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달인이 전하는 진심 - 1승이 간절한 그대에게
엄기성 지음 / 북새바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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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엄기성입니다. 저는 사람들의 소위 말하는 지잡대 출신입니다."

그 말에 학생들이 하나둘 쏠렸다. 멀리서도 목소리가 들리도록 배에 힘을 주고 크게,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13-)

"이게 뭔지 아십니까? 대한민국 최장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 1등 메달입니다. 전국노래자랑은 누구나 나갈 수 있지만 아무나 1등이 되진 않습니다. 절 뽑아주신다면 롯데의 얼굴이자 자랑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절 뽑아주신다면 롯데의 얼굴이자 자랑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 이력서를 보면 아시겠지만 전 지방대 출신입니다. 사회적 잣대로 어떻게 평가되는지 잘 알고 있으나 전 부끄럽지 않고, 강원대 출신임이 자랑스럽습니다.지방대가 왜 뿌리 깊게 가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58-)

스승의 날은 제자들이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날이다. 고등학교 시절 반장이었던 나는 어김없이 친구들과 카네이션을 준비하고 도가 지나치지 않을 장난거리도 의논했다. 그런데 그해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학교 앞에서 교통봉사 하는 선생님 ,급식실 선생님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즐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의논해서 그분들께 꽃을 달아 드리기로 했다. (-114-)

학생회 시절 이야기다. 매년 학생들이 입학하면 등록금을 내는데 거기엔 학생회비가 포함되어 있다. 학생회비는 학우들의 복지와 편의 증을 향상 시키고 각종 행사와 과별 운영 비용 등에 사용되어, 총학생회와 단과대학에 일정 비율로 분배된다.

총학생회는 이 비용을 축제 ,교류전, 해외탐방 등에 비용을 집행하고, 각 단과대학들은 체육대회, MT,각종 과 행사 등에 사용한다. (-148-)

우리집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는 건 자라면서 알게 됐다. 전교회장 출마를 반대했을 때, 부모님이 가끔 돈을 가지고 사랑 싸움하실 때,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정규교육은 받지 못했을 때, 평생 농사를 짓는 아버지가 서울로 일하러 가실 때, 엄마가 힘들어하면서도 요양원 일을 그만두지 못할 때 조금씩 깨달았다. 자연스럽게 중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번돈은 대부분 부모님께 드렸다. (-192-)

지금도 인사 하나는 참 잘한다. 누굴 만나든 먼저 인사한다. 내가 덩치고 크고 가만히 있으면 무서워 보이는 인상이라 특히 여자분들 앞에선 웃음을 잃지 않는다.

강연할 때도 시작은 인사다. 대학생이든 초등학생이든 일단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존댓말로 강의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진정성 있게 상대를 존중하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210-)

작가 엄기성은 청소년 진로 상담 전문가다. 작가 엄기성은 청소년들의 기둥이 되고 싶은 남자라고 어필하고 있었다. 지잡대 출신, 강원대 정치외교학과를 전공하였던 그가, 디지털커뮤니케이션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기둥교육'을 설립하여,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노스펙이었던 그가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독립할 수 있었던 건, 오지랖과, 친화력에 있었다. 대기업에 수십차례 떨어졌고,단한번 롯데에 입사할 수 있었다. 자신이 살았던 곳에 ,롯데에서 생산하는 소주 제품 처음처럼이 1위로 만들어보겠다는 강한 의지가 면접관에게 먹혀 들었으며,그는 입사후 곧바로,소주 처음처럼 판매 영업에 올인하였다.

그가 보여준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삶에서 벗어나 있다. 우쭐 거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기죽어 있지 않았다. 지잡대 나왔다고, 스스로 자신을 낮추거나,겸손하거나, 굽히지 않는다. 돈,지위, 명예가 먹혀드는 대한민국에서,스스로 틈새 전략을 성공의 길로 이어나가고 있으며, MZ세대에게 희망이 되고 있으며,스스로 기둥이 되겠다고 말한 이유다.

그의 인맥은 결혼 사회자를 통해 얻은 인맥이다.특유의 친화력과 오지랖 때문이다. 불편한 상황이 있으면, 바꿔 나간다. 남들은 나에게 이득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성향이 강하다. 욕먹지 않으려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지 않았다. 특유의 돌파력으로 밀어 나갔으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바꿔 나가야 하는지 명확하게 제시하고,사람들을 설득해 나간다. 강원대학교에 편입하고, 총학생회 대표에 나갈 수 있었던 건 그가 실패 속에서, 성공 가능성을 만들어 나갔기 때문이다. 조건과 상황이 그 성공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1퍼센트의 가능성이 보인다면, 스스로 총대를 메고 나가는 성향이었으며,그가 전공을 살려서 정치인의 특별 보좌관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작가 엄기성은 씩씩하지만, 자기 주제 파악을 할 줄 알고, 스스로 고쳐 나갔다.그것이 그가 말하는 희망이며, 가능성이었고, 마음 따스한 오지라퍼였고, 삶의 의미이자 그가 추구하는 인생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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