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남의 글을 내글 처럼 (체험판)
유지훈 지음 / 투나미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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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번역가는 일본 추리 소설이나, 미국, 영국 추리 소설을 번역하는 분들을 제외하곤 다양한 작품을 직역과 중역을 통해 해외에서 출간된 책을 번역하신 김석희씨, 세익스피어 번역의 대가 김재남씨, 제임스 조이스 번역의 대가이면서,그의 작품을 번역하기 위해 언어의 변화와 파괴를 통해 새로운 작품을 구현하신 김종건씨가 있다. 내 기억속의 번역가 목록에는 유지훈씨는 없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가 읽었던 수많은 책들은 외국 번역서였으며, 누가 번역했는지 번역자의 이름엔 크게 관심 가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번역가로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 번역가 유지훈씨의 글을 통해 느끼게 된다.








번역. 그건 남의 글을 내글로 옮기는 작업이다.다른 나라에서 쓰여지는 언어를 우리가 쓰는 한글로 옮겨가는 작업이 바로 번역 그 자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같은 단어라도 의미에 따라 어감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존대어가 있는 우리의 언어 특성상died 의 의미도 수십개로 나뉠 수 있다. 그건 번역가의 생각이나 번역 스타일에 따라 선택되어지고, 번역된 책의 특징도 달라진다. 셍텍지베리의 어린 왕자가 다양하게 번역되어 있어도,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다양하게 번역되어 있어도 그 특징은 미세하게 달라질 수 있다.











시중에 퍼저 있는 다양한 번역서의 책 제목이다. 그 책 제목에는 원제목과 다른 한글 제목이 더해진다. 소설의 전체 의미에 따라서,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 한글 제목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개정판과 재개정판의 제목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있으며, 책 제목이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느냐 안 되느냐 명운을 좌우할 때도 있다. 책 제목이 불변인 경우는 위대한 게츠비, 카프카의 변신 등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책들, 스테디셀러 같은 책들은 원형 그대로 유지가 된다.












번역서와 한글 번역본의 책 표지이다. 왼쪽은 원서이고,오른 쪽은 한글 번역 도서이다. 서평을 쓰다보면, 독후감을 쓰다보면 원서와 한긆찬이 같이 검색될 때가 있다. 그럴 땐 한글 번역책만 남기지 않는다. 원서도 같이 올릴 때가 있고, 그럴 경우 원서의 첫 리뷰로 올라가는 경우가 간혹 있다. 때로는 원서의 표지조차 알지 못할 때도 있으며, 그럴 땐 아마존 닷컴이나 구글을 참고할 때가 있다. 가끔 저자의 이름으로 검색할 때 그 책이 번역되지 않아서 속상할 때도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피부로 느낄 때가 있다. 팔리지 않는 책은 번역되지 않는다는 그 불문율이 지금까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 내 글을 쓰는 것과 남의 글을 내글로 옮길 때는 그 의미가 달라진다. 번역가도 창작의 일종이고,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에서, 출판계에서 번역가의 처우는 상당히 열악하다. 저자는 프리랜서로서 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벌고 있으며, 출판사와 갑을 관계에 놓여질 때가 많다. 그들은 저자에게 다양한 요구를 하고, 편집자가 바뀌면 그때도 다시 또다른 요구가 생겨난다.. 여기서 출판사가 엎어지고 사라지면, 번역자는 돈을 받지 못하고 사기당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돌이켜 보면 이런 모습은 저자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유명 번역가가 아니라면 대다수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투잡을 하게 되고, 번역이 없을 땐 또다른 일을 하는 건 아닐런지. 매해 번역가가 쏟아지는 가운데, 번역가의 이름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경우가 많지 않은 현실이 안타까울 다름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생계에 대한 걱정을 안고 있으면서 번역을 하고 살아가며, 다양한 책들을 우리에게 내놓고 있다. 이 책은 번역가의 삶이 어떤지 알 수 있으며, 그들에게 관심과 배려가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일께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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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남의 글을 내글 처럼
유지훈 지음 / 투나미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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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번역가는 일본 추리 소설이나, 미국, 영국 추리 소설을 번역하는 분들을 제외하곤 다양한 작품을 직역과 중역을 통해 해외에서 출간된 책을 번역하신 김석희씨, 세익스피어 번역의 대가 김재남씨, 제임스 조이스 번역의 대가이면서,그의 작품을 번역하기 위해 언어의 변화와 파괴를 통해 새로운 작품을 구현하신 김종건씨가 있다. 내 기억속의 번역가 목록에는 유지훈씨는 없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가 읽었던 수많은 책들은 외국 번역서였으며, 누가 번역했는지 번역자의 이름엔 크게 관심 가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번역가로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 번역가 유지훈씨의 글을 통해 느끼게 된다.








번역. 그건 남의 글을 내글로 옮기는 작업이다.다른 나라에서 쓰여지는 언어를 우리가 쓰는 한글로 옮겨가는 작업이 바로 번역 그 자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같은 단어라도 의미에 따라 어감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존대어가 있는 우리의 언어 특성상died 의 의미도 수십개로 나뉠 수 있다. 그건 번역가의 생각이나 번역 스타일에 따라 선택되어지고, 번역된 책의 특징도 달라진다. 셍텍지베리의 어린 왕자가 다양하게 번역되어 있어도,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다양하게 번역되어 있어도 그 특징은 미세하게 달라질 수 있다.











시중에 퍼저 있는 다양한 번역서의 책 제목이다. 그 책 제목에는 원제목과 다른 한글 제목이 더해진다. 소설의 전체 의미에 따라서,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 한글 제목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개정판과 재개정판의 제목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있으며, 책 제목이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느냐 안 되느냐 명운을 좌우할 때도 있다. 책 제목이 불변인 경우는 위대한 게츠비, 카프카의 변신 등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책들, 스테디셀러 같은 책들은 원형 그대로 유지가 된다.












번역서와 한글 번역본의 책 표지이다. 왼쪽은 원서이고,오른 쪽은 한글 번역 도서이다. 서평을 쓰다보면, 독후감을 쓰다보면 원서와 한긆찬이 같이 검색될 때가 있다. 그럴 땐 한글 번역책만 남기지 않는다. 원서도 같이 올릴 때가 있고, 그럴 경우 원서의 첫 리뷰로 올라가는 경우가 간혹 있다. 때로는 원서의 표지조차 알지 못할 때도 있으며, 그럴 땐 아마존 닷컴이나 구글을 참고할 때가 있다. 가끔 저자의 이름으로 검색할 때 그 책이 번역되지 않아서 속상할 때도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피부로 느낄 때가 있다. 팔리지 않는 책은 번역되지 않는다는 그 불문율이 지금까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 내 글을 쓰는 것과 남의 글을 내글로 옮길 때는 그 의미가 달라진다. 번역가도 창작의 일종이고,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에서, 출판계에서 번역가의 처우는 상당히 열악하다. 저자는 프리랜서로서 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벌고 있으며, 출판사와 갑을 관계에 놓여질 때가 많다. 그들은 저자에게 다양한 요구를 하고, 편집자가 바뀌면 그때도 다시 또다른 요구가 생겨난다.. 여기서 출판사가 엎어지고 사라지면, 번역자는 돈을 받지 못하고 사기당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돌이켜 보면 이런 모습은 저자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유명 번역가가 아니라면 대다수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투잡을 하게 되고, 번역이 없을 땐 또다른 일을 하는 건 아닐런지. 매해 번역가가 쏟아지는 가운데, 번역가의 이름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경우가 많지 않은 현실이 안타까울 다름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생계에 대한 걱정을 안고 있으면서 번역을 하고 살아가며, 다양한 책들을 우리에게 내놓고 있다. 이 책은 번역가의 삶이 어떤지 알 수 있으며, 그들에게 관심과 배려가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일께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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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글을 내 글처럼
유지훈 지음 / 투나미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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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번역가는 일본 추리 소설이나, 미국, 영국 추리 소설을 번역하는 분들을 제외하곤 다양한 작품을 직역과 중역을 통해 해외에서 출간된 책을 번역하신 김석희씨, 세익스피어 번역의 대가 김재남씨, 제임스 조이스 번역의 대가이면서,그의 작품을 번역하기 위해 언어의 변화와 파괴를 통해 새로운 작품을 구현하신 김종건씨가 있다. 내 기억속의 번역가 목록에는 유지훈씨는 없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가 읽었던 수많은 책들은 외국 번역서였으며, 누가 번역했는지 번역자의 이름엔 크게 관심 가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번역가로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 번역가 유지훈씨의 글을 통해 느끼게 된다.








번역. 그건 남의 글을 내글로 옮기는 작업이다.다른 나라에서 쓰여지는 언어를 우리가 쓰는 한글로 옮겨가는 작업이 바로 번역 그 자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같은 단어라도 의미에 따라 어감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존대어가 있는 우리의 언어 특성상died 의 의미도 수십개로 나뉠 수 있다. 그건 번역가의 생각이나 번역 스타일에 따라 선택되어지고, 번역된 책의 특징도 달라진다. 셍텍지베리의 어린 왕자가 다양하게 번역되어 있어도,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다양하게 번역되어 있어도 그 특징은 미세하게 달라질 수 있다.











시중에 퍼저 있는 다양한 번역서의 책 제목이다. 그 책 제목에는 원제목과 다른 한글 제목이 더해진다. 소설의 전체 의미에 따라서,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 한글 제목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개정판과 재개정판의 제목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있으며, 책 제목이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느냐 안 되느냐 명운을 좌우할 때도 있다. 책 제목이 불변인 경우는 위대한 게츠비, 카프카의 변신 등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책들, 스테디셀러 같은 책들은 원형 그대로 유지가 된다.












번역서와 한글 번역본의 책 표지이다. 왼쪽은 원서이고,오른 쪽은 한글 번역 도서이다. 서평을 쓰다보면, 독후감을 쓰다보면 원서와 한긆찬이 같이 검색될 때가 있다. 그럴 땐 한글 번역책만 남기지 않는다. 원서도 같이 올릴 때가 있고, 그럴 경우 원서의 첫 리뷰로 올라가는 경우가 간혹 있다. 때로는 원서의 표지조차 알지 못할 때도 있으며, 그럴 땐 아마존 닷컴이나 구글을 참고할 때가 있다. 가끔 저자의 이름으로 검색할 때 그 책이 번역되지 않아서 속상할 때도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피부로 느낄 때가 있다. 팔리지 않는 책은 번역되지 않는다는 그 불문율이 지금까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 내 글을 쓰는 것과 남의 글을 내글로 옮길 때는 그 의미가 달라진다. 번역가도 창작의 일종이고,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에서, 출판계에서 번역가의 처우는 상당히 열악하다. 저자는 프리랜서로서 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벌고 있으며, 출판사와 갑을 관계에 놓여질 때가 많다. 그들은 저자에게 다양한 요구를 하고, 편집자가 바뀌면 그때도 다시 또다른 요구가 생겨난다.. 여기서 출판사가 엎어지고 사라지면, 번역자는 돈을 받지 못하고 사기당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돌이켜 보면 이런 모습은 저자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유명 번역가가 아니라면 대다수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투잡을 하게 되고, 번역이 없을 땐 또다른 일을 하는 건 아닐런지. 매해 번역가가 쏟아지는 가운데, 번역가의 이름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경우가 많지 않은 현실이 안타까울 다름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생계에 대한 걱정을 안고 있으면서 번역을 하고 살아가며, 다양한 책들을 우리에게 내놓고 있다. 이 책은 번역가의 삶이 어떤지 알 수 있으며, 그들에게 관심과 배려가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일께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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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 제인 오스틴 - 그래픽으로 읽는 제인 오스틴 인포그래픽 시리즈
소피 콜린스 지음, 박성진 옮김 / 큐리어스(Qrious)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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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인 오스틴의 작품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소설은 <오만과 편견>,<에마Emma>,<노생거 수도원>,<이성과 감성>,<맨스필드 파크>,<설득> 이 있다. 제인오스틴 사후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작품들은 사랑받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원작 소설 뿐 아니라 영화로도 제작되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내가 봤던 제인오스틴 원작 영화는 오만과 편견, 알리시아 실버스톤 주연의 영화 클루리스 뿐이다. 1995년에 개봉된 영화 클루리스는 제인 오스틴 영화 에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화이며,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 영화의 원작이 엠마인지 사실 알지 못했다. 그건 그 영화가 상당히 현대적 색체가 짙으면, 소설 엠마와 연결고리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엔 이 책을 가볍게 생각하고 읽어나갔다. 그림과 일러스트 일색의 이 책은 청소년이 읽어도 무방할 정도로 쉽게 쓰여졌다. 하지만 이 책은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동안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알려졌지만, 그녀의 일대기나 삶에 대해선 거의 알지 못하였고, 제인 오스틴 전기와 평전이 거의 소개된 적이 없었다. 이 책은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18세기 영국의 모습과 그 때의 삶을 개괄적으로 알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의 아버지는 조지 오스틴 목사이며, 제인오스틴은 어린 시절 목사관에서 생활했다. 8남매중 7째 막내 딸이었던 제인오스틴의 벗은 바로 언니 카산드라 엘리자베스 오스틴이며, 현존하는 160개의 편지 중 절반 이상은 카산드라와 주고 받은 편지이다.


내가 읽은 소설도 본 영화도 오만과 편견 딱 하나이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제인오스틴의 삶이나 소설 속 이야기가 조금은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8형제와 함께 살면서 중산층 영국인의 삶을 누렸던 제인 오스틴, 풍족한 삶을 살았던 제인 오스틴 조차 소설을 쓰면서 살아가기엔 쉽지 않앗다. 그녀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녀의 4째 오빠 헨리의 공이 컷으며, 무명작가로서 살아온 제인오스틴은 35살이 되어서 영국 문단에 데뷔할 수 있게 된다. 그녀의 작품 중 생전에 출간된 책은 4편 뿐이었으며, 사후 제인 오스틴은 비로서 자신의 이름이 쓰여진 소설을 모두 춠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영국의 문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1780년 제인 오스틴 회고록이 출간되고,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점점 더 명성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제인 오스틴은 1775년 태어나 1817년 세상을 떠나게 된다.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18개월은 병마에 시달리면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책에서 제인 오스틴의 병명에 대해 나오는데 1964년 자카리 포프 경의 논문에는 제인 오스틴의 병을 부신 피질 호르몬 부족으로 생기는 애디슨 병으로 추측하였다. 이후 제인 오스틴의 병에 대해서 위암과 결핵 등등 다양한 추측이 등장하였지만, 지금은 림프암의 일종인 호지킨 림프종이 제인 오스틴이 사망할 때의 병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책에는 이외에도 제인 오스틴 사후 우리에게 알려진 작가 브론테 자매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에블리나> ,<세실리아>,<카밀라>,<방랑자>를 쓴 패니 버니도 나오는데, 그녀의 작품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책을 좋아한다면 제인 오스틴의 <노생거 수도원>을 읽어 보는 것도 괜찮다. 그 책에는 영국의 고딕 소설이 나오며, 엘리자 파슨스, 루드비히 플레멘버크, 앤 래드클리프,매튜 루이스, 칼 그로세, 레지나 마리아 로슈, HD 시먼즈, 엘리너 슬리츠의 작품 세계도 함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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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치유, 아직 만나지 못한 나를 만나다
윤인모 지음 / 판미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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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무엇이며, 어떻게 치유되는 걸까, 나는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 책을 통해 찾아보고자 하였다. 아이가 되어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 가면서 의도치 않게 얻게 되는 수많은 상처들, 그 상처들은 우리 몸 속속에 깊숙히 박혀 기억된다. 그것이 때로는 의도치 않는 상황과 장소에서 불현듯 나타날 때도 있다. 그럴 땐 인간의 속성은 단절과 끊어짐, 포기로 이어질 수 있다. 트라우마는 우리 삶의 연속성과 예측성에서 벗어나 정지된 어느 한 시점으로 이끌어 나가고 , 그것은 쓰레기인 채 방치되고 있다. 저자는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선 단절과 버림이 핵심이며, 스스로 기억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어야 치유의 길이 열리게 된다 말하고 있다.


아이가 어른이 되려고 하는 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구체화하기 위해서이다. 어른이 아이가 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다만 어른에게는 트라우마가 추가될 뿐이다. 성장하면서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상처들, 인간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새출발하고 싶어한다. 트라우마는 강한 전염적인 속성을 지닌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상처는 분노로 이어지며, 나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고통으로 기억되고, 그것은 감정으로 연결되어진다. 트라우마에 관한 다양한 사례가 책에 등장하고 있으며, 상담자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대화를 시도하게 된다. 고통의 근원은 어디에서 오는지, 명상을 통해서 치유하고, 고통의 근원이 되는 기억들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감정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쪽 발은 엑셀러레이터를 누르고 다른 발로
는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것과도 같다. 당신의 차를 매일 그렇
게 운전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저기 찢어질 것이다. 예
컨데 분노와 적개심으로 주먹으로 때려 주고 싶은 것을 자꾸
참다 보면 어느덧 어깨 부위에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정착하게 
될 것이다. (P174)


대한민국은 유교 사회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전통이 흐려지고 있지만 생활양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신의 감정을 사회 밖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또다른 후회로 이어질 수 있고, 지탄 받을 가능성도 현존한다. 그것이 우리가 안고 있는 두려움과 공포의 실체이며, 트라우마는 항상 곳곳에 불현듯 나타날 수 있다. 자기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르는 것 도한 유교적 미덕이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또다른 폐단의 하나이다. 참고 참다 보면 어느새 터지고 말고, 남을 파괴하거나 자신을 파괴하게 된다. 트라우마는 그렇게 잉태되고, 전염되고 누군가를 파괴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후회하게 된다. 때로는 자신의 몸으로 그 트라우마를 생성하고 파괴하고 또 생성하는 과정이 이루어질 때도 있다. 심적인 괴로움,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트라우마는 생겨나는 것이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나 자신을 바라보고 명상과 대화를 통해 치유할 길을 도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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