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ook of Disquiet: The Complete Edition (Hardcover)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영문판
Fernando Pessoa / New Directions Publishing Corporation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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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밑줄 그어본 적 없는 내가 밑줄 그어보고 싶은 유혹이 일 정도로 이 책이 가지는 첫 느낌은 강렬하다. 한권의 책이 아닌 두 권의 책을 사서 한권은 밑줄을 그어 나갈 것 같다. 우연히 알게 된 페르난도 메소아의 <불안의 서>는 소설인 듯 산문인 듯 아리송한 채 내 앞에 던저지고 있었고, 그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아닌 또다른 누군가를 통해 들여다 보고자 하였다. 객관적으로 남이 아닌 나 자신을 들여다 본다는 건 때로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울 수 있다. 어쩌면 그가 20년동안 이 작품을 기획하고 있었지만, 큰 궤짝에 넣어두고 세상에 내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가 아난가 싶다. 그 큰 궤짝에 남겨진 27000여장의 글 은 그를 위대한 존재로 탈바꿈 했다. 새상 사람들에게 문학적 가치를 검증받고 싶은 욕구와 함께 조용히 은둔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페소아의 마음 속에 감춰진 불안과 모순되어짐의 실체, 그는 생각하고 사유하고 꿈꾸고 몽상하면서 자신의 삶을 새로운 관점에서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인간이 동물보다 상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오만함을 비꼬고 있으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는 무형의 가치는 인간 스스로 불행의 덫이 되고 있음을 놓치지 않고 그의 저서에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었다. 


그는 다양한 형태로 자신을 낯선 공간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커다란 도로 변에 서 있는 그 누군가를 응시하고 있는 페소아의 마음이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바로 페소아 자신이었고, 생각하고 환상 속에 살아가는 존재였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삶을 터득하는 것, 때로는 냉엄하고, 역겹고 토나오는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체념하는 법에 대해 그는 이 책을 통해 채워 나가고 있다. 페소아는 자신의 삶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안에서 읽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생각을 얻는 과정이며, 그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반추하는 과정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아닌 나를 안다는 것,  안간이 불안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진리 앞에서  무기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몽상을 하고 환상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인간이 쓰는 말과 행동 감정의 실체는 내가 무엇을 응시하고 관찰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의식하고 있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무의식의 세계에 얼마나 깊이 빠져드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얼마든지 새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다.


책에는 피곤하다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다. 인간이 피곤한 삶을 살아가는 건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각을 통해 스스로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존재이며, 생각이 멈추는 순간은 죽음이 도래하는 그 순간이다.때로는 허무하고, 때로는 무기력하며, 인간으로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는 점점 더 냉소적으로 바뀌게 되고, 비인간적인 존재로 거듭난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비추고 있는 듯 하여서 뜨끔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800페이지 정도의 두꺼운 책이다. 그렇지만 니체나 칸트의 저서에서 느끼져는 난해한 문장은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페소아의 생각과 가치관, 의미에 접근할 수 있다. 481개의 소주제로 나뉘어져 있어서 중간이 쉬어서 읽는다 하여도 부담없이 읽어나갈 수 있다. 나 자신을 어땋게 관조하는지,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 나를 낯선 곳으로 바꿔 놓는 페소아의 <불안의 서>에는 철학적인 성찰이 곳곳에 배여져 있으며,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읽는다. 그리고 나는 해방된다. 나는 객관성을 원한다. 나는 나라는 하나의 개별체로 존재하기를 멈춘다. 내가 읽는 것은, 나에게 전혀 흥미롭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종종 내 목을 조이곤 하는 양복과는 달리 , 압도적이고 위대한 외부세계의 명료함이다. 모든 이들의 눈에 보이는 태양, 고요한 표면과 그늘진 얼룩을 가진 달, 바다에 가서야 끝이 나는 드넓은 공간들, 흔들리는 초록 이파리를 머리에 인 나무들의 흔들리지 않는 검은 직립, 농장에 딸린 연못의 동요 없는 평화, 계단식으로 정돈된 산비탈 위 포도나무가 우거진 길들.(p116)


나는 분노하지 않는다. 분노는 강한 자들의 일이다. 나는 좌절하지 않는다. 좌절은 고귀한 자들의 일이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침묵은 위대한 자들의 일이다. 나는 강하지도 않고 고귀하지도 않으며 위대하지도 않다. 나는 오직 아프며, 나는 오직 꿈꾼다. 나는 약하기 때문에 비탄에 잠긴다. 또한 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내 비탄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기쁘게 듣는다. 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아름답게, 내 상상의 세계와 가장 밀접한 형태가 되도록 꿈을 꾼다.  (p236)


나는 자문한다. 스스로를 고립시켜 비범하게 만들려는 내 모든 수고와 노력이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십자가형의 명예를 위해 나 스스로가 삶의 방향으로 잡은 느린 고통의 길이 정말로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설사 가치가 있는 일임을 내가 안다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그것이 전혀 가치가 없으며, 결코 그 어떤 성과도 얻지 못하리라는 느낌에 나는 엄습당한다. (p501)


내가 누군가와 아무리 가깝고 신실한 친구 사이라 해도, 그 사람이 병들었거나 죽었다는 소식은 내 안에서 막연하고 그저 그런, 희미한 인상 밖에는 남기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에 부끄러워하게 된다. 오직 직접 목격한 장면만이 , 실제적인 접촉만이 내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상상 속을 살아갈 때, 상상력은 언젠가 고갈되어버린다. 특히 실제와 관련된 상살력은 더욱 그렇다.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을 마음에 품고 사는 자는, 마침내는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해낼 능력을 상실하고 만다. (p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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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ok of Disquiet (Paperback)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영문판
Fernando Pessoa / Penguin Books Ltd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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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밑줄 그어본 적 없는 내가 밑줄 그어보고 싶은 유혹이 일 정도로 이 책이 가지는 첫 느낌은 강렬하다. 한권의 책이 아닌 두 권의 책을 사서 한권은 밑줄을 그어 나갈 것 같다. 우연히 알게 된 페르난도 메소아의 <불안의 서>는 소설인 듯 산문인 듯 아리송한 채 내 앞에 던저지고 있었고, 그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아닌 또다른 누군가를 통해 들여다 보고자 하였다. 객관적으로 남이 아닌 나 자신을 들여다 본다는 건 때로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울 수 있다. 어쩌면 그가 20년동안 이 작품을 기획하고 있었지만, 큰 궤짝에 넣어두고 세상에 내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가 아난가 싶다. 그 큰 궤짝에 남겨진 27000여장의 글 은 그를 위대한 존재로 탈바꿈 했다. 새상 사람들에게 문학적 가치를 검증받고 싶은 욕구와 함께 조용히 은둔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페소아의 마음 속에 감춰진 불안과 모순되어짐의 실체, 그는 생각하고 사유하고 꿈꾸고 몽상하면서 자신의 삶을 새로운 관점에서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인간이 동물보다 상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오만함을 비꼬고 있으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는 무형의 가치는 인간 스스로 불행의 덫이 되고 있음을 놓치지 않고 그의 저서에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었다. 


그는 다양한 형태로 자신을 낯선 공간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커다란 도로 변에 서 있는 그 누군가를 응시하고 있는 페소아의 마음이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바로 페소아 자신이었고, 생각하고 환상 속에 살아가는 존재였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삶을 터득하는 것, 때로는 냉엄하고, 역겹고 토나오는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체념하는 법에 대해 그는 이 책을 통해 채워 나가고 있다. 페소아는 자신의 삶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안에서 읽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생각을 얻는 과정이며, 그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반추하는 과정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아닌 나를 안다는 것,  안간이 불안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진리 앞에서  무기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몽상을 하고 환상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인간이 쓰는 말과 행동 감정의 실체는 내가 무엇을 응시하고 관찰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의식하고 있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무의식의 세계에 얼마나 깊이 빠져드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얼마든지 새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다.


책에는 피곤하다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다. 인간이 피곤한 삶을 살아가는 건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각을 통해 스스로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존재이며, 생각이 멈추는 순간은 죽음이 도래하는 그 순간이다.때로는 허무하고, 때로는 무기력하며, 인간으로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는 점점 더 냉소적으로 바뀌게 되고, 비인간적인 존재로 거듭난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비추고 있는 듯 하여서 뜨끔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800페이지 정도의 두꺼운 책이다. 그렇지만 니체나 칸트의 저서에서 느끼져는 난해한 문장은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페소아의 생각과 가치관, 의미에 접근할 수 있다. 481개의 소주제로 나뉘어져 있어서 중간이 쉬어서 읽는다 하여도 부담없이 읽어나갈 수 있다. 나 자신을 어땋게 관조하는지,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 나를 낯선 곳으로 바꿔 놓는 페소아의 <불안의 서>에는 철학적인 성찰이 곳곳에 배여져 있으며,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읽는다. 그리고 나는 해방된다. 나는 객관성을 원한다. 나는 나라는 하나의 개별체로 존재하기를 멈춘다. 내가 읽는 것은, 나에게 전혀 흥미롭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종종 내 목을 조이곤 하는 양복과는 달리 , 압도적이고 위대한 외부세계의 명료함이다. 모든 이들의 눈에 보이는 태양, 고요한 표면과 그늘진 얼룩을 가진 달, 바다에 가서야 끝이 나는 드넓은 공간들, 흔들리는 초록 이파리를 머리에 인 나무들의 흔들리지 않는 검은 직립, 농장에 딸린 연못의 동요 없는 평화, 계단식으로 정돈된 산비탈 위 포도나무가 우거진 길들.(p116)


나는 분노하지 않는다. 분노는 강한 자들의 일이다. 나는 좌절하지 않는다. 좌절은 고귀한 자들의 일이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침묵은 위대한 자들의 일이다. 나는 강하지도 않고 고귀하지도 않으며 위대하지도 않다. 나는 오직 아프며, 나는 오직 꿈꾼다. 나는 약하기 때문에 비탄에 잠긴다. 또한 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내 비탄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기쁘게 듣는다. 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아름답게, 내 상상의 세계와 가장 밀접한 형태가 되도록 꿈을 꾼다.  (p236)


나는 자문한다. 스스로를 고립시켜 비범하게 만들려는 내 모든 수고와 노력이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십자가형의 명예를 위해 나 스스로가 삶의 방향으로 잡은 느린 고통의 길이 정말로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설사 가치가 있는 일임을 내가 안다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그것이 전혀 가치가 없으며, 결코 그 어떤 성과도 얻지 못하리라는 느낌에 나는 엄습당한다. (p501)


내가 누군가와 아무리 가깝고 신실한 친구 사이라 해도, 그 사람이 병들었거나 죽었다는 소식은 내 안에서 막연하고 그저 그런, 희미한 인상 밖에는 남기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에 부끄러워하게 된다. 오직 직접 목격한 장면만이 , 실제적인 접촉만이 내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상상 속을 살아갈 때, 상상력은 언젠가 고갈되어버린다. 특히 실제와 관련된 상살력은 더욱 그렇다.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을 마음에 품고 사는 자는, 마침내는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해낼 능력을 상실하고 만다. (p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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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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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밑줄 그어본 적 없는 내가 밑줄 그어보고 싶은 유혹이 일 정도로 이 책이 가지는 첫 느낌은 강렬하다. 한권의 책이 아닌 두 권의 책을 사서 한권은 밑줄을 그어 나갈 것 같다. 우연히 알게 된 페르난도 메소아의 <불안의 서>는 소설인 듯 산문인 듯 아리송한 채 내 앞에 던저지고 있었고, 그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아닌 또다른 누군가를 통해 들여다 보고자 하였다. 객관적으로 남이 아닌 나 자신을 들여다 본다는 건 때로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울 수 있다. 어쩌면 그가 20년동안 이 작품을 기획하고 있었지만, 큰 궤짝에 넣어두고 세상에 내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가 아난가 싶다. 그 큰 궤짝에 남겨진 27000여장의 글 은 그를 위대한 존재로 탈바꿈 했다. 새상 사람들에게 문학적 가치를 검증받고 싶은 욕구와 함께 조용히 은둔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페소아의 마음 속에 감춰진 불안과 모순되어짐의 실체, 그는 생각하고 사유하고 꿈꾸고 몽상하면서 자신의 삶을 새로운 관점에서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인간이 동물보다 상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오만함을 비꼬고 있으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는 무형의 가치는 인간 스스로 불행의 덫이 되고 있음을 놓치지 않고 그의 저서에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었다. 


그는 다양한 형태로 자신을 낯선 공간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커다란 도로 변에 서 있는 그 누군가를 응시하고 있는 페소아의 마음이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바로 페소아 자신이었고, 생각하고 환상 속에 살아가는 존재였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삶을 터득하는 것, 때로는 냉엄하고, 역겹고 토나오는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체념하는 법에 대해 그는 이 책을 통해 채워 나가고 있다. 페소아는 자신의 삶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안에서 읽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생각을 얻는 과정이며, 그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반추하는 과정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아닌 나를 안다는 것,  안간이 불안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진리 앞에서  무기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몽상을 하고 환상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인간이 쓰는 말과 행동 감정의 실체는 내가 무엇을 응시하고 관찰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의식하고 있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무의식의 세계에 얼마나 깊이 빠져드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얼마든지 새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다.


책에는 피곤하다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다. 인간이 피곤한 삶을 살아가는 건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각을 통해 스스로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존재이며, 생각이 멈추는 순간은 죽음이 도래하는 그 순간이다.때로는 허무하고, 때로는 무기력하며, 인간으로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는 점점 더 냉소적으로 바뀌게 되고, 비인간적인 존재로 거듭난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비추고 있는 듯 하여서 뜨끔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800페이지 정도의 두꺼운 책이다. 그렇지만 니체나 칸트의 저서에서 느끼져는 난해한 문장은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페소아의 생각과 가치관, 의미에 접근할 수 있다. 481개의 소주제로 나뉘어져 있어서 중간이 쉬어서 읽는다 하여도 부담없이 읽어나갈 수 있다. 나 자신을 어땋게 관조하는지,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 나를 낯선 곳으로 바꿔 놓는 페소아의 <불안의 서>에는 철학적인 성찰이 곳곳에 배여져 있으며,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읽는다. 그리고 나는 해방된다. 나는 객관성을 원한다. 나는 나라는 하나의 개별체로 존재하기를 멈춘다. 내가 읽는 것은, 나에게 전혀 흥미롭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종종 내 목을 조이곤 하는 양복과는 달리 , 압도적이고 위대한 외부세계의 명료함이다. 모든 이들의 눈에 보이는 태양, 고요한 표면과 그늘진 얼룩을 가진 달, 바다에 가서야 끝이 나는 드넓은 공간들, 흔들리는 초록 이파리를 머리에 인 나무들의 흔들리지 않는 검은 직립, 농장에 딸린 연못의 동요 없는 평화, 계단식으로 정돈된 산비탈 위 포도나무가 우거진 길들.(p116)


나는 분노하지 않는다. 분노는 강한 자들의 일이다. 나는 좌절하지 않는다. 좌절은 고귀한 자들의 일이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침묵은 위대한 자들의 일이다. 나는 강하지도 않고 고귀하지도 않으며 위대하지도 않다. 나는 오직 아프며, 나는 오직 꿈꾼다. 나는 약하기 때문에 비탄에 잠긴다. 또한 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내 비탄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기쁘게 듣는다. 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아름답게, 내 상상의 세계와 가장 밀접한 형태가 되도록 꿈을 꾼다.  (p236)


나는 자문한다. 스스로를 고립시켜 비범하게 만들려는 내 모든 수고와 노력이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십자가형의 명예를 위해 나 스스로가 삶의 방향으로 잡은 느린 고통의 길이 정말로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설사 가치가 있는 일임을 내가 안다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그것이 전혀 가치가 없으며, 결코 그 어떤 성과도 얻지 못하리라는 느낌에 나는 엄습당한다. (p501)


내가 누군가와 아무리 가깝고 신실한 친구 사이라 해도, 그 사람이 병들었거나 죽었다는 소식은 내 안에서 막연하고 그저 그런, 희미한 인상 밖에는 남기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에 부끄러워하게 된다. 오직 직접 목격한 장면만이 , 실제적인 접촉만이 내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상상 속을 살아갈 때, 상상력은 언젠가 고갈되어버린다. 특히 실제와 관련된 상살력은 더욱 그렇다.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을 마음에 품고 사는 자는, 마침내는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해낼 능력을 상실하고 만다. (p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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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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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밑줄 그어본 적 없는 내가 밑줄 그어보고 싶은 유혹이 일 정도로 이 책이 가지는 첫 느낌은 강렬하다. 한권의 책이 아닌 두 권의 책을 사서 한권은 밑줄을 그어 나갈 것 같다. 우연히 알게 된 페르난도 메소아의 <불안의 서>는 소설인 듯 산문인 듯 아리송한 채 내 앞에 던저지고 있었고, 그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아닌 또다른 누군가를 통해 들여다 보고자 하였다. 객관적으로 남이 아닌 나 자신을 들여다 본다는 건 때로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울 수 있다. 어쩌면 그가 20년동안 이 작품을 기획하고 있었지만, 큰 궤짝에 넣어두고 세상에 내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가 아난가 싶다. 그 큰 궤짝에 남겨진 27000여장의 글 은 그를 위대한 존재로 탈바꿈 했다. 새상 사람들에게 문학적 가치를 검증받고 싶은 욕구와 함께 조용히 은둔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페소아의 마음 속에 감춰진 불안과 모순되어짐의 실체, 그는 생각하고 사유하고 꿈꾸고 몽상하면서 자신의 삶을 새로운 관점에서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인간이 동물보다 상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오만함을 비꼬고 있으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는 무형의 가치는 인간 스스로 불행의 덫이 되고 있음을 놓치지 않고 그의 저서에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었다. 


그는 다양한 형태로 자신을 낯선 공간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커다란 도로 변에 서 있는 그 누군가를 응시하고 있는 페소아의 마음이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바로 페소아 자신이었고, 생각하고 환상 속에 살아가는 존재였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삶을 터득하는 것, 때로는 냉엄하고, 역겹고 토나오는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체념하는 법에 대해 그는 이 책을 통해 채워 나가고 있다. 페소아는 자신의 삶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안에서 읽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생각을 얻는 과정이며, 그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반추하는 과정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아닌 나를 안다는 것,  안간이 불안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진리 앞에서  무기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몽상을 하고 환상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인간이 쓰는 말과 행동 감정의 실체는 내가 무엇을 응시하고 관찰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의식하고 있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무의식의 세계에 얼마나 깊이 빠져드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얼마든지 새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다.


책에는 피곤하다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다. 인간이 피곤한 삶을 살아가는 건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각을 통해 스스로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존재이며, 생각이 멈추는 순간은 죽음이 도래하는 그 순간이다.때로는 허무하고, 때로는 무기력하며, 인간으로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는 점점 더 냉소적으로 바뀌게 되고, 비인간적인 존재로 거듭난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비추고 있는 듯 하여서 뜨끔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800페이지 정도의 두꺼운 책이다. 그렇지만 니체나 칸트의 저서에서 느끼져는 난해한 문장은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페소아의 생각과 가치관, 의미에 접근할 수 있다. 481개의 소주제로 나뉘어져 있어서 중간이 쉬어서 읽는다 하여도 부담없이 읽어나갈 수 있다. 나 자신을 어땋게 관조하는지,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 나를 낯선 곳으로 바꿔 놓는 페소아의 <불안의 서>에는 철학적인 성찰이 곳곳에 배여져 있으며,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읽는다. 그리고 나는 해방된다. 나는 객관성을 원한다. 나는 나라는 하나의 개별체로 존재하기를 멈춘다. 내가 읽는 것은, 나에게 전혀 흥미롭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종종 내 목을 조이곤 하는 양복과는 달리 , 압도적이고 위대한 외부세계의 명료함이다. 모든 이들의 눈에 보이는 태양, 고요한 표면과 그늘진 얼룩을 가진 달, 바다에 가서야 끝이 나는 드넓은 공간들, 흔들리는 초록 이파리를 머리에 인 나무들의 흔들리지 않는 검은 직립, 농장에 딸린 연못의 동요 없는 평화, 계단식으로 정돈된 산비탈 위 포도나무가 우거진 길들.(p116)


나는 분노하지 않는다. 분노는 강한 자들의 일이다. 나는 좌절하지 않는다. 좌절은 고귀한 자들의 일이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침묵은 위대한 자들의 일이다. 나는 강하지도 않고 고귀하지도 않으며 위대하지도 않다. 나는 오직 아프며, 나는 오직 꿈꾼다. 나는 약하기 때문에 비탄에 잠긴다. 또한 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내 비탄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기쁘게 듣는다. 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아름답게, 내 상상의 세계와 가장 밀접한 형태가 되도록 꿈을 꾼다.  (p236)


나는 자문한다. 스스로를 고립시켜 비범하게 만들려는 내 모든 수고와 노력이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십자가형의 명예를 위해 나 스스로가 삶의 방향으로 잡은 느린 고통의 길이 정말로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설사 가치가 있는 일임을 내가 안다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그것이 전혀 가치가 없으며, 결코 그 어떤 성과도 얻지 못하리라는 느낌에 나는 엄습당한다. (p501)


내가 누군가와 아무리 가깝고 신실한 친구 사이라 해도, 그 사람이 병들었거나 죽었다는 소식은 내 안에서 막연하고 그저 그런, 희미한 인상 밖에는 남기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에 부끄러워하게 된다. 오직 직접 목격한 장면만이 , 실제적인 접촉만이 내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상상 속을 살아갈 때, 상상력은 언젠가 고갈되어버린다. 특히 실제와 관련된 상살력은 더욱 그렇다.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을 마음에 품고 사는 자는, 마침내는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해낼 능력을 상실하고 만다. (p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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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8-05-06 16:27   좋아요 0 | URL
우왕~절판되어 안타까워요..

깐도리 2018-05-06 16:3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그쵸 ^^
 
수련 :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시간 배철현 인문에세이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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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장, 좌정, 방석, 신념, 배역, 기도, 비겁, 단순, 욕심, 식탐, 자막, 분노, 시기, 귀향, 동지, 추상, 문법, 건축, 시련, 방향, 자유, 감각, 평안, 일치, 이주, 침묵, 패기   


책에는 28가지 단어를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있는 배철현의 삶에 대한 관조를 엿볼 수 있다. 나 자신을 응시하고, 나의 인생에서 채워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아는 것, 수련이란 그 과정을 반복하는 하나의 지속적인 힘이자 연습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건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의 연결고리가 끊이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저자는 자신의 과거의 삶 속에서 자신을 응시하였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이 달라짐을 성찰하게 된다. 지혜라는 건 최선의 선택을 추구하는게 아닌, 최악의 선택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사람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리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뀔 수 있으며, 그 순간을 잘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에 대해 이 책은 '수련'이라는 하나에 화두에 다다르고 있었다.


미래는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해 최선을 다할 때 자연스레 나에게 다가오는 신의 선물이다. (p40)

미래는 내가 원하는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부단히 수련할 때 만들어지는 예술이다. (p41)


그 어느때보다 우리는 미래를 이야기 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미래를 바라보는 목적은 미래를 예측함으로서 성공이라는 과실을 얻기 위해서이다. 남들보다 먼저 예측하고, 통찰력을 발휘한다면 그것이 나에게 큰 이익이 될 수 있다. 돌이켜 보자면 유명한 몇몇 사람들의 발자취를 보면 그들은 미래를 내다보고, 한걸음 앞장서 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미래가 중요하다 해서 현재를 놓쳐선 안된다는 사실을 배철현 교수는 언급하고 있다. 현재의 나에게 찾아오는 매 순간 순간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수련을 통해 나가 원하는 미래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신의 선물이며, 부단한 수련이 우리에게 요구된다. 


나를 위한 최선의 경주는 다른 사람들과 경쟁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경쟁이다. 마치 42.195킬로미터를 달려야 하는 마라토너들이 각 구간마다 최적화된 전략을 짜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성공적인 완주의 비밀인 것처럼 말이다. (p123)


달려보면 안다. 42.195킬로미터의 거리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거리가 될 수 있다.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풍경을 보면서 달린다면 그 거리는 짤다는 느낌을 얻게 된다. 나는 42.195키로미터의 주로에서 페이스메이커를 하면서 그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초보자들의 페이스를 도와주는 역할이 바로 페이스메이커가 하는 일이며, 매구간 통과 시간을 정확하게 맞춰야 한다. 항상 느끼지만, 주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은 페이스메이커의 완주 전략과 다른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라톤을 완주할 때 기록을 위한 달리기를 한다면 사람들은 조금씩 욕심을 낼 수 있다. 초보자들은 완주에 대한 걱정을 생각하지만, 10번 이상 완주한 아마추어는 훈련량이 부족해도 완주할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적은 연습량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에 휩쓸리게 되면 욕심을 부리게 되고,중심을 잃어버린다.엘리트 선수가 100m 18초 대로 달린다면, 아마추어는 24초대를 달리면 인정해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달리면서 느끼는 욕심은 끝이 없다. 특히 초반 1초를 앞당기려는 욕심은 마지막 10km 를 남겨놓고 휴유중에 시달릴 수 있다. 마라톤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지만 온전히 나의 과거와 싸우는 경기이며, 도로의 사정에 따라 기록을 차이가 날 수 있기에 전략을 잘 짜야 하는 건 당연지사이다. 서울 동아마라톤에서의 페이스대로 시골 벽촌 에서 그대로 달리다간 자칫 부상을 입고 완주에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의다 끝난 뒤 나의 분노를 응시해보았다. 분노는 일을 해결하기보다 망치게 한다. 또한 분노는 상대방에게 쉽게 전염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내가 화를 내면 상대방도 화를 낸다. 너도 나도 모두 화를 내면 일을 그르친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분노가 자신의 삶의 강력한 연료라고 자신있게 말하곤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으므로 자신이 성공했다고 말할지 모른다. (p151)


과거보다 분노가 많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고 있다. 나의 분노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다른 사람의 분노가 나에게 전염된다. 작은 일에 분노를 하는 건 어리 석은 일임에도 나는 그걸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후회하고, 또 후회하는 삶을 살아가는 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내 삶을 응시하고, 나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이 현대 사회에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분노가 많은 사회에서 나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누군가의 분노가 나의 분노를 싹티우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를 응시하는 습관과 시간이다.


그동안 읽었던 배철현 교수님의 책이 무거운 느낌을 가지고 있다면, <수련> 은 그에 비해 가볍고 인문서라기 보다는 에세이 느낌을 받게 된다. 나 자신을 되돌아 본다는 건 언제나 힘들다. 매 순간 감정이 흔들리고, 누군가의 예기치 않은 행동에 분노할 수 있다. 그 순간을 잘 다스리믄 것이 바로 지혜이며, 지혜는 나 자신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웅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삶을 바꿔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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