤 창출이 필요하지 않게 됨으로써 더 많은 자유 시간과 정신적 자유를 얻게 되는 민주사회주의 경제 모델을 옹호한다. 사실 부와 가치에 대한 이런 개념은 현행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케인스의 예측과는 달리 자본주의는 결코 주 15시간 노동을 실현하지 못할 것이며, 사회민주적 재분배 정책은 그들이 재분배하려는 부의 총량을 감소시킨다는 이유로 수용되기 어렵다. 저자는 진정한 사회적 부를 지향하는 민주사회주의라야 우리가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과정에서 키르케고르, 크노스가르, 헤겔, 마르크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저서들을 통해 깊은 생각을 엿본다.

자본 축적의 역사와 함께 자본주의는 인류에게 필요한 체제였지만, 지금은 극복할 가능성을 지닌, 한편으로는 극복해야 하는 역사적 삶의 형태가 되었다. 자본주의가 겪는 내부 갈등은 가치에 대한 개념과 전체 자본 부를 최대화하려는, 미리 정해진 목표와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 하의 가치 척도는 왜곡되고 자기 모순적이다. 가치의 본질적인 척도는 일찍이 마르크스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이라고 정의하였는데, 본질적으로 잉여가치의 원천인 생활 노동 시간을 뜻한다. 인간의 노동이 창출하는 잉여가치가 이익으로 전환될 때 자본의 성장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 개념 때문에, 필요한 노동 시간 감소로 이어지는 기술의 사용을 통한 발전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의 감소는 모두에게 더 많은 자유 시간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자본주의에서는 잉여 시간이 잉여 노동으로 전환되어야 하므로 불가능하다. 대신 노동 시간 단축이나 실업 증가는 자본주의식 문제로 여겨진다. 이러한 요소들은 저소득 인구의 구매력을 낮추기 때문이다. 기술을 통한 보다 효율적인 생산으로 시장에는 상품이 넘쳐나고, 실업률 증가로 시장이 상품을 수용할 충분한 수단이 없어지면 과잉생산의 위기가 다가온다. 이것이 자본주의에 내재한 치명적 모순이다.





저자가 옹호하는 것은 '가치 회복'이다. 가치는 사회적으로 자유로운 시간으로 이해해야 하며 우리의 목표는 자본의 성장이 아니라 자유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가치를 이해한다면, 더욱 효율적인 생산을 유도하는 기술의 발전은 자본주의 체제처럼 인간의 노동력을 착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이용 가능한 자유 시간의 증가를 목표로 한다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영위하겠느냐는 질문을 허락함으로써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그렇다면 국가가 가치의 재평가와 정신적 자유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반영할 수 있으려면 어떤 변혁을 겪어야 하는가? 저자는 '민주사회주의'라는 제목의 마지막 장에서 이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그는 마르크스의 민주주의 헌신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에 필수 불가결하며 자본주의는 실제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에 대한 한 가지 예는 부의 분배에 관한 우리의 모든 민주적 결정들이 지속적인 폭리를 촉진할 필요성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자본주의하에서는 사회를 위해 부를 창출할 힘을 가진 자본가의 이익이 임금노동자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사실 때문에 평등이라는 민주적 원칙이 훼손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민주주의가 평등과 자유라는 고유의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극복되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그는 또한 민주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구분한다. 거의 모든 좌파 정치인과 활동가들이 표방하는 사회민주주의는 자본과 부의 재분배를 통해 사회 정의를 이루겠다는 목표를 표방한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는 본질적으로 모순된다. 복지정책과 국가규제가 생활노동력 착취를 막을수록 잉여가치를 추출하는 데 제약이 심해져 사회에서 재분배할 수 있는 부가 줄어든다. 사민주의 정책이 신자유주의 비판(경제 침체를 초래하고 가장 필요한 국민의 일자리를 없앤다는 것)에 항상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민주주의가 자본주의 생산 방식과 여전히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경제 위기의 시기에 복지 정책은 자본주의 경제의 인질이자 걸림돌인 셈이다. 사민주의적 접근법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생산 방식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놓고 다투어야 한다는 점이다.



올해 지금까지 접한 책 중 가장 어려운 상대를 만났다. 내용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지만, 저자가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려 든다는 느낌을 받았다. 길고 지루한 산문으로 쓰여 있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집중하기 힘든 데다 게다가, 그러므로, 그리고처럼 불필요한 부사로 시작하는 문장도 부지기수다. 한 단락에서 비슷한 내용을 두세 번씩 언급하여 때로 읽기 성가시다. 적잖은 분량으로 보아 각기 다른 주제의 책 두 권을 한데 합친 것 같다. 읽을수록 저자보다 번역자의 노력과 인내심을 높이 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많은 장점을 지녔다. 내용이 굉장히 밀도 있고 심오하며 주제별 접근성이 매우 좋다. 독자의 깊은 철학적 배경을 가정하지도 않지만, 전형적인 무신론자의 경솔한 논쟁도 아니다. 독자에게 무언가 이해를 요구하면서도 일견 심오하고 감동적이다. 꼼꼼한 독서가 요구되지만, 우리가 누구인지를 묻는 인류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많은 통찰과 관점으로 보상받는다. 이 책의 마지막 공헌은 종교의 지배로부터 신앙'을 되찾고 그 위에 해방 정치와 사회 정의라는 근본적으로 세속적인 구조를 구축한다는 데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나 삶의 의미에 대한 세속적 이론, 그리고 우리 사회를 모두가 추구할 수 있는 사회로 변화시키기 위한 원칙을 찾고 있다면 진심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교양인문학 #내인생의인문학 #민주적사회주의 #마틴하글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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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인문학 - 위태로운 존재들을 위한 견고한 철학적 기초
마틴 하글런드 지음, 오세웅 옮김 / 생각의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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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하고 민주사회주의로 대안을 제시하는 예일대 스타 철학자 마틴 하글러의 최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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