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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간직하고픈 필사 시
백석 외 지음 / 북카라반 / 2022년 9월
평점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픅 쌓이는 밤 흰 당사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ㄷ장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12-)
목마와 숙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보아야 한다.
....등대애....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42-)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난느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60-)
옛이야기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오면은
어스레한 등불에 밤이 오면은
외로움에 아픔에 다만 혼자서
하염없는 눈물에 저는 웁니다.
제 한몸도 예전엔 눈물 모르고
조그마한 세상을 보냈습니다.
그때는 지난날의 옛이야기도
아무 설움 모르고 외웠습니다.
그런데 우리 님이 가신 뒤에는
아주 저를 버리고 가신 뒤에는
전날에 제게 있던 모든 것들이
가지가지 없어지고 말앗습니다.
그러나 그한때 외워두었던
옛이야기뿐만 남았습니다.
나날이 짙어지는 옛이야기는
부질없이 제 몸을 울려줍니다. (-102-)
백석은 1912년에 태어나 1996년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시인 박인환은 1926년에 태어나 1956년 세상을 떠났다. 시인 김소월은 1902년에 태어나 1934년 세상을 떠났다. 길면 90년 가까운 세월의 차이, 짧으면 30년 가까운 삶의 차이,그걸 극복하고, 큰 울림을 주는 시는 우리 삶에 이로움과 따스한 온기, 서정성을 내포할 때가 있다. 단순히 낭송하고, 단순히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을 넘어서서, 시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메쏘드를 내것으로 가져 보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히게 된다. 물질적인 욕망에 치우치면서, 장작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우리의 삶에 대해서, 새롭게 느끼며, 새롭게 따지게 되는 것, 시릏 읽고,시를 필사하면서, 시인의 발자취를 느껴보고 싶어진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은 남한 사람이 사랑하는 최애 북한 사람이었다. 그의 시적인 가치는 인간에게 필요한 공기와 물의 존재에 대해서, 너무나 큰 울림을 느끼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 물질적인 욕구를 넘어서서, 그가 우리가 절대 잃어버리면 안되는 가치, 삶의 의미를 되세기게 해주었다. 살면서, 후회하게 되는 내 앞에 놓여지는 삶, 상처와 아픔에서, 스스로 벗어나게 해주는 건, 시가 가져다 주는 따스하고, 행복에 잦게 만드는 시적 메시지다.
얼마전 다녀온 그 곳 ,강원도 인제에 있는 『박인환 문학관 』, 『시박물관 』 이었다. 그리고 시집 박물관을 다녀 온 바 있었다. 목마와 숙녀, 1956년에 세상을 떠난 그, 그는 그렇게 속절없이 이세상과 멀어졌으며, 그는 목마와 숙녀를 남기게 된다. 그의 생전 처음 마주하였던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그가 꿈꾸었던 암울했던 삶의 이상향과 지향점, 삶에 대한 애증 속에서, 결코 놓칠 수 없었던 사랑의 실체적 접근, 그렇게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살아지고 있었다. 진리에 대한 갈망, 등대가 보이지 않는 그 암울한 세상을 끝끝내 견디면서 살아야 했던 지난날, 그는 슬퍼하였고, 아파하였으며, 무기력해지는 자신의 모습에 무감각해지곤 하였다. 오로지 자신의 아픔을 파도 소리에, 넘쳐 흐르는 바다 소리에 나를 내려 놓고, 내 삶의 근원적인 해갈을 떠올리곤 하였다. 바위 틈새에, 잃어버린 그것이 가져다 주는 것, 살아가고 ,살아지면서, 그렇게 우리는 죽음과 삶의 끝자리에서 헤메곤 하였다. 누군가 흘리게 되는 목소리, 그 목소리 속에 감춰진 인간의 삶, 켜켜히 우리는 상처 입고, 아파하면서, 삶을 응시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