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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 도시로 읽는 한국사 - 한 권으로 독파하는 우리 도시 속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ㅣ 30개 도시로 읽는 시리즈
함규진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7월
평점 :

박정희는 18년간 집권하면서 서울 곳곳을 바꾸고 만들어냈다. 남산 꼭대기에 남산 서울타워를 세우고, 와인아파트를 건립함으로서 용산의 풍경도 도드러지게 바꾸었다. 1990년대 군사정권이 끝나고 서울-한국이 본격적으로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용산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하나는 첨단 도시화다. (-41-)
화성은 실사구시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화성은 화서문 일대 정도만 남고 거의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 20세기에 들어와 순차적으로 복원하여 1990년대에 완성했는데 ,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신청하자 어이없다는 반응이 돌아왔다.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야 세계 문화유산이 되는데 대부분이 현대에 복원한 것이면서 무슨 배짱으로 신청한 것일까?(-94-)
이제까지의 경우를 보면 천안은 직접 봉기의 선봉에 서기보다는 반란의 무대가 되거나 배경이 되는 식이었다. 오룡이 여의주를 다루는 교통의 요지였기에 그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침내 이 도시가 민중 봉기의 주역이 되는 때가 찾아왔다. 바로 1910년 납세 거부운동, 그리고 1919년의 천안 3.1 운동이었다. 천안은 앞서 본 대로 청일전쟁의 성지가 되었고, 또 1899년부터는 그곳의 금광을 채굴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유난히 많이 모여들었다. (-141-)
중국 고대 문헌에는 여수가 금의 산출지로 나타난다. 상상이지만, 아마도 사금이 많은 강이 있었고 거기서 캐낸 황금 모래가 금빛으로 반짝이는 물이라는 이름의 유래이지 않을까. 한반도의 여수에서 금이 나온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208-)
이런 유배가 반드시 비극적이지만은 않았다. 송시열이 제주도에 유배된 결과 제주도 유일의 서원이던 귤림서원의 규모가 커져, 제주도에서도 학술과 문화 활동이 꽃피게 되었다. 추사 김정희는 세도가문끼리의 당파싸움에 누명을 쓰고 제주도에 왔는데, 8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동서고금의 필체들을 모아 연구를 거듲한 끝에 자기만의 독특한 필체인 추사체를 만든다. (-252-)
워낙 번화가였다 보니 해방 직후 부산의 정치 경제 행정의 중심지도 이 지역이었다. 임시 수도 당시 임시로 들어선 관공서들도 많았다. 1954년 12월 말에 일어난 용두산 대화재로 판자촌 298채가 불에 타고, 고려 아악 악보와 악기, 조선 왕들의 어진 등을 포함한 국보급 문화재들 3000여 점도 사라지고 말았다. (-284-)
낙동감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이 김해 칠성포인데,여기서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상주에 이르고, 서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진주에 이른다. 길목에 있는 김해가 경상도 전체의 수구를 차지해서 남쪽과 북쪽, 바다와 육지의 이익을 모두 챙긴다. 여기서는 관이나 개인 할 것 없이 소금을 판매하여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 (-318-)
위대한 종손이 떠난 임청각에 화풀이라도 하듯이 일제는 1942년에 임청각의 상당 부분을 강제로 헐어내고는 철길을 내버렸다. 이를 막지 못한 당시의 종손은 자결했다고 한다. 임청각과 그 근처의 법흥사지 칠층전탑 앞으로는 최근까지도 철도와 전신줄이 닿을 듯이 뻗어 있어 마치 사슬이 묶인 포로 같은 몰골이었다. 2021년이 되어서야 철로를 없애고 방음벽을 허물며 , 임청각과 전탑 주변을 정돈하는 사업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407-)
둘째, 연산군이 입힌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전쟁이 터졌다. 임진왜란 당시 서울에서 가까운 파주는 조선군, 왜군, 명군이 밀고 당기는 전쟁터였다. 주민들은 병사들의 창칼에 질려 죽거나, 그들이 요구하는 식량을 대느라 굶어 죽었다. 애써 다시 세운 가옥은 불타고, 논밭은 죽거나 피란 간 주인이 돌보지 못해 잡초밭이 되었다. (-467-)
전란에 시달리지 않았을 때는 개경의 왕립기관,공공기관 만이 아니라 민간 건물들도 빼어나 모양새를 자랑했다. 고려 말의 이규보는 개경의 풍경을 "수많은 저택과 집들이 고기비늘이 거친 듯 즐비하다. 연이은 지붕들의 기세가 마치 교룡이 일어나고 봉황이 춤추는 듯하다"라고 예찬했다. (-503-)
광해군 때는 해주에서 역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설이 돌아 한때는 이름마저 벽성으로 바뀔 정도로 된서리를 맞기도 했다.그러나 뒤이은 인조 반정과 호란은 멈칫했던 해주의 발전에 박차를 가했다. (-530-)
오늘날의 평양과 비슷한 도시를 꼽는다면 어디일까? 서울?아니다.같은 사회주의 국가이자 혈맹인 중국의 수도 베이징? 그렇지 않다.지구 상에서 평양과 가장 비슷한 도시는 미국의 워싱턴이다. 누군가 워싱턴을 "죽은 사람들을 위한 도시"라고 폄하했었다. (-553-)
미군은 일단 물러났지만 계속해서 원산을 공격했다. 이번에는 비행기만이 아니라 전함이 나섰다. 하늘에서 떨어지고 ,바다에서 쏘아대는 포탄에 원산은 산산조각이 났다. 1953년 종전 1분 전까지 계속되었다는 공격으로 원산에는 단 한 채의 건물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 건물은 모두 전후에 지어진 것이다. 이렇게 혹독한 폭격과 포격은 남한 사람들에게조차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574-)
굳이 말하자면 지안의 고구려 유적이 오랫동안 잊힌 까닭과 그토록 많이 남아 있을 수 있던 까닭은 그 지역이 황량해졌고 오랫동안 출입 금지구역이었기 때문이 아닐까.반면 계속해서 사람이 살고 바쁘게 드나들던 의주 부근은 유적을 밀어 버리고 새 건물을 짓거나 유적의 석재를 가져다 집 짓는데 쓰면서 남아나지 않았을 수 있다. 지금 평양에 고구려의 유적이 없고,서울에 백제의 유족이 거의 없는 까닭도 그렇다. (-638-)
당연히 중국이 이를 좋아했을리 없다. 그러나 당시 청왕조는 서구 열강과의 거듭된 전쟁 패배로 쇠퇴일로에 있었고, 북만주는 아시아 세력이 잠식해 들어오는 판이라 두만강 일대의 남만주에 힘을 쓸 수 없었다. (-654-)
책 『30개 도시로 읽는 한국사』 에는 한반도의 남한과 북한 그리고 일본, 중국의 땅까지 아우르고 있다. 그중에서, 서울과 평양이 이 책의 핵심 도시라면, 최근 대형 산불로 인해 대피명령이 덜어진 안동도 소개하고 있다.지금은 보수의 성지로 부르는 대구와 안동은 독립운동의 핵심 요충지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전쟁의 비극 하면 가장 먼저, 일본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떠올린다. 원자 핵폭탄이 떨어진 대표적인 두 도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산시를 추가하고 싶다.지금은 학교 체벌이 금지되었지만, 내가 학교 다닐 대, 원산폭격이 있었다. 6.25 전쟁 당시 원산이 미국의 군항기와 전함으로, 도시를 초토화시킨 대표적인 곳이며, 집 한채가 없는 곳이다.
파주와 김해, 두 도시의 특징을 꼼꼼히 확인해 보았다.지금은 남해 제 1의 도시로 부산을 꼽지만, 역사적으로는 남해에서 가장 번성한 곳은 김해였다. 가야의 땅이자, 수도였던 김해에 대해서,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면서,역사를 왜곡한 곳이다. 파주는 서울과 인접한 곳이며, 연산군 폐위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도시였다.지금은 파주를 출판도시로 기억하지만, 조선왕과 왕의 측근들의 왕릉이 파주에 존재했다.그건 파주가 가진 지리적 잇점이면서, 불편한 것이 많은 도시로 손꼽히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남한과 북한 뿐만 아니라 해외의 여러 도시도 소개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평양은 계획도시이며, 서울과 비교가 된다. 우리에게 평양은 조용하고, 답담한 곳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북한 사람들에게는 이상적인 도시로 볼 수 있다. 나라마다, 그 나라의 국민의 성향과 문화에 맞게 도시가 설계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잇으며, 평양이 미국의 워싱턴과 가장 흡사하다는 것은 놓칠 수 없는 역사적 지리적 지식으다. 한 편 부산은 6/.25 전란으로 북한 사람이 피난 온 대표적인 도시였다. 판자촌이 밀집되어 있으며,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부산의 대 화재로 인해 우리는 귀한 문화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특히 왕의 어진 대부분이 사라졌으며,지금 남아있는 어진도 그을린 채로 남아있는 어진도 있다. 조선왕조 실록은 잘 보존되어 있었지만, 우리의 왕의 어진은 잘 보존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다. 책에는 여수시가 나온다. 세번 다녀온 곳,여수는 사람들이 살기 좋은 바닷가 도시다. 특히 대기업이 있는 곳이며, 예전에 사금을 채취할 수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흔적이 넘아 있지 않지만, 중국의 고전에 여수에 대한 소개 자료가 다수 남아있으며, 여수의 특징을 놓칠 수 없다. 마지막 대한민국에서 울산보다 인구가 많은 수원이 소개되고 있다. 수원의 화성이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를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었다. 즉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조건이 되지 않았지만,그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건 조선시대 우리의 기록 유산 때문이다. 수원화성이 전란으로 소실되었고,현대에 복원한 성이지만, 기록을 근거로 완벽하게 복원된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