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아니라 몸이다 -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몸의 지식력
사이먼 로버츠 지음, 조은경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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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은 종방된, 국민적 인기를 구가하던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꼭지 이야기. 영세한 식당을 운영하며 갖은 고생 끝에 마침내 경제적 자유를 얻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화려한 복장으로 고급 식당을 찾아 비싼 음식으로 호사를 누리려는 순간, ‘이모, 여기요~!’ 하고 종업원을 호출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옆 좌석의 고기를 구워주며 식기 전에 얼른 드시라고 권유한다. 마음은 잊었어도 몸이 기억한다며 누려~!’라는 말로 큰 웃음을 선사한다.

 

#2. 세상 무서운 것 없는 예비군 아저씨들의 훈련장 모습. 의장대 출신 예비군과 현역 간의 소총 묘기 시범에 경쟁이 붙었다. 허술한 복장과 긴 머리카락, 살짝 나온 아랫배에도 불구하고 예비역들의 절도 있는 군무는 도저히 예비역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현역들의 열렬한 박수 세례가 쏟아지고 다들 엄지 척이다. 군대 경험자라면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더우나 추우나 고된 반복과 질타 속에 온몸을 던져가며 배운 군무를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이 책의 부제처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몸의 지식력’, 즉 체화된 지식의 원천은 역설적으로 뇌가 아니라 몸이라고 말한다. 우리 몸을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을 재빨리 인식하고,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고, 뇌를 감싸는 도구가 아닌 지성의 근원이라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르네 데카르트와 그의 후계자들이 이어왔을 것으로 짐작되는 서양 사상의 무덤에서 인체를 소생시키면서, 우리가 지식을 창출, 인식, 처리, 보존하는 방법에 대한 대중적 오해를 바로잡아보려 한다.


이 책은 전체 3부로 구성되었다. 1몸인가 정신인가에서는 정신이 우리의 지능과 지식에 관한 생각을 지배해온 과정을 살펴보고 정신과 몸을 최초로 구분한 철학과 정신이 이성과 지능의 영역으로 흡수된 과정을 살펴본다. 이성과 감정을 서로 떼어놓고 이성이 감정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현대적 지적 기술과 GPS, 빅데이터, 교육을 통해 이런 시각이 표현된 방식을 배우고 정신 우선적 접근 방식의 결과와 개요를 소개한다. 데카르트의 격언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서구식 인식론이 위기(?)를 맞이하게 된 배경을 추적한다. 서구에서 뇌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유래를 알아보고, 첨단 기술과 빅데이터 중심의 세상에서 우리가 직접 세상을 경험해보아야 할 이유를 말한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세상을 머리로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반드시 몸을 통해 겪어보아야 할 의의를 강조한다.


2몸의 학습법에서는 몸으로 익혀 체화된 지식을 발전시키고 즐기는 방법을 제시하며 이에 관련한 특징들을 살펴본다.

관찰: 인간은 몰입과 모방을 통해 지식을 얻는다. 체화된 지식을 얻으려면 관찰을 통해 배우는 방법부터 알아야 한다. 눈으로만 관찰된 지식은 체화되지 않으며 기술적으로 가르칠 수도 없다.

연습: 몸은 반복된 행위를 통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다.

즉흥성: 실용적인 체화 인지를 통해 익숙하지 못한 것에도 잘 반응하고 적응할 수 있다.

공감: 우리는 몸을 통해 타인의 의도, 감정, 느낌을 이해한다.

보유: 이렇게 얻은 체화 지식을 보유함으로써 우리 몸이 경험한 것을 기억하고 다시 불러낼 수 있다.


3몸의 지식력 활용에서는 이렇게 습득하고 보유한 체화 인지가 사업, 정책 입안, 정치 분야, 예술과 창의성 및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되는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하며, 특히 최근의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 그리고 진보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저자는 우리의 지능이 그저 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능은 우리가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거나 특정한 행동을 수행하게 만드는 규칙이나 명제의 집합으로 프로그램될 수 없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우리 몸의 상호작용과 세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우리 몸은 지식을 얻는다는 것이다. 르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은 우리가 마음을 가진 정신적 존재임을 뜻한다. 이는 객관성 개념의 출발점으로 사물을 종합적으로 인식하고 그다음 이어질 행동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마음과 몸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이루어졌고, 우리는 생각하는 능력 덕분에 우리의 존재를 인식한다. 모든 세부적인 것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데카르트 방식을 따르면서 일관된 작업의 방향성을 갖게 되었다. 최첨단 기술력과 인공지능을 응용한 프로그램 덕분에 오늘날 인간의 작업능력은 과거보다 무척 정교해지고 있다.


철학과 실제 세계를 결합한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저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말이 안 되는 것을 말이 되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그는 체화된 지식은 세상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동의어라고 말한다. 이는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환경에 완전히 몰입하는 기이한 다수의 사례로 제시된다. 염소나 여우로 빙의하여 실제 동물의 삶을 체험하는 생물학자들의 광기 어린 실험으로부터 실제 난민 캠프에서 그들과 똑같은 열악한 상황에서 지내보는 체험 행사, 건전지 회사의 중역들이 거의 야생상태 수준인 국립공원에서의 캠핑을 통해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어떻게 인식하고 사용하는지 실태를 파악해보는 시도 등이 그러하다.


우리는 종종 마음은 생각하는 반면 몸은 마음이 원하는 것에 반응한다는 식으로 마음과 몸을 개별적으로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내면적이고 신비로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몸은 공개적으로 관찰 가능한 대상으로 본다. 이러한 심신 이원론은 철학, 과학, 그리고 사회학에서 수없이 많은 생각의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아마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업을 이끌어 가거나,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거나, 사회적 매개체로서 생각하는 방법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저자는 우리 몸이 '체화된' 지식을 수집하고, 회상하고, 적용하는 방법을 지적함으로써 그의 접근법의 근거를 제시하면서, 데카르트적 심신 이원론의 가려진 이면을 진지하게 반박한다.




이 책은 마치 위기의 인식, 해결책 제시, 결과 돌아보기와 같은 비즈니스 사례 연구처럼 구성되었다. 비즈니스 인류학자라는 독특한 배경을 반영하듯 기업 운영에 관련된 사례로 집중되기는 하였으나, 인용된 일화는 대체로 실용적이며 과학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뒷받침된다. 저자는 널리 알려진 과학적 사실과 발견, 진지한 질문, 우스갯소리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탈하고 때로는 웅변적이며 솔직한 대화법을 구사한다.


끝으로, 이 책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다음 도약을 위한 열쇠라는 점을 보여준다. 빅 데이터 및 무차별적 강제가 아닌, 경험과 확률에 기반한 신경망인 AI와 같은 미래형 도구는 인간의 지능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 성과를 입증하였으며, 이것의 중요성은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에서 정치, 비즈니스 또는 사회 정책에 분야에 이르는 모든 질문은 결국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저자는 우리 몸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초능력이니 마음껏 즐기고 기뻐하자는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인문 #뇌가아니라몸이다 #생각하지않는힘 #심신이원론반박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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