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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아드 - 황제의 딸이 남긴 위대하고 매혹적인 중세의 일대기
안나 콤니니 지음, 장인식 외 옮김 / 히스토리퀸 / 2024년 2월
평점 :
내 아버지 알렉시오스 황제는 재위에 오르기 전부터 로마 제국을 위해 위대한 헌신을 이어 나갔다. 아버지는 로마노스 디오예니스 황제 시절부터 군사 원정을 시작했다. 그는 동시대 사람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인물이었으며,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는 14살이 되었을 때부터 디오예니스 황제를 따라 고된 페르시아 원정에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13-)
내 친할아버지 오안니스 콤니노스는 마누일, 이사카오스, 알렉시오스 세 자식을 두었다. 그중 첫째 미누일 콤니노스는 전임 황제 로마노스 디오예니스가 임명한 아시아 지역 총사령관이었고,둘째 이사키오스는 안티오히아 속주의 독스로 선출되었다.이 둘은 수많은 전쟁에서 공로를 세우고 , 적에 맞서 싸워 여러 훈장과 전리품, 그리고 명예를 얻었다. (-61-)
그날은 9월 24일, 성 테크라 축일로 정해진 날이었다. 강물이 범람하여 강둑을 집어삼켰고 황제의 막사와 병사들이 선 평지는 마치 바다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짐이 격류에 휩쓸려 사라졌으며, 사람과 동물 모두 추위에 감각을 잃어갔가.하늘에서는 천둥이 울렸고, 벼락이 어찌나 자주 치는지 온 땅에 불에 휩싸일가 봐 두려움에 떨었다., 황제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119-)
황제는 라틴인들이 가할 무적의 첫 번째 돌격을 두려워했기에 새로운 방안을 고안해 냈다. 그는 수레를 만들도록 했는데, 기존의 것보다 작고 가벼웠으며 사방에 장대가 박혀 있는 것이었다. 라틴인들이 전속력으로 말을 달려 파랑크스 대열을 향해 돌격하면, 배치된 중보병들이 수레를 앞으로 밀어 라틴인의 전열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161-)
황제는 즉시 최정예 병사들을 보냈으며,깃발과 은으로 만든 왕홀을 가져가도록 했다. 이때 아불 카심을 직접 도와주려고 군대를 보낸 것이 아니라, 이자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끌어가려는 속내가 있었다. 로마 제국의 두 적이 서로 싸우고 있으니 약한 쪽을 돕는 것이 필요하지만, 힘을 키워주려는 것이 아니라 공격해 온 쪽을 물리친 다음, 공격받은 쪽으로부터 지금은 제국의 영향권 밖에 있는 영토를 빼앗으려 한 것이다. (-204-)
안나 콤니니는 도로마 제국의 역사가이며,콤니노스 가문의 황제 알렉시오스 1세 콤니오스와 두카스 가문의 이리니 두케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세계최초의 여류 역사가로 부르고 있었다. 그녀가 쓴 역사서 『알렉시아드』는 동로마 제국이 시작되며, 로마의 속주에 군대와 용병을 보내 지중해를 지배하였던 로마의 전성기를 지나는 시점으로, 로마의 전성기와 쇠퇴기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환기를 읽을 수 있다.
로마가 유럽을 제패하면서, 1000년의 수도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에 의해서, 로마의 국력은 쇠퇴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 당시 ,중세 유럽, 3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의 서막이 여리게 된 11세기 유럽 사회가 어떠했는지, 안나 콤니니의 『알렉시아드』에서 살펴 볼 수 있으며,이 책은 그 당시 황제의 일기이자,. 한 가문의 역사 이기도 하다..마케도니아인과 튀르크인, 켈트족, 여기에 노르만 인들의 서로 물리고 물리는 권력 다툼이 이어졌으며, 로마는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되었다. 수많은 전쟁 속에서 살아남았던 ,콤니노스 왕조의 황제 알렉시오스 1세 가 보여준 전쟁의 흐름을 살펴보게 된다.여전히 신을 숭배하고, 황제의 힘이 백성들을 살피지 못하던 와중에,그들의 해결책은 오직 하나 전쟁으로 인해 자원을 얻고 땅을 직접 소유하는 것에 있었다. 성벽을 쌓았고, 수레를 만들고, 투석기를 활용하여,전쟁이 시작된다. 섬을 소유하고,속주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노예가 발생하였다. 그 노예를 부려서라도, 생존하려 했던 중세 유럽 사회의 모순,그 모순이 결국 3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그 첫번 째 십자군 전쟁이 어떠했는지 『알렉시아드』에서 황위 계승 서열 1위이면서, 그리스어, 기하학, 음악, 천문학, 산술학, 역사,지리,그리스 철학을 배웟던 안나 콤니니의 기록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