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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 인생이라는 장거리 레이스를 완주하기 위한 매일매일의 기록
심혜경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들면 옳은 길을 되찾아 나오면 된다. 가야 할 일이 아니라면 아무리 멀리, 아무리 많이 걸어갔다 해도 미련 두지 말고 냅다 돌아 나오는 게 좋다.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도 많이 걸어간 것이 아까워서 계속 가는 것이야 말로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길을 너무 멀리 간 것이 아까워서 계속 가는 것이야말로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길을 너무 멀리 떠나와서 어디로 돌아갈지 알 수 없을 때는 그 자리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것과 속 시원한 해결책이다. 내가 하고 싶어 시작하고, 내가 하고 싶지 않아서 그만두는 건데, 나 아닌 그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겠는가. (-24-)
모바일에서 사전 검색 기능을 사용할 때는 언어별로 각기 다른 브라우저 앱을 설치해서 사용한다. 컴퓨터나 모바일의 바탕화면이 깔끔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앱 인심이 야박한 편이지만, 브라우저 앱이라면 아낌없이 설치한다. 새로운 브라우저를 사용하는 일에는 퍽 진심인 편이랄까.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39-)
질 들뢰즈의 이 말이 모두에게 울림이 되기를.
헛되이 보내버린 이 시간 안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마지막에 가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배움의 본질적인 성과다. (-63-)
나는 중국어 스터디가 끝나기 전에 방송대 중어중문학과에 편입을 했다. 요산도서관에서 근무를 할 때라 그 근처의 '아베크엘'이라는 카페를 자주 이용했다. 직원 식당에서 식사하기 싫은 날은 그곳에서 해결하며 책을 읽거나 과제물 작성을 하곤 했다. 어느 날인가는 중국어의 어떤 문장이 틀린 것이며, 어디가 틀렸는지를 찾아내야 하는 문제와 씨름을 하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의 남성이 중국어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카페였기에 내 뒤에 들어온 그가 한국어로 주문하는 걸 본 듯도 했는데 중국어를 엄청 잘하는 것 같았다. 그에게 잠시 나의 중국어 교사 지위를 부여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는 여행지가 아니라는 생각에 빠르게 단념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문제의 페이지를 뚫어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내가 일찌감치 먹어 치운 케이크 접시의 포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1인용 좁은 테이블 위에 책과 공책을 어지럽게 늘어놓은 상태에서 고뇌하는 자세로 엎드리다시피 글을 베껴 적던 와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몸을 일으켜 세우기도 전에 그의 동작이 한발 앞섰다. 아,이런 매너남이라니, 그가 주워서 내미는 포크를 바라보며 내 입에서 물 흐르듯 자신있게 흘러 나온 "셰셰" 라는 말 한마디에 게임 끝! 이런 기회를 놓칠세라 그에게 '과제물 들이밀기' 를 시전했다. 내게는 너무도 어려웠던 문제를 그가 일사천리로 해결해줬음은 물론 , 자신이 비록 이공계 엔지니어지만 공부하다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또 물어보라며 전화번호도 줬다. 내가 근처 도서관 사서라고 신분을 밝혀 안심을 했는지 자신이 이곳 동네 주민이며, 국내 굴지의 모 기업체에서 일하는 중국인이라는 사실도 말해줬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 업무에 복귀할 시간이어서 곧 헤어졌지만, 든든한 후원자를 알게 되었기에 그날은 퇴근할 때까지 산뜻한 마음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 (-99-)
어릴 때 주위 어른들이 내게 붙여준 별명은 '책버레'였다.그래서 책을 유별난 애정을 상징하는 칼 슈피츠버그의 <책벌레 The Bookworm>라는 그림을 발견하고는 그림 속 수천권의 책에 둘러싸인 노학자를 마치 나의 도플갱어인 듯 바라보곤 했다. 그러다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도서관 사서>라는 그림을 만났을 때는 그 기발함이 사랑스러워 함께 아껴주게 됐다. (-165-)
가까운 지인에게 내가 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타박하는 멘트를 가벼이 던지곤 한다. 공부 그만 배우고, 자신의 일을 도와달라는 1차적인 목적과 , 다른 것을 생각하라는 의미심장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럴 때, 서운함을 감추고, 나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정말 공부를 멈추어야 하는건지, 스스로 회의감에 도취되며, 스스로 의심하게 되었다. 혼란하고,당황스럽다고 생가되는 그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그 사람의 생각이 틀렸고, 나의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저자의 삶 속에 보여지는 나의 삶의 방식이 트리지 않았다는 것에 위로가 되었다. 책과 친구가 되어, 평생 배움 속에 파묻혀 살아도 괜찮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27년간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했던 저자는 제 2의 인생으로 번역일을 하게 되었고, 퇴직 이후,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있다. 방송통신대학교, 언어 관련 학과를 입학하면서, 스스로 터득한 외국어, 생소한 언엋를 습득하면서, 배움과 꼼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 안되는 것은 없다는 당당함이 묻어난다. 나이가 들어서, 눈이 침침해서, 공부를 멈춰야겠다는 생각은 저자에게 사치 그 자체이다.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열정 속에, 공부에 대한 관심이 커졌으며, 궁하면 통한다는 사실, 모르면, 내가 모르는 것을 해결해 주는 귀인이 찾아온다는 것을 스스로 경험속에서 느꼈으며, 홀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남다른 방식이 있었다. 사서 일을 하면서, 방송통신대학교 중국어학과에 입학하였던 저자는, 과제로 주어진 어려운 중국어를 몰라서 혼자서 끙끙거릴 때, 그 순간 찾아온 반가운 손님과 인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배움에 대한 갈망이 진정성으로 전환되었고 , 학습에 대한 가치가 현존하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결코 놓칠 수 없는 배움의 끈,그것이 내 삶을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또다른 이유가 되고 있었다. 즉 저자의 삶 속에 배움에 대한 갈망, 책벌레로서 살아가는 것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라는 사실, 자기만족, 마중무로서 살아가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