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 (MP3 CD)
Richard Hofstadter / Tantor Audio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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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싶었던 건 미국 사회에 불고 있는 트럼프 현상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미국 사회와 미국인들의 은밀한 정서, 그들 사회 안에 감춰진 사회적인 모습을 들여다 보고 싶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 오면서 미국 사회는 청교도 주의를 미국 사회의 밑바닥에 채워 나갔다.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 중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대통령이 전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으며, 그들에게 종교가 가지는 의미는 우와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영국에서 건너와 미국을 세웠던 선교사와 목사들은 지성인이다. 선교사와 목사를 만들기 위한 교육기관 하버드 대학을 만든 이유는 그들이 영국에서 넘어온 엘리트 귀족주의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 미국 사회는 자식인을 배척하고 반지성주의가 점차 뿌리내리고 있었다. 특히 토머스 재퍼슨과 해밀턴의 선거에서 재퍼슨이 선택한 선거전략은 바로 반지성주의였으며, 지성과 지식인을 배체하는 정서가 만들어지게 된다.행동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은 , 그러면서 사회에 대한 비판과 개혁을 외치는 지식인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혐오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 사회의 교육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교육 방식 또한 실생활과 연계되어 있는 교육을 추구하게 된다.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배워야 하는 지식인의 정서와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된다.


이 책은 1950년대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모습을 비추고 있으며, 초대 대통령 워싱턴부터 1950년대까지의 미국의 사회와 정치 지형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미국 정치인들이 지성과 지식인을  배제시키면서 미국인들에게 반지성주의를 자신의 선거 전략을 적극 활용하였고, 그 정서가 미국인들의 정서와 일치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선거전략이 통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성인에 대해서 전문가의 역할에서 벗어나 젠체하고 오만하며, 변덕스럽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존재라 생각하게 된다. 미국 사회에 필요한 존재이며, 학자로서 가치는 가지고 있지만, 그들을 미국 사회의 주류에 편입하기엔 위험한 존재였다.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그들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음으로서 생기는 갈등 문제들, 서로 거리를 두면서 미국 사회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이유, 정치인들이 대중적인 친밀감을 드러내면서 미국인들에게 나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반면 미국 사회와 우리 사회는 차이가 난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지성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미국의 정규 시험에서 계산기를 들고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우리 사회엔 나타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구구단을 달달 외우고, 수포자가 발생해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하버드 대학교와 같은 유수의 대학교를 나온 이들에게 교양과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 생각하고 대접하는 사회적 풍토가 여기에 있으며, 미국의 기업가들이 대학을 중퇴하고 회사를 차릴 수 있는 그런 사회적 토양이 우리에겐 없다. 기업을 물려 받기 위해선 좋은 대학교에 나와야 하고, 더 나아가 해외 유학까지 다와야 하는 모습은 미국사회와 비교된다. 이 책은 60년전의 미국사회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미국 사회와 차이가 날 수 있지만, 19세기 미국 사회의  실체를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돋보인다.


그들은 극히 세련된 젠틀맨이며, 정치의 부패를 개탄하면서 응접실이나 거실에서 토론을 거듭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의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마치 개혁이 케이크 같은 구체적인 사물이라도 되는 듯이 절박하게 요구하기만 하면 마음대로 건네줄 수 있는 것인 양 툭하면 큰 소리로 "개혁'을 외쳤다. 이 거실 개혁가들은 행동력의 부족을 비판의 열정으로 메웠던 것이다.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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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 (Paperback, Revised)
Richard Hofstadter / Vintage Books / 196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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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싶었던 건 미국 사회에 불고 있는 트럼프 현상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미국 사회와 미국인들의 은밀한 정서, 그들 사회 안에 감춰진 사회적인 모습을 들여다 보고 싶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 오면서 미국 사회는 청교도 주의를 미국 사회의 밑바닥에 채워 나갔다.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 중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대통령이 전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으며, 그들에게 종교가 가지는 의미는 우와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영국에서 건너와 미국을 세웠던 선교사와 목사들은 지성인이다. 선교사와 목사를 만들기 위한 교육기관 하버드 대학을 만든 이유는 그들이 영국에서 넘어온 엘리트 귀족주의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 미국 사회는 자식인을 배척하고 반지성주의가 점차 뿌리내리고 있었다. 특히 토머스 재퍼슨과 해밀턴의 선거에서 재퍼슨이 선택한 선거전략은 바로 반지성주의였으며, 지성과 지식인을 배체하는 정서가 만들어지게 된다.행동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은 , 그러면서 사회에 대한 비판과 개혁을 외치는 지식인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혐오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 사회의 교육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교육 방식 또한 실생활과 연계되어 있는 교육을 추구하게 된다.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배워야 하는 지식인의 정서와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된다.


이 책은 1950년대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모습을 비추고 있으며, 초대 대통령 워싱턴부터 1950년대까지의 미국의 사회와 정치 지형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미국 정치인들이 지성과 지식인을  배제시키면서 미국인들에게 반지성주의를 자신의 선거 전략을 적극 활용하였고, 그 정서가 미국인들의 정서와 일치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선거전략이 통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성인에 대해서 전문가의 역할에서 벗어나 젠체하고 오만하며, 변덕스럽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존재라 생각하게 된다. 미국 사회에 필요한 존재이며, 학자로서 가치는 가지고 있지만, 그들을 미국 사회의 주류에 편입하기엔 위험한 존재였다.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그들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음으로서 생기는 갈등 문제들, 서로 거리를 두면서 미국 사회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이유, 정치인들이 대중적인 친밀감을 드러내면서 미국인들에게 나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반면 미국 사회와 우리 사회는 차이가 난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지성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미국의 정규 시험에서 계산기를 들고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우리 사회엔 나타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구구단을 달달 외우고, 수포자가 발생해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하버드 대학교와 같은 유수의 대학교를 나온 이들에게 교양과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 생각하고 대접하는 사회적 풍토가 여기에 있으며, 미국의 기업가들이 대학을 중퇴하고 회사를 차릴 수 있는 그런 사회적 토양이 우리에겐 없다. 기업을 물려 받기 위해선 좋은 대학교에 나와야 하고, 더 나아가 해외 유학까지 다와야 하는 모습은 미국사회와 비교된다. 이 책은 60년전의 미국사회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미국 사회와 차이가 날 수 있지만, 19세기 미국 사회의  실체를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돋보인다.


그들은 극히 세련된 젠틀맨이며, 정치의 부패를 개탄하면서 응접실이나 거실에서 토론을 거듭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의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마치 개혁이 케이크 같은 구체적인 사물이라도 되는 듯이 절박하게 요구하기만 하면 마음대로 건네줄 수 있는 것인 양 툭하면 큰 소리로 "개혁'을 외쳤다. 이 거실 개혁가들은 행동력의 부족을 비판의 열정으로 메웠던 것이다.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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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미국의 반지성주의
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 유강은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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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싶었던 건 미국 사회에 불고 있는 트럼프 현상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미국 사회와 미국인들의 은밀한 정서, 그들 사회 안에 감춰진 사회적인 모습을 들여다 보고 싶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 오면서 미국 사회는 청교도 주의를 미국 사회의 밑바닥에 채워 나갔다.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 중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대통령이 전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으며, 그들에게 종교가 가지는 의미는 우와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영국에서 건너와 미국을 세웠던 선교사와 목사들은 지성인이다. 선교사와 목사를 만들기 위한 교육기관 하버드 대학을 만든 이유는 그들이 영국에서 넘어온 엘리트 귀족주의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 미국 사회는 자식인을 배척하고 반지성주의가 점차 뿌리내리고 있었다. 특히 토머스 재퍼슨과 해밀턴의 선거에서 재퍼슨이 선택한 선거전략은 바로 반지성주의였으며, 지성과 지식인을 배체하는 정서가 만들어지게 된다.행동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은 , 그러면서 사회에 대한 비판과 개혁을 외치는 지식인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혐오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 사회의 교육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교육 방식 또한 실생활과 연계되어 있는 교육을 추구하게 된다.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배워야 하는 지식인의 정서와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된다.


이 책은 1950년대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모습을 비추고 있으며, 초대 대통령 워싱턴부터 1950년대까지의 미국의 사회와 정치 지형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미국 정치인들이 지성과 지식인을  배제시키면서 미국인들에게 반지성주의를 자신의 선거 전략을 적극 활용하였고, 그 정서가 미국인들의 정서와 일치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선거전략이 통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성인에 대해서 전문가의 역할에서 벗어나 젠체하고 오만하며, 변덕스럽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존재라 생각하게 된다. 미국 사회에 필요한 존재이며, 학자로서 가치는 가지고 있지만, 그들을 미국 사회의 주류에 편입하기엔 위험한 존재였다.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그들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음으로서 생기는 갈등 문제들, 서로 거리를 두면서 미국 사회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이유, 정치인들이 대중적인 친밀감을 드러내면서 미국인들에게 나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반면 미국 사회와 우리 사회는 차이가 난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지성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미국의 정규 시험에서 계산기를 들고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우리 사회엔 나타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구구단을 달달 외우고, 수포자가 발생해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하버드 대학교와 같은 유수의 대학교를 나온 이들에게 교양과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 생각하고 대접하는 사회적 풍토가 여기에 있으며, 미국의 기업가들이 대학을 중퇴하고 회사를 차릴 수 있는 그런 사회적 토양이 우리에겐 없다. 기업을 물려 받기 위해선 좋은 대학교에 나와야 하고, 더 나아가 해외 유학까지 다와야 하는 모습은 미국사회와 비교된다. 이 책은 60년전의 미국사회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미국 사회와 차이가 날 수 있지만, 19세기 미국 사회의  실체를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돋보인다.


그들은 극히 세련된 젠틀맨이며, 정치의 부패를 개탄하면서 응접실이나 거실에서 토론을 거듭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의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마치 개혁이 케이크 같은 구체적인 사물이라도 되는 듯이 절박하게 요구하기만 하면 마음대로 건네줄 수 있는 것인 양 툭하면 큰 소리로 "개혁'을 외쳤다. 이 거실 개혁가들은 행동력의 부족을 비판의 열정으로 메웠던 것이다.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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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반지성주의
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 유강은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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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싶었던 건 미국 사회에 불고 있는 트럼프 현상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미국 사회와 미국인들의 은밀한 정서, 그들 사회 안에 감춰진 사회적인 모습을 들여다 보고 싶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 오면서 미국 사회는 청교도 주의를 미국 사회의 밑바닥에 채워 나갔다.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 중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대통령이 전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으며, 그들에게 종교가 가지는 의미는 우와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영국에서 건너와 미국을 세웠던 선교사와 목사들은 지성인이다. 선교사와 목사를 만들기 위한 교육기관 하버드 대학을 만든 이유는 그들이 영국에서 넘어온 엘리트 귀족주의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 미국 사회는 자식인을 배척하고 반지성주의가 점차 뿌리내리고 있었다. 특히 토머스 재퍼슨과 해밀턴의 선거에서 재퍼슨이 선택한 선거전략은 바로 반지성주의였으며, 지성과 지식인을 배체하는 정서가 만들어지게 된다.행동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은 , 그러면서 사회에 대한 비판과 개혁을 외치는 지식인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혐오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 사회의 교육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교육 방식 또한 실생활과 연계되어 있는 교육을 추구하게 된다.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배워야 하는 지식인의 정서와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된다.


이 책은 1950년대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모습을 비추고 있으며, 초대 대통령 워싱턴부터 1950년대까지의 미국의 사회와 정치 지형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미국 정치인들이 지성과 지식인을  배제시키면서 미국인들에게 반지성주의를 자신의 선거 전략을 적극 활용하였고, 그 정서가 미국인들의 정서와 일치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선거전략이 통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성인에 대해서 전문가의 역할에서 벗어나 젠체하고 오만하며, 변덕스럽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존재라 생각하게 된다. 미국 사회에 필요한 존재이며, 학자로서 가치는 가지고 있지만, 그들을 미국 사회의 주류에 편입하기엔 위험한 존재였다.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그들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음으로서 생기는 갈등 문제들, 서로 거리를 두면서 미국 사회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이유, 정치인들이 대중적인 친밀감을 드러내면서 미국인들에게 나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반면 미국 사회와 우리 사회는 차이가 난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지성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미국의 정규 시험에서 계산기를 들고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우리 사회엔 나타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구구단을 달달 외우고, 수포자가 발생해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하버드 대학교와 같은 유수의 대학교를 나온 이들에게 교양과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 생각하고 대접하는 사회적 풍토가 여기에 있으며, 미국의 기업가들이 대학을 중퇴하고 회사를 차릴 수 있는 그런 사회적 토양이 우리에겐 없다. 기업을 물려 받기 위해선 좋은 대학교에 나와야 하고, 더 나아가 해외 유학까지 다와야 하는 모습은 미국사회와 비교된다. 이 책은 60년전의 미국사회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미국 사회와 차이가 날 수 있지만, 19세기 미국 사회의  실체를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돋보인다.


그들은 극히 세련된 젠틀맨이며, 정치의 부패를 개탄하면서 응접실이나 거실에서 토론을 거듭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의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마치 개혁이 케이크 같은 구체적인 사물이라도 되는 듯이 절박하게 요구하기만 하면 마음대로 건네줄 수 있는 것인 양 툭하면 큰 소리로 "개혁'을 외쳤다. 이 거실 개혁가들은 행동력의 부족을 비판의 열정으로 메웠던 것이다.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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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ok of Disquiet (Paperback)
Fernando Pessoa / Serpents Tail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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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에 밑줄 그어본 적 없는 내가 밑줄 그어보고 싶은 유혹이 일 정도로 이 책이 가지는 첫 느낌은 강렬하다. 한권의 책이 아닌 두 권의 책을 사서 한권은 밑줄을 그어 나갈 것 같다. 우연히 알게 된 페르난도 메소아의 <불안의 서>는 소설인 듯 산문인 듯 아리송한 채 내 앞에 던저지고 있었고, 그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아닌 또다른 누군가를 통해 들여다 보고자 하였다. 객관적으로 남이 아닌 나 자신을 들여다 본다는 건 때로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울 수 있다. 어쩌면 그가 20년동안 이 작품을 기획하고 있었지만, 큰 궤짝에 넣어두고 세상에 내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가 아난가 싶다. 그 큰 궤짝에 남겨진 27000여장의 글 은 그를 위대한 존재로 탈바꿈 했다. 새상 사람들에게 문학적 가치를 검증받고 싶은 욕구와 함께 조용히 은둔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페소아의 마음 속에 감춰진 불안과 모순되어짐의 실체, 그는 생각하고 사유하고 꿈꾸고 몽상하면서 자신의 삶을 새로운 관점에서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인간이 동물보다 상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오만함을 비꼬고 있으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는 무형의 가치는 인간 스스로 불행의 덫이 되고 있음을 놓치지 않고 그의 저서에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었다. 


그는 다양한 형태로 자신을 낯선 공간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커다란 도로 변에 서 있는 그 누군가를 응시하고 있는 페소아의 마음이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바로 페소아 자신이었고, 생각하고 환상 속에 살아가는 존재였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삶을 터득하는 것, 때로는 냉엄하고, 역겹고 토나오는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체념하는 법에 대해 그는 이 책을 통해 채워 나가고 있다. 페소아는 자신의 삶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안에서 읽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생각을 얻는 과정이며, 그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반추하는 과정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아닌 나를 안다는 것,  안간이 불안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진리 앞에서  무기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몽상을 하고 환상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인간이 쓰는 말과 행동 감정의 실체는 내가 무엇을 응시하고 관찰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의식하고 있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무의식의 세계에 얼마나 깊이 빠져드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얼마든지 새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다.


책에는 피곤하다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다. 인간이 피곤한 삶을 살아가는 건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각을 통해 스스로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존재이며, 생각이 멈추는 순간은 죽음이 도래하는 그 순간이다.때로는 허무하고, 때로는 무기력하며, 인간으로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는 점점 더 냉소적으로 바뀌게 되고, 비인간적인 존재로 거듭난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비추고 있는 듯 하여서 뜨끔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800페이지 정도의 두꺼운 책이다. 그렇지만 니체나 칸트의 저서에서 느끼져는 난해한 문장은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페소아의 생각과 가치관, 의미에 접근할 수 있다. 481개의 소주제로 나뉘어져 있어서 중간이 쉬어서 읽는다 하여도 부담없이 읽어나갈 수 있다. 나 자신을 어땋게 관조하는지,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 나를 낯선 곳으로 바꿔 놓는 페소아의 <불안의 서>에는 철학적인 성찰이 곳곳에 배여져 있으며,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읽는다. 그리고 나는 해방된다. 나는 객관성을 원한다. 나는 나라는 하나의 개별체로 존재하기를 멈춘다. 내가 읽는 것은, 나에게 전혀 흥미롭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종종 내 목을 조이곤 하는 양복과는 달리 , 압도적이고 위대한 외부세계의 명료함이다. 모든 이들의 눈에 보이는 태양, 고요한 표면과 그늘진 얼룩을 가진 달, 바다에 가서야 끝이 나는 드넓은 공간들, 흔들리는 초록 이파리를 머리에 인 나무들의 흔들리지 않는 검은 직립, 농장에 딸린 연못의 동요 없는 평화, 계단식으로 정돈된 산비탈 위 포도나무가 우거진 길들.(p116)


나는 분노하지 않는다. 분노는 강한 자들의 일이다. 나는 좌절하지 않는다. 좌절은 고귀한 자들의 일이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침묵은 위대한 자들의 일이다. 나는 강하지도 않고 고귀하지도 않으며 위대하지도 않다. 나는 오직 아프며, 나는 오직 꿈꾼다. 나는 약하기 때문에 비탄에 잠긴다. 또한 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내 비탄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기쁘게 듣는다. 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아름답게, 내 상상의 세계와 가장 밀접한 형태가 되도록 꿈을 꾼다.  (p236)


나는 자문한다. 스스로를 고립시켜 비범하게 만들려는 내 모든 수고와 노력이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십자가형의 명예를 위해 나 스스로가 삶의 방향으로 잡은 느린 고통의 길이 정말로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설사 가치가 있는 일임을 내가 안다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그것이 전혀 가치가 없으며, 결코 그 어떤 성과도 얻지 못하리라는 느낌에 나는 엄습당한다. (p501)


내가 누군가와 아무리 가깝고 신실한 친구 사이라 해도, 그 사람이 병들었거나 죽었다는 소식은 내 안에서 막연하고 그저 그런, 희미한 인상 밖에는 남기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에 부끄러워하게 된다. 오직 직접 목격한 장면만이 , 실제적인 접촉만이 내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상상 속을 살아갈 때, 상상력은 언젠가 고갈되어버린다. 특히 실제와 관련된 상살력은 더욱 그렇다.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을 마음에 품고 사는 자는, 마침내는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해낼 능력을 상실하고 만다. (p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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