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 - 무한한 우주 속 인간의 위치
앨런 라이트먼 지음, 송근아 옮김 / 아이콤마(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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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생명의 시작은 무엇이며 자아 의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겠으나 나이가 들수록 이런 거대한 질문으로 삶의 의미를 묻는 책을 점점 더 자주 접하게 된다. 좀 더 시야를 넓혀 무한한 우주 속 인간의 위치를 묻는 이 책은 우주에 대한 서정적이고 읽어볼 만한 토론 거리를 제시한다. 다른 많은 과학 입문서와는 달리, 이 책은 어떤 현상에 대한 설명보다는 의도적으로 저자의 생각을 담으려 한다. 우주와 인간에 대한 흥미로운 생각들을 일반적인 용어로 탐구할 뿐이다. 저자는 매일 별의 먼지와 열역학 법칙을 다루는 과학자이자, 해먹에 누워 별을 곰곰이 생각하는 물리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저서는 대부분 명성을 얻었으며 이 책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전작 "메인의 섬에서 별을 찾아서"에 이어 이 책에서는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먼지만도 못한 인간의 위치를 다시 돌아본다. 과학과 인간다움을 선사 받은 우리는 또다시 우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에 관하여
우리가 다른 인간들에게 부여하는 초월적이고, 비물질적이며, 오래가는 자질들은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컴퓨터로 만들어진 세계와 같은 착각이다. 우리 인류가 마음속에 문화 자본을 축적했다는 사실은 분명 대단한 성취이자 업적이다. 인류는 세상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과학이론의 토대를 세웠고, 아름답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그림과 음악, 문학을 창조하였으며 사회 전반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법규 체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런 훌륭한 장치들도 인간의 마음을 벗어나서는 본질적인 가치가 없어진다. 인간의 모든 의식과 생각, 즉 정신이란 분해되고 용해될 운명에 놓인 원자의 집합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존재와 의식은 항상 무에 가까워지고 있다.

우주관에 대하여
우리는 시간의 대혼란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동시에 그 흐름을 알고 있다. 우리는 공허의 일부가 아니며 양자 진공의 변동도 아니다. 언젠가 육신의 원자가 흙과 공중으로 흩어지면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살아 있고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있다. 책상 위에 올린 손이 보이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사로운 볕에 태양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창밖을 내다보면 해안가로 이어지는 소나무 오솔길이 보인다. 우리는 우주에서 온 물질일 뿐만 아니라 정확히는 별에서 만들어진 물질의 결합체다. 우리 신체를 구성하는 원자는 별들의 핵반응에서 하나씩 만들어진 후 우주로 던져졌다. 수백만 년 동안 소용돌이치고 응축되어 행성으로, 단세포 생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인간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말 그대로 우주의 일부분이다. 유기체와 무기체 두 가지 물질로 우주가 구성되었다는 널리 퍼진 믿음과는 반대로, 우주에는 단 한 가지 종류의 물질만이 존재한다. 바위, , 공기, 나무, 인간 등 모두 같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의식에 대하여
우리의 사고와 감정, 자아 인식, 그리고 나다움의 느낌은 너무나 압도적이고 독특하며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들은 완전히 물질적인 원자와 분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를 비롯한 다른 생명체들이 그저 물질에 불과할 수 있다니, 불가능한 얘기로 들린다. 그러나 무기체로부터 생명을 창조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하고 있는 합성 생물학자들에게는 공식의 기본값에 불과하다.




저자의 초기 작품 <메인의 섬에서 별을 찾아서>와 매우 비슷하게, 이 책은 무거운 주제에 대해 상대적으로가벼운 읽을거리이다. '빅뱅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로부터 '무에 관하여', '불멸', '기적', '생명체는 정말 특별한가?' 17개 주제로 구성돼 있다. 요점은 이 책이 어떤 식으로든 기술 과학 서적이 아니라, 소설가이자 수필가로 전향한 이론 물리학자 개인의 사색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저자는 정말 구체적으로 인생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앞서 언급한 거대한 질문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저자의 개성적인 통찰과 명상은 매혹적이고 위로가 된다.


저자의 필력은 소재만 과학일 뿐, 여느 문필가보다 부드럽고 매력적이다. 특히, 부활절 달걀처럼 이 글의 곳곳에 숨겨진 다채로운 직유는 과학적 사고방식의 이해를 돕는다. 예컨대 태양과 같은 거대질량이 트램펄린 위에 볼링공처럼 가라앉을 때 그 아래 매트를 접는 것처럼 공간을 구부린다고 설명함으로써 공간과 시간의 기하학은 질량과 에너지의 영향을 받는다는 예시를 통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일상적인 소재를 이용한 비교는 과학을 잘 모르는 필자에게 큰 도움을 준다.




그의 전작들은 주로 무한의 본질, 우주의 기원, 비생명체로부터 생명을 창조하는 프로젝트 그리고 의식의 의미 등을 다룬다. 빅뱅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묻는 질문에서 저자는 우주 기원의 양자 안개 속에서 인과관계가 녹아내릴 수 있다'는 시각에서 인과관계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느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는 '우주 생물중심주의'에서 '우리의 우주에서의 삶은 프라이팬 속의 섬광, 우주 속의 시공간이 펼쳐지는 순간'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존재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다. 우주에 인류를 제외한 다른 생명체가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은 우리에게 다른 생명체와 이루 말할 수 없는 교감을 염원하게 한다. 저자는 다른 지적인 존재들 역시 과학과 예술을 창조하여 우주적 존재의 파노라마를 기록하려 시도하며, 이러한 열정을 공유할 것이라 말한다. 복잡한 과학적 개념을 쉽게 설명하면서 감동적인 산문을 만드는 저자의 능력은 희귀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 책은 우주의 범위와 그것을 이해하는 우리의 한계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하고 이해하는 즐거움을 준다. 이론 물리학에서는 확답을 거의 주지 않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저자의 말처럼, 하늘을 올려다보고 자유라는 마음의 사치를 마음껏 누리면 될 테니까.

 

#과학 #이론물리학 #천체물리 #모든것의시작과끝에대한사색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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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 - 무한한 우주 속 인간의 위치
앨런 라이트먼 지음, 송근아 옮김 / 아이콤마(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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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물리학자, 천체 우주학자의 필력 넘치는, 거대 질문에 화답하는 철학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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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아니라 몸이다 -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몸의 지식력
사이먼 로버츠 지음, 조은경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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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은 종방된, 국민적 인기를 구가하던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꼭지 이야기. 영세한 식당을 운영하며 갖은 고생 끝에 마침내 경제적 자유를 얻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화려한 복장으로 고급 식당을 찾아 비싼 음식으로 호사를 누리려는 순간, ‘이모, 여기요~!’ 하고 종업원을 호출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옆 좌석의 고기를 구워주며 식기 전에 얼른 드시라고 권유한다. 마음은 잊었어도 몸이 기억한다며 누려~!’라는 말로 큰 웃음을 선사한다.

 

#2. 세상 무서운 것 없는 예비군 아저씨들의 훈련장 모습. 의장대 출신 예비군과 현역 간의 소총 묘기 시범에 경쟁이 붙었다. 허술한 복장과 긴 머리카락, 살짝 나온 아랫배에도 불구하고 예비역들의 절도 있는 군무는 도저히 예비역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현역들의 열렬한 박수 세례가 쏟아지고 다들 엄지 척이다. 군대 경험자라면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더우나 추우나 고된 반복과 질타 속에 온몸을 던져가며 배운 군무를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이 책의 부제처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몸의 지식력’, 즉 체화된 지식의 원천은 역설적으로 뇌가 아니라 몸이라고 말한다. 우리 몸을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을 재빨리 인식하고,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고, 뇌를 감싸는 도구가 아닌 지성의 근원이라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르네 데카르트와 그의 후계자들이 이어왔을 것으로 짐작되는 서양 사상의 무덤에서 인체를 소생시키면서, 우리가 지식을 창출, 인식, 처리, 보존하는 방법에 대한 대중적 오해를 바로잡아보려 한다.


이 책은 전체 3부로 구성되었다. 1몸인가 정신인가에서는 정신이 우리의 지능과 지식에 관한 생각을 지배해온 과정을 살펴보고 정신과 몸을 최초로 구분한 철학과 정신이 이성과 지능의 영역으로 흡수된 과정을 살펴본다. 이성과 감정을 서로 떼어놓고 이성이 감정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현대적 지적 기술과 GPS, 빅데이터, 교육을 통해 이런 시각이 표현된 방식을 배우고 정신 우선적 접근 방식의 결과와 개요를 소개한다. 데카르트의 격언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서구식 인식론이 위기(?)를 맞이하게 된 배경을 추적한다. 서구에서 뇌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유래를 알아보고, 첨단 기술과 빅데이터 중심의 세상에서 우리가 직접 세상을 경험해보아야 할 이유를 말한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세상을 머리로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반드시 몸을 통해 겪어보아야 할 의의를 강조한다.


2몸의 학습법에서는 몸으로 익혀 체화된 지식을 발전시키고 즐기는 방법을 제시하며 이에 관련한 특징들을 살펴본다.

관찰: 인간은 몰입과 모방을 통해 지식을 얻는다. 체화된 지식을 얻으려면 관찰을 통해 배우는 방법부터 알아야 한다. 눈으로만 관찰된 지식은 체화되지 않으며 기술적으로 가르칠 수도 없다.

연습: 몸은 반복된 행위를 통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다.

즉흥성: 실용적인 체화 인지를 통해 익숙하지 못한 것에도 잘 반응하고 적응할 수 있다.

공감: 우리는 몸을 통해 타인의 의도, 감정, 느낌을 이해한다.

보유: 이렇게 얻은 체화 지식을 보유함으로써 우리 몸이 경험한 것을 기억하고 다시 불러낼 수 있다.


3몸의 지식력 활용에서는 이렇게 습득하고 보유한 체화 인지가 사업, 정책 입안, 정치 분야, 예술과 창의성 및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되는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하며, 특히 최근의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 그리고 진보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저자는 우리의 지능이 그저 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능은 우리가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거나 특정한 행동을 수행하게 만드는 규칙이나 명제의 집합으로 프로그램될 수 없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우리 몸의 상호작용과 세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우리 몸은 지식을 얻는다는 것이다. 르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은 우리가 마음을 가진 정신적 존재임을 뜻한다. 이는 객관성 개념의 출발점으로 사물을 종합적으로 인식하고 그다음 이어질 행동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마음과 몸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이루어졌고, 우리는 생각하는 능력 덕분에 우리의 존재를 인식한다. 모든 세부적인 것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데카르트 방식을 따르면서 일관된 작업의 방향성을 갖게 되었다. 최첨단 기술력과 인공지능을 응용한 프로그램 덕분에 오늘날 인간의 작업능력은 과거보다 무척 정교해지고 있다.


철학과 실제 세계를 결합한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저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말이 안 되는 것을 말이 되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그는 체화된 지식은 세상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동의어라고 말한다. 이는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환경에 완전히 몰입하는 기이한 다수의 사례로 제시된다. 염소나 여우로 빙의하여 실제 동물의 삶을 체험하는 생물학자들의 광기 어린 실험으로부터 실제 난민 캠프에서 그들과 똑같은 열악한 상황에서 지내보는 체험 행사, 건전지 회사의 중역들이 거의 야생상태 수준인 국립공원에서의 캠핑을 통해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어떻게 인식하고 사용하는지 실태를 파악해보는 시도 등이 그러하다.


우리는 종종 마음은 생각하는 반면 몸은 마음이 원하는 것에 반응한다는 식으로 마음과 몸을 개별적으로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내면적이고 신비로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몸은 공개적으로 관찰 가능한 대상으로 본다. 이러한 심신 이원론은 철학, 과학, 그리고 사회학에서 수없이 많은 생각의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아마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업을 이끌어 가거나,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거나, 사회적 매개체로서 생각하는 방법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저자는 우리 몸이 '체화된' 지식을 수집하고, 회상하고, 적용하는 방법을 지적함으로써 그의 접근법의 근거를 제시하면서, 데카르트적 심신 이원론의 가려진 이면을 진지하게 반박한다.




이 책은 마치 위기의 인식, 해결책 제시, 결과 돌아보기와 같은 비즈니스 사례 연구처럼 구성되었다. 비즈니스 인류학자라는 독특한 배경을 반영하듯 기업 운영에 관련된 사례로 집중되기는 하였으나, 인용된 일화는 대체로 실용적이며 과학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뒷받침된다. 저자는 널리 알려진 과학적 사실과 발견, 진지한 질문, 우스갯소리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탈하고 때로는 웅변적이며 솔직한 대화법을 구사한다.


끝으로, 이 책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다음 도약을 위한 열쇠라는 점을 보여준다. 빅 데이터 및 무차별적 강제가 아닌, 경험과 확률에 기반한 신경망인 AI와 같은 미래형 도구는 인간의 지능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 성과를 입증하였으며, 이것의 중요성은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에서 정치, 비즈니스 또는 사회 정책에 분야에 이르는 모든 질문은 결국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저자는 우리 몸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초능력이니 마음껏 즐기고 기뻐하자는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인문 #뇌가아니라몸이다 #생각하지않는힘 #심신이원론반박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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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아니라 몸이다 -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몸의 지식력
사이먼 로버츠 지음, 조은경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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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중요해, 몸은 나중이야. 아니? 데카르트적 이원론을 시원하게 반박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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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육을 말하다
송영주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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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로서 생애의 2/3를 보낸 현직 교장 선생님이 퇴임을 앞두고 그간 겪었던 현장 이야기와 교육 경력을 바탕으로 신문에 기고해온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본인과 직접 연관된 내용을 다룬 경험적 수필이라기보다는 때로는 온정을 담아, 때로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전반적인 교육 정책에 대한 분석과 통찰로 새로운 교육 이론과 정책을 말하고자 한다. 강력한 정책적 변화를 요구하거나 무엇이 옳으니 따라야 마땅하지 않겠느냐는 조의 강변은 아니므로, 혹 듣는 이의 입장에 따라 푸념이나 불평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 책의 부제처럼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고등학교 교육의 현실을 말하는 책이 없었다는 것이며, 내부자의 시각에서 교육 현안을 안팎으로 살뜰히 아우르며 희망을 얘기하는 동시에 교육 정책과 시의적 변화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독자의 시선을 끌 만하다.

 



이 책은 매끄러운 구어체 위주의 설명이라 빠르게 읽히는 한편, 대체로 호흡이 긴 만연체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주제마다 국어 선생님 특유의 설명적인 화법이 묻어나며 한 우물만 40년을 파온 교육자로서의 깊은 통찰력 또한 돋보인다. 전혀 가볍지 않은 고등학교 교육을 주제로 한 상당량의 언론 자료와 미주 해설에도 불구하고 기고문을 모아 낸 책이라 그런지 사진이나 그림, 도표 따위의 시각 자료가 전혀 없어 독자가 쉬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대개 교육 분야에 이해관계가 있거나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처지가 아니라면,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라면 자녀들의 고등학생 시기 이후에는 이어지는 대학 졸업과 취업 그리고 결혼 등으로 교육 제도에 관한 관심이 식어가게 마련이다. 여느 학부모에게는 기나긴 인생에서 자녀의 대학 진학을 위해 잠시 스쳐 가는 3년일지도 모르겠지만, 학교 현장은 특히 끊임없이 변화하는 집권 정부의 정책에 따라 움직여야 하므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우스갯소리로 학생들뿐 아니라 교사들도 수행을 겪는다는 수행평가나, 2023년 입학생부터 전면 실시하는 고교 학점제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대학은 정작 학생들이 가는데 대입 전형 자료는 교사들이 만들어주어야 하며, 수준별로 다르게 가르쳐도 평가의 척도는 수능 시험 하나로 수렴되고 마는 괴리감도 마뜩찮다. 배움에 앞서 만남의 시간을 좀처럼 갖기 어려우니 학기 말이 되어서야 겨우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익히고 친해지곤 하는데, 최근에는 코로나 상황으로 마스크를 쓴 채 만나니 많은 학생과 오래도록 낯설다.

 



사실 어느 정권이 집권하든 고등학교 교육 문제만큼은 현장 전문가들에게 위임하는 핀란드처럼 최대한의 후원과 자율성을 보장받았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희망을 지녀왔다. 비록 현실은 전혀 다르지만, 학생들이 내신과 수능과 비교과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굴레에서 벗어나 고등학교 3년이 학생의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진정한 자기 탐구의 시간이 되기를 바라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학생들 사이의 학습력 격차는 한층 더 양극화되고 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오래 진행하다 보니 학교와 교사로부터 받던 격려와 지지가 약해지면서 자기 관리가 체화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의 격차가 극복되기 어려운 수준까지 벌어지곤 했다. 다행히도 올해부터는 수업이 대면으로 진행되어 만남의 시간이 늘고 있어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되는 일말의 희망을 품어본다.


결국, 고등학교 교육은 단지 대학 입시기관으로 여겨지는 고등학교만의 문제가 아닌,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회 전반의 문제로 인식하고 접근해야 한다. 그 해법을 찾으려면 아마도 정확한 고등학교 교육 현실을 먼저 인식해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아마도 이 책이 감정 중립적이고 가감 없는 현실 파악에 가장 큰 도움을 줄 것 같다. 대략 3천 가지가 넘고 매년 내용이 바뀌어 고3 담임을 비롯한 수천 명의 진로 진학 담당 교사가 도시락을 싸 들고 온종일 진행되는 대입 수시 설명회를 듣는 연례행사가 역사 속의 진풍경으로 남고, 교사와 학생 대신 스승과 제자로 남아 평생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 보장되며, 19세기 학교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의 학생을 가르친다는 자조적인 말이 더는 우리 교육의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독자라면 더욱더 그럴 것이다.

 

#사회정치 #고등학교교육을말하다 #송영주 #고교교육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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