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나온 여자 - 양선희 작품집
양선희 지음 / 독서일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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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 단어가 입 밖에 나온 그 순간부터 나는 주체할 수 없이 엄마를 반복해 부른다. 고등학교만 나와 빵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던 엄마는, 내가 당시의 '성공의 증표' 라고 생가했다. 친구들에게 "우리 딸은 이대 다녀."하고 자랑했다. 명문대 출신의 대기업 직원인 사위에 대한 자긍심도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한순간 망할 수 있다는 걸 엄마도 나도 몰랐다.IMF 위기가 오고, 남편의 회사가 공중분해 되면서 일자리를 잃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가 곧 직장을 찾을 줄 알았다. 한데 그는 회사의 울타리가 사라지자 급격하게 위축됐다. 잠시 들어간 중소기업엔 적응을 못했고, 그렇게 들락날락 하다가 그는 아예 집안에만 머물렀다. 그래도 그걸로 내가 그 사람과 헤어질 것으론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만 아니었다면....'
그 무렵 엄마가 뇌종양으로 쓰러지고, 수술을 받고, 그 수술에서 잠시 깨어나 "김서방은 취직했니?"하고 묻지만 않았다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엄마가 숨을 거두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엄마의 마지막 평생의 자긍심을 모너뜨리는 것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28-)


작가 양선희의 <이대나온 여자>에는 다섯편의 단편이 모여 있다. 이대 나온 여자, 흐러간 지주, 롱아일랜드 시티, 윻령의 시장, 아빠의 연인이다. 이 소설에서 첫 번째 <이야기 이대 나온 여자>는 IMF를 겪어 보지 못한 세대들에겐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문학 작품이다. 1990년대 초만 하여도, 대한민국은 연 10퍼센트 성장률을기록하였고, 아시아 네마리의 용이 되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달러가 부족한 상태에서 부실 대기업은 우후죽순 넘어가게 된다. 그 과도기를 겪은 이가 이 소설의 주인공 소진 엄마다. 


소진엄마는 이대를 졸업한 재원이다. 배움이 짧은 소진의 할머니는 자신의 딸이 이대나온 것을 자긍심으로 삼고 있었으며, 평생 직장과 평생 출세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간 상태에서, 소진의 할머니는 평생 자신의 딸을 자랑으로 여기게 된다. 대기업 사위도 자랑거리다. 하지만 세상은 한치 앞도 모른다는 걸 알게 해주는 IMF 외환위기가 닥치게 된다. 기세 등등한 사위느 대기업에 나올 수 밖에 없었고, 중소기업에 취직하지만 적응하지 못한다. 대한민국 사회의 엘리트가 하류인생으로 추락한 것은 한순간이다. 소진엄마도 잘나가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남편의 추락을 보면서, 스스로 자존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과외를 가르치면서, 생활비를 마련했던 소진엄마에게 과외 의뢰를 하는 학부모들은 소진엄마의 이대 나온 이력을 보고 신뢰를 하지만, 그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스스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게 된다. 그런 모습에 일침을 가하는 이가 소진이다. 즉 우리 나라의 교육 현실에서, 이대 나온 소진 엄마는 경쟁력에서 밀린 것이며, 스스로 자기계발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소진엄마의 비참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은 지금 현재에도 여전히 학벌 중심 사회에 놓여져 잇느 대한민국 사회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서울대, 연고대, 이대를 나오면 출셋길이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대한민국 정서가 만연한 가운데, 그것이 꼭 정답은 아니라는 걸, 소진엄마가 잘 보여주고 있다.학벌에 의존하지 말고, 학벌 프리미엄에 도취하지 않는 것, 스스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아간다면,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힘들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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