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짓고 싶은 저녁 걷는사람 시인선 60
문신 지음 / 걷는사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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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가 밥을 안치는 저녁

늙은 어미가 밥을 푼다

이혼하고 돌아와 말없이 먹는 밥은 뜨겁다.

밥숟가락이 흰밥을 떠

약간 흰 허공을 날아 내 입속으로 들어오는 사이

흐린 텔레비전에는 밥숟가락 같은 혜성이 또다른 허공을 날악단다.

60년 만에 혜서은 지구를 지나가다.

나는 한 생이 60년이면 충분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어미는 이미 한 생에 또한 생을 얼마쯤 덧살고 있고

이혼한 나느 한 새에 미치지 못했다

그 알량한 생이 궁금해

오늘 밤에는 혜성이 늙은 어미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어미가 밥을 안치는 저녁이 지나면, 늙을 일도 없을 것이다. (-41-)

자화상

이중섭 , 1955년 종이에 연필 48.5 X 31cm

꿈에 중섭의 아이들을 만났다

tk나흘 전에 큰 눈이 내린 듯 처마 끝이 꽁꽁했다.

중섭의 아이들은 칭찬 같은 볼을 하고 있었다.

드러낸 아랫도리가 퍼랬다.

아이들은 연신 고개를 치켜올려 하늘을 쳐다보고는 그새 땅바닥에 엎드려

곱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다.

하늘을 그린다고 큰 아이가 말했다.

새를 그린다고 작은 아이가 말했다.

아이들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며 중섭이 가난을 끄덕이고 있었다.

겨울 하늘이

쓱쓱 스케치해 놓은 아이들의 얼굴답게 짱짱했다.

또 눈이 퍼부을 듯

중섭은 눈이 까맸다 목탄처럼 까맸다. (-65-)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편린 속에서, 그 한 때를 기억한다.우리는 죄를 짓고 살아간다. 푸코가 쓴 <감시와 처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죄를 느끼며 살아가며,그 죄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갈 때가 있었다. 시인은 어떨 때 죄를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양심에 따라 살아갈 필요성에 대해서 ,나름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였었다.

시는 법과 제도에 규정된 죄가 아닌, 도덕에 근거한 죄를 언급하고 있다. 큰 죄는 아니지만, 눈치를 살피게 되고, 밥이 목구멍을 넘어가지 읺을 때이다. 양심에 찔리는 일들로, 가난이 있었고, 이혼이 있었다. 나약하고, 연약한 할머니에 준하는 어머니가 퍼다주는 따스한 밥은 아들의 마음 한 컨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결혼 후, 아내와 살았던 아들은 갑작스러운 이혼으로 홀아비가 되어,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노쇠한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들의 심경을 엿볼 수 있으며,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때,그 죄는 소멸된다.

가난이 죄가 아니지만, 죄가 될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민페가 되는 것은 죄로 규정된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하루 하루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드물었다.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는 일도 죄가 될 수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 가난한 삶도 죄가 될 때가 있다. 나의 소소한 가난이 나의 자식 대에 되물림 된다는 것은 평생 짊어질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죄가 된다. 그러한 것은 가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도 죄가 되는 이유는 내 몸이 부모가 물려준 소중한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 고유의 정서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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