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주인공은 출신 , 배경, 생애 이력 ,노동의 경험이 다르다. 2014년 현재 서울과 수도권에 살고 있고, 간병과 요양과 유통 등 최저 임금 언저리의 시급 노동자로 살고 있다. 나머지 네 사람은 모두 요양보호사협회와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2~4년 동안 알고 지낸 사이다. (-9-)
지난 4월 17일, 장애등급제 폐지 농성이 600일을 넘겼지만 53세의 중증 자애인 송국현은 결국 불 속에서 죽었다. 언어 장애로 화재 신고를 할 수 없었고, 지체 장애로 방을 기어 나올 수 없었다. 장애 3등급에게는 활동 보조 서비스가 없다. 자고 나면 송전탑에 떠밀려 밀양의 할매 할배들은 조상의 터전과 평생의 보람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있다. (-10-)
그렇게 머리채를 잡힌 채로 질질 끌려서 그 집에 가보니, 단칸방에 사과 궤짝에다 그릇들을 엎어놓고 가는데, 아들까지 둘이나 있는 거야. 큰애도 아직 초등학교를 안 들어갈 나이였어. 자기네 사는 꼬라지랑 애들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나를 끌고 간 거지."니 년에 머에 홀려서 남의 서방이랑 붙어 먹고 지랄를 하는가 모르지만, 니 눈으로 똑똑히 봐라, 이 썅년아,씨팔년야! " 그러구 시작을 하는 거야. (-54-)
나중에 안 영감 장모가 돌아가셨는데,그 초상집에 우리 큰오빠가 문상을 왔어. 혹시라도 제대로 본부인하고 이혼을 하게 되고 여동생을 결혼이라도 시키게 될지 모르니까.일단 잘해놓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겠지. 본부인도 아무 말 없이 인사를 주고받더라도,특이한 관계지만 별다른 시비는 없었어. 그러다가 안 씨 남동생이 일찍 죽은 거지,쉰아홉에 자식들 시집 장가도 못 보내고 일찍 간거야.(-101-)
어무이 손님 중에 신문기자 하나가 죽을 병이 걸려서는 온갖 비싼 약을 다해도 못 낫다가는 울 어머니 병굿을 받고는 싹 나슨 거여. 그르니 그 기자가 우리 어무이를 신문에 낸다고 혔는디 우리 아부지가 그걸 못허게 혔어.어디 세상에 방 낼 일이 있느냐 그거제, 나중엔 결국 신을 누르고 이를 안혔어. 그르니 집안이 풍파가 많이 나는 거고 재산도 줄고 그런거여. 아부지한티는 안 한다고 하고는 아부지 몰래 나가기도 허고 그렸어. 아부지가 장사를 주로 다니니께 틈이 많은 거제. (-147-)
그러다가 서방이 또 사우디를 갔어. 이젠 정신을 차린다고 간 거제. 근디 그때면 이미 나는 시기가 많이 있었던 거여. 아그들을 핵교 보내놓고 아파트 방문 창문 다 잠그고 전축을 크게 틀어놓구는 , 팬티만 입은 채로 미친 사람같이 뛰고 난리를 쳤어. (-194-)
서울예전 성악과에 국악부와 서양악부가 있는데, 나는 성악과 국악부에 판소리를 전공했어. 공부엔 별 관심 없어서 성적도 좋지 않았어. 그 학교는 특히 여자애들은 실력이 안 되서 돈으로 들어오는 애들이 많았어. 보결인 거지,.지금 말하면 촌지를 상납하는 거야. 그런 걸 엄마가 다 알아보고 돈도 마련하고 한 거야. 아뻐는 내가 보결로 들어간 걸 아마 돌아가실 때까지 몰랐을거야. (-259-)
구식정미소였는데, 내가 말해서 현대식으로 싹 개조를 했어. 처음에는 시어머니가 반대를 하더니, 비용을 내가 낸다고 하니 물러서더라구. 결혼 전에 벌어놓은 돈을 따로 좀 갖고 있었거든., 싹 개조를 하고는 그 일대 농가들 벼니 뭐니 일거리들을 내가 직접 섭외하고 영업을 뛰어서, 아우리가 맡게 됐어. 근방 구개면, 공근면, 서원면 곡식들을 다 우리 소멸한 거지. 정미소 개조한 덕에 돈을 많이 벌었어, 그런데 그렇게 번 돈이 모두 시어머니한테 들어가는 거야. 들어간 내 돈은 아무도 얘기를 않하고. 그런데다가 한 3년 정도 해보니 정미소가 사양길이라는 판단이 들기 시작하더라구. (-281-)
남편 사업 힘들어지면서 내 우울 증세가 시작됐지만, 그때는 병은 아니었어. 결정적으로 병이 되고 아예 쓰러져버린 건 남편이그동안 부동산을 담보로 시댁 빚보증을 서준 거를 뒤늦게 알게 된 때였어. 그게 1998년이야.만으루 서른아홉 되는 해 4월이었어.아홉수가 그렇게 무섭더라구. 우리 식구 사는 것두 벌써 힘들던 땐데.나 뫠 빚보증 선 게 차압이 들어오구 난리가 나면서야 내가 알게 된 거야.어떤 거는 보증 서서 준지가 9년이 됐더라구. (-302-)
책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은 세 사람 장기태, 이기순, 이윤숙 의 여성의 생애를 구술을 통해서, 인생을 녹아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각자, 삶에 대해서, 세 편의 이야기,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 · 장기태
“사람은 겉을 봐도 신은 마음을 보는 거여” · 이기순
“도대체 내가 멀 잘못했냐구!” · 이윤숙
에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기억하고, 기록해 나갔다. 지금과 달랐던 시스템, 주먹구구식이었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데 급급했다. 경쟁이 지금보다 치열하지 않았고, 배움에 있어서, 불평등이 존재하였던 그 때 당시, 여걸이라는 표현,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한 지금 우리 시대에,집에서, 직접 자기 손으로 아이를 받고, 탯줄을 직접 자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과거의 우리의 삶 그 자체였다.
있는 집안도 쫄땅망하기 쉬운 세상이었다. 모으기는 힘들어도, 빚보증이다,뭐다 하면서, 밑바닥에 물 붓기나 다름 없는 삶을 살았다. 투자한 돈으로 얻은 재산이 내 몫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강조하는 삼강오륜은 지금의 정서로 보자면, 있는 자들의 행패이자., 독재나 다름없었다. 며느리가 투자한 정미소에 대해서, 시어머니가 번 돈을 가져간다는 것은 그 시절에는 가능했다.
억울해도 따라야 했던 그 시절이다. 촌지가 먹혀들었던 그 시절, 빚보증을 서왔지만, 까마득하게 모르고 살았던 그 때 당시였다. 믿었던 가까운 사람에게 , 돈 문제로 시시비비가 많았고,그것이 서로 친인척이 등지게 되고, 원수가 되었다.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죽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았다. 그 때에 비해서 편하게 살아오고 있건만 ,우리는 여전히 상대적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서로에 대해서,아픔과 고통으로 얼룩져 있다. 살아간다는 것, 아프다는 것, 슬픔과 우울,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감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만든 삶의 굴레다. 구술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그 안에서,우리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조금씩 조금씩 알아간다는 것, 1940년대~1950년대에 살았던 그들의 살은 결코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겨우 가난을 벗으려고 헤매다가 견디며 살아온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