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회가 끝난 뒤 펭귄클래식 8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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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벌목>

 

 '당신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까?'

p. 37.

 

내용 속 인물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카프카스는 신비롭고 기묘하며 동시에 때묻지 않은 생명으로 가득한 곳,

또는 잔인하고 무지한 전사들이 점령하며 산다고 전해지는, 환상과 동경으로 버무러진 전설이 깃든 곳이다.

그러나<벌목>속의 지금 이곳은 몸의 온 감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긴장감으로 자욱한 전쟁터일 뿐이다.   

 

그는 다시 끙끙거리며 영혼을 잡아 찢는 듯한,

세상에서 가장 처절하고 애처로운 소리로 신음을 토하기 시작했다.

마치 속세의 일을 깨끗이 정리한 사람이 더는 고통을 참으며 견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이제는 이 땅에서 떠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p. 48.
  

드넓은 러시아 땅위에 자라는 자작나무는 러시아를 떠올리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이자 러시아인들을 상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안토노프가 부른 <조그만 자작나무>는 벨렌축을 위한 진혼곡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우들은 정직하고 여린 마음씨를 가진, 사람 좋은 얼굴을 한 한 그루의 자작나무를 마음에 심었을 것이다. 

 

톨스토이는 <벌목>에서 비인간적인 전쟁 속에서  너무나 인간적인 인물들의 소소한 일상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전쟁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대부분의 책, 영화 등이 보여주듯이 이 단편도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그 속에서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가, 또 그것을 뚜렷이 구분지어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연약하고 작은 목소리이지만 언제나 우리의 가슴을 울리게 하는 외침이자 비명이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안개가 부슬부슬 처량하게 떠다녔고, 대기에서도 축축한 기운과 연기 냄새가 묻어났다.

주위엔 온통 마지막 불꽃을 사르는 모닥불의 밝은 불빛 반점들로 가득했다.

사방에 죽은 듯 정적이 감돌았고, 그 정적을 타고 안토노프의 구슬픈 노래가 고요히 울려 퍼졌다.

p. 77.  



 <폴리쿠시카>

 폴리케이(폴리쿠시카)는 주위 농노들로부터 불신과 멸시를 받아온 사람이었다.

나쁜 평판으로 마을에서 미운털이 박힌 존재였기에

각 마을 별로 할당된 강제징집 대상 차출에서 1 순위에 있었다.

그러나 영주부인의 결정으로 그는 면제를 받고 심부름을 맡는다.

신병이 되면 20년 이상을 복무해야 하고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드물었기에

마을에서 결정해야 하는 선택은 너무도 괴로운 것이었.

이 차출을 두고 마을 사람들은 모여, 모두 자신의 아들들이 징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서로를 물고 뜯다가 끝내 한 사람으로 몰아간다.

의도하지 않는 상황에서 서로에게 잔인해질 수 밖에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돈이 뭔지……돈이란 한낱 먼지 티끌과 같은 것을."

"돈이 있다면야 누군들 인색하게 굴겠소?"

"아, 돈, 돈! 모름지기 죄란 돈으로부터 비롯되는 법"

"이 세상에 돈만큼 많은 죄를 짓게 하는 것도 없지.(…)"

pp. 132-133.

그러다 우연인지,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지, 폴리케이는 큰 액수를 수금하는 책임을 지고

돌아오는 길에 잃어버린다. 자신을 믿어준 영주부인에게 오해를 살까 두려워 며칠동안 돈의 행방을

물으며 찾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죄를 지은 사람처럼 초초해 하며 불안해 하다가 목을 매달았다.

이어 그의 처참한 죽음은 막내 아이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폴리케이의 아내는 거듭된 불행으로 인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한 사람과 그 가족이 어쩜 이처럼 가혹하고 잔인한 수렁 속으로 빠질 수 있을까.


어찌 되었든 목을 맨 사람은 여전히 다락방에 매달려 있었고,

그것은 마치 악령이 어느때보다 이들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과 무서운 힘을 과시하며

이날 밤 하인들 숙소를 거대한 날개로 덮고 있는 것만 같았다.

p. 152.

 

(…)생명의 기운도 없이 한 쪽 옆으로 기운, 비쩍 마르고 낯익은 몸뚱이와 가슴 아래까지 축 늘어진 머리,

눈은 뜨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선량한 얼굴로 죄라도 지은 듯 순한 웃음을 지은 폴리케이를,

완전한 평온을, 그리고 이 모든 것들 위에  내려앉은 정적을 …….

p. 153.

 

자신의 징집 면제를 보장 받은 것처럼 생각되었던 그 수금 책임이 결국엔 폴리케이의 삶을 뽑아 버렸고,

폴리케이가 잃어버린 그 돈을 우연히 발견한 사람이 있었다.

신병을 차출할 때 모든 마을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몰아갔던 두틀로프 집안이었다.

두툼한 돈 뭉치를 품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행복감과 두려움에 젖어 있던 두틀로프 노인은

폴리케이의 불행한 죽음을 불러왔던 그 돈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의 조카를 지켜주지 못하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지원병을 사서 조카가 강제 징집되는 것을 막는다.

가여운 농노들의 생활이 사실적으로, 쓸쓸하게 담겨있는 단편이다. 

 <무도회가 끝난 뒤>

 
지금 여러분은, 인간은 자기 스스로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분별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군요.

모든 게 환경에 달려 있고 환경이 인간을 해칠 수 있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저는 우연이 모든 걸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연한 사건이 제 인생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조금 들려드릴까요.

p. 187.

 

 어떤 모임에서 토론거리가 나오고, 그 가운데 이반 바실리예비치라는 한 인물,

 여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하는 단편이다. 

이반이 젊었던 시절, 그는 어느 무도회에서 만난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향한 마음만큼이나

그녀의 가족, 특히 그녀의 아버지 대령에 대해서도 맹목적으로 밝은 부분만 바라보게 된다.

가슴속엔 선한 마음으로 가득했고 더 이상 내가 아닌 것 같았어요.

나는 죄악 따위는 알지도 못하고 오직 선한 일만 행할 줄 아는, 이 세상엔 없는 그런 존재가 되었지요.

p. 193.

 

딸에게나 자신에게나 자상하고
다정다감한 대령의 성품과 바렌카가 가진 아름다움,

이반은  무한한 축복과 행복감으로 가슴이 벅차 올라 심지어 잠까지 설치는 상태에 이르렀다. 

너무나 행복해서 주변 사람이 '측은하게' 느껴질 정도로(작가가 지닌 날이 선 듯한 통찰력과 탁월한 표현력에 경탄을!).

 그러니 제대로 잠자리에 들 수나 있었겠는가. 결국 그는 동이 틀 무렵 축축한 대기 속에 잠긴 거리로 나갔다.

'사랑으로 온 세상을 껴안았다'는 그의 말처럼 길 위에서 자신이 본 모든 대상에 무한한 애정을 품는 이반은 어느새

바렌카의 집 근처에 다다랐고,

그곳에서 평생토록 잊지 못할 광경을 목격하였다.

자신이 하루 저녁 동안 품었던, 부풀어 터질 듯한 그 행복감을 산산히 부술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그 무엇을,

 '우연히' 마주치게 된 그것을 말이다.

 자신의 두 눈으로 목격했음에도 이반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연유때문에 그 일이 벌어졌다고,

 자신의 선입견으로, 혹은 착각으로 빚은 것일지라도

대령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쉬이 깨고 싶지 않았기에 자기기만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그 대령에 대해 가진 마음이 얼마나 맹목적이고 어리석었는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또는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환상과 눈앞에서 벌어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을 현실 사이의 연결고리를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소심한 자신을 대면할 용기가 없었는지도. 
 


밝은 조명과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아름답고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

화려하고 우아한 춤사위, 사람들 얼굴에서 번지는 유쾌한 미소와 웃음소리,

무도회는 환상적이고 이상적인 가면을 쓰고 있어  현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곳이었다.

제목, '무도회가 끝난 뒤'의 상황은 잔인함이 토해낸 충격과 비참하게도 이를 본 자의 자기기만이라는, 뒤틀린 현실로 이어졌다.

젊은 아가씨의 싱그러운 아름다움과 그녀의 아버지가 가한 잔혹한 폭력 사이에서 젊은 이반은 길을 잃어 버렸다고 고백한다.

그의 마음은 5월에 활짝 피어 향내를 그윽하게 풍기다가  

하룻밤 사이에 난데없이 내린 서리에 피폐해진 장미의 모습과도 같았다.


자, 이제 살다 보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우연히 일어나고, 또 그로 인해 한 인생이 송두리째 변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아셨겠지요. 그런데도 당신들은 말하기를…….
pp. 202-203.
 

<위조 쿠폰>

어린 학생 둘이서 만든 위조 쿠폰 단 한 장이 어떠한 연유로 만들어졌고 이것이 어떠한 사건들을 불러일으키고,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보여주는 굉장한! 단편이다.
수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이 각각 전개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그 사건들이 서로 맞물리는 구성으로 되어

이 단편소설이 나에게는 단편 속의 단편처럼 다가와 내가 받은 충격도 감동도 훨씬 컸다. 

철없는 어린 소년들이 만든 작은 위법 행위가 큰 오해를 불러들이고 그것이 다시 얼마나 큰 증오과 불행을 만들어내던지!

하나 하나 넘어지는 도미노처럼, 무고하고 순수했던 사람들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고

 그들의 잔혹한 불행에 소름이 돋았다.

 그동안 빚어진 악의와 증오, 원한이 어떻게 따뜻한 위로를 얻고, 치유되어 가는지 그 결과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가는지,

톨스토이가 풀어 놓는 그 과정은 정말 아름다웠다.

실로 인간에 대한 한 없는 믿음과 깊은 애정에서 나온 행위들이었다.

증오와 사랑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퍼져 그들의 얼굴과 행동으로 나타났다. 

마치 카오스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 낸 원인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위조 쿠폰이었다.

쿠폰은 수표와 같은 것으로, 돈을 대표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폴리쿠시카>에서도 나온 것처럼 이 단편에서도 '모든 죄는 돈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보는 작가의 견지가 이어진다.

사람의 정신과 생활을 쉽게 짓밟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피폐하게 만드는 그 악의 근원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랑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용서를 구하고, 영혼의 구원을 받으며,

 짓이겨지고 곪아 있던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 가는 과정으로 독자를 안내하는 작가의 필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자신을 가엾게 여겨요! 이건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게 아니라,

당신 자신의 영혼을 해치는 거……

p. 282. 

(…)사람들은 모두 형제다, 그래서 서로서로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해진다.

p. 299.

 

리자의 순수한 영혼이 그의 영혼을 환히 비추자

그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진정 가고자 했던 길에서, 진정 가슴을 뛰게 했던 일에서

얼마나 동떨어진 모습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p. 325.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라'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조언이 아닐까 한다.

듣는 빈도수만큼 행해지는 경우도 빈번하면 좋을텐데, 참 지키기 어려운 계명이다.

그러기에 모두가 힘써야 하는 마음가짐이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없어지지 않을 계명이기도 하다.

물질이나 권력 모두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하는 자들에게 깊은 애정을 품고 그들의 삶에 희망을 심어 주기 위해 글을 썼던 작가,진정으로 실천하는 지성인이었던

 톨스토이가 쓴 이 네 단편들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고 깊은 감사를 드린다.
 

http://cafe.naver.com/penguinclassics/2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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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ing Solo (Paperback, Reissue) Roald Dahl : Reading Level 4.0-5.0 4
로알드 달 지음 / Puffin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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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fe is made up of a great number of small incidents and a small number of a great ones. 

                                                                                         -Roald Dahl, Going Solo

 

삶이라는 걸 어쩜 이리도 잘 표현했을까?

로알드 달이 뛰어난 글솜씨로 유명한 작가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작가가 보고 경험한 그 장소, 순간에 함께 있는 착각이 들정도로 아주 생생한 필력을 느낄 수 있다.

그의 능력에 난 재차 감탄할 뿐.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아프리카에서의 생활이 담겨 있다는 것, 그리고 Going solo라는 제목이 나는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저자가 무척이나 만족해 했던 아프리카에서의 시절에 겪은 많은 일화들이 재치있는 필담으로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젊은 작가가 놀랄 때 나도 놀라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때 나도 그러했다. 특히 그가 넋을 잃은 채 바라보았던 코끼리 가족의 이동을 묘사한 부분과 탄자니아에서 살며 boy로 두었던 Mdisho에 대한 달의 따뜻한 마음과 그와의 우정이 내 가슴에 새겨졌다.

 

또한 각 장마다 작가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를 실어놓았는데, 그 편지를 읽다보면 내가 마치 그 편지를 받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전쟁 중에 refuel할 장소를 잘못 찾는 바람에 조종기가 불시착되어 산 채로 불타버리는 부상을 입기도 했던 시절이지만, 놀라움과 새로움으로 가득찬 대륙, 아프리카에서 작가가 보낸 인생의 아름다운 시기,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주는 담요같다.

 

 

When one is quite alone on a lengthy and slightly

hazarous journey like this, every sensation of pleasure and fear is enormously intensified, and

several incidents from that strange two-day safari up

through central Africa in my little black Ford have remained clear in my memory.

 

                                    -Roald Dahl, Going Solo, p.78 

 A great sense of peace and serenity seemed to surround these massive, slow-moving, gentle beasts.

Their skin hung loose over their bodies like suits they had inherited from larger ancestors, with the trousers ridiculously baggy. Like the giraffes they were vegetarians and did not have to hunt or kill in order to survive in the jungle, and no other wild beast would ever dare to threaten them. Only the foul humans in the shape of an occasional big-game hunter or an ivory poacher were to be feared, but this small elephant family did not look as though they had yet met any of these horrors.   (…)

 

 I myself am at this moment on my way to kill Germans or to be killed by them, but those elephants have no thought of murder in their minds.

 

                             -Roald Dahl, Going Solo, pp. 80-81

 

...for all I knew she had been standing there when the earlier bus had gone by an hour or two before. But what is one hour or even three hours when you have been waiting three years?

I signalled the bus-driver and he stopped the bus for me right outside the cottage, and I flew down the steps of the bus straight into the arms of the waiting mother.

                               -Roald Dahl, Going Solo,

pp. 210 


 

 

      Our whole life is like a solo flight, ind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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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and Other Jazz Age Stories (Paperback) - Penguin Classics
Fitzgerald, F. Scott / Penguin Classics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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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tzgerald는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에서 septuagenarian(70-79세)의 몸으로 태어나 아기 때로 가 생을 마치는 독특한 삶을 살았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보통의 아이들이 제 집에서 세상의 빛을 보던 시절, 벤자민은 약냄새 가득한 병원에서 고독의 형태로 태어났다.
  
세월이 흐르면서 벤자민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살피기 시작하는데, 읽으면서 그 모습을 기대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땐 자신의 할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내고, 스무살에도 50대로 보이는 외모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처럼 묘사되는 부분, 입학하기 위해 찾아간 Yale college에서 50대의 얼굴로, I am a freshman. I am eighteen.이라고 말하다 쫓겨난다거나...생김새때문에 당할 수 밖에 없는 소외 속에서 벤자민은 굴하지 않고 당당했지만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있는 법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타고 있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유일한 이 남자, 얼마나 고독했을까?
밝은 블루에나멜 빛의 눈동자를 반짝이며 아름다웠던 Hildegarde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안락함과 삶의 평온함을 추구했지만 젊어져 가는 벤자민은 모험과 젊음의 쾌락을 찾게 되고 이 둘은 멀어지게 된다.
"You think you don't want to be like any one else. You always have been that way, and you always will be. But just think how it would be if every one else looked at things as you do-what would the world be like? "(p. 335, 힐데가르드가 벤자민에게) 

젊은 패기는 잠시였을 뿐, 벤자민은 점차 아이가 되어가고, 장성한 아들에게는 외면당하며 유모인 Nana 손에 맡겨진다.
No one disliked the little boy whose fresh, cheerful face was crossed with just a hint of sadness, but to Roscoe Button his presence was a source of torment.(p. 340)
                               …
There were no troublesome memories in his childish sleep; no token same to him of his brave days at college, of the glittering years when he flustered the hearts of many girls. There were only the white, safe walls of his crib and Nana and a man who came to see him sometimes, and a great big orange ball that Nana pointed at just before his twilight bed hour and called "sun." When the sun went his eyes were sleepy-there were no dreames, no dreams to haunt him. (p. 341)

Then it was all dark, and his white crib and the dim faces that moved above him, and the warm sweet aroma of the milk, faded out altogether from his mind. (p. 342)
 
70대의 아들로 그리고 10대의 아버지로, 어느 모습이든 가족에겐 부담스러운 존재로 비춰질 수 밖에 없는 벤자민 뒤로 고독과 슬픔이 따라다니게 한 그 세상을 현재의 우리도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쌓인 슬픔을 가슴 한 켠에 담고 살아간다. 이 소설에는 뚜렷한 이유가 없는 아릿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무엇이 있다. 그래서일까?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행복하고 멋지게 누리다 간 벤자민의 이야기는 더욱 인상적이었다.  
  

피츠제럴드의 단편집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무척 좋다.
난 단편소설을 잘 쓰는 작가들이 좋더라. 수많은 등장인물과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구불구불 펼쳐지는 장편도 읽을 맛이 나지만, 단편은 읽고나면 더 큰 여운이 남는 작품들이 많기에 좋아한다. 모파상, 이디스 워튼, 안톤 체호프, 오스카 와일드, 뛰어난 단편작품들을 쓴 작가들... 모두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여기에 스콧 피츠제럴드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참, 대부분의 번역서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라는 제목으로 소개가 되었는데, 의역을 참 잘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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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icture of Dorian Gray (Paperback) - Oxford World's Classics Oxford World's Classics 97
오스카 와일드 외 지음 / Oxford Univ Pr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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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영원성을 부여하는 대상을 가지고 있다.

젊음, 명예, 아름다움, 부, 사랑, 행복 등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만큼이나 다양하다.

개개인이 부여한 영원성은 빈도와 정도에 따라 탐닉에서 집착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의 아름다움과 젊음이 세월에 따라 부식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세월의 댓가를 자신의 초상화에게 넘겨버렸다.

우리는 많은 예술, 아니 모든 예술은 나이들지 않는다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데 큰 이견을 달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남기는 외부손상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예술의 노화현상이라고 생각치 않는다는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림의 물감층 아래, 조각의 돌 표면에, 건축물의 내부에 정신이 깃들었다고 여기는 것이 통상적이기 때문이다. 

작품에 담긴 숨은 언제나 고른 법이라고.

인간은 인간이고 예술은 예술일 뿐. 몸과 정신의 시간흐름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므로.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변하는 인간세상에서 자신이 세운 가치에 영원히 가두어 지키고 싶은, 이러한 정신작용도 욕망의 큰 테두리 안에 노닐고 있을 뿐이다. 

도리언의 초상화를 그린 바질도 자신이 발견한 소중한 아름다움을 영원히 남겨 놓고 그 누구에게도 공개하는 것을 꺼렸다.

 예술가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사랑을 느끼는 감정과 유사하다.

자신의 감정과 감정을 품는 대상이 공유되는 것을 원하는 예술가는 없다.

 바질은 자신의 그림이 대중에게 보여지는 것 조차도 원치 않을 정도로 도리언의 젊은 아름다움을 독식하고 싶어했다.

이러한 폐쇄적인 성향이 그를 좀먹어 들어가 자멸에 이르게 했을지도 모른다.

 도리언의 존재에 그토록 집착했으니. 



여러 단편에서 슬픔이 묻어날 정도로 아름답고 유니크한 등장인물들을 창조해냈던 오스카와일드가 쓴 장편<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그가 평생을 두고 주장했던 심미주의 혹은 탐미주의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다. 

와일드는 변하지 않을 것만같은 그림 속 또 다른 자아로부터 젊고도 아름다운 상태를 조금씩 빼앗는 도리언을 그려냈다.

예술이 지닌 영속적인 특징을 박탈하려고 시도했다가 칼 끝 위로 몸을 던지고 말았지만 그의 용기는 신선하다. 

그리고 그런 도리언을 자신의 뮤즈로 삼았던, 그의 아름다움에 눈 먼 화가, 바질. 

아름다움이 곧 예술이라는 모토가 조금은 낡은 생각이라고 생각되는 이 시대에도 그의 작품은 생의 불꽃을 계속 피우고 있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삶을 내 던졌던 또 하나의 인물이 있다.

토마스 만이 쓴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 등장하는 중년의 작가 구스타프 아센바흐이다.

젊은 시절부터 감정을 억제하고 차갑게 식혀온 것에 익숙한 이 신사는 베네치아에서 머물던 중 우연히 타치오라는 소년을 만나고,

 자신의 삶을 지배해 왔다고 믿었던 모든 규율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미와 예술의 정수를 타치오의 숨막히는 아름다움 속에서 발견했다고  믿는다. 

베네치아에 전염병이 퍼져, 한시라도 빨리 떠나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아센바흐는 타치오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그가 있는 베네치아를 떠날 수 없었다.

바닷가에 서 있는 타치오를 바라보다 서서히 죽어가는 주인공.

'아름다움이란 사랑스러운 동시에 눈에 보일 수 있는 것, …아름다움만이 우리가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고

감각적으로 견딜 수 있는 정신적인 것의 유일한 형식'

그리스 예술의 신봉자였던 빙켈만의 미학이론을 존중했던 토마스 만의 시각이  작품 곳곳에 짙게  배어있다.  

 
도리언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보존하기를 원했던 화가, 바질

 타치오의 존재를 쉴새없이 좇았던 아센바흐,

이 두 사람은 한 대상이 지닌 아름다움을 독식하려던 태도 때문에 스스로를 죽음에 내던졌던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그 미의 가치를 옛 그리스의 미와 결부시키고 있다.

절대미를 표현하고자 할 때 왜 항상 그리스미술이 언급되는 것일까?

현존하는 고대그리스 미술품을 두고 과연 아름다움의 상대성이 성립될 수 있을까?

추의 미학이 예술에 적용되는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지만 우아하고 고결한 그 시절의 예술이 보여주는 이상적인 미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도리언과 타치오의 외모에서 그 시대의 조각들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선과 인식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움과 소유욕망의 관계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책이 한 권 더 있다.  

프랑스 미술사학자 다니엘 아라스Daniel Arasse는 그의 유명한 저서, On n'y voit rie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모든 예술은 표상인 동시에 상징적이다.

표상의 속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은 위험을 감수해햐 한다.

상징을 읽은 사람은 위험을 감수한 사람이다.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中

…그는 그 이미지를 만질 수도, 키스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이미지를 잃고, 이미지는 사라집니다.

나르키소스는 회화의 발명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원하는 어떤 이미지를 나타나게 하지만

그는 그것을 만질 수도 없고, 만져서도 안 됩니다.

그는 끊임없이 그것, 즉 이 이미지를 껴안으려는 욕망과

그 이미지를 보기 위해서 거리를 두어야 하는

필연성 사이에 매여 있습니다.

이는 Alberti가 <회화론>에서 피력한 견해를 Arasse가 풀어 쓴 것인데,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은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우리와 아름다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관조 뿐이라는 것을.

그 아름다움을 향유하며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바라보는 수 밖에 없다.

 만지는 순간 파멸의 길로 자신을 내던지는 꼴이 되고 만다는 것을, 나르키소스의 교훈은 나직히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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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우물 2 펭귄클래식 23
래드클리프 홀 지음, 임옥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무엇이 남았는가?

고독 혹은 그보다 훨씬 최악의 것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영혼을 수치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원히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삶이자,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직접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생략이라는 거짓을 말해야 하는 삶이며

사리 분별에 따라 언제나 침묵을 유지함으로써 세상의 불의와

공모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pp. 68-69

  

 

스티븐이 매몰차게 메리를 내쳤을 때

 등불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제이미의 손길이 너무 침착해 보였다는 스티븐의 느낌이  떠올랐다.

모든 감정에서 초연한 듯 너무나 냉정한 스티븐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제이미와 바바라의 죽음 사건이 스티븐과 메리의 결말을 암시했던것 같다.

 메리를 떠나 보내더라도, 스티븐만은  자신의 존재방식에 홀로 맞서기를, 나는 내심 고대했었다.

제이미와 똑같은 결심을 한 스티븐도 결국에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나약한 인간이었다니,

한편으론 화가 나기도 했다.

 


"날 찾아오고 싶을 때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내 도움이나 조언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난 언제나 여기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점만은 기억해 둬요.

세계가 생각만큼 그렇게 칠흙 같은 어둠은 아니라는 걸 말이에요."

p. 349.

 

스티븐은 발레리의 충고를 들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발레리나 마틴의 예상처럼 스티븐은 '그들'의 존재방식을 구축하는데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스티븐은

사회가 나서서  파 놓지는 못했던,

자신이 직접 판 그 고독의 우물 밖으로 나오지 못한채

스스로 침잠해 버렸다.

 

세상은 강력한 자기만족과 더불어, 독선적인 행동 지침을 만들었고,



스스로를 정상으로 간주하는 자들은 으스대고 뻐기면서

제멋대로 규칙을 깨고 그녀와 같은 자들을 짓밟고자 했다.

(…)그들은 때때로 지독한 짓을 저질렀다.

탐욕스러운 짐승들처럼.

아무리 추악한 죄를 저질러도 그들은 정상이었다!

p.87

 난 신이 이마에 표시를 한 그런 사람의 하나다.

카인처럼 오점과 표시를 가진 존재다.

네가 내게 온다면, 세상은 널 혐오할 거다.

넌 박해받을 것이고, 널 불결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죽음을 넘어서까지 진심으로 사랑하더라도

세상은 우리를 불결하다고 할 것이다.

p.165.

 

그녀의 우물 안에는 기쁨의 순간들이 흐르고 있다.

어린시절 아버지와의 우정과 깊은 교감이 반짝이고 있고,

먼 발치에서 바라보던 어머니의 아름다움이 일렁이고,

시린 첫사랑의 순간들,

광기와 같이 사랑을 쏟아 부었던 시절이 녹아 있으며,

고난을 함께 이기며 키워나간 애절한 연인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그리움이 

끊임없이 솟아오르고 있다. 

동시에 그 물은, 처음으로 느낀 사랑과 맹목적인 사랑이 남긴 좌절과 고통을 지나

 혈육으로부터 버림받은 상처를 흐르면서 깊고도 검은 골짜기를 만들었다.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겪는 소외와 고립 속에서

함께 무기력하게 흐르다가 그녀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그 흐름을 멈추었다.

깊은 땅 속에 있는 물의 표면에 닿는 빛은 미미했다.

그 빛이 아무리 밝더라도 어둠 속에 가라앉은 물은 훨씬 깊었나 보다. 

 

울프의 <올랜도>와 포스터의 <모리스>에 비해 너무나 불행하고 안타까운 끝맺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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