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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이도 저렇게 울었을 것이다 ㅣ 걷는사람 시인선 10
유용주 지음 / 걷는사람 / 2019년 6월
평점 :
나무도 자살을 한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뒤
공원의 나무들이 말라 죽었다
자신을 견디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나무도 자살을 한다.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나무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33-)
반거추이
아부지는 일본을 두 번 갔다 왔다
(제일동포가 될 뻔했다 강제징용과 보국대를 알았다)
나는 아부지 젖꼭지를 만지면서 잠들었다
나는 아부지 편지 대필자였다
나는 아부지 외상술을 자주 받아왔다
나는 아부지 일자리를 따라 다녔다
나는 아부지 일본 노랫가락 속에서 자랐다
아부지는 맛나게 담배를 자셨다
셋째가 대학 들어가면 리어카에 배추라도 팔지 뭐
아부자는 반거충이였다.
휴가 때 늙은 아부지는 나를 끌어안았다
말년에 병이 깊어지자 뱀술을 담아 마시고 싶다고 했다
아부지는 간경화로 묻혔다
나는 아부지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40-)
자화상
집을 자주 나간다
자주 물건을 잃어버리다
깜박깜박한다
무얼 잊고 산다
자꾸 터미널에 나간다
자꾸 음식을 데운다
간을 못 맞춘다
집을 못 찾는다
온종일 멍하니 앉아 있다
사람을 몰라본다
얼굴은 기억나는데 이름이 떠오르질 않는다
누군가 하염없이 기다린다
손이 덜덜 떨린다
숨이 차다
술에 취한 듯 어지럽다
말을 어눌하게 한다
입 머캐가 낀다
하루 종일 물을 틀어 놓고 빨래를 한다.
잠이 없어진다
갠 이불을 또 갠다
싼 보따리를 또 싼다
정처 없이 걷는다
귀가 막혀 잘 알아듣지 못한다
기가 막힌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혼자 중얼거린다
무슨 말을 하려다 까먹고 만다
아까 한 말을 또 한다
어린아이가 된다
감정 기복이 심하다
혼자가 좋다.(-70-)
그땐 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문맹자라 불리었다.광복 이후 우리 사회에는 광복 이후 글을 모르는 문맹자가 많았다. 글을 알지 못한 까막눈이어도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들은 글을 모르는 문맹자였지만 삶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 경험에서 우러난 그 지혜는 그 사람의 일상과 삶 전체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방식을 스스로 고찰하게 된다. 시의 힘은 강하다.유용주님의 <어머이도 저렇게 울었을 것이다>는 우리의 되물림되는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나의 죽음 이전에 앞서서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기억들, 그것은 또다른 삶이 되고, 그 삶의 종착지는 또다른 형태의 죽음이다.죽음은 내 삶에 대해 반추하게 되고,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나만의 답,나만의 길을 찾아가게 된다.글을 몰라서 누군가의 도움을 얻어야 했고, 글을 몰라서 억울한 일을 겪어야 했던 그 시대의 자화상을 느낄 수 있다.
사회적 자화상 뿐만 안미라 개인의 자화상도 있다. 점점 더 기억을 잃어가는 것은 우리 스스로 슬픔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된다.예측되지 않은 행동들은 치매의 전조 현상이며, 기억을 꼭 해야 하는 순간에 기억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함으로서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불이익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고 있다.죽음 앞에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무너질 수 있다.나의 울음을 마주하면서, 나의 어머니의 과거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부모의 울음은 나에게로 되돌아 오고, 그 울음은 자녀에게 되물림된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는 걸 일깨워주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재점검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아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