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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 비네 지음, 이주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1월
평점 :
이 소설을 읽다보면 두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한번 더 읽어야겠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또다른 책들을 찾아봐야겠다. 이
두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이유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구조에 있었다.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징으로 소설가가 이야기에
개입하지 않으며, 독자가 소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방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는 또다른 로랑비네가 소설 속에 등장하며,
자신이 왜 히틀러를 소재로 한 역사소설을 썻는지, 소설 속에 히틀러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히믈러라는 실존 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
요제프 가브치코, 얀쿠비시라는 가상의 인물을 왜 설정했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작가의 소설 스토리의 기반이 되는 또 다른
이야기가 등장한다. 물론 소설 속에서 히틀러의 회고록이나 하이드리히의 아내가 쓴 책들, 그런 책들이 왜 등장하는지 알 수가
있으며, 소설이면서 에세이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며, 역사 이야기이기도 하다.
역사에 대해 언급할 때 항상 '만약'이라는 가정법을 쓰는 경우가 있다. 염소라 불리면서 사형집행자라 불리는 하이드리히가 왜 잔인한
방법을 동원해 유대인 학살을 진행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 역사학자나 소설을 쓰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주말이면 항상 나오는 <신비한 서프라이즈> 또한 자주 언급되고 있는 사람이 히틀러이며, 히틀러의 행동과 그의 잔인함은
어디서 기인했는지 히틀러가 죽은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궁금할 수 밖에 없으며,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진다.
그것이 어쩌면 여전히 우리에게 히틀러는 하나의 뜨거운 감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국의 현대사와 겹쳐짐을 알수 있다.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했던 역사적 사건처럼 이 소설 또한 주인공
가브치코와 쿠비시를 등장시켜 하이드리히에게 폭탄테러를 가하려는 이야기가 펼쳐지며, 두사람의 고국 체코와 슬로바키아라는 나라에 대해
관심가질 수 밖에 없다. 유럽인들이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을 구분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체코와 슬로바키아 사람을 구분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소설을 통해서 느낄 수 있으며, 두 나라의 민족성과 그들의 삶이 분리되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역사적 사건은 어쩌면 계획된 무언가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것이 아닌 우연과 돌발적인 어떤 사건에 의해서 바뀌고
있으며, 권력의 실체는 언제나 그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는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이 어떤 역사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그들의
추론과 추측이 틀려지는 이유가 우연적 사건을 계획적인 사건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런지..그걸 이 소설을 통해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하이드리히의 아내 리나 하이드리히의 회고록에 대해서 관심이 갔다. 하이드리히의 아내가 남긴 회고록
<전범과의 생활 (Leben mit einem Kriegsverbrecher,Life with a War
Criminal)> 이 네오 나치가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이유가 그 책에 있다고 로랑 비네가 말하고 있으며, 그것을 직접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이 책이 국내에 번역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소설을 통해서 더욱 더 알고 싶어졌다.
이 소설은 분명 소설이다. 두명의 허구의 주인공 가브치크와 쿠비시를 등장시켜 유대인을 학살하고 집행한 희대의 괴물이면서
사형집행자라 불리는 하이드리히를 죽이는 과정이 드러나고 있으며, 그들의 순진한 발상과 마주하게 된다. 하이드리히를 죽이면 유대인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발상, 그 발상이 틀렸다는 걸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알수 있으며, 또다른 어떤 사건을
만드는 빌미가 될수 박에 없음을 재확인할 수가 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소설에 두번 언급되고 있는 라울 힐베르크의 저서
홀로코스트 유럽유대인의 파괴 (The Destruction of the European Jews) 가 언급되고 있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금 알수가 있다.
라울 힐베르크는 치안유지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하이드리히의 설명을 통해 하이드리히가 자신의 일과 독일 사회를 어떻게 끌고 가고
싶은지를 눈치챈다. 독일 국민 전체를 경찰의 조수처럼 활용해 유대인들의 행동을 감시하고 수상한 점이 있으면 신고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1943년에 일어난 바르샤바 게토에서 일어난 폭동이 독일군에 의해 3주만에 진압되면서 하이드리히의 주장은 더욱 더 힘을
얻게 된다.(p115)
처음에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게 될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에 대해 점점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맞지만 정확한
목적지는 정해지지 않은 기차를 모는 것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겠죠.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나치즘은 단순한 정당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가야 했던 사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전에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일과 마주하게 된 독일
관료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히틀러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됩니다. 누군가가 수장으로 앉아 천성이
보수적인 관료들에게 행동 개시를 허락해 주어야 했던 겁니다.(p262)
라울 힐베르그가 나치와 히틀러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나 아렌트가 아돌프 아이히만을 보는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언가 누군가 지시해 주길 바랐고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악인지 선인지 모른 채 행동했던 그들의 모습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나치 전범 재판에서 말하고 있었다. 그들이 설령 악이라는 실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이 했던 행동들은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사실이며,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적이나 영원한 친구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했던 일련의 행동들. 독일과 일본으로 인하여 강대국이 되었으며, 그들은
재판을 통해서 자신들이 이용할 가치가 있는 이들과 이용할 가치가 없는 이들을 구별하었고 죄를 물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을 통해서
기억을 재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