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집 컬러 일러스트
윤동주 지음 / 북카라반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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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8-)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39-)

참회록 懺悔錄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61-)

시인 윤동주는 1917년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나 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서른의 삶도 채우지 못한 채, 일본에서 사망했다. 일제강점기 해방 직전 저항시인 윤동주는 일본인에 의해 타살당했다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으며,해방 이후,그의 묘소찾기와 유해를 송황하려는 의지가 여전하다.

일러스트와 시집으로 채워지고 있는 윤동주의 『윤동주 시집 컬러 일러스트』에는 105편의 시가 수록되고 있었으며, 서정적인 메시지와 한국인이라면 울컥하게 되는 민족적인 시다. 한국인이라면, 마음속 울분이 느끼지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일치하고 있는 서정시로 채워지고 있으며, 윤동주의 시는 읽고, 쓰고, 들어서, 나의 마음 정체성과 일치시킬 수 있다.그중 「서시 序詩」, 「참회록 懺悔錄」,「길」 을 좋아한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부끄러움, 수치심이 물밀듯 들어올 때가 있다. 나의 실수에 의해서, 하면 안 되능 것을 해서, 최악의 순간을 맞이할 때,피할 수 있는 것을 피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들은 주어진 인생에 영향을 줄 때가 있다. 막막하고, 스스로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깁준이 들 때도 있다.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의 사망은 나의 인생에 불행으로 이어지고, 주어진 길을 잃어버린 채 정체되고 말았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 하루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아가면서, 무분별하게 살생하지 않으며 살아간다면, 주어진 삶에 있어서, 아픔과 후회를 덜어낼 수 있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한다는 것이며, 사랑을 느낀다는 것이다. 사랑을 하기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 사람에 대한 부끄러움, 나에 대한 부끄러움, 동식물을 바라보면서, 생며에 대해 느끼는 부끄러움은 우리가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되돌아 보게 했다. 한숨 짓는 일이 생기고, 막막하고, 암담할 때도 삶을 견질 수 있는 것은 결국 시인 윤동주가 암울한 일제강점기 시대를 견디면서, 시인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삶을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하지 않는 것,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해 소중하게 여긴다면, 이 세상 모든 만물에 대해 , 너그러워지며, 미워하지 않으며,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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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인재들 - 왜 미국 최고의 브레인들이 베트남전이라는 최악의 오류를 범했는가 걸작 논픽션 7
데이비드 핼버스탬 지음, 송정은.황지현 옮김 / 글항아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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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애치슨이 국무차관 직에서 사임하자 마셜(당시 국무장관)은 러벳을 후임으로 지명했다. 그리고 1950년 러벳은 국방장관이 되었다. 스팀슨이나 마셜 이전에 일라이휴 루트나 테디 루스벨트가 그 자리에 올랐다면 1960년이나 되어야 러벳의 차례가 돌아왔을 것이다. (-37-)

결국 가장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장 흠이 없고 반대가 없는 인물을 찾게 되었다. 그 시대의 뚜렷한 대의명분을 옹호하는 사람은 누구나 많은 적을 두게 마련인데, 이제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케네디는 파장이 가장 적을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들이 고민하고 있는 그 자리는 행정부의 가장 중요한 직책이었기에 무한한 지적인 자질과 지혜,교양, 조국과 세계에 두루 통달한 지식을 겸비한 인물이 중용되어야 했다.그런데 그들은 대통령 후보가 부통령을 선택할 때 가장 무난한 사람을 고르는 식으로 인선 작업을 했다. 곧, 모두가 수용할 차선채글 찾고 있었던 것이다.따라서 재능이나 권력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였다. (-79-)

케네디는 영국식이었다. 압박 속에서도 품위 있게 행동하는 것은 케네디가 매우 존경하는 자질로 자주 인용되었다. 역경과 고난을 헤치고 결코 굽히지 않으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 이것은 대단히 영국적인 자질이었다. 약하고 격이 떨어지는 지중해 사람들은 압박을 받으면 감정을 드러낸다. 그러나 감정 표출을 혐오하는 영국인들은 입을 굳게 다문다. 존 케네디가 그랬다. 케네디는 닉슨이 1950년대 민주당에 퍼부었던 지독한 비방을 용서할 수 있었다.그러나 1960년 선거일 밤 닉슨의 부인 팻 닉슨이 신경쇠약 직전까지 간 모습을 드러낸 것은 스타일과 격조가 없는 것으로 용서되지 않았다. (-181-)

미군 부대가 어떻게 살아남을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에 테일러는 베트남이 '작전을 수행하는 데 아주 힘들거나 불쾌한 곳은 아니다' 라고 답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베트남을 한국과 비교할 수 있다고 한 내용이었다. '미군은 한국에서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살아서 작전을 수행하는 법을 배웠다.당시 미군은 고원지대와 해안 평야에 주둔했는데, 이곳 베트남의 정글은 그리 크지 않다.' 연안지역의 고약한 특징은 더위이고, 삼각주의 경우는 홍수가 남기고 간 진흙이다. 고지대에는 미군이 주둔하는 데 특별한 방해물이 없다. ' (-289-)

지엠과 뉴의 태도를 통해 그들이 공산주의를 바라보는 방식과 베트남 사회가 공산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한 반공주의자가 아니었던 주민들은 자신을 속박한 적을 두려워하지 보다 자신에게 자행된 무력에 더 분개했다. 마찬가지로 몇 년 뒤 미라이 학살사건이 일어났을 때 남베트남 대통령 응우옌반티에우 정부 역시 중대한 정치적 궁지에 몰렸다. 티에우 정부도 지엠 체제처럼 사이공 정부를 수호하고 미국의 반공주의를 방어하기 위해 과도하게 무력을 사용했다가 베트남 사람들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346-)

따라서 베트남이 붕괴되면 다음 조치가 큰 문제로 부각될 터였다. 제한적인 무력 사용이 실패할 경우 더 많은 무력을 투입하라는 압력이 거세질 것 아닌가.테일러는 폴하킨스를 투입해 소규모 전쟁을 중단하기 위한 제한적 개입의 개념을 스스로 시험할 수 있었다. 하킨스가 선택된 것은 가장 유능한 장군이라서 아니라 그가 테일러의 사람이고 테일러가 그를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테일러는 국무부 사람들이 지엠과 베트남 전쟁에 실망한 위기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다. 체면을 유지하고 싶었고, 노심초사했던 전쟁이 실패하는 걸 막고 싶었다. 그는 논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크룰랙과 하킨스로 하여금 각각의 위치를 사수하게 했고, 입장이 흔들리는 맥나말라를 안심시켰다. (-437-)

이것이 트루먼 독트린의 기원이 되었다. 그 나라에 겁을 주어야 하다는 의무감으로 뭉친 트루먼은 정말로 그렇게 했다. 독트린의 메시지가 그 정도로 의회에 제기되었을 무렵에 모스크바로 날아가고 있던 마셜장관은 깜짝 놀랐다. 반공산주의적 요소가 상당히 강조된 것을 우려한 마셜은 트루먼에게 이 발표가 과연 현명한 것인지를 전신을 통해 물어왔다. 그는 트루먼이 이 사건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트루먼은 사원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눈 뒤, 이것이 자신의 메시지를 통과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한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다. (-534-)

1964년은 폭풍우가 오기 전의 고요가 감도는 기이한 해였다. 베트남 전쟁이 일조해서 만들어낸 구절에 따르면, 관료사회는 계획 없이 선택 사항만 비축하소 있었다. 군은 폭격할 장소를 확인하는 작업에 돌입했고, 펜타곤의 깊숙한 내부에서는 만일의 사태를 위한 계획을 알고 있었던 전문가들이 전쟁 개시가 결정되었을 때 필요하게 될 것들에 관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만약 전투 병력을 필요로 한다면 어떤 부대가 가야 하며 어떤 예비부대를 소집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작업이었다. 모든 것이 물론 만약이라는 가정 아래 이루어진 일이었지만 펜타곤은 당연히 준비가 되어 있었다. (-639-)

그러나 테일러는 이제 정치적 이유로 폭격을 원했다. 과거에 그는 미국이 북 베트남에 더 큰 무력을 행사하는 일을 꺼려 폭격에 반대했었다. 그는 무력 행사가 더 큰 게임을 의미하고, 의외로 북베트남과의 전쟁을 통해 미국은 남베트남에 매우 약한 정권이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변하고 있었다. 8월 18일 대통령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다음 달에는 반드시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합니다.' 어떤 조치란 바로 폭격이었다. 적절한 시기에 보복적 군사작전을 시작하자는 것이 그의 제안이었다. 때는 편리하게 선거 직후인 1965년 1월 1일이 될 터였다. (-780-)

그는 베트남 사람들을 좋아했고, 그들의 대의명분에 진심으로 헌신했지만, 그들의 취약점과 불완전성, 부패, 순수의 상실 (그들에게 순수했던 적이 있기는 할까?)을 체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결국 그는 미국인일 뿐이었다. 미국인과 서유럽인의 관점에서 성공한 제품, 다시 말해 변화와 미묘함이 사회를 실패로 이끈다고 믿는 성공지향적인 나라가 배출해낸 훌륭한 제품이었던 것이다. 또한 올바르게 행하면 항상 보상을 받고, 열심히 일하면서 규칙을 지키고 책에 쓰인 대로 행동하면 성공할 수 있는 나라, 결코 부패하지 않은 나라가 만든 최고의 생산물이었다. 반면 베트남은 뻔질나게 거짓말을 했다. 그들은 미국인이 거짓말을 원한다고 생각했고, 항상 거짓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888-)

그 일은 모두 나중에 일어났다. 다른 정치가라면 변화를 명확히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감지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린든 존슨은 눈치 채지 못했다.오로지 자신이 맨 꼭대기에 있었고, 중심에서 통제했고, 반대자들을 극단으로 밀어붙였다는 사실만 인식했다. 그는 의회를 조종했고, 진심이 없는 서명을 받아냈다. 그는 아주 얇게 썰어서 더 이상 썰 수 없는 연어처럼 언론을 조종해서 그들이 자신을 장악하지 못하게 했다. 또한 통킹만에서는 호찌민이 자신을 공격한 것처러 위장해서 호찌민을 조종했다. 그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면서 무력을 사용했고, 군 역시 조종했다.군은 처음부터 전쟁을 향해 전진했지만, 이렇듯 감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의회나 언론까지 돌연한 비약을 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결정이 교묘하게 은폐되었고, 존슨은 반대를 막기 위해 그 결정들을 얇게 썰어놓고 있었다. (-957-)

린든 존슨은 모든 것을 잃었다. 이는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뛰어난 재기와 자만심, 자신에 대한 느낌 때문에 과거를 바라보고 과거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반공주의의 중요성에 대한 확신과 이번 세기에서 미국의 권력과 영광에 대한 인식, 미국의 전지전능함에 매몰되었다. 그들은 미국인이었고, 세상이 제공하는 것, 다시 말해 그들에게 제기되는 도전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느 면에서 린든 존슨이 더 잘 알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걷는 길에 대해 그 어떤 의심도 품지 않았지만 , 그의 본능, 곧 미국 정치를 읽는 그의 방식과 타인을 보는 방식에 대한 그의 믿음을 발산하 길은 보이지 않았다. (-1054-)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최고의 인재들』 은 베트남 전쟁 (1960년~1975년)의 기원에 대해 정리되어 있는 정치사회학으로서, 제34대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 (1953~1961),존 F 케네디 (1961~1963), 린든 존슨(1963~1969), 닉슨(1969~1974) 까지 이어진 전쟁이었고,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베트남 의 반공주의 사회로 전환되는 것을 막기 위한 , 명분 없는 전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의 시작은 미국 스스로 준비되지 않은 전쟁이었다. 한국 전쟁 이 끝나고 난 이후, 미국의 시선은 베트남으로 행하고 있었다. 반공주의가 여전히 아시아 전역에 존재했으며, 러시아,미국긔 군수 물자 산업 졍애서 미롯된 냉전사회에서, 미국에 위협이 되는 두 나라,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보복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남베트남을 미국의 통제권 안에 두어야 했고, 인도차이나 지역 뿐만 아니라 , 동아시아 전역을 미국의 관리에 두고 싶었다.하지만 베트남 전쟁은 패착에 가까운 전쟁이다.미국은 베트남에 대해 지형 조건 뿐만 아니라, 베트남 인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앗고, 굳이 그것들을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중국의 인해전술도 몰랐고, 베트남의 게릴라 전법도 모른 상태에서, 한국을 상대한 것처럼 베트남 사이공에게 위협을 하면, 베트남 또한 쉽게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다.

4대에 걸친 미국 대통령의 재임기간 동안, 베트남 전쟁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폭격과 포격으로 베트남 하늘과 육지를 지배하려고 했지만, 결국 베트남은 미국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전면전을 치룬다.더군다나 1960년대 반전 운동이 일어났고, 68 혁명으로 인해 미국은 베트남 전앵의 명분을 서서히 상실하였다. 발을 걸쳐 놓았기에 철수 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케네디 암살에 이어서, 대통령이 된 린든존슨은 지극히 정치적인 인물이었고, 대통령이 되기 직전이 ,린든존슨의 인기도가 최고인 상황이었다. 정작 대통령이 되자마자,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망각한 채, 베트남 전쟁을 수행하고 만다. 린든존슨 대통령을 최악의 미국 대통령으로 손꼽는 이유도 그러하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책 『최고의 인재들』에는 미국과 베트남의 입장이 반영되고 있었으며, 전쟁 수행 의지가 시간이 흘러서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린든존슨의 정이 인생에서는,사이공을 상대로 한 최악의 전쟁 베트남 전이지만, 한국의 입장,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베트남 전쟁이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개발도상국, 후진국에 머물렀을 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월남전이라 부르고 고엽제 피해가 남아 있는 전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베트남 전쟁에 한국 군인이 투입됨으로서, 대한민국은 미국의 자본 지원을 기반으로 경제발전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 남한의 경제 수준이 북한을 넘어설 수 있는 상황을 박정희 정권에서 구축할 수 있었다.배고픔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프랑스를 상대로 벌인 전쟁이라면,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미국을 상대로 벌인 전쟁으로서, 미국이 베트남 땅에서 철수하게 된 지형적 조건 뿐만 아니라 ,베트남인의 기질을 엿볼 수 있다. 정석대로 전쟁을 수행한 미국과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전쟁을 수행한 베트콩,두 가지 관점에서, 공산주의 사회의 현주소, 1960년대 공산주의가 미국을 어떻게 위협하고 있었는지,낸정체제 뿐만 아니라 핵무기 실험에 대한 위협까지 살펴볼 수 있다.미국은 러시아를 견재하기 위해서, 베트남전쟁은 불가피한 전쟁이며, 철두철미하게 준비되지 않은 전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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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한자 - 인생의 지혜가 담긴
안재윤.김고운 지음 / 하늘아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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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약이고 무엇이 독인지 알지 못하고 함부로 캐 먹으면 예상치 않은 불행을 겪을 수도 있다.무엇이 약인지 알았더라도 어디에 가야 있는지 알지 못한다면 이리저리 찾아다니는 노력이 제 값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디에 있는지 알았더라도 때를 살펴 가지 않으면 좋은 상태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고 아예 찾지 못할 수도 있다. (-6-)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노자 - (-17-)

제자들이 보기에 술을 마실 때 한량없이 마심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제자들 앞에서 술주정한 적이 없다고 한다. 공자는 제 주량을 알고 술을 알맞게 마셨던 것이다.

자기 주량을 알고 양껏 마셨으면 술잔을 내려놓아야 한다.마시고 싶은 유혹을 단칼에 베어 버려야 한다.술은 취할수록 더 마시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술이 술을 먹는다. 그럼 결국에는 술 먹은 개가 된다. (-92-)

아침에 눈 뜨자 마자 경계해야 할 네 가지 마음

우리는 간혹 사실 관계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넘겨짚는 경우가 있다.선입견으로 어떤 상황이나 사람을 근거도 없이 넘겨잡거나 어림짐작하고 억단해 버린다. 전후 사정을 헤아려 보지도 않을 뿐 더러 인과관계를 밝히려고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아무튼 제멋대로 억단하는 것은 좋지 않은 버릇이므로 마땅히 삼가야 할 것이다.(무의 母意) (-102-)

아예 아무것도 모를 때에는 외려 다 아는 것처럼 여기고 그렇게 행동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하기에 빈수레가 요란한 법이고 알기는 칠월 귀뚜라미처럼 나선다. 아무튼 설익은 알음으로 틀림없다고 큰소리치는 버릇은 보기에 좋지 않을뿐더러 낯부끄러운 일이므로 가급적 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필 母必) (-103-)

우리는 또 간혹 아무 일도 아닌 거에 억지를 세우는 경우가 있다.대개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부득부득 우기며 고집을 부린다. 고집쟁이는 인화를 해치고 사람을 멀어지게 만든다. 아무 대나 똥고집을 부리는 일은 그야말로 고약한 버릇이다. (무고 母固) (-104-)

우리는 또 간혹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남 생각과 의견은 다 그르고 제 생각만 옳고, 제의견만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버릇도 건강한 인간관계를 좀 먹는 짓이다. 나만 올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과 속종도 경청할 줄 아는 힘을 길러야 할 터이다. (무아 母我) (-104-)

아침에 눈 뜨면 담배 개비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것 보다 조용히 눈을 감고 다음 네 가지 마음(절사 絶四) 을 음미해보면 어덜까. 억지소리 하지 않고, 똥고집 부리지 말고, 큰소리치지 않으며, 제 말만 우기지 않는 마음가짐 알이다. (-104-)

책 『인생의 지혜가 담긴 아침 한자』에는 , 아침에 눈 뜨자 마자 경계해야 할 네 가지 마음이 나온다. 그 네가지 마음은 무의 母意,무필 母必, 무고 母固,무아 母我 다. 지혜란 스스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힘이며, 침묵을 지키는 힘에 있다. 주어진 삶, 태어나서 잘 죽는 것이기도하다. 지식의 축적 유무와 다르게 ,나이가 들어가면, 나만 옳고 타인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편협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다. 매순간 억지를 부린다. 나이가 먹을 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안목이 좁아지며,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의 마음을 경계하고,견제해야 하는 이유다.지혜로움은 내 삶을 이롭게 한다.

현대사회는 지식사회다. 지식이 층층히 쌓이다 보니,지혜를 쌓을 길은 좁아진다. 삶에 대해서,시간을 소요하고, 여유를 가져야 할 때,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선을 결코 넘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노자는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라고 말했다. 높은 자리,높은 지위에 있을수록 노자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 삶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진다. 자본주의 사회일수록 물욕에 집착한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더 높은 곳으로 시선을 옮기게 되고,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질 수 있다. 결국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그 결과로 스스로 주어진 삶에 대해서, 남은 인생에 대해서,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질 수 있다. 지혜는 만족하기가 힘든 현대 사회에서, 만족스러운 삶,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삶, 억지 부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지혜르 삶에 반영하는 것에 있다. 내 삶에 대해서, 스스로 지키는 삶을 살아가고, 행복한 삶,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시대의 원칙을 지키면서 살아가되, 나쁜 습관을 덜어내고, 물욕을 비우며,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면, 원망하거나 후회할 일이 적어진다. 삶의 우환 (憂患)은 지혜롭지 않은 선택과 결과에 따른다. 건강한 삶, 좋은 습관, 행복한 시간, 건전한 사람 관계는, 깊은 지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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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갚는 기술 - 돈 한 푼 안 들이고 채권자 만족시키기 고전으로 오늘 읽기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선주 옮김 / 헤이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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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시베리아의 대리석 광산을 소유하고 있는 러시아의 한 왕자에게는 그것을 이탈리아에 엄청난 값으로 팔 수 있는 방안이 있다고 납득시킨 적도 있습니다. 대리석 시장에서 만난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중개인에게 250만 프랑을 받아내서는 그 중 100만 프랑을 사업을 확장한다면서 자신이 덥석 써버리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다연히 작은 탁자 위에 깔 대리석만큼도 안 되는 사업 확장이었지요. (-21-)

1.지불에 의해서

빚을 청산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 방식을 따른다면 우리 삼촌의 이 저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2.어떤 빚을 다른 빚으로 혹은 여러가지 빚을 한꺼번에 또 다른 여러 가지 빚으로 변환하기

이런 방식은 사고할 줄 아는 채무자에게 유리하다. 채권자를 헷갈리게 만드는 사고 말이다.

3. 채권자가 나서서 기꺼이 해결해주는 방법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이런 일은 거의 안 일어난다.

4. 누가 채권자이고 누가 채무자인지 혼동하게 만드는 방법

이런 식이 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 마큼 남다른 인내심이 필요하다.

5. 유효성을 가지는 어떤 공식적인 지시로 첫 번째에서 설명한 것과 동일하다.

6. 지불 기한을 정해서 (프래스크립시옹)

특별히 기똥찬 방식인 만큼 뒤에서 좀 더 상세히 다루어보기로 한다.

프레스크립시옹이란 뭔가를 법적으로 정해진 일정 기간 도안 계속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다.(아카데미프랑세즈 사전)

7.채무자가 법정 소송에서 이겨서

이 방식이야말로 큰일 날 수 있으니 절대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청산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고 법정이 채권자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를 감안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그 법이 적용되는 어디에서든 몸을 도사리며 살아야 한다. 법적 분위기가 좀 남다른 노르망디 Normandie 는 빼고. (-57-)

불세출의 명작 『고리오 영감』을 남긴 ,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 1799~1850) 의 『빚 갚는 기술 : 돈 한푼 안들이고 채권자 만족 시키기』 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가 생전 70여 편의 소설,문학을 남긴 일중독자라는 걸 알 수 있다.하지만 오노레 드 발자크는 일평생 빚으로 고통받았다.

그가 살아온 생이 『빚 갚는 기술 : 돈 한푼 안들이고 채권자 만족 시키기』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그는 열심히 작가로서 일하였고, 출판사를 만들었지만, 허영, 천박함, 속물, 탕아로 기억되고 있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생전 책을 써서 벌은 돈을 족족 ,재투자하거나, 펑펑 쓰고 말았다.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학 전집 류를 오노레 드 발자크는 출판사를 만들어서 , 기획했다. 그 당시 오노레 드 발자크의 지팡이가 유명한 이유는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유모 밑에서 성장한 오노레 드 발자크의 열등감이 있었고, 귀족과 결혼하는 것이 그의 절대적인 인생 목적으로 남아 잇었다.

한편 오노레 드 발자크의 책에는 빚, 채권자와 채무자,빚을 집행하는 집행자에 대해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남다른 아이디어, 기획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대를 앞서 나가는 바람에, 빚만 남긴 채 채무자가 되고 말았다.빚을 변제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지만, 오노레 드 발자크는 빚을 변제하려고 하지 않았ㄷ아. 그의 작가로서의 남다른 기획은 남 좋은 일에 쓰여지고,그의 아이디어들은 후대에 , 누군가의 사업아이템이 되어서, 돈을 벌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빚은 나쁜 거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물질적인 빚도 있고, 정신적인 빚도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빚은 마땅히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노레 드 발자크가 생각한 빚에 대한 개념을 본다면,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경제, 문화,역사의 흔적 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습을 읽을 수 있으며,시대를 앞서간 불우한 프랑스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지금 우리에게, 그의 문학적 업적에 대해서, 오노레 드 발자크를 알아보았던 빅토르 위고, 발자크가 알아본 스탕달으 삶과 함께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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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러브 스토리
김성은 지음 / 프로방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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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그리워서

거리를 둔다

거리를 두면

오염되지 않고 바라볼 수

있기에

앞으로 살아갈 날들

그녀가 자주 눈에 밟히더라도

내 안에서만 방황하기를

부디

내 안에서만 내가

방황하기를

이미 알고 있다.

아주 쉽게 부서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책임감이 필요하다.

거리를 두면서

나를 믿지 않는

책임감 (-19-)

어린 시절의 가게가 그립다. 더럽기도 하고, 불편하고,경박스러운 가게 주인의 안부가 불편했던 가게들, 뒤죽박죽 아무 때나 정리된 물건들....그러나 그런 불편했던 가게들, 뒤죽박죽 아무 때나 정리된 물건들....그러나 그런 불편한 안부가, 아무 때나 정리된 물건들의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여유가 동네에 함께 살고 있다는, 보호받는 느낌을 주었다.

요즘 어딜 가나 모든 것이 까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화려하다. 그래서 어딜 들어가도 옷매무새를 만지며 긴장하게 된다. 대형 센터가 많이 생기는 요즘에도 헌책방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정리됮비 않는 물건들, 뒤죽박죽 놓인 그런 자유로움,골목길 같은 좁은 통로, 그곳에서만 경험하는 그런 답답함을 원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동네 문방구에서 주인아저씨가 골라주는 물건을 사고, 가격표 없는 물건을 들거,"아줌마 그런데 이거 얼마예요?"물어보던 곳. 카드가 아닌 지폐와 동전을 꺼내어 적당히 가격을 흥정하는 그런 경험을 일부러 찾기도 한다. 10년, 20년 뒤에도 이런 가게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으며....나의 아이가 가게 주인아저씨와 이런 류의 관계를 맺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은 때를 쓰면서 엄청 싸게 물건을 구매할 수도 있겠지만, 그 주인아저씨와 내일도 봐야 되고, 모레도 봐야 되는 곳, 누구도 크게 손해 보지도 않고, 이득을 보지도 ㄹ않는 관계, 조금은 풀어진 편이 행복한 관계, 하지만 서로에게 신의를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일하는 가게들.

우리는 어떤 경우에서라도 사람을 상대로 일을 하고, 수량화 할 수 없는 사람의 친절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키오스크는 한계가 분명 있잖아요. (-40-)

버스에서

내 어깨에 잠든 너에게

몇 번을 망설이다가

이제 내려야 되는데

조금 더 재울까

깨우려 손을 들었다가 놓았다가

꼭 장학금을 타야 된다며

시험이 하루에 몇 개나 겹쳤다고

안쓰러워 대신 쳐줄수도 없고

업고 내릴까 고민도 하고

몇 정거장 더 가서 내려야지

며칠 못 봤는데

이참에 좀 더 같이 있고 싶은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쌔근쌔근 잠든 너를 보며

이런 내 마음

너는 아는지(-156-)

그녀와 싸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걸터앉아 혹시 그녀에게서 온 메시지가 없는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몸을 움직일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다가, 가만히 있는 시간이 괴로워서 부엌 청솔르 하고,옷을 정리하면서 시간를 보냈다.너무도 조용하다. 침묵은 어깨를 누르고, 자취방 밖 거리에서는 행인들의 소리가 부자연스럽게 들린다. 그들이 떠드는 소리가 한국어가 아닌 것 같다. (-218-)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섭섬함이 드는 걸 보니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느낀다.사라지면, 다시 가질 수 없어서, 섭삽하고, 후회로 남을 것 같아서, 두번 섭섭하다. 쫍은 기억력 때문에,기억되지 않아서 섭섭할 대가 있다. 사랑이 사라지고,주어진 시간이 사라지고, 사람과의 관계도 사라지는 것 같다.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그리움이라 부른다.

책 『캠퍼스 러브 스토리』에는 시와 산문으로 채워져 있다. 사랑과 시간의 틈바구니에는 흔적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운 아날로그적 감성이 묻어나 있었다. 어릴 적 학교 앞 조그마한 문방구, 학교 매점에 있는 과자들이 자꾸 생각난다.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 사이에서, 이쁘고,아기자기한 것을 고르는 재미가 사라진다. 학교 앞 문방구 뿐만 아니라, 헌책 서점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었다. 문방구 아저씨 아줌마에 대한 기억도 조금씩 사라진다.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 편리미엄과 자본주의였다. 그리움은 결코, 자본으로도, 편리함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이십대, 사랑이 있고, 연얘가 있고,사랑이 있다. 서로 뜨거운 열정이 있기에 ,섭섭함이 남아 있어서, 싸움도 있고, 후회도 있다. 그리움이 상처는, 스무살 풋풋한 사랑 속에 기록된다. 책 『캠퍼스 러브 스토리』에는 첫사랑이 있었고, 풋사랑이 있었으며, 느리고 느린 비둘기호에 탄 것 같은 아날로그적인 축축한 사랑도 있었다. 정리된 공간보다, 정리되지 않는 공간이 기억에 남듯, 정리된 사랑보다 정리되지 않는 사랑에 미련이 남는다. 그래서인지 『캠퍼스 러브 스토리』를 덮으면석 , 작가의 사랑에 대한 스토리에 대해 미련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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