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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시간, 영원한 현재 - 김봉렬의 건축 인문학
김봉렬 지음 / 플레져미디어 / 2021년 9월
평점 :
절판
고창 향산이 고인돌
기둥 모양의 받침돌을 가진 고인돌로, 네 귀퉁이를 돌기둥을 세워 기둥식 건축물을 만들었다. 마치 삭조 기둥식 건물과도 같은 이 고인돌은 언덕 위에 단독으로 서 있어 당시 그곳의 랜드마크가 되었을 것이다. (-18-)
한편 영주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676년에 창건한 최초의 화엄종 사찰이다. 소백산맥 급경사지에 10여 단의 석축을 쌓고 건물들을 배열해 독특한 가람을 조성했는데, 가장 높은 단의 무량수전이 지금의 본전이다. 뒷산에는 의상을 기리는 조사당이 있다. 조사당을 1377년 재건하고 바로 전해에 무량수전을 다시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무량수전의 창건 연대는 그보다 한 세기 정도 앞선 1200년대 중반으로 보는 것이 주류 학설이가. 무량수전은 봉정사 극락전이 재평가되기 전까지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는 영예를 누렸다. 봉정사 극락전과 부석사 무량수전은 비슷한 시기에 근접한 지역에 지어졌지만, 두 건물의 구조와 형태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90-)
조선왕조는 군사용이 아닌 한양성만 쌓고 도성 방어용 산성을 만들지 않았다. 명나라나 일본이 수도를 함락할 정도로 전면 침략할 리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발발 20일 만에 수도가 함락되었고 조정은 국경인 의주로 파천했다. 전시 재상인 류성룡은 무기력한 조선의 방어 체계를 개탄하며 유사시에 대비해 견고한 산성을 마련하자는 '산성 수축론'을 주장했다. 남한산성은 산성 수축론이 실현된 본격적인 예다. (-179-)
1967년, 예양원은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애양병원을 새로 짓기로 계획했다. 그 설계는 건축가 조자룡이 맡았다. 그는 해방 직후 하버드대학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스웨덴 설계회사에서 실무를 쌓은 뒤 귀국해 1950년~1960년대를 풍미한 풍운아였다. 1970년대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민학회를 조직했고, 최대의 민화 수집가로서 사설 민속박물관을 경영했다. 일생에 설계한 건물만 무려 150개 이상이었지만, 그런데도 조자룡은 늘 한국의 전통미에 관심을 두었다. (-255-)
21세기 지나 어느덧 20년이 지난 2021년이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의 차이는 인문학에 대한 시선과 편견의 변화이다. 과거 철학과를 나오면, 굶어죽는다고 말할 정도로, 인문학은 공학이나 과학,의학에 밀려 있었다. 현실에 부합하지 못하고, 이사에 가까운 허고에 뜬 말로 치부해온 게 사실이다. 애플의 스티브잡스는 한국의 그런 보편적인 생각을 확 바꿔 놓았다. 인문학의 깊이를 아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이며, 인문학이라는 도구가 혁신과 성공,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애플이 인문학적 가치를 심어나가게 된다. 그래서 인문학적 가치의 깊이가 애플과 삼성의 성공과 실패의 척도가 되었고, 우리 사회는 서서히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자신의 전공과 인문학을 엮어 나가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 걱축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인문학은 저자의 직업적 소양과 엮어 나간다. 건축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인문학적인 관점을 알아챈다면, 건축이 있는 장소와 그 지역의 특색을 이해할 수 있고, 과거의 어떤 시점에 대해서 이해하는 주춧돌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먼저 고대에 만들어진 고인돌은 부족국가였던 한반도의 첫 시작이며, 부족장을 무덤 속에 묻었던 보편적인 매장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거대한 돌을 운반할 수 있었던 그 시대의 과학적 수준을 연구해 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부석사에 있는 무량수전, 봉정사 극락전이 나온다. 이 두개의 문화재 중 부석사 무량수전은 화엄종 본산이며,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여기서 봉정사와 부석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산사 사철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놓칠 수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대한 연구, 부처의 극락세계를 형성한 가람배치를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며, 동시대에 만들어진 안동 봉정사와 영주 부석사를 상호비교할 수 있다.
책에는 여수 예양원이 소개되고 있다. 예양원은 1909년 광주광역시에 설립한 나병환자 요양소이다. 한국 최초의 나병원이며, 나병,나환자하면 소록도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서양의 건축학을 공부하였던 건축가 조자룡이 만든 건물로서, 한국의 전통미를 사려나가고 있었다. 건축가 한 사람의 강한 의지가 그 시대의 건축물,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고,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건축에는 역사가 있고, 디자인적인 가치가 있으며, 문화와 인문학적 가치를 살펴본다면 내 가까운 건축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