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최후의 19일 2 소설 조선왕조실록 17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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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집안이 어떤 집안입니까? 그의 아버지 허엽은 화담 서경덕의 수제자이면서 서산 대사와 친구였고, 큰 형 허성은 선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을 뿐 아니라 서인들과도 가까운 친분을 유지하였으며, 작은 형 허봉은 서애 류성룡,손곡 이달,석봉 한호 등과 호형호제하면서 사명 대사와도 친하지 않았소이까? 이런 가문의 일원이었기에 허균은 아버지와 작은 형으로부터 학풍을 이어받았고, 큰 형을 통해 오성 이항복과 마음을 만났으며, 작은형의 친구 서애 류성룡을 통해 퇴계의 학풍을 ,손곡이달을 통해 성당의 시를 익혔고, 서산대사나 사명 대사로부터 불교의 정수를 배웠던 겁니다.(-42-)


"대감! 소첩은 매창이 아니어요.소첩을 통해 매창을 보시겠다면, 다시는 이곳으로 오지 마세요.소첩은 이매창이 아니고 추섬이랍니다."
그제서야 허균은 이매창에 대한 그리움을 접고 열여섯 살의 기생 추섬을 발견했다.이매창을 많이 닮긴 했지만 추섬은 이매창보다 두뼘이나 더 키가 크고 앙증맞은 보조개까지 있었다. (-160-)


네 인생의 주인이 너 자신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너의 인생은 네가 만난 사람들, 네가 읽은 책들, 네가 본 사물들과 풍광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게다. 그리고 너 역시 그들의 삶에 개입하는 것이고.(-227-)


"술에 취하는 데는 각기 적절함이 있는 법입니다.꽃에서 취할 때에는 해의 광명을 받아야 하고,눈에서 취할 때에는 밤을 이용하여 눈의 청결을 만끽해야 하고,득의에 의해 마실 때에는 노래를 불러서 그 화락을 유도해야 하고, 이별에 의해 마실 때에는 바리때를 두들겨서 그 신기를 장쾌하게 해야 하고, 문인과 취할 때에는 절조와 문장을 신중하게 하여 그의 수모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하고, 주인과 취할 때는 술잔의 기치를 더하여 그 열협을 도와야 하고, 누각에서 취할 때에는 여름철을 이용하여 그 시원함을 의뢰해야 하고, 물에서 취할 대에는 가을철을 이용하여 그 상쾌함을 돋우어야 하지요."(-287-)


"우선 대역 죄인 허균은 우경방, 현응민, 하인준, 김윤황을 오늘 당장 능지처참하시옵소서.그리고 원종, 봉학, 돌한, 추섬, 성옥 등도 살려 둘 수 없사옵니다."(-401-)


저작거리에 효시된 다섯 개의 머리가 장대 끝에서 일제히 흔들렸다.필운산을 넘어온 강쇠바람 때문이었다. 좌우로 벌려선 의금부의 군졸들이 길게 하품을 해 댔다.주위를 둘러싼 의금부의 군졸들이 길게 하품을 해 댔다. (-411-)


허균은 조선시대 금수저였다.그러나 그는 비주류였다.그가 가지고 인맥은 남들이 넘보지 못하는 존재가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횡보는 그것을 잘활용하지 못하였고, 조선기대 기벽의 대표인물로 남게 된다. 죽음 앞에서 물러나지 않았던 그의 기개는 지금의 시대적인 모습으로 보자면 때로는 무모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가 추구해왔던 정치와 삶의 방식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삶을 살것인가에 대한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누릴 수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내려놓고, 자신이 뜻한 바대로 살아왔던 그의 삶의 방식은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 조선의 권력을 쥔 광해군에게 도전하였고, 그는 처참하게 깨지게 된다.


결과는 뻔하였다. 하지만 그는 무모했지만, 수는 있었다. 돌이켜 보면 조선의 아웃사이더 허균은 지금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실패했지만, 결코 실패하지 않았던 그 가치들, 그는 깨졌지만, 그의 정신은 지금까지 남아있었다. 살아가기 위해서 결코 비겁해지지 말아야 한다는 거, 허균의 삶의 방식을 김탁환 작가의 시선으로 다시 보고 싶었던 이유는 그 시대의 사회의 모습이 지금 우리 사회에 다시 반복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자와 그 기득권에 항거하는 자들 사이의 시소 게임은 그렇게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진지한 고민과 마주하게 된다. 결국 허균은 죽임을 당하였고, 머리는 효수되었다. 잔혹한 죽음 앞에서 초연했던 그의 모습들은 많은 이들에게 자신이 주어진 것을 보존하면서 살아가면 결국 우리 스스로 도태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그가 보여주고자 했던 혁명은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가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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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최후의 19일 - 상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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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이 굳은 얼굴로 박치의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아니야,지금 갔다간 개죽음을 당할 뿐이지. 때를 기다리게."(-20)


5년동안 이이첨과 허균은 쌍둥이처럼 움직였다.기자헌을 유배 보내고 인목 대비를 서궁에 가두기까지, 그들의 목소리는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확실히 그랬다. 그러나 이이첨은 늘 허균이 꺼림칙했다.5년 전, 이이첨이 허균의 중용을 광해군에게 청한 것은 그의 글재주와 지모를 아껴서였지 그를 신뢰해서가 아니었다. 조정의 중론을 이끌면서도, 허균은 종종 제멋대로 행동하여 이이첨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73-)


허균이 가슴을 밀착시키며 성옥의 입술을 훔치자마자, 그녀는 두 다리를 치켜든 채 비단 이불로 쓰러졌다. 속저고리와 다리속곳까지 완전히 벗겨 내고 운우지락을 이루기 직전, 허균은 두 눈을 큭게 뜨고 성옥의 터질 듯한 알몸뚱이를 내려다 보았다.누우렇게 익을 대로 익은 해바라기가 태양처럼 그를 우러르고 있었다. (-181-)


왜 세상을 바꾸려느냐고 물었나?이대로 대충 당상관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금강산이나 변산에서 말년을 보내고 싶지는 않은가 이 말이지? 솔직히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네.하나 나는 이 세상을 바꾸고 싶어. 더 이상 인간에게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220-)


영의정 기자헌이 서궁 삭출을 반대하자, 이이첨과 허균을 따르던 유생들은 기자헌의 삭탈관직을 청했다.광해군이 이를 윤허하자 이번에는 아예 기자헌을 죽여야 한다는 공론이 들끓었다.기준격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스승인 허균을 처참하게 짓밟는 비밀 상소문을 올렸다.(-276-)


허균은 설경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간단한 언문을 깨치는 것으로 족한 평범한 삶을 바랐던 것이다.그러나 설경은 고모인 허난설헌이 총명함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이였다.서재에서 홀로 서책들과 놀더니 어렵사리 오언 율시를 지을 정도가 되었다. (-412-)


김탁환의 <허균, 최후의 19일>은 무오년 1618년 허균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죽기 직전 허균은 허난설헌의 오빠였으며, 서자였다. 뿌리깊은 서자의 신분으로서 차별을 느끼면서 살았던 허균은 1만개의 한시를 외울 정도로 조선의 천재로 불리었다.이상적인 나라 율도국을 그려내었던 소설 <홍길동전>은 허균의 이상향과 야망을 그려내고 있었다. 광해군 당시에 살았던 허균은 이이첨과 쌍벽을 이루는 권력의 핵심이었다. 건천동에 살았던 허균과 쌍리동에 살았던 이이첨, 고을의 지붕만 보아도 신분의 차이, 격의 차이가 눈에 드러나고 있었다. 허균의 천재성과 시대를 바라보는 안목은 그렇게 사람들을 불러 모았으며, 광해군도 허균을 어찌하지 못하였다.


때를 기다려야 했다. 나라를 흔들려면 그만큼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허균은 그렇게 자신이 해야 할 야망을 표출하기 위해서 기다림을 자쳐하였으며, 새로운 시대를 원하였다. 그 과정에서숭례문 흉격을 자행했으며, 호시탐탐 모반을 일으키기 위한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이 소설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광해군의 고민에 있다. 천하의 난봉꾼 허균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조선의 기회주의자 이이첨을 선택할 것인가, 분명히 허균이 자신의 업적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지만, 허균은 독이 될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를 내칠수도 없는 입장이었고, 허균의 모반을 알면서도 선택을 하지 못하였다. 결정적인 사건, 유화책을 광해군이 내세우게 되는데, 이이첨은 허균을 관찰하면서, 행동 개시에 골몰하게 된다. <허균 , 최후의 19일은 1> 은 도성에 진입한 무오년 (1618년) 8월 6일부터 8월 15일, 10일째 되는 날까지 허균의 행적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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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최후의 19일 1
김탁환 지음 / 푸른숲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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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이 굳은 얼굴로 박치의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아니야,지금 갔다간 개죽음을 당할 뿐이지. 때를 기다리게."(-20)


5년동안 이이첨과 허균은 쌍둥이처럼 움직였다.기자헌을 유배 보내고 인목 대비를 서궁에 가두기까지, 그들의 목소리는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확실히 그랬다. 그러나 이이첨은 늘 허균이 꺼림칙했다.5년 전, 이이첨이 허균의 중용을 광해군에게 청한 것은 그의 글재주와 지모를 아껴서였지 그를 신뢰해서가 아니었다. 조정의 중론을 이끌면서도, 허균은 종종 제멋대로 행동하여 이이첨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73-)


허균이 가슴을 밀착시키며 성옥의 입술을 훔치자마자, 그녀는 두 다리를 치켜든 채 비단 이불로 쓰러졌다. 속저고리와 다리속곳까지 완전히 벗겨 내고 운우지락을 이루기 직전, 허균은 두 눈을 큭게 뜨고 성옥의 터질 듯한 알몸뚱이를 내려다 보았다.누우렇게 익을 대로 익은 해바라기가 태양처럼 그를 우러르고 있었다. (-181-)


왜 세상을 바꾸려느냐고 물었나?이대로 대충 당상관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금강산이나 변산에서 말년을 보내고 싶지는 않은가 이 말이지? 솔직히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네.하나 나는 이 세상을 바꾸고 싶어. 더 이상 인간에게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220-)


영의정 기자헌이 서궁 삭출을 반대하자, 이이첨과 허균을 따르던 유생들은 기자헌의 삭탈관직을 청했다.광해군이 이를 윤허하자 이번에는 아예 기자헌을 죽여야 한다는 공론이 들끓었다.기준격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스승인 허균을 처참하게 짓밟는 비밀 상소문을 올렸다.(-276-)


허균은 설경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간단한 언문을 깨치는 것으로 족한 평범한 삶을 바랐던 것이다.그러나 설경은 고모인 허난설헌이 총명함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이였다.서재에서 홀로 서책들과 놀더니 어렵사리 오언 율시를 지을 정도가 되었다. (-412-)


김탁환의 <허균, 최후의 19일>은 무오년 1618년 허균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죽기 직전 허균은 허난설헌의 오빠였으며, 서자였다. 뿌리깊은 서자의 신분으로서 차별을 느끼면서 살았던 허균은 1만개의 한시를 외울 정도로 조선의 천재로 불리었다.이상적인 나라 율도국을 그려내었던 소설 <홍길동전>은 허균의 이상향과 야망을 그려내고 있었다. 광해군 당시에 살았던 허균은 이이첨과 쌍벽을 이루는 권력의 핵심이었다. 건천동에 살았던 허균과 쌍리동에 살았던 이이첨, 고을의 지붕만 보아도 신분의 차이, 격의 차이가 눈에 드러나고 있었다. 허균의 천재성과 시대를 바라보는 안목은 그렇게 사람들을 불러 모았으며, 광해군도 허균을 어찌하지 못하였다.


때를 기다려야 했다. 나라를 흔들려면 그만큼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허균은 그렇게 자신이 해야 할 야망을 표출하기 위해서 기다림을 자쳐하였으며, 새로운 시대를 원하였다. 그 과정에서숭례문 흉격을 자행했으며, 호시탐탐 모반을 일으키기 위한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이 소설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광해군의 고민에 있다. 천하의 난봉꾼 허균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조선의 기회주의자 이이첨을 선택할 것인가, 분명히 허균이 자신의 업적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지만, 허균은 독이 될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를 내칠수도 없는 입장이었고, 허균의 모반을 알면서도 선택을 하지 못하였다. 결정적인 사건, 유화책을 광해군이 내세우게 되는데, 이이첨은 허균을 관찰하면서, 행동 개시에 골몰하게 된다. <허균 , 최후의 19일은 1> 은 도성에 진입한 무오년 (1618년) 8월 6일부터 8월 15일, 10일째 되는 날까지 허균의 행적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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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최후의 19일 1 소설 조선왕조실록 16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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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이 굳은 얼굴로 박치의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아니야,지금 갔다간 개죽음을 당할 뿐이지. 때를 기다리게."(-20)


5년동안 이이첨과 허균은 쌍둥이처럼 움직였다.기자헌을 유배 보내고 인목 대비를 서궁에 가두기까지, 그들의 목소리는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확실히 그랬다. 그러나 이이첨은 늘 허균이 꺼림칙했다.5년 전, 이이첨이 허균의 중용을 광해군에게 청한 것은 그의 글재주와 지모를 아껴서였지 그를 신뢰해서가 아니었다. 조정의 중론을 이끌면서도, 허균은 종종 제멋대로 행동하여 이이첨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73-)


허균이 가슴을 밀착시키며 성옥의 입술을 훔치자마자, 그녀는 두 다리를 치켜든 채 비단 이불로 쓰러졌다. 속저고리와 다리속곳까지 완전히 벗겨 내고 운우지락을 이루기 직전, 허균은 두 눈을 큭게 뜨고 성옥의 터질 듯한 알몸뚱이를 내려다 보았다.누우렇게 익을 대로 익은 해바라기가 태양처럼 그를 우러르고 있었다. (-181-)


왜 세상을 바꾸려느냐고 물었나?이대로 대충 당상관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금강산이나 변산에서 말년을 보내고 싶지는 않은가 이 말이지? 솔직히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네.하나 나는 이 세상을 바꾸고 싶어. 더 이상 인간에게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220-)


영의정 기자헌이 서궁 삭출을 반대하자, 이이첨과 허균을 따르던 유생들은 기자헌의 삭탈관직을 청했다.광해군이 이를 윤허하자 이번에는 아예 기자헌을 죽여야 한다는 공론이 들끓었다.기준격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스승인 허균을 처참하게 짓밟는 비밀 상소문을 올렸다.(-276-)


허균은 설경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간단한 언문을 깨치는 것으로 족한 평범한 삶을 바랐던 것이다.그러나 설경은 고모인 허난설헌이 총명함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이였다.서재에서 홀로 서책들과 놀더니 어렵사리 오언 율시를 지을 정도가 되었다. (-412-)


김탁환의 <허균, 최후의 19일>은 무오년 1618년 허균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죽기 직전 허균은 허난설헌의 오빠였으며, 서자였다. 뿌리깊은 서자의 신분으로서 차별을 느끼면서 살았던 허균은 1만개의 한시를 외울 정도로 조선의 천재로 불리었다.이상적인 나라 율도국을 그려내었던 소설 <홍길동전>은 허균의 이상향과 야망을 그려내고 있었다. 광해군 당시에 살았던 허균은 이이첨과 쌍벽을 이루는 권력의 핵심이었다. 건천동에 살았던 허균과 쌍리동에 살았던 이이첨, 고을의 지붕만 보아도 신분의 차이, 격의 차이가 눈에 드러나고 있었다. 허균의 천재성과 시대를 바라보는 안목은 그렇게 사람들을 불러 모았으며, 광해군도 허균을 어찌하지 못하였다.


때를 기다려야 했다. 나라를 흔들려면 그만큼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허균은 그렇게 자신이 해야 할 야망을 표출하기 위해서 기다림을 자쳐하였으며, 새로운 시대를 원하였다. 그 과정에서숭례문 흉격을 자행했으며, 호시탐탐 모반을 일으키기 위한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이 소설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광해군의 고민에 있다. 천하의 난봉꾼 허균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조선의 기회주의자 이이첨을 선택할 것인가, 분명히 허균이 자신의 업적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지만, 허균은 독이 될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를 내칠수도 없는 입장이었고, 허균의 모반을 알면서도 선택을 하지 못하였다. 결정적인 사건, 유화책을 광해군이 내세우게 되는데, 이이첨은 허균을 관찰하면서, 행동 개시에 골몰하게 된다. <허균 , 최후의 19일은 1> 은 도성에 진입한 무오년 (1618년) 8월 6일부터 8월 15일, 10일째 되는 날까지 허균의 행적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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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이도 저렇게 울었을 것이다 걷는사람 시인선 10
유용주 지음 / 걷는사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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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자살을 한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뒤
공원의 나무들이 말라 죽었다

자신을 견디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나무도 자살을 한다.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나무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33-)


반거추이

아부지는 일본을 두 번 갔다 왔다
(제일동포가 될 뻔했다 강제징용과 보국대를 알았다)

나는 아부지 젖꼭지를 만지면서 잠들었다

나는 아부지 편지 대필자였다

나는 아부지 외상술을 자주 받아왔다

나는 아부지 일자리를 따라 다녔다

나는 아부지 일본 노랫가락 속에서 자랐다

아부지는 맛나게 담배를 자셨다

셋째가 대학 들어가면 리어카에 배추라도 팔지 뭐

아부자는 반거충이였다.

휴가 때 늙은 아부지는 나를 끌어안았다

말년에 병이 깊어지자 뱀술을 담아 마시고 싶다고 했다

아부지는 간경화로 묻혔다

나는 아부지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40-)


자화상

집을 자주 나간다
자주 물건을 잃어버리다
깜박깜박한다
무얼 잊고 산다
자꾸 터미널에 나간다
자꾸 음식을 데운다
간을 못 맞춘다
집을 못 찾는다
온종일 멍하니 앉아 있다
사람을 몰라본다
얼굴은 기억나는데 이름이 떠오르질 않는다
누군가 하염없이 기다린다
손이 덜덜 떨린다
숨이 차다
술에 취한 듯 어지럽다
말을 어눌하게 한다
입 머캐가 낀다
하루 종일 물을 틀어 놓고 빨래를 한다.
잠이 없어진다
갠 이불을 또 갠다
싼 보따리를 또 싼다
정처 없이 걷는다
귀가 막혀 잘 알아듣지 못한다
기가 막힌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혼자 중얼거린다
무슨 말을 하려다 까먹고 만다
아까 한 말을 또 한다
어린아이가 된다
감정 기복이 심하다
혼자가 좋다.(-70-)


그땐 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문맹자라 불리었다.광복 이후 우리 사회에는 광복 이후 글을 모르는 문맹자가 많았다. 글을 알지 못한 까막눈이어도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들은 글을 모르는 문맹자였지만 삶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 경험에서 우러난 그 지혜는 그 사람의 일상과 삶 전체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방식을 스스로 고찰하게 된다. 시의 힘은 강하다.유용주님의 <어머이도 저렇게 울었을 것이다>는 우리의 되물림되는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나의 죽음 이전에 앞서서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기억들, 그것은 또다른 삶이 되고, 그 삶의 종착지는 또다른 형태의 죽음이다.죽음은 내 삶에 대해 반추하게 되고,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나만의 답,나만의 길을 찾아가게 된다.글을 몰라서 누군가의 도움을 얻어야 했고, 글을 몰라서 억울한 일을 겪어야 했던 그 시대의 자화상을 느낄 수 있다.


사회적 자화상 뿐만 안미라 개인의 자화상도 있다. 점점 더 기억을 잃어가는 것은 우리 스스로 슬픔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된다.예측되지 않은 행동들은 치매의 전조 현상이며, 기억을 꼭 해야 하는 순간에 기억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함으로서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불이익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고 있다.죽음 앞에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무너질 수 있다.나의 울음을 마주하면서, 나의 어머니의 과거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부모의 울음은 나에게로 되돌아 오고, 그 울음은 자녀에게 되물림된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는 걸 일깨워주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재점검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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