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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롭게 쓸데없게 - 츤데레 작가의 본격 추억 보정 에세이
임성순 지음 / 행북 / 2019년 1월
평점 :
500원이면 오락실에서 오락을 열 판이나 할 수 있었고, 폴라포를 다섯 개 사먹을 수 있었다. 물론 깐도리 같은 50원짜리 싼 하드를 사면 열 개도 가능했다. 그리고 학교 앞 분식집에서 500원이면 거하게 친구들과 밀떡볶이로 회식할 수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당시 국민학생들이 500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꽤 많았다. 그러니 가난했던 내게 천원의 가치가 얼마나 컷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p53)
우리 집 첫 컴퓨터는 '삼보 트라이젬 88+'로 IBM 호환 XT 기종이었다. 640킬로바이트의 램에 5.25 인치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와 20메가 하드디스크가 달린 , 당시 기준으로는 꽤 높은 사양의 물건이었다. 흰색의 철제 케이스에 12인치 단색 글씨로 보여주는 모노크롬 모니터, 그래픽 장치로는 허큘러스 카드가 달려 있으며, 운영체제는 도스 였다. 이 컴퓨터의 백미는 의외로 키보드였다. 알프스의 오리지널 스위치 키보드는 귀한 물건으로, 어쩌면 지금 중고가로 팔아도 당시 샀던 컴퓨터 가격보다 비쌀지 모르겠다. 기계식 키보드 스위치의 명가였던 알프스가 도산해 사라졌기 때문이다. 키보드 마니아들이 사라진 알프스의 스위치를 찾아 헤매는 이유가 있는데, 철컹거리며 입력되는 키 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이때 산 물건들 가운데 가장 오래 쓴 것도 키보드였다. (p155)
기대하지 않았던 책, 펼쳐보니 생각보다 인상적인 책이었다. 이 책은 나를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게 해 주면서 나의 과거를 재생하고 있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공감대를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느끼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저자와 함께 동행하는 순간처럼 생각되었다. 또한 저자는 1976년생으로 X 세대만이 공유할 수 있는 추억들을 끄집어 내고 있으며, 내 또래의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1990년대 그때의 기억들을 재현하고 있다.
이 책은 15개의 목차로 이뤄져 있다. 맨 처음 등장하는 것은 책받침에 대한 추억 소환이다. 어릴 적 샤프를 쓰기전에 연필을 쓸 적에 문방구점에 들어가면 갖가지 신상 책받침이 있었다. 그 때 당시 서양의 3대 미녀들의 책받침이 인기였으며, 책받침 모델이 된다는 것은 아무나 가능하지 않았다. 아이들 사이에 책받침를 가지고 자랑하고 다녔던 기억들이 우리에게 있었고, 신상 책받침이 있으면, 서로 뺃으려 했던 적이 있다.
콤퓨터 게임에 대한 소회. 지금은 대다수 PC 게임으로 대체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오락실 게임방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 어쩌다가 간간히 오락실을 보면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기웃거리게 된다. 그 때 당시 50원이면 오락실 게임 한판 할 수 있었고, 오락실 사장님은 동전 교환으로 하루 일과를 보낸 기억들이 생각났다. 갤러그, 보글 보글, 테트리스에 대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으며, 저자의 기억들을 들쳐보면서 내 추억들을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 컴퓨터는 우리에게 하나의 신기한 기계덩어리였다. 커다란 모니터를 키면 자동으로 무언가가 움직이고, 텍스트라가 흘러가는게 신기했다. 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에 컴퓨터는 거의 선생님의 전유물이었다. 나 또한 그 때 당시 고등학교 들어와서 컴퓨터를 샀으며,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컴퓨터 브랜드 세진이었다. 저자는 그에 비하면, 컴퓨터를 접한 시기가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애플 컴퓨터에 대한 기억들이 있었고, 램 640 킬로바이트에 20메가짜리 하드디스크를 장착한 컴퓨터에 대한 소회가 드러나고 있다. 컴컴한 하면 바탕에 도스 명령어를 집어넣어야만 작동되었던 그 시절의 컴퓨터의 그래픽 사양은 조악하기 그지 없었다.도스 기반 아케이드 게임 둠에 대한 이야기들, 다양한 게임들이 소개되고 있으며,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도스 기반 프로그래밍언어를 접해왔던 저자의 과거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나타났다.더 나아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영화 접속이 인기를 끌었으며, 그 대 당시 파일 공유 프로그램을 통해서 음악파일을 구했던 기억들을 추가로 덧붙여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