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 붓으로 전하는 위로
서정욱 지음 / 온더페이지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리다 칼로는 1907년 7월 6일 멕시코시티 교외 코요아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헝가리계 독일인 사진가였던 기예르모 칼로, 어머니는 멕시코 원주민인 마틸데 칼데론이 곤잘레스 였습니다. 츠리다 칼로는 유복한 가정에서 네 자매 중에 셋째로 태어났죠. (-5-)

1925년 9월 17일 프리다 칼로는 남자친구 알레한드로와 함께 타고 하교 중이었습니다. 그때 그녀가 탄 버스가 마주 오던 전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났습니다. (-6-)

하얀 살결의 프리다 칼로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배경이 어두워서 더욱 부각됩니다. 게다가 목이 어찌나 긴지...그리고 그것을 더 강조하려는 듯, 옷은 가슴 아래까지 열어놓았씁니다. 하얀 얼굴, 기다란 목, 팬 가슴 그리고 아래에 있는 하얀 손이 연결되며 감상자를 뽀얀 속살로 유혹합니다. (-27-)

1929년 8월 21일 프리다 칼로는 결혼을 했고,. 1930년 3월에 임신을 했습니다. 너무 기뻤죠. 이제부터 그녀에게 기쁨과 희망이 가득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72-)

현실과 다른 것은 계속 나옵니다.두 프리다 칼로의 시뻘건 심장이 생생히 보입니다.진짜 심장이 몸 밖으로드러난 것인지, 아니면 가슴이 투명해져 안에 있는 심장이 보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무엇이라 해도 현실 세계는 정말 아닙니다. 게다가 2개의 심장은 가느다란 핏줄로 연결되었습니다. (-91-)

디에고 리베라의 사랑만 바라보고 산다면 영원히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깨닫게 되며,이제 독립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혼을 하고 이 작품을 그렸습니다. 그녀는 그림 속에서 자신의 머리를 싹둑싹둑 다 잘라냈습니다.몸에서 떨어져 나간 머리카락은 곧 썩어 땅으로 스며들어 ,다시 식물로 자랄 테니까요.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 토속 신앙의 죽음과 삶의 순환을 믿었습니다. (-107-)

얼굴도 섬뜩합니다.머리도 시커멓고 눈썹도 시커멓습니다. 얼굴만 보면 신생아가 아니라 최소한 어린이입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아이의 표정도 보는 이를 무섭게 합니다. 힘없이 눈을 감고 입을 벌리고 있으며, 목은 축 늘어졌습니다.기진맥진하거나 죽은 상태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음울한 기운을 풍깁니다. (-146-)

광고판과 대칭인 오른편 끝에는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공장들이 있습니다. 공장에는 많은 굴뚝이 세워져 있습니다. 저 굴뚝에는 얼마나 많은 매연이 나와 지구를 더럽힐까요?멕시코에는 자연을 거스르는 것들이 없습니다. (-262-)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몸을 둘로 갈랐씁니다.저개선에서는 빨갛게 피가 배어 나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러지 않죠. 그런데 그녀는 왜 스스로 몸을 갈랐을까요? 그 이유는 자를 때의 아픔보가 아픈 척추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273-)

프리다 칼로는 이 자화상 뒷면에 이런 글을 남겨놓았습니다.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남아 있지 않다.시간이 되면 모든 것이 배 속에 들어 있는 것과 함께 변한다.

알쏭달쏭한 이야기죠. 내막은 이렇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한 두 번 수술한 것이 아닙니다. 18살 때의 교통사고가 워낙 심각했기에 당시 급하게 수술하느라 올바르게 치료되지 못한 부분이 많았습니다.그래서 얼마 전에는 뼈 이식과 강철 지지대로 척추를 펴는 수술을 또 받았고요.(-319-)

프리다 칼로는 1954년 7월 13일 새벽, 침대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화장했습니다. 화장은 그녀의 유언이었죠. 평생 누어 있었는데 죽어서까지 누워 있기는 싫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날고 싶어 했죠. 유언은 그녀의 생전 이루지 못한 소원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346-)

멕시코 화폐 500 페소에서 , 앞면에는 디에고 리베라의 『칼라 백합꽃을 파는 여인 (El Vendedor de Alcatraces)』이 있고, 화페 뒷면에는 프리다 칼로( 1907년 7월 6일 ~1954년 7월 13일)의 『‘우주, 대지(멕시코), 디에고, 나 그리고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The Love Embrace of the Universe, the Earth (Mexico), Diego, Me and Señor Xólotl’(1949·이하 ‘사랑의 포옹’)』 이 있다. 이 멕시코 화페에서 보듯,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는 그림을 그리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 부부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원만하지 않았고, 디에고 리베라는 잦은 외도로 인해 프리다 칼로와 이혼하기에 이르렀다.

책 『프리다 칼로, 붓으로 전하는 위로』에는 그녀가 생전 쓴 그림에 대해 이해를 돕고 있다. 여성의 생식기, 자궁, 나팔관, 가슴을 적나라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건, 그녀가 18살 되던 해 교통사고로 인해 의사가 되려는 꿈을 접고,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11곳이 골절되었고, 척추에 철심을 박기에 이르렀다. 살아 생전 디에고 리베라와 관계를 가지고, 임신하였지만, 번번히 유산하게 된다. 자신의 교통사고 휴유증이 평생 고통을 주고 만다.

이 책을 읽으면 그녀가 남긴 작품들에 대한 이해,고통과 슬픔 속에 평생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던 그녀가 어떤 삶을 원하였는지 공감하게 되면, 삶의 끈을 내려놓고 싶은 사람들, 생을 끊어버리고 싶은 이들에게 위로와 치유가 될 수 있다. 죽은 것이 사는 것보다 힘들 때, 프리다 칼로는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삶, 그리고 죽음, 절망 ,그리고 희망에 대해서, 자신의 삶을 자화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프리다칼로의 삶을 좋아하는 대표적인 팝의 여왕 마돈나(Madonna, Madonna Louise Ciccone, 1958~) 는 프리다 칼로의 『나의 탄생』 외에 다수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프리다 칼로의 삶을 보면, 2000년 7월 30일 큰 고통사고로 온몸에 화상을 입고 죽음의 늪에서 벗어난 이지선의 삶이 생각났다. 40여차례의 수술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삶, 그녀가 스스로 극복하고, 한동대 교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이들의 삶 그 자체가 우리에게 위로와 치유의 힘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삶을 견디는 힘에서 얻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