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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ㅣ 창비시선 402
이근화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평점 :
블루베리
아버지의 스물일곱과 만났다.
가슴이 떨렸고
울음이 솟구쳤다.
도륙의 방에서였다.
젊었고 안타까웠고
빗줄기가 은화처럼 쏟아졌다.
검은 개가 문을 지키고 있었다.
발자국이 투명해졌지만
젋은 아버지 곁으로 갈 수가 없었다.
나의 두 귀를 던져주고
아버지의 스물일곱을 잡으려 했다.
눈사람이 검은 입술로 노래를 했다.
이토록 추운 스물일곱
이토록 따가운 스물일곱
개가 나무에 매달렸다.
검은 두 눈알이 쏟아졌다.
아버지의 젊음이 호주머니 속에서 사라졌다. (-21-)
두시
난민의 시간
수도꼭지에서 푸른 물이 똑똑 떨어진다.
마르지 않는 손등
밀어도 가지 않는 고무보트
너무 많은 방향을 가졌네
웃음소리가 새어나간다.
울 수 있단 말인가
손가락을 하나씩 만져보았다.
우리의 욕설과 기도는 말랐다.
거친 이가 있었다.
오늘은 너의 얼굴을 물어뜯을 차례
배고픔 때문이 아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다
슬픔 때문이라면 너의 코를 베어냈을 것이다. (-53-)
이 집의 주인은 개미입니다.
그림자가 작습니다.
이 집의 주인은 욕설입니다.
흥건합니다.
이집의 주인은 얼굴이 붉고
허리가 잘록하고
죽었습니다.
죽은 집입니다.
죽은 담벼락입니다.
죽은 냄비입니다.
끓어오릅니다.
이 집의 주인이
곧 도착할 겁니다.
기다리세요.
이 집의 주인은
딩동
내일밤에 나타날 겁니다.
이 집의 주인은
어젯밤 태어났습니다.
오늘 이 집의 주인은
발이 가지런하고
신발이 없고
개미와 냄비와 달빛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거친 욕을 내뱉으며
이제 막 달려옵니다.
딩동 (-97-)
나의 친구
그녀의 턱은 사각인데
그녀의 입술은 삐뚤어졌다.
그녀의 마리카락은 짧은데
그녀의 눈은 점점 파래진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까
어떻게 죽어갔을까
그녀는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고
그녀는 아무래도 옷을 입지 않은 것 같다.
그녀는 가슴도 음부도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그녀는 아름다운 것 같다.
입술 속에 숨었다.
손톱 밑에서 운다.
아무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약속은 자꾸 미뤄지지만
친구 되기를
그녀와 나는 노력해본다.
이삶에 대해서도. (-115-)
이근화 시인의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에는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죽음을 깊이 관찰하고, 생명이 꺼져가는 가운데 깊은 인생의 심연을 들여다 보게 된다. 삶의 끝자락, 그가 말하고자 하였던 건 무엇이었을까,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 스물 일곱 아빠는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된 걸까, 자신의 나이를 그의 나이에 빗대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인생공감으로 하나하나 물이 스며들게 되었고, 죽음으로 나아가곤 한다. 내 삶이 고달플수록, 내 삶이 힘든 시기를 지나갈 때,그 나이에 맞는 어떤 대상을 응시하게 된다. 저자에게 스물 일곱 아빠란, 지금 그 나이를 지난 나의 복잡한 심경과 연결될 수 있다. 그땐 이해하지 못하였고,지금은 그 나이가 되어서 느끼게 되는 삶의 버거움이 존재한다. 시에는 삶을 노래하는 시어가 곳곳에 등장하고 있었다.
시 『이 집의 주인은 』은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 집의 주인은 마땅히 나라고 생각해왓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케 한다. 나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시인의 의지가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시를 통해서,내 안의 무의식적인 자만과 오만을 덜어내고자 하였다. 즉 내 집의 주인은 오로지 나만 있는 건 아니다. 그 공간을 임대하여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과 언어들, 그리고 추상적인 관념과 수많은 감정들과 감각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그리고 그 주인은 누구도 해당될 수 있었다.사물이든, 생명이든, 언어든 ,그 어떤 것이든 주인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곤 한다.그래서 깊이 느끼는 시였으며,깊은 공감으로 이어지곤 하였다. 나의 과거 속 스물 일곱,그 당시를 견뎌야 했던 그 누군가가 섞이면서,내가 나를 치유하고 위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그리고 스스로 성찰하게 되고, 겸손해질 수 있다.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는 사람은강한자이다. 겸손은 그래서 위대하며,기적을 만들어 낸다. 더 나아가 삶을 견디며 ,누군가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의미를 나누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