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바다로 간다면 - NASA의 과학자, 우주의 심해에서 외계 생명체를 찾다
케빈 피터 핸드 지음, 조은영 옮김 / 해나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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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미 배운 것, 현재 배우고 있는 것, 그리고 앞으로 배워야 할 것에 대한 우주 생물학자의 여과없는 열정과 우주에 대한 경외심을 담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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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 우리가 영화를 애정하는 방법들
김도훈 외 지음 / 푸른숲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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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좋아하세요?”

 

꼭 이성과의 교제 때문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해봤을 만한 질문이다. 여가와 문화생활을 한꺼번에 충족하는 수단으로 아마 영화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예술 매체도 없을 것이다. 학교 단체관람이나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에서 벗어나 이제 영화는 주말 아침마다 영화를 소개하는 공중파 방송을 비롯해 우리의 일상에 매우 깊숙이 들어와 있다. 예전 가정용 비디오가 대중화되기 전에는 온 식구가 토요일 밤마다 TV 앞에 모여앉아 투게더 아이스크림 한 통을 비워가며 주말의 명화를 보고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기 일쑤였다. 비디오 재생기가 신혼살림 목록에 오른 이후로는 주말 아침마다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동네 비디오방을 들락거렸고, 조금 더 지나 DVD (Digital Versatile Disc)가 보편화되면서 보다 고화질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안방에서 편안하게 영화 전문 케이블 채널로 취향에 맞는 VOD (Video On Demand) 또는 OTT (Over The Top)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 옛날이여~!

 

과거 영화가 선진국의 문물로 우대받던 시절, 국산 영화는 방화라는 용어로 격하되었고 스크린 쿼터제로 외국 영화에 대항하여 용케 버티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를 세계에 널리 알린 영화 <기생충>이나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을 통해 우리는 전 지구적 문화강국의 면모를 보며 차오르는 국뽕을 자주 맛보곤 한다. 잘 만들어진 영화는 흥행에 성공할 뿐만 아니라, 수출로 더 큰 수입을 올리기도 하고 리메이크되어 감독과 작품의 인지도가 한층 높아지기도 한다. 혹자는 영화 산업이 일찍 발달했던 서구의 경우 소재로 쓸만한 내용이 갈수록 고갈되고 제작 기술이 상향 평준화 되면서 상대적으로 풍부한 후발주자 국가들의 콘텐츠가 주목받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과거에 비해 질적 양적으로 세계적인 수준으로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는데 이견은 없을 듯하다.



 

작품을 만드는 이들의 몫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분석하고, 의도를 듣고, 의미를 짚어내고, 가치를 평가하고, 새로운 창작자들을 발굴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이즈음 우리 영화계가 다양한 매체와 함께 교류하며 얻은 경험이다. (p.93)

 

한 사람의 인생에 잘 만들어진 영화를 접하는 것처럼 신비롭고 위대한 간접 경험은 없을 것 같다. 영화라는 문화 자본이 빈약했던 1960년대 초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당시 관람 인원 22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이만희 감독의 작품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의 촬영기사로 일하셨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극장에서 보았던 천연색 영화가 바로 <메리 포핀스>(1964)였다. 참고로 당시 초대형 프로젝트로 주목받으며 유수 영화제의 수상을 휩쓸었던 이 영화는 특수효과를 도입한 최초의 실사영화이자 애니메이션과 합성이라는 혁신적 시도, 시대를 앞서간 당찬 여주인공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주인공 남매가 장성하여 부모가 되었다는 설정으로 2019<메리 포핀스 리턴즈>로 리메이크되기도 하였다. 어쨌든, 공중파 TV는 흑백화면으로만 볼 수 있던 때라 환상적인 총천연색 화면과 함께 등장하던 펭귄들의 애니메이션에 매료되어 넋을 잃고 관람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심지어 남자 주인공이 부르던 굴뚝 청소부의 주제가는 지금도 기억하고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이다. 이후로도 극장을 자주 찾게 되면서 자주 영어권 영화에 노출되어서인지는 몰라도 지금의 밥벌이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다고 억측해본다.

 

이런 긍정적인 영향을 의식하여 필자 역시 두 딸에게 그와 유사한 환경에 노출하려 의도적으로 시도해 본 적이 있다. 당시 인기를 누리던 영어권 애니메이션으로 디즈니의 <토이 스토리1, 2(1995)> 시리즈나 <몬스터 주식회사’(2001)>를 자주 보여주었는데, 결과적으로 역효과만 거두었을 뿐이다. 영어 발음에 익숙해지기는커녕 아이들을 겁주는 무서운 괴물들에게 정말로놀라기만 했기 때문이다. 눈높이 노출에 흥행 실패한 이후 아이들은 대체재로 보여준 아기자기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에 몰입했는데, 큰 아이는 자막 없이도 일본어 대사를 절반 정도는 그냥 듣고 이해할 정도는 된다고 하고 작은 아이는 자기 선택으로 대학 영문학과에 진학하였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아니 그런데, 저자들처럼 나에게도 영화라는 단어 하나에 이렇게 풀어놓을 사담이 있었다니?



 

세 명의 영화 전문 기자, 예능프로 제작자, 음악 평론가로 구성된, 무엇보다 영화에 대해서만큼은 진심인 다섯 인사가 영화를 애정하는 그들만의 방법에 관한 글을 모아 낸 이 책은 전체 4장으로 구성되었다. 1이 판에 발을 들이게 된 건에서는 의도치 않았지만, 생계 수단으로서의 영화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운명 같은 영화 사랑 이야기 또는 어린 시절의 인연을 회고한다. 2시네필 시대의 낭만과 사랑에서는 영화계에 종사하면서도 정작 영화계 인사로는 대우받지 못하는 본격적인 밥벌이 현장에서의 좌충우돌 경험담을 들려준다. 여기서 공동 저자 5인의 삶은 하나같이 지고지순한 영화 사랑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3영화 사담에서는 가장 인상적이거나 영감을 얻었던 영화 장면과 대사를 소개하며 이에 얽힌 개인사를 털어놓는다. 영화라는 그 무엇인가를 좋아하고 사랑한 대가(?)를 생애를 통해 톡톡히 치르는 셈이다. 4영화로 먹고사는 일에서는 영화잡지 기사를 쓰고 감독을 인터뷰하고 배경 음악을 소개하는 등 직접 영화를 제작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영화계에 몸담은 그들의 세계를 말한다. 서로 종사하는 구체적인 분야는 조금씩 다르지만, 영화판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숨겨진 직업적 일상 이야기에서는 애증이 교차한다. 그리고 각 장의 중간에는 첫 직장, 좋아하던 극장과 돈 주고 본 첫 번째 영화, 가장 많이 본 영화와 그 횟수, 잠 못 이루게 만든 배우,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속 대사, 자기만 싫어하는 영화, 이 책의 예상 판매 부수를 묻는 직설적인 설문지를 넣어 다섯 저자의 개성 넘치는 답변을 들을 수 있도록 엮었다.



 

어쨌든 고된 마감 노동을 업으로 삼는 그 한 줌 소수의 직군인 우리는 그래도 덕업일치를 이룬 행운아라고 스스로 믿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남들이 다 복지와 부동산을 챙길 때, 20년째 복지부동으로 오르지 않는 글 값을 받으며 일해왔다. 한창 기고를 하다가 잡지가 없어지면 원고비를 떼이기도 하고, 경영난으로 밀린 일도 적지 않았다. (p.230)

 

이 책의 공저자인 김도훈, 김미연, 배순탁, 이화정, 주성철의 공통분모를 찾으라면 JTBC 종편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인 <방구석1>로 압축된다. 주로 주말 아침에 영화를 소재로 하는 기존의 프로그램들이 개봉작을 소개하는데 집중했던 반면, 이 프로에서는 이미 개봉한 작품 중에 호평받은 작품을 깊이 파고든다. 매주 선정하여 발표하는 해당 영화의 관계자가 출연하거나 해당 주제에 맞는 사람들이 나와 영화와 관련된 깊은 이야기를 풀어주는 재미가 있다. 타 영화프로그램에 비해 단순한 줄거리 소개를 넘어선 상황별 토크 형식을 활용해 영화 및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 담긴 인문학적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이 프로를 제작하거나 인문학 콘텐츠의 전문가로 출연하는 공저자들 덕분에 시청자는 영화 보는 심미안을 덤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이들은 이미 자기 분야의 책을 저술한 전문가이자 수십 년을 영화와 함께해온 덕후(德厚,オタク)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공저자들의 수다 크래프트(Star Craft 게임명을 차용한 신조어)를 통하여 우리가 어릴 적부터 보았던 영화 제목과 유명 배우들의 이름을 듣고 그들의 멋진 대사와 영화 장면을 떠올리며 아련한 향수에 젖는다. 주윤발이 미소 짓는 입에 이리저리 옮겨 물던 그 멋진 이쑤시개, 명절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던 성룡 형님의 코믹 액션, 이소룡의 절권도에 반해 학교 옥상에서 와다~!” 소리와 함께 쌍절곤으로 애꿎은 화분을 박살 내다 학주에게 들켜 내 뒤통수가 박살 나던 일, 지금은 사라진 시내 모처의 유명 극장들과 극장 앞 빵집에서 첫인사를 나누었던 소개팅녀, 수업 땡땡이치고 컵라면을 후룩거리며 담배를 뻐끔대던 동시상영 극장, 매표소 앞 늘어선 줄 사이를 비집고 다니던 암표상, 화면에 공룡이 나올 때마다 내 의자 등받이를 발로 차며 발악하듯 괴성을 지르던 어느 집 꼬마의 기억들 역시 소환해본다. 끝으로 우리가 문화 소비자로서 영화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기까지 영화계 사람들의 숨은 노력과 수많은 사연이 깔려있었으며, 누군가의 즐거움을 위해 다른 누군가는 피땀 흘려 고생하고 있음을 또한 알게 된다. 자신이 영화 애호가이든 아니든 간에 기왕이면 그들이 기울인 노고는 알고 즐기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는지.

 

#에세이 #영화평도리콜이되나요? #방구석1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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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 우리가 영화를 애정하는 방법들
김도훈 외 지음 / 푸른숲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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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 오랜만에 같이 누워보는군..˝ 영화 <별들에게 물어봐>의 명대사를 아신다면 당신은 진정한 영화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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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 -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숨은 주인공, 개정판
마틴 브룩스 지음, 이충호 옮김 / 갈매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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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일이면 암컷 초파리 한 마리가 지구 전체 인구보다 더 많은 자손을 퍼트릴 수 있다. 과학자들이 켄과 바비라고 이름 붙인, 생식기 없이 태어난 돌연변이도 있고 어떤 녀석들은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다리를 이고 태어난다. 초파리에 관해 미처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사실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연구를 목적으로 이들은 인간에 의해 집단 처형(?)당하기도 하고 맛난 과일로 훈련받은 대가를 보상받기도 한다. 사람과 매우 비슷하게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일과 휴식 시간을 따로 갖는다. 마약 성분에 중독되어 마이클 잭슨처럼 뒤로 걷거나(Moon Walking) 빙빙 돌다 어지럼증 아니면 배고픔으로 죽는다. 수컷의 정액에는 독성분의 단백질이 있어 암컷의 뇌 속에서 행동을 조종하며 너무 잦은 짝짓기로 일찍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외부와 단절된 하와이 제도의 초파리는 무려 1,000종이 넘는다.

 

초파리가 실험실에 정식으로 데뷔한 때는 1900년이고, 장소는 하버드대학교 교수 윌리엄 캐슬의 실험실이었다. (중략) 박물학의 굴레에서 벗어난 생물학은 동물행동학, 진화론, 생리학 등의 전문 분야로 분화해 가기 시작했다. 생물학자들은 수많은 새로운 개념들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용 생물로 적합한 동물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초파리가 가장 적합한 후보로 입증되었다.(p.22-23)

 

오늘날 초파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생물학 분야는 거의 없다. 암 치료법을 찾는 방편으로,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에 대한 조기 경고 시스템으로, 알츠하이머병과 헌팅턴병 같은 신경성 장애 연구법으로, 알코올과 약물 중독, 수면 장애, 시차증 등 유전학을 이해하는 데 사용된다. 100년도 넘게 초파리 연구는 유전학의 주요인으로 확립되었다. 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 사실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듯한 이 책은 초파리를 실험 재료로 이용해온 과학사를 다룬 매력적인 소개서이다. 벌써 20년쯤 전에 출간된 책이라 과학이 고리타분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저자가 구사하는 유머는 요즘 말로 아재 개그 같지만, 다행히도 이야기의 큰 흐름을 건드리지는 않는다.

 

저자는 연구자로서 평생 실험실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어쩌다 학회에서 공짜로 보내주는 여행에 미소를 참지 못하는 자신을 웃음의 소재로 삼고, 초파리들만의 은밀한 성생활을 가벼운 어조의 농담으로 승화시킨다. 곤충학 관련 서적이 큰 소리로 자주 웃게 만드는 분야는 아니지만, 읽다 보면 익살스러운 표현을 자주 발견한다. 과일이 부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알코올 성분의 효모를 섭취해 날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걷는 초파리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묘사하면서 인간이 그들에게 선사하는 고통에 유감을 표하기도 한다. 유익한 정보가 가득하여 과학에 진지한 관심을 둔 특정 독자층뿐 아니라 일반인 누구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과거 과학적 사고를 추동했던 초파리 연구의 틀을 통해 20세기 생물학적 사고가 어떻게 진화되었는가를 설명하면서, 여러 초파리 연구자들의 숨은 이야기와 함께 유전학이 진화론의 허점을 어떻게 보완해 왔는지를 소개한다. 그 결과 우리는 유전학의 탄생을 둘러싼 역사, 과학, 연구자들 사이의 대인관계 드라마에 대해 소소하지만 매우 흥미로운 배울 거리와 함께 진화와 자연철학이 서로 화해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초파리(small fruit fly)는 세계 전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파리목 초파리과로 분류된다. 종류에 따라 서식지가 매우 다양하고 번데기 과정을 포함한 갖춘탈바꿈을 통해 자라며 한 세대가 매우 짧은 것이 특징이다. 초파리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과학적으로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토마스 모건 (Thomas Hunt Morgan)의 돌연변이 연구로 유명한, ‘배가 검고 이슬을 사랑하는 동물이란 뜻의 노랑초파리Drosophila melanogster는 유전학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학 분야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실험 재료로 취급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그 활용 폭이 더욱 넓어지고 있으며 특히 의료계에서는 알츠하이머, 헌팅턴병, 하반신 마비, 각종 암, 소아비만 등 치료가 어려운 병을 대상으로 치료법 개발을 위한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초파리 실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쥐나 개·원숭이와 같은 동물 실험은 물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과 비교해 가성비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며,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단체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윤리적 비난을 잠재울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초파리 연구의 선구자로 1933년 노벨 생리학상을 받은 토머스 모건을 빼놓을 수 없다. 1910~1915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초파리를 연구하던 그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염색체의 유전적 특징을 파악해낸다. 생물의 유전형질을 나타내는 유전자가 쌍을 이루어 염색체에 선상배열을 하고 있다는, 기본적인 유전 메커니즘인 염색체지도를 초파리의 실험으로 입증했다. 그의 공로로 이전까지 방향을 잡지 못했던 유전자 연구가 튼튼한 기반 위에서 발전할 수 있었다. 모건 학파의 일원이었던 허먼 멀러(Hermann J. Muller) 역시 초파리 연구의 중요 인물이다. 그는 X선에 의한 인공 돌연변이 발생이 가능함을 최초로 입증하였으며 돌연변이 유발 효소를 결정화한 공로로 194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러시아 출신의 생물학자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는 유전학 연구에 집중되던 초파리의 세계를 진화와 결합해 진화유전학을 발전시킨 인물이다. 그는 진화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는 생물학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 바 있으며, 작은 유전적 변화가 축적되어 발생하는 생식형 불일치가 종 사이의 경계를 정의한다고 보았다.

 

도브잔스키는 두 개체군 사이에 유전적 차이가 축적되면서 몸 크기, 색깔, 생식기 구조, 행동 특이성, 그리고 그 밖의 수천 가지 특징에도 차이들이 축적되어 결국에는 두 종이 서로 짝짓기하길 싫어하거나 불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이렇게 뚜렷이 구별되는 유전적 특징의 차이들을 보면서 자신이 종의 기원이 발생하는 장면을 보고 있다고 믿었다.(p.145)

 

사람의 유전형질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점 때문에 초파리는 유전학은 물론 의료 현장에 없어서는 안 될 실험용 동물이다. 초파리 연구의 전성기였던 1970년대에는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사람에게 발생하고 있는 질병들을 규명하였고, 마치 사람이 연가를 부르는 것과 같은 수컷과 암컷 사이의 애절한 구애 습성을 알아내기도 하였다. 초파리 유전자 연구를 통해 기대하는 분야는 불치병 치료로, 특히 헌팅턴병처럼 근육 간의 조정 능력, 인지능력이 저하되고 정신적인 문제가 동반되는 진행성의 신경계 퇴행성 질환과 관련해 치료의 실마리가 되는 원인을 찾는 중이다. 초파리는 유전학 이외에도 종 분화 과정과 같은 진화 연구, 행동과 생태에 관한 연구, 생리학, 세포 생물학과 발생에 관한 연구 등 생물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매우 적절한 실험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초파리는 심리학 연구에도 동원되고 있다. 초파리를 대상으로 유전자가 어떻게 행동을 조절하는지, 시간과 공간 감각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찾는 연구 등 행동 유전학에 활용되고 있다.

 

초파리는 몸집이 작고 다양한 환경에 쉽게 적응하기 때문에, 좁은 장소에서 간단한 먹이로 많은 개체를 쉽게 기를 수 있다. 또한 돌연변이를 식별하는 방법이나 사육하는 기술이 어렵지 않다. 초파리 애벌레의 침샘에 있는 다사염색체(polytene chromosome)는 핵분열 없이 염색체가 반복적으로 복제되어 상당히 크기 때문에, 유전자의 관찰이 쉽고 유전자의 작용을 연구하기에 적당하다. 유전학 연구에 있어서 교배를 통한 실험은 필수적이기 때문에 한 세대가 짧고 번식을 많이 하는 초파리는 좋은 연구재료가 되고 있다. 생쥐나 예쁜꼬마선충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최고의 만능 실험 동물로 남아있는 초파리를 통해 또 어떤 사실이 밝혀질지 지켜볼 일이다.

 

신체가 맡은 주 임무는 생식을 할 때까지 충분히 오랫동안 개체를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 생식에 성공하고 나면 체세포는 돌연변이가 누적되고 늙어 갈 수 있다. 맡은 임무를 이미 완수했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진화는 우리가 유성 생식을 하도록 만듦으로써 우리의 신체를 소모품으로 만든 것이다.(p.253)

 

결국, 이 놀라운 초파리는 과학 발전사에 큰 공을 세운 숨은 영웅이었다. 그런데도 금세기의 많은 위대한 발견물 가운데 초파리의 선구적인 역할에 대한 대중적 설명은 거의 없었다. 이 책은 유전학에서 진화학, 생리학에서 생태학, 의학에서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초파리의 짧고 굵은 삶을 통해 현대 생물학사를 들려줌으로써 부패한 음식물을 좋아하는 조그맣고 성가신 존재일 뿐이라는 대중적 이미지를 바로잡아준다. 저자는 매우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화법으로 초파리의 생애 주기를 단계별로 알려주며 생물학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중요한 의의를 찾는다. 배아에서 성체에 이르는 놀라운 여정부터 기억과 학습의 본질 그리고 노화의 이론적 배경에 이르기까지, 짧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들의 삶이 인간 존재의 거의 모든 측면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초파리 연구자가 별로 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초파리의 명성은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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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땐 별을 봅니다 - 우리 시대의 명상록
김인현 글, 권오철 사진 / 메이트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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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되기 전 살았던 청주 산골의 황토집은 전기와 수도가 공급되지 않아 식수는 우물물을 길어다 먹어야 했고, 어둑한 호롱불 흔들리는 불빛에 매캐한 그을음 냄새를 맡으며 해가 지기 무섭게 이른 저녁밥을 먹었다. 뱃속이 조금 가벼워지면 널찍한 마당의 평상 위에 펼쳐진 모기장 안에 드러누워 참외를 까먹으며 은하수 뿌연 밤하늘의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을 세다가 까무룩 잠들곤 했다. 오랜 도회지 생활에 익숙해진 나머지 어릴 적 생각은 안 날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당시의 기억은 도심지의 빛 공해만큼이나 선명해진다. 그런데 참, 삶에 지쳐 하늘 대신 자기 발끝만 보며 걷게 된 오늘의 우리가 마지막으로 별을 본 것이 언제였더라?

 

엄청나게 커 보이는 지구도 결국,

우주 안에선 작고 파란 하나의 별일 뿐이다.

남의 삶이 대단해 보여도 결국 작디 작은 지구에 사는

똑같은 생명체일 뿐이다. (p.138)


대자연의 일부로서 우리가 별을 바라볼 때 느끼는 심정은 누구 할 것 없이 거의 다 비슷해지는 것 같다. 바로 경건함이다. 지구가 광대무변한 우주의 셀 수 없이 많은 별 가운데 한낱 행성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인간이 아무리 잘나고 대단한 것 같아도 먼지 속의 티끌일 뿐이라는 자각에서 오는 그 경건함 말이다. 그래서 얇고 작고 짧은 글이지만 이 책이 주는 여운은 제법 길게 오래 갈 듯하다.

 

아무 때나 볼 수 있다면 간절하지 않다.

누구나 만날 수 있다면 그립지 않다.

좋은 풍경은 간절한 사람 앞에서만 모습을 보인다. (p.214)

 

수려한 별 사진을 곁들인 명상록을 표방하는 이 책은 차례와 관계없이 아무 곳이나 펼쳐 들어도 인생의 묘미가 담긴 짤막한 글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특히, 사진마다 그 한 장면을 담는 데 필요한 기술적인 문제와 천체과학, 지리학 등 알토란 같은 설명 이외에도 오랜 세월을 계획하고, 기다리고, 실패하고, 다시 준비하고 이루어낸 시간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럼으로써 독자는 기술에 시간이 쌓이면 예술이 되는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또한, ‘ㅇㅇㅇ님의 소중한 미래를 위해 이 책을 드립니다라고 인쇄된 표지 문구처럼 이 책은 천체 사진만으로도 훌륭한 소장본이며 선물용으로도 손색이 없겠다. 그저 친구 같은 별을 바라보며 별 하나에 따뜻한 위로를 얻고 별 하나에 희망을 품으며 힘들 땐 별을 보자는 순수한 마음 선물을 누가 마다하랴



#에세이 #힘들땐별을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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