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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윤슬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6월
평점 :
품절

청량감이 느껴지는 표지의 윤슬에디션으로 출간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에세이입니다.
그녀의 생애 산문 여러편 중에서 베스트 35편만을 간추려서 담은 책입니다.
박완서 작가님의 딸인 호원숙 작가님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글도 프롤로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가족과 세상에는 사랑과 자유를 기원했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정직했던 마음을 다시 한번 헤어리게 되는 의미 있는 따뜻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사십 대의 비 오는 날
앉은뱅이 거지
빗물이 철철 흐르는 보도블록 위에서 허리부터 발끝까지 하체에 물이 차 있지만 한손은 행인을 향해 한 푼만 보태달라고 휘젓고 있는 앉은뱅이 거지를 불쌍히 본 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겉으로는 불쌍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온종일 저렇게 힘들게 앉아 있다가 밤이면 멀쩡하게 걸어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약아빠졌달까 생각합니다. 내 눈으로 확인한 그 사람의 비참함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은 무식보다도 더 큰 죄악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비오는 날 거지를 보면서 내가 왜 불쌍하게 여기지 않고 그냥 지나칠수 밖에 없는지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세상 인심에 따라 영악하게 살다보니 거지에게 한 두푼의 적선을 하는 소박한 인간성이 그리워진다고 말합니다.

생각을 바꾸니
10년 전 참척을 당하고 가장 힘들었던 일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하는 원망을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거였다.
부모보다 자식이 세상을 먼저 떠나는 것을 참척이라고 한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일은 누구에게나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서 그때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나도 자식이 있지만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상상은 가능하겠지만 이런 일을 겪어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감정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절망과 원망이 가득한 상황에서 만난 수녀님은 당연한듯 질문을 던집니다.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 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일어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안되는 일이 구분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예외라고 생각했을까. 그거야말로 터무니없는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민들레꽃을 선물 받은 날
내 외손자로부터 조그만 민들레꽃을 선물 받은 날 창밖의 봄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녀석도 기억할까? 만 두 살 적의 어느 황홀한 봄날을. 손자야, 너는 애써 그것을 기억할 필요는 없으리라.
흔히 외손자를 귀여워해도 사랑에 비해 돌아올 보답이 없다고 귀여워해봤댔자라고 말합니다.
할머니가 외손자에게 바라는 보답은 어떤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자주 전화드리고 안부인사를 하면서 더욱 할머니와 가깝게 지내야 하는것은 외손자가 해야할 보답은 아닙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자신의 자식들을 키웠을 때보다 손자와 손녀에게 더욱 정성들여 먹이고 입히는 것을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에 자식들에게 못했던 사랑을 주시려고 하는것은 아닐까 했습니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쏟는 사랑과 정성을 갚아야 될 은공으로 기억하기 보다, 아름다운 정서로 남아 있길 바랄 뿐이라고 말합니다. 할머니 또한 손자에게 사랑했을뿐 손톱만큼의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해줍니다.
살아오면서 겪어왔던 고달픈 사랑이 다 지나고 나서 도달한 손자에 대한 무한한 사랑은 어떠한 책임과 보답도 없는 허심한 사랑이기 때문에 노후의 축복이라고 정의내립니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아이들의 책가방은 무겁다.
그러나 단순히 책가방의 무게만으로 한창 나이의 아이들의 어깨가 그렇게 축 처진 것일까? 부모들의 지나친 사랑, 지나친 극성이 책가방의 몇 배의 무게로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거나 아닐지.
예전과 달리 아이들이 배워야 할것도 많지만 지나치게 하고 있는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 어릴적에는 몰라서 못했고 기회가 없어서 못배웠다면 지금의 아이들은 너무 많은 기회들로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부모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아이들에게 들이는 정성은 부담으로 느껴집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라는 말로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안 쳐도 억울하지 않을만큼 아이들을 챙기고 사랑하는 절도 있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해줍니다.
책의 프롤로그에는 '중학교 정도의 학력이라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쉬운 글'이라고 적혀있지만 처음 접해보는 단어들이 있어서 국어사전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평소에 한번쯤은 생각했던 이야기꺼리들이지만 그냥 지나쳐버려 깊게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더욱 공감이 갔습니다. 읽기는 쉬웠지만 여운이 깊이 남아서 여러번 읽으면서 가슴에 새겨집니다. 앞으로 다가올 내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사랑이 넘치고 여유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