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도시 Z
데이비드 그랜 지음, 박지영 옮김 / 홍익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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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큰 위험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큰 동기부여와 보상이  필요하다.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처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성공한다면 큰 보상이 따를 수 있다면 사람은 무모한 도전을 시행하려고 한다. 모험이란 미지의 공간으로 시간 이동 하는 것이며, 그 안에서 미지의 세계를 찾아 나선다.. 1492년 콜롬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했지만, 아직 누구도 들어가보지 못한 곳은 아마존 밀림이다. 이 소설은 실제 아마존 밀림을 탐험하려 했던 영국 탐험가 퍼시 해리슨 포셋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영국의 지원을 받아 아마존 탐험에 나선 포셋 탐험대의 삶을 쫒아가고 있다.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에 도달했지만 여전히 아마존에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숲이 우거진 밀림, 그곳은 들어가면 길을 잃기 딱 좋은 곳이다. 깊은 숲과 늪이 우거져 있으며,먹을 것을 외부에서 가져올 수 없는 환경이다. 하지만 포셋 탐험대가 아마존 탐험을 시도하려는 이유는 바로 잃어버린 도시 'z'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찾고자 하는 잃어버린 도시는 금이 가득 있는 곳이며, 잉카나 무추피추와 같은 문명을 기대하고 잇었다. 하지만 아마존 밀립 숲에는 사람의 목숨을 위탸롭게 하는 모기가 득실 거리며, 아마존 흡혈 물고기 '캔디루' 가 있었다. '캔디루'의 먹잇감은 인간이며, 늪에 빠진 인간의 다리가 표적이 된다. 불개미와 구더기가 살아있는 악마들의 파라다이스 아마존은 유럽인들이 들어가기엔 너무나도 위험했다.


포셋 탐험대는 그렇게 영국 왕립협회의 지원을 받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중이었던 1900년대 초반 아마존에 첫번째 탐험과 두번째 탐험을 시도하게 된다. 하지만 두번 째 탐험은 실패로 끝났으며, 포셋 탐험대의 아마존 탐사는 실패로 끝나 버리고 말았다. 소설 <잃어버린 도시 Z>는 포셋 대령이 실종된지 80년이 지난 21세기 포셋 대령 실종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아마존을 다시 들어가게 되는데, 그들은 아마존 곳곳에 남아있는 포셋 탐험대의 흔적들을 찾아 나서면서 아마존의 실체가 어떤지,식인 풍습을 가진 원주민 샤만테족, 카야포족의 실체가 어떤지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탐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포셋탐험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엿볼 수 있다. 아마존 수풀림에 존재하는 야생고무를 채취한다면 그들은 잘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탐욕은 그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아마존에는 돈이 될 수 있는 야생고무가 있었고, 계피 나무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정년 원하고 꿈꾸는 것은 잃어버린 도시 'Z' 였다. 그 도시를 발견하면 일확천금 부자가 될 거라는 단 꿈을 꾸고 있었고, 그들은 조금씩 조금씩 아마존에 들어서게 된다. 그들이 원하는 걸 얻지 못하였고, 굶주림을 못이겨 서로가 서로를 잡아 먹는 식인행위를 보여준다. 유럽 탐험대가 꿈꾸는 도시 엘도라도는 아마존에 없다는 걸 이 소설에서 보여주고 있으며, 아마존에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살아가는 지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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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쇠제비갈매기의 꿈
신동만 지음 / 스토리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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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 시화호에는 쇠제비 갈매기가 살아간다. 여름 철새인 쇠제비갈매기는 제비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여름철 저 먼 곳 호주에서 여름 한철 나기 위해서, 번식하기 위해 시화호에 도착하게 된다. 저자는 시화호의 갈대숲이 쇠제비 갈매기가 살아가기에 적합한 곳이며, 비오는 날 시화호 촬영을 하다가 쇠제비 갈매기의 뜨거운 자연생테계를 목격하였고, 자연의 위대함, 쇠제비 갈매기의 뜨거운 모성애를 느낄 수 있었다.


요즘 한반도는 여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도, 비가 오지 않는 가뭄이 계속 나타나고 있으며, 도심은 뜨거운 열기를 잉태하게 된다. 인간이 저지르는 자연생테계의 파괴와 훼손, 자연이 있는 공간에 인간에게 적합한 인간 생테계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경제논리에 따라 자연은 점점 더 후퇴해 가고 있다. 돈이 되면 무엇이든 된다는 논리는 여전히 현존한다.내가 사는 곳에 중앙 고속도로가 생겨남으로서 동물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 끊어져 버렸다. 매일 고속도로 위에서 길을 헤매는 야생동물들은 길을 잃고 로드킬을 당할 수 밖에 없으며, 도심에 들어오는 멧돼지 또한 인간이 저질러 놓은 원흉에 가깝다. 경제 논리에 의해서 늑대와 반달곰 복원을 하는 우리들의 행태는 지극히 비인간적이며, 멸종과 복원을 하는 이유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인간이 저지른 자연생테계 파괴는 결국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하며 살아간다.


비가 오는 날이면, 시화호의 야생 동물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에 따라 적응해 나간다. 갈대숲 주변에 있는 쇠제비갈매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암컷과 수컷이 짝짓기를 하고 있으며, 알을 잉태하게 된다. 알을 부화하기 위한 암컷의 몸부림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뜨거운 모성애 그 자체였다. 책에는 쇠제비 갈매기의 삶을 작가의 시선에서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으며, 쇠제비 갈매기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하게 된다. 저자의 즈거운 스토리텔링 이야기, 저자는 비가 쏟아지는 그날 뜨거운 모습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비가 오는 그날이었다. 매일 카메라를 들고 야생들과 동거동락하던 그날은 하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멈추지 않는 비는 쇠제비 갈매기들을 위태롭게 하고 있었다. 둥지를 트고, 알을 품고 있었던 암컷 쇠제비 갈매기는 비가 오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새끼를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며, 그 모습 하나 하나를 텐트 안에서 담아내고 있다. 여기서 야생동물을 담아낼 때의 철칙은 그들의 생테에 인간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위태로운 순간을 보여주는 암컷 쇠제비 갈매기를 담아내는 그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개입이 전혀 없는 그 순간에도 저자는 자신의 카메라가 비에 젖어 망가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쇠제비 갈매기는 자신이 죽을 수 있는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새끼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자신의 날개에 기름칠 하고 있다. 쇠제비 갈매기가 날개에 기름칠 하는 건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결국은 생명은 사그라들수 밖에 없다. 어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알은 깨질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졌으며, 어미의 생명도 점점 사그라지고 말았다. 비가 그치고 난 다음날 저자는 그 처참한 상황을 여기저기 목격하고야 말았다. 저자는 이 순간을 담아내며 위대한 메시지를 말하고 있다. 쇠제비 갈매기의 천적은 까치와 황조롱이가 아닌 바로 저자 자신, 즉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간만이 모든 야생동물의 천적이 되어 가고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걸 아는 우리는 여전히 부끄러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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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제비갈매기의 꿈 -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는 다큐멘터리 동화
신동만 지음 / 스토리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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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안산시 시화호에는 쇠제비 갈매기가 살아간다. 여름 철새인 쇠제비갈매기는 제비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여름철 저 먼 곳 호주에서 여름 한철 나기 위해서, 번식하기 위해 시화호에 도착하게 된다. 저자는 시화호의 갈대숲이 쇠제비 갈매기가 살아가기에 적합한 곳이며, 비오는 날 시화호 촬영을 하다가 쇠제비 갈매기의 뜨거운 자연생테계를 목격하였고, 자연의 위대함, 쇠제비 갈매기의 뜨거운 모성애를 느낄 수 있었다.


요즘 한반도는 여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도, 비가 오지 않는 가뭄이 계속 나타나고 있으며, 도심은 뜨거운 열기를 잉태하게 된다. 인간이 저지르는 자연생테계의 파괴와 훼손, 자연이 있는 공간에 인간에게 적합한 인간 생테계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경제논리에 따라 자연은 점점 더 후퇴해 가고 있다. 돈이 되면 무엇이든 된다는 논리는 여전히 현존한다.내가 사는 곳에 중앙 고속도로가 생겨남으로서 동물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 끊어져 버렸다. 매일 고속도로 위에서 길을 헤매는 야생동물들은 길을 잃고 로드킬을 당할 수 밖에 없으며, 도심에 들어오는 멧돼지 또한 인간이 저질러 놓은 원흉에 가깝다. 경제 논리에 의해서 늑대와 반달곰 복원을 하는 우리들의 행태는 지극히 비인간적이며, 멸종과 복원을 하는 이유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인간이 저지른 자연생테계 파괴는 결국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하며 살아간다.


비가 오는 날이면, 시화호의 야생 동물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에 따라 적응해 나간다. 갈대숲 주변에 있는 쇠제비갈매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암컷과 수컷이 짝짓기를 하고 있으며, 알을 잉태하게 된다. 알을 부화하기 위한 암컷의 몸부림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뜨거운 모성애 그 자체였다. 책에는 쇠제비 갈매기의 삶을 작가의 시선에서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으며, 쇠제비 갈매기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하게 된다. 저자의 즈거운 스토리텔링 이야기, 저자는 비가 쏟아지는 그날 뜨거운 모습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비가 오는 그날이었다. 매일 카메라를 들고 야생들과 동거동락하던 그날은 하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멈추지 않는 비는 쇠제비 갈매기들을 위태롭게 하고 있었다. 둥지를 트고, 알을 품고 있었던 암컷 쇠제비 갈매기는 비가 오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새끼를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며, 그 모습 하나 하나를 텐트 안에서 담아내고 있다. 여기서 야생동물을 담아낼 때의 철칙은 그들의 생테에 인간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위태로운 순간을 보여주는 암컷 쇠제비 갈매기를 담아내는 그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개입이 전혀 없는 그 순간에도 저자는 자신의 카메라가 비에 젖어 망가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쇠제비 갈매기는 자신이 죽을 수 있는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새끼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자신의 날개에 기름칠 하고 있다. 쇠제비 갈매기가 날개에 기름칠 하는 건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결국은 생명은 사그라들수 밖에 없다. 어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알은 깨질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졌으며, 어미의 생명도 점점 사그라지고 말았다. 비가 그치고 난 다음날 저자는 그 처참한 상황을 여기저기 목격하고야 말았다. 저자는 이 순간을 담아내며 위대한 메시지를 말하고 있다. 쇠제비 갈매기의 천적은 까치와 황조롱이가 아닌 바로 저자 자신, 즉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간만이 모든 야생동물의 천적이 되어 가고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걸 아는 우리는 여전히 부끄러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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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들
피터 멘델선드 지음, 김진원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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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를 세번 이상 보았다. 그 영화를 보고 난 뒤 원작을 읽었으며, 실제 영화와는 차이가 많았다. 물론 그 영화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기억에 오래 오래 남기고 싶어서 이젠 원작을 읽지 않는다. 내가 영화를 보지 않고, 원작을 먼저 읽었다면 어땠을까, 소설 속의 이야기에 깊이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 앤디 삭스를 앤 헤서웨이와 연결짓지 못했을 것이고, 미란다를 메릴 스트립과 연결하면서 상상하지 못했을 건 당연지사이다. 그것을 소설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읽고 난 뒤 영화를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영화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원작을 먼저 읽은 케이스였다. 소설 속 등장 인물에 대한 이미지를 제대로 재현하지 못할 수 밖에 없었지만 내 나름대로 이미지를 구현하면서 읽어나갔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그렇게 우리가 책을 어떻게 읽어나가는지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사유하고 있다. 우리는 책을 읽어 가면서 그 안에 놓여진 텍스트를 이미지화 하게 된다. 영화에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소설에서는 반드시 구현하고 설명해야 한다. 작가의 시점에서 작가가 바라 본 설정들을 통해 우리는 텍스트 안에서 상상하게 되고, 상상은 내 머리 속에서 내 마음과 연결된다. 여기서 우리는 여러가지 표상과 기호에 대해서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저자는 그것을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우리가 텍스트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사유하도록 만들어 나간다. 즉 일반적인 나열식 텍스트는 평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에 대해 흐릿한 가면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텍스트에 줄을 긋거나 사선의 도형을 위 아래로 채워 나가면 그 텍스트는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텍스트를 화살표에 가둔다면 우리는 답답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저자는 텍스트를 화살표에 가두고 세로로 세워 놓으면서 우리들의 반응을 엿보고 있다. 분노의 의미가 채워져 있는 텍스트가 화살표에 가두어지고 꺼꾸로 세워진 형태를 보일 때 우리는 그걸 읽는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 그럼으로서 그 텍스트에 대한 분노의 이미지를 증폭 시킬 수 있다.


내 생각에 상상력은 시력과 비슷하다. 사람이라면 거의 지니고 있는 능력이란 말이다. 물론 눈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서 다 똑같이 예리하게 보는 건 아니지만.(p204)

작가가 인물이나 장소에 대해 그 모습을 빈틈없이 시시콜콜하게 묘사하면 독자가 그리는 그림은 풍성해지지 않을 것이다. 또렷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가 펼쳐놓은 세세한 묘사는 그 정도에 따라 독자가 체험할 독서의 질을 좌우한다. 다시 말해 문학작품 속에서 나열되는 형용사는 미려하게 문장을 다듬는 힘이 있을지언정 맥락을 잇는 힘은 부족하다. (p161)


우리는 분명 상상을 한다. 내 생각으로는 그렇다. 장갑을 어디에 뒀더라? 머릿 속으로 찾으려고 뒤진 방은 관념이다. 단순한 도식에 불과하다. 나는 그 방을 장갑이 있을 법한 여러 장소로만 이루어진 세트라고 생각한다. (p250)


책을 읽으면서 하는 하는 상상은 대부분 시각적인 자유 연상으로 이루어지며 따라서 작가가 쓴 내용에 매여 있지 않다. (우리느 책을 읽는 동안 몽사에 잠긴다.) (p312)


벅 멀리건을 서술한 표현을 빌려 우리는 실제로 누구든 그려낼 수 있다. 하지만 벅 멀리건을 정의하는 말은 '당당하고 통통한'과 같이 벅 멀리건을 소개하는 형용사이다. 그런데 그림에서는 다르다. 나에게는 그 표현이 어떤 유형을 가리키는 기호가 된다.(p386)


작가는 경험을 감독하는 사람이다. 세계를 매운 소음을 거르고 그 속에서 가장 순수한 신호를 잡아낸다. 무질서 속에서 이야기를 짠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책이라는 형태로 꾸며 신비로운 방식으로 책 읽는 경험을 주관한다. 하지만 작가가 독자한테 제공하는 정보가 아무리 순수하더라도, 작가가 아무리 부지런하게 거르고 빈틈없이 재현하더라도 독자는 머릿속으로 분석하고 검토하며 분류하는 이미 정해진 임무를 그대로 이어간다. (p420)


작가는 글을 쓸 때 환원하고 독자는 책을 읽을 때 환원한다. 우리 뇌는 환원하고 대체하고 상징하도록 되어 있다. 그럴 듯한 신빙성은 가짜 우상일 뿐 아니라 다다를 수 없는 고지다. 그래서 우리는 환원한다.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환원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세계를 파악한다.인간이라서 그렇게 할 수 있다.(p433)


우리는 작가가 설정해 놓은 이야기에 갇히게 된다. 작가의 세세한 관찰력은 독자에게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모든 것을 세세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모든 작가가 그렇게 친절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중요한 것을 감춤으로서 독자는 그 안에서 자기의 생각과 상상력이 들어가게 되고,우리는 모두가 몽상가가 되어간다. 나의 경험이 오롯이 들어가게 되고, 소설 속 텍스트 안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나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생각하게 된다. 아이가 소설을 읽는 시점과, 어른이 소설을 읽는 시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경험의 차이, 소설을 읽는 백그라운드의 차이는 소설을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밖에 없으며, 어릴 적 재미있게 읽었던 어린이 소설과 동화책이 성인이 되어서 재미가 반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잇다. 저자는 아트 디렉터이며, 책의 표지를 재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책의 컨텐츠에 따라 표지를 결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는 제임스 조이스와 프루스트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고 있어서 흥미로웠다.대체로 우리는 주어와 동사를 중심으로 읽아 나간다. 저자는 율리시스나  피네간의 경야와 같은 어려운 책을 읽을 땐 형용사와 부사에 관심을 가진다면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고, 무언가 엇박자되어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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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빈터 작가정신 소설향 7
최윤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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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나'의 이름은 고진희다. 시골에 살게 된 건 도로 위에서 우연히 바라보았던 전나무 숲이었다. 그 전나무 숲에 꽃혀 서울의 변두리에서 시골로 들어가면서 깡촌다운 깡촌에 들어가게 되다. '나'에게는 동갑내기 동거남 '민구'가 있다. 결혼하지 않았지만, 시골에 살아가려면 부부가 되어야 한다. 시골에서 '여보'라는 호칭은 진희와 민구 사이에는 여전히 어색하다.


제약회사 간호사실에서 일하는 진희와 같은 곳에서 민구는 사보 편집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도시에 살아가지만 도시에서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도시는 규칙이 존재하고, 그 규칙에 벗어나면 누군가 항의하게 된다. 인공적인 구조물에 둘러 싸이면서, 사람 사이에 간격이 좁아지게 되고 그들은 서로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 룰이 존재한다.하지만 자연에서는 그렇지 않다. 시골에서는 그렇지 않다. 나와 너 사이의 빈공간이 주는 편안함, 두 사람이 키우는 진돗개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도시에서 전나무 숲이 있는 시골로 피신하게 되었다.


전나무 숲을 보고 싶었기에 숲과 가까이 있는 집을 선택하였고, 그곳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집이 어떻든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전나무 숲이었으니까, 시골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면서 목욕탕을 만들어 나가던 '나'는 민구가 없는 사이 숲속의 빈 공터 사이에서 무언가 발견하게 된다. 그건 늙은 한 남자였다.'나'는 그 남자를 보고 소스라칠 수 밖에 없었다. 그남자는 '나'의 입장에서는 침입자였다. 시골이 주는 아늑함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며, 그 남자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시골 사람들에게 물어보게 된다. 하지마 그들은 그 늙은 남자에 대해 물어보는 '나'를 불편해 한다. 그건 그 늙은 남자의 과거 때문이다. 남자의 가족은 시골에 떠나 있지만, 그 남자는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처음 민구는 '나'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 남자를 직접 보고 나서 '나'가 말하는 사실이 진실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이 소설은 숲이 주는 우리의 보편적인 느낌이 아닌 또다른 느낌을 보여준다. 숲에서의 빈 여백, 빈공간, 빈 시간은 두 사람이 생각하는 그런 '비어있음'의 의미가 아니었다. 누군가 그 공간을 삐집고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의도치 않은 침입자가 나타남으로서 일상의 변화가 나타나게 된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소설 속에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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