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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이
소설은 강요하지 않는다. 자극적이지도 않다. 작가는 나에게 우리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으며, 나는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두 남녀를 바라보면서 작가 한강은 독자마다 자신의 인생과 겹쳐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작가의 아름다운 문체를 통해 나의 삶의 빈 여백을 채워 가게 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상을 탓던 그 때 <채식주의자>보다 이 소설이 더
궁금했다. '연꽃폴라리스'님의 책나눔 이벤트에 올린 표지 하나.그리고는 기억에서 지워 버린 나, 살면서 얻은 한지혜는 내가 만나고
싶어도 찾아가 보고 싶고, 그리워 했던 사람이 언젠가는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난다는 것이다. 책 또한 그렇다. 기억 속에
잊혀버린 이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독특한 책 제목 그리고 독특한 언어 희랍어, <희랍어 시간> 표지 안에서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전달 하려고 하는 걸까, 궁금하다.
자아와 소통. 소설은 이 두 가지를 소설 속에서 꺼내고
있었다. 세상을 점점 보지 못하는 희랍어 강사와, 이혼후 아이의 양육권을 잃고 말을 할 수 없게 된 시인, 시인은 희랍어 수업을
통해 눈이 보이지 않는 강사를 만나게 된다. 자아를 얻기 위해서, 자신을 좀 더 알기 위해서, 말을 잃어버린 시인은 독특한 언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고대의 철학 언어 희랍어를 통해 사유하고 싶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연결고리도,
존재감도 없었던 수업 과정,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건 시인이 직접 쓴 희랍어 시였다. 주변 사람들이 신인의 쓴 희랍어 시에 관심을
가지지만 그녀는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시인은 도망치게 된다., 눈이 보지 않는 강사는 시인에게 말하기를 강요하지 않았으며,
그녀를 배려하게 된다. 그녀가 표현하는 방식을 존중하였으며, 강사는 거기에 따라 그녀의 언어를 듣게 된다. 강사는 자신의 행동을
통해 진정한 소통을 말하고 있다. 언어가 아닌 배려가 먼저라는 걸 작가는 우리에게 말한다. 강사와 시인은 그렇게 배려를 통해
소통할 수 있었고, 말을 못하는 시인은 조금씩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소설 속에 나오느 희랍어는
영어에는 없는 중간태가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규칙을 가진 희랍어 안에서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살았던 그 시절 그들이 사용했던
죽은 언어를 지금 우리는 왜 사용하려고 하는 걸까, 그들의 사유 방식을 얻고 싶었던 건 아닐런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우리
삶에 대한 깊은 성찰, 그것은 희랍어 원전에는 숨어 있었다. 그렇게 희랍어 강사와 희랍어를 배우려는 시인은 만나게 되었고,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너, 왜 철학을 하려고 하느냐고 나에게 물은 적 있지. 내 생각을 듣고 싶지?
고대
희랍인들에게 덕이란, 선량함이나 고귀함이 아니라 어떤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언제 어느 곳에서든 죽음과
맞닥뜨릴 수 있는 사람. 덕분에 언제나, 필사적으로 삶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사람. 그러니까 바로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사유에 관한 한 최상의 아레테를 지니고 있는 거 아니겠니? (p113)
내 말을 들을 수 있나요?
위에 다른 사람은 없나요?
안경이 깨졌어요. 나는 시력이 아주 나쁩니다.
누구든 불러주겠어요?
택시를 잡아야 해요. 안경점이 문을 닫기 전에.
내 말을 들을 수 있어요? (p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