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읽는 주제통합 영어 수업 - 학생들의 삶과 연결되는 교사 교육과정과 범교과 프로젝트
김치원 지음 / 에듀니티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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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고등학교 영어 시간이라면 무엇을 연상하시는가. 학생의 참여 없이 교사 혼자 떠드는 설명 일변도의 문법-번역식 수업? 공부는 학원에서 하는 거라며 학교에서 학원 숙제하는 학생? 초등학생 때 이미 영어 포기자가 되어 무기력하게 책도 없이 앉아있거나 엎드려 자는 아이들? 그 와중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소수의 성실한 학생들? 아마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인터넷 환경과 세련된 멀티미디어 기기 그리고 확연히 줄어든 학생 수 아닐까.

 

본래 어학이란 잡학이고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학문은 없다. 영어 시간에는 영어라는 언어 자체를 배우기도 하지만, 영어로 표현되는 세상을 공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단지 언어만 다를 뿐 인간 세상의 모든 학문이 그 속에 들어가며, 조금 민감할지는 몰라도 정치와 종교를 비롯한 사회 분야 역시 다루게 된다. 그런데도 수업 중에는 시험을 전제로 한 지문 풀이가 수업 중 영어 교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예전 성립 자체가 어불성설 같은 학생들의 서술형 교원평가에서, 우리의 현실 정치에 관심이 필요함을 강조했더니 정치 이야기 좀 그만하시고 교과목을 사회로 바꾸는 게 낫겠다는 내용도 접해보았다. 그렇게 자란 학생들이 국민을 속이고 국고를 탕진하는 정치인들을 뽑아주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래서 요즘처럼 진학과 시험을 위한 영어 공부에 매몰된 학생들에게 사회를 읽어내는 힘 키우기는 어느 때보다 절실한지도 모른다.

 

흔히 학교를 사회의 축소판에 비유한다. 그렇다면 학교는 얼마나 사회적인가? 학교 담장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갈 아이들에게 영어 시간에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만 하고 있다면, 이 책에서 부분적이나마 해답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고등학교 수준에서 절실한 제도인지 아직도 확신이 부족하지만, 선택형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로 학생들이 배울 교과목을 학생들이 선택하는 시대가 왔다. 학교 역시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위주로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데, 절대평가와 학생의 학습 선택권으로 여타 지식 과목보다 특히 어학 도구 과목은 더욱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동종 업종의 현직 영어 교사다. 오랜 세월 자신만의 방식에 굳어져 살아왔기 때문인지 그에게서 일종의 개혁가 같은 모습이 보인다. 그의 수업 철학과 학생들의 좋은 삶을 위한 생각을 접해보니, 같은 학교 울타리 내에서조차 수업 내용과 각종 고민을 공유하지 않던 불문율 뒤에 안주하던 우리의 민낯을 보는 듯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수업 방법은 오랜 세월 동안 더 나은 수업과 학생들을 위한 진지한 고민에서 나온 정공법이다. QR 코드로 제공되는 수업 자료를 당장 나의 수업에 도입하여 시도해볼 만한 여지가 무척 많다. 물론 저자의 방식이 온전히 내 것이 될 수는 없음을 안다. 진정한 고수는 하수에게 자신의 비결을 공개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하수가 고수의 비결을 손에 넣는다고 하더라도 시행착오를 거듭하여 자신의 방식으로 거듭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기고사에 대비한 팍팍한 진도 확보와 수업 중에만 실시해야 하는 수행평가에 떠밀려 교사와 학생이 인생이 만날 시간은 좀처럼 확보하기 쉽지 않은 우리 현실을 고려해볼 때, 이 책은 단순한 비결 그 이상의 것이다. 우리의 영어교육은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는 소통을 목적으로 한 외국어가 아닌, 대학 입학시험의 한 교과목으로 전락(?)하였다는 서글픈 지적을 우리는 매일 접하고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학생들에게 영어라는 언어를 통하여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도록 학생들의 삶을 담아내는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실천하고 결과를 얻어낸 보고서라 할 수 있다. 한편 수업 중 교사와 학생이 주고받는 대화문은 현실 세계의 남자 고등학교에서라면 매우 이례적일 것이라는 상상도 해본다.

 

흔들리는 영어교육에 대한 걱정과 희망을 말하며, 영어라는 그릇에 삶을 담는 방법을 고민하고, 삶을 가꾸는 데 도움이 될 영어 수업을 다루는 본문보다 더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바로 책 끝에 제자들이 저자에게 보내온 편지와 감사의 글이다. 단언컨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제자들의 감사와 인정을 받는 이상의 보상은 없을 것이다. 사람을 키워냈다는 보람 하나가 모든 어려움을 상쇄하는 게 교직이기도 하지만, 모든 교사가 그러한 보람을 오롯이 느끼지 못하는 것 또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이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처럼 학생들이 가진 잠재력을 밖으로 끌어내는 방법에 목말라 있는 영어 교사라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시라 추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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