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다면 잘 살고 있는 것이다 - 삶이 흔들릴 때 꺼내 읽는 문장들
부아c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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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최근 들어 어느 해부터인가 별일이 없는데도 신경이 곤두선다. 예전 같지 않게 몸이 쉬 피곤하고, 별말 아닌데도 짜증부터 올라오고, 밤에는 잠이 쉽게 오지 않는데 푹 자고 싶어도 새벽 5시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건강 검진표의 각종 지표가 정상 범위에서 경계선 쪽으로 옮겨가는 추세라 마음은 예전보다 훨씬 더 낯설고 불안하다. 혼자 드라마를 시청하다가 울음이 터지기도 하고, 슬픈 노래의 전주만 들어도 울컥한다. 사랑스럽기만 하던 아내가 무서워진 지는 이미 제법 되었다. 흔히 남성 갱년기라 부르는 시기, 호르몬 분비의 변화는 몸뿐 아니라 마음마저 뒤흔들어 놓는다. 나만 이상해졌나 하는 생각을 누군가에게 속 시원히 말해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 외로움은 단순히 고통스러운 감정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영혼이 나에게 보내는 중요한 신호였다. “더 이상 마음이 닿지 않는 자리에 머물지 말라, 새로운 길로 나아가라는 조용한 메시지였다. (32)

 

부아c외롭다면 잘 살고 있는 것이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하는 책으로 어울린다. 제목도 그렇지만 아직 더 성장할 게 남았나 싶은데 진짜 성장은 혼자일 때 시작된다는 부제 역시 도발적이다. 대부분 사람에게 외로움은 실패와 결핍의 신호다. 중년의 가장에게는 거의 돌직구다. 가정에도, 회사에도, 친구들 사이에도 어딘가 잘 섞여 있어야 정상이라는 강박 속에서 외로움은 가능한 한 빨리 지워야 할 감정으로 취급된다. 그런데 이 책은 정반대의 말을 건넨다. 외롭다면, 어쩌면 당신은 잘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누군가 당신의 삶을 평가하려 할 때, 그저 , 저는 이렇게 사는 게 좋아요라고 답하면 된다.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 이것이 진짜 당당함이다. (78)

 

저자는 여러 해 동안 블로그와 SNS에 매일 같이 글을 올리며 사람들과 소통해 왔다고 한다. 그 시간 속에서 건져 올린 문장들을 네 개의 장으로 엮어낸 것이 이 산문집이다. 1부는 외롭다면 잘 살고 있는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타인에게 맞추느라 잊고 있었던 라는 존재와 다시 마주하는 순간들을 이야기한다. 2진짜를 가진 사람은 조용하다에서는 조용히 버티고 꾸준히 살아내는 태도의 가치를 말하고, 3인생이 망했다고 느낄 때에서는 무너짐과 실패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마지막 4행복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에서는 삶의 무게를 온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그 무게를 견디는 새로운 시선을 건네준다.

 

그러니 기억하자. 힘들수록, 포기하고 싶을수록, 더 오래 버텨야 한다. 기회는 늘 가장 힘든 고비를 넘긴 바로 그다음 코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운은 결국 남아 있는 사람의 몫이다. (141)

 

이 구조는 몸과 마음이 함께 요동치는 중년 남성의 심리 곡선과 묘하게 겹친다.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 온 나이, 가족과 조직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위치. 겉으로 보기엔 자리를 잡은 어른 남자의 이미지지만, 속으로는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라는 질문이 조용히 커지는 시기다. 이때 찾아오는 공허함과 짜증, 무력감은 단순히 테스토스테론 수치 감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미뤄 두었던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다시 시작하라는 신호일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는 이유는, 그에게 내가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주고 믿었기 때문에 실망하게 되고, 그 실망이 곧 상처가 된다. (191)

 

이 책이 좋은 점은, 그 신호를 지나치게 거창하지 않은 언어로 설명한다는 데 있다. 각 제목의 글은 길지 않고 문장도 어렵지 않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점심 먹고 자투리 시간에, 밤에 불 끄고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 한 편씩 읽기 좋다. 그래서 더 취약한 순간에, 자꾸만 핸드폰을 붙들고 의미 없는 뉴스나 영상만 넘기게 되는 손을 잠시 멈추게 한다. 눈앞의 한 페이지에 적힌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상한 건 나만이 아니다라는 최소한의 안도감이 생긴다. 특히 강하게 와 닿는 지점은, 이 책이 외로움을 없애야 할 부정적 감정으로 보지 않는 태도다. 중년의 남자는 늘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가장이고, 회사에서는 상사이자 팀장이다. 역할이 많을수록 속마음을 꺼내 놓을 수 있는 자리는 줄어든다. 그러다 보니 외로움은 곧 무능의 증거, 실패의 낙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남에게 맞추느라 미뤄 두었던 나 자신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할 때, 자연스럽게 외로움이 찾아올 수 있다고. 그건 오히려 이제라도 나 자신과 친해지려고 하는건강한 움직임일지도 모른다고.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은 주변을 행복하게 하면서 자신도 행복해진다. 주변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은 여러모로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된다. (240)

 

물론 이 책은 자기계발서도, 심리 치료 교범도 아니다. 호르몬 수치나 전문적인 상담이 꼭 필요한 상황을 대신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오히려 부담 없이 손에 들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전문가의 진단 대신 나와 비슷한 혼란을 겪은 누군가의 문장을 읽으며 나만 이상하고 힘든 게 아니었구나라고 한 번쯤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준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이 소소한 토닥임이 상처를 덜어내는 큰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특히 호르몬 변화로 몸이 예전 같지 않고 마음이 예민해졌다고 느끼는 중년 남성이라면, 이 책을 하루에 한두 장씩만이라도 천천히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외로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이렇게 말할 힘을 얻게 될지 모른다. “외로운 내가 망가진 게 아니라, 그런데도 꽤 잘 버티며 살아내는 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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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다면 잘 살고 있는 것이다 - 삶이 흔들릴 때 꺼내 읽는 문장들
부아c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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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비슷한 혼란을 겪은 누군가의 문장을 읽으며 “나만 이상하고 힘든 게 아니었구나”라고 한 번 쯤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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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반타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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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줄거리>

해리 오거스트는 20세기 영국에서 태어나 평범한 생을 마친 뒤, 기억을 지닌 채 같은 시대로 되돌아오는 존재이다. 소설은 그가 여러 차례의 생을 반복하며 자신과 같은 이들이 모인 비밀 결사 크로노스 클럽과 관계를 맺고, 반복되는 시간을 지식과 기술로 가공해 나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어느 생의 말년에 해리는 같은 부류의 소녀로부터 세상의 종말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는 경고를 받게 되며, 이 메시지가 릴레이 방식으로 과거로 거슬러 전달된 것임을 알게 된다. 해리는 이후의 생들에서 경고의 원인을 추적하기로 결심한다.


여러 생에서 해리는 학문과 정보 세계에 깊숙이 들어가고, 케임브리지에서 천재적 물리학자 빈센트 랭키스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가 환생을 반복하는 칼라차크라임을 눈치채며 우정과 경쟁의 묘한 균형을 이룬다. 그러나 세계의 파국을 앞당기는 발원이 빈센트가 주도하는 양자 거울프로젝트임이 드러나면서 관계는 균열을 맞는다. 양자 거울은 하나의 관측으로 우주의 총 상태를 역 추론하려는 시도이며, 이를 위해 빈센트는 칼라차크라들의 축적된 지식을 동원해 기술 발전을 비정상적으로 가속하고 있다. 그 부작용으로 역사적 사건과 발명이 예정 시점보다 앞당겨지며, 세계의 균형이 무너질 위기에 놓인다.


빈센트는 크로노스 클럽의 네트워크를 장악하려 하고, 해리의 출생 정보라는 약점을 이용해 협박과 회유를 반복한다. 칼라차크라에게 출생 정체의 노출은 영구적 제거로 이어질 수 있기에, 두 사람의 대립은 지식전이자 심리전이 된다. 해리는 여러 생을 전략적 자원으로 삼아 자금줄을 끊고, 연구 인맥을 이간하고, 핵심 기술의 계보를 끊는 등 장기적 방해 공작을 설계한다. 마침내 해리는 빈센트의 프로젝트가 임계점에 도달하기 직전 교란에 성공하며 기술 가속의 광란을 멈춘다. 그 결과, 앞당겨지던 종말의 징후는 사라지고 해리는 다시 다음 생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이 서사는 기억의 지속이 자아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무한에 가까운 삶이 윤리적 책임을 어떻게 변형하는지, 그리고 지식이 언제 선이 되고 악이 되는지를 묻는 이야기이다. 해리와 빈센트의 대립은 자유의지와 결정론, 진보와 오만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철학적 논쟁의 형식으로 수렴한다.


 

<세계관과 설정>

해리는 크로노스 클럽이라는 비밀 조직을 통해 서로를 돕는 칼라차크라의 규칙을 배우는 인물이다. 이들은 죽으면 다시 같은 인생으로 태어나고, 이전 생의 기억을 그대로 지니고 돌아오는 존재들이다. 특히 유년기에는 성인의 기억을 숨기고 연기하는 일이 가장 큰 과제이다. 클럽의 기본 방침은 역사에 큰 간섭은 금지라는 원칙이다. 작은 선택 하나가 미래를 크게 뒤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누군가 이 규칙을 어기기 시작하고, 그 결과 세상의 끝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작품 곳곳에는 우리는 그저 마음일 뿐이고, 마음은 불완전해 잊는다같은 문장이 배치되어 있으며, 환생과 기억, 상실과 소속감, 기쁨과 두려움의 스펙트럼이 섬세하게 포착되어 있다. ‘여섯 살이면서 백오십 살인 아이라는 모순을 다루는 상상력도 인상적인 장면을 만든다.

 

환생과 기억 유지라는 전제는 여전히 매력적인 설정이다. 해리가 반복되는 삶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애정, 선택의 무게 같은 감정이 꽤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칼라차크라가 이루는 비밀 네트워크, 메시지가 세대를 거슬러 전달되는 구조는 독특한 긴장감을 만든다. 이들이 시간의 앞뒤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방식, 전생의 기억을 지워 새 출발을 시도하는 방법, 심지어 영구적으로 죽는 법까지, 세계의 규칙이 비교적 치밀하게 펼쳐진다.

 

주제 차원에서도 인과의 복잡성, 정신질환의 역사, 친밀한 관계의 미묘함, 가속하는 기술 발전의 윤리적 함의 같은 문제들이 성숙하게 제기된다. 가장 가까운 친구가 곧 맞서 싸워야 할 네메시스가 되는 구조는 복수 서사이자 라이벌 서사의 전형을 충실히 변주한 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아쉬운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첫째, 이야기의 전개 속도가 극도로 느리다. 정신없이 빠른 서사보다야 낫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의 느린 호흡은 굳어가는 시멘트를 지켜보는 것 같다는 비유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인내를 요구한다. 둘째, 설정의 논리가 다소 성기게 느껴진다. 세계의 스케일이 큰 만큼 논리 또한 촘촘해야 하는데, 서사 진행의 편의를 위해 뚫리는 듯한 대목이 눈에 밟힌다. 대표적인 예가 죽음의 취급이다. 작품 속에서 죽음은 칼라차크라에게 동시에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자 매우 위험한 사건으로 묘사된다. 주인공은 죽음을 가볍게 농담처럼 다루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독자의 긴장을 끌어올리는 심각한 위험 요소로 강조한다. 이 두 톤이 반복적으로 충돌하면서 감정선이 흔들린다. 셋째, 간섭의 기준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큰 역사 변경 금지라고 선언하지만, 실제로는 해리의 결혼 상대가 바뀌기도 하고, 전쟁에 참전했다가 말았다가 하는 식의 변화가 허용된다. 어느 선까지가 큰 변화이며, 누가 어떤 기준으로 통제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마지막으로, 화자의 매력이 기대보다 약하다. 열다섯 번의 환생을 겪은 인물의 내면이라기에는 1인칭 내레이션이 의외로 밋밋하다. 장치와 아이디어는 풍부하지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목소리 자체는 다소 심심하다. “시간이 곧 지혜는 아니고, 지혜가 곧 지성은 아니다와 같은 문장은 분명 인상적이지만, 개별 문장의 멋이 서사의 추진력을 충분히 대신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준다.

 


<총평>

제목 그대로, 해리 오거스트는 칼라차크라이자 우로보란이다. 죽으면 다시 같은 인생의 출발점으로 돌아가고, 이전 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지닌 채 삶을 반복하는 존재이다. 해리는 열한 번째 삶의 끝자락에서 더 어린 우로보란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세상의 종말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어, 뒤에 태어날 세대들은 아예 존재할 수 없게 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흐름을 막을 방법을 해리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이다.

 

읽기 전에는 같은 인생을 계속 반복해서 사는 이야기가 과연 지루하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들지만, 몇 장 지나지 않아 설정 자체의 매력이 서서히 드러난다. 기억을 가진 채 인생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가정, 그리고 그 존재들이 개인의 삶과 세계의 구조에 어떤 파장을 만들어내는지를 탐구하는 방식은 분명 흡인력이 있다.

 

그러나 인물의 매력은 그만큼 따라오지 못한다. 해리는 작품 속 다른 인물이 직접 밋밋하다고 지적할 만큼, 의도된 평범함을 넘어선 무색무취한 인물로 남는다. 도덕적 판단 역시 애매하게 흔들려서 강렬한 관계성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1인칭 서사임에도 정서 표현이 지나치게 임상적이고, 독자와의 거리감이 커서 감정선에 깊이 이입하기가 쉽지 않다. 조연들의 경우도 대부분 단면적인 성격에 그치며, 비중이 얇게 흩어진다.

 

숙적이 등장하는 지점에서는 이제 라이벌 케미가 폭발하겠구나하는 기대를 품게 되지만, 실제 서사 전개는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애초에 라이벌 구도를 이토록 공들여 세울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플롯 역시 끝까지 매끈하게 굴러간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결말부는 다소 성급하게 마무리된 인상을 준다. 어떤 상대방은 충분한 예고나 축적 없이 갑작스럽게 등장해 기능을 수행하고 사라지며, 반대로 오랫동안 차근차근 예고된 다른 인물은 막판에 이해하기 힘든 선택을 반복하다 허무하게 패배한다. 이 과정에서 논리와 설득력이 모두 약해지고, 클라이맥스가 의외로 너무 쉽게 꺼져버린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분명 선명한 장점을 가진 소설이다. 시간과 환생을 다루는 상상력을 촘촘한 규칙과 조직 설정으로 확장시키고, 인과와 도덕, 기술 발전의 윤리를 천천히 곱씹게 만든다는 점에서, ‘아이디어 소설로서의 매력은 충분히 발휘된다. 인물과 플롯의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한 번 구축된 세계관 안에서 시간을 여러 방향으로 비틀어 보려는 시도 자체는 흥미롭다.

 

따라서, 이 소설은 시간·환생·평행우주 같은 테마를 좋아하며 빠른 전개보다 느린 호흡 속에서 세계관과 아이디어를 음미하는 독서를 선호하는 독자에게 어울리는 작품이다. Speculative Fiction(사색적 허구)답게 서사의 탄탄한 긴장감보다는 설정과 철학적 질문을 따라가며 생각하는 시간을 즐기는 독자라면, 느린 전개와 다소 밋밋한 인물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SF문학 ##SF소설 #회귀자 #인류종말 #시간여행 #해리오거스트의열다섯번째삶 #반타 #내인생은몇번째? #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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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반타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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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환생�평행우주 같은 테마를 좋아하며 빠른 전개보다 느린 호흡 속에서 세계관과 아이디어를 음미하는 독서를 선호하는 독자에게 어울리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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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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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작품에서 우리는 시간여행이라는 장르적 장치를 통해 노예제의 폭력이 현재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체감할 수 있다. 오늘날 노예제도가 다행히 공식적으로나마 부정당하고 있지만, 바로 그해 연말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한 흑인 남성이 백인 경찰들에게 폭행당한 뒤 혼수상태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와 유사한 형태로 촉발된 1992년 로드니 킹 사건은 LA 폭동의 도화선이 되었고, 2020년에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시위가 벌어져 2천만 명 이상이 참여한 바 있다. 노예에게 행해지던 사법적 폭력이 제도권으로 옮겨져 반복 자행되는 모습을 보였다. 반세기쯤 지나 2025년의 미국은 인권 의식이 훨씬 성숙해졌다지만, 그 성숙을 안정적 제도와 실천으로 고정하려는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 소설은 1976년에서 앤터벨럼(남북전쟁 이전) 남부로 갑자기 이동하게 된 흑인 여성 다나의 이야기다. 그녀는 거실에서 어느새 강둑으로 옮겨왔는지 알지 못하고, 자신이 아예 다른 세기에 와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다만,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으면 눈앞에서 붉은 머리 아이가 곧 익사할 거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다나는 주저 없이 물로 뛰어들어 아이를 끌어올리고 인공호흡으로 목숨을 구한다. 그러나 돌아보는 순간, 아이의 아버지가 들이댄 장총과 마주하며 방금 살려낸 생명이 자기 목숨값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죽임을 당할 거라고 확신하던 다나는 뜻밖에도 사라졌을 때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남편 케빈의 눈에는 그녀가 몇 초 동안 사라진 것처럼 보였고, 온몸이 젖고 진흙투성이가 된 채 돌아온 그녀의 말을 그조차 쉽사리 믿지 못한다. 다나 역시 자신이 겪은 일을 믿기 어려워하며,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질까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일은 다시 일어난다.


이번에도 위험에 처한 아이가 나타난다. 몇 해 전 강에서 구한 그 붉은 머리 소년보다 조금 더 자란 듯한 아이가, 이번에는 방안의 불타는 커튼 앞에 서 있다. 급히 불을 꺼 집이 통째로 타는 것을 막아 내지만, 앞서와 달리 위험이 지나갔다고 곧바로 현재로 돌아오지는 못한다. 곧 그 소년의 이름이 루퍼스이며, 강에서 구했던 아이가 몇 년 자란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아까와는 다른 주(), 심지어 다른 시간1815에 와 있다는 것도 깨닫는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다나는 이 소년이 노예 소유주의 아들이자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족보에 조상으로 기록된 바로 그 루퍼스와 동일 인물임을 알아챈다. 어쩐지 그들은 혈연 이상의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루퍼스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다나를 자신의 시간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듯했다. 그의 평생 이런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며, 때로는 다나가 19세기에 오래 머물러야 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공상과학 장르의 작품답게 몰입감과 사유를 동시에 갖추었다. 현재 시점의 다나와 그녀의 삶을 길게 소개하는 대신(물론 뒤이어 남편 케빈과의 관계, 그리고 두 사람의 인종 간 결혼을 못마땅해하는 양가 가족에 관한 내용이 채워지긴 한다) 곧바로 과거로의 여정으로 뛰어든다. 다나는 잘 교육받은 사람답게 호감이 가지만, 사고를 달고 사는 자기 조상을 구하러 시간 속으로 계속 끌려가는 그녀의 처지는 안타깝고 답답하다. 다나는 현실적이고 너그러우며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인한 인물이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끝까지 지켜보고 싶은 욕구가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이 작품은 기술적으로는 시간여행 소설이지만 그것이 주된 관심사는 아니다. 다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루퍼스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초반에 드러난다. 하지만 루퍼스가 어떻게 그녀를 자신의 시간으로 끌어당기는지, 왜 하필 다나가 선택되었는지는 끝내 설명되지 않는다. 다나는 여러 차례 루퍼스의 목숨을 구하며 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만, 작은 변화가 현재에 어떤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는지, 이른바 나비효과를 본격적으로 탐구하지는 않는다. 물론 다나가 루퍼스의 딸 헤이거,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그 후손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염려하는 대목은 있다. 이야기의 진행 대부분은 과거에서 벌어지고, 다나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독자는 20세기 후반 흑인 여성의 시선을 통해 남북전쟁 이전 남부의 현실을 직접 목격하면서 읽는 내내 속이 아릴 수도 있다.


첫 시간여행에서 총탄을 가까스로 피한 뒤 현재로 돌아온 다나는 깊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다시 과거로 끌려갈수록 경험은 더욱 가혹해진다. 그녀는 도망 노예가 채찍질 당하는 모습을 코앞에서 목격하고, 땀 냄새와 비명이 뒤섞인 폭력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한다. 노예 아이들이 서로를 경매에 부치는 흉내를 내며 노는 서늘한 놀이도 눈에 담는다. 작품 안에는 인종 비하, 폭력, 성폭력이 등장하며,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잔혹함이 숨김없이 그려진다. 시간여행과 허구의 인물이 등장함에도 이 작품이 독자에게 경각심을 주는 이유는, 그 폭력의 뿌리가 역사에 깊숙이 박혀 있고 작품이 야만적 인간 사회를 비추는 냉혹한 거울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노예제를 받아들이도록 사람을 길들이기가 이렇게 쉬운지 미처 몰랐다고 다나가 케빈에게 건넨 이 한마디야말로 이 소설의 심장을 정확히 찌르고 있다. 이로써 사회 전반에 퍼진 태도가 어떻게 인종적 불평등을 강화하는지, 동시에 개인적 피해에서 멀어질수록 불의에 눈감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알게 해 준다. 과거에 잠시 발을 디딘 방문자에 불과한 다나조차 때때로 관찰자라는 느낌에 머문다. 하지만 백인 남편 케빈은 노예들의 처우가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쉽게 넘기며, 그것이 이미 충분히 끔찍하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루퍼스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그가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면 선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루퍼스는 사회가 주입한 가치관을 여과 없이 받아들여, 부모에게서 배운 말을 그대로 되풀이한다. 그럼에도 다나는 그를 좋아하고, 자신의 영향으로 그가 아버지처럼 잔혹해지지 않으리라는 가느다란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그는 끝내 폭력성과 이기심을 벗지 못한 채 비루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더구나 그와 그의 아버지에게 드물게나마 전적인 무신경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있어, 오히려 그 잔혹한 장면들이 한층 더 소름끼치게 다가온다.


이 작품은 시간여행을 활용한 공상과학소설이지만 상당 부분은 과거를 들여다보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가는 사회에 관한 수많은 문제를 치밀하게 짜인 서사 속에 녹여냈고, 그 솜씨는 실로 뛰어나다. 노예제를 정면으로 응시하기 때문에 추한 모습과 잔혹함으로 가득 차 있어 어떤 이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어둡다는 이유로 선뜻 권하기 힘든 면도 있다. 그런데도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허구라는 장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책과 텔레비전으로만 알던 적대의 시대 한복판을 온몸으로 통과해야 하는 한 젊은 여성의 흡인력 강한 서사이자, 사회특히 인종 불평등과 그것을 떠받치는 구조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노예제를 정면으로 파고드는 만큼 읽기 불편한 대목이 적지 않지만, 인간성의 최악을 주저 없이 드러내는 솔직함이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많은 내용이 상식으로 알려져 있다고 해도, 저자가 다나의 시선을 통해 재배열한 풍경은 유독 강렬하다. 무엇보다 2025년 오늘에도 이 이야기가 여전히 비극적으로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다. 역사와 현재가 교차하는 이 서사를 통해 우리가 외면해 온 질문들을 정면으로 마주해보고, 이 한 번의 독서가 오래가는 사유와 작은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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