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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영혼 1 ㅣ 뫼비우스 서재
막심 샤탕 지음, 이세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성적, 종교적 자신만의 판타지를 쫓아 탐욕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를 난도질하는 냉혈한 연쇄살인범이 있다.
그가 흩뿌리고 사라진 잔인한 살해현장에는, 피해여성의 공포와 지옥을 방불케 하는 무참한 살육으로 노골적인 악의 기운이 감돌뿐이다.
검붉은 피가 범인의 살의에 젖어 펼쳐진 현장을 찾을 때마다 프로파일러로서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형사 조슈아 브롤린은 살인범의 퍼포먼스 속 부유하는 희미한 흔적과 증거를 건져
범행 과정과 심리를 추정하는 작업에 몰두한다.
소설은 프랑스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하나 프랑스적인 요소는 어디에도 없다.
좀더 침울하고 음산한 프랑스적 분위기, 인물, 사건, 배경 등을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표현의 경계는 사라지고 의미도 없어진 것일까?
스릴러 영화처럼 시각적인 이미지가 빠르게 전개되어 대중소설답게 지루할 틈도 없이 사건과 추적은 가쁘게 흘러간다.
덕분에 두툼한 두 권의 책을 붙들고 이 무더운 여름, 미국의 어느 한적한 도시, 특히나 숲이 풍성한 지역 (그것은 저주처럼 되돌아와) ‘살인의 숲’으로 옷을 갈아입고 내 앞에 버티고 있어 나는 나뭇가지를 헤치고 더듬어 나아가는 상상 속에서 한기마저 느끼곤 했다.
인간은 누구나 내면에 잔인한 새디즘적 공격성을 감추고 살아간다. 물론 정도의 차이일 뿐.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에 떨면서도 공포로 얼룩진 잔인한 행태에 눈을 떼지 않고 관심의 끈을 놓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과정이 일면 어느 정도 희석될 수 있는 효과를 발휘할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처참한 공격성을 품고 있는 것치고 인간은 꽤 유연하게 자신을 조절하는 속성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이런 조절을 거부하는 꽤 위험한 부류의 인간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근래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건 단순히 종교적, 윤리적 비유의 측면에서 말하는 선과 악을 훌쩍 뛰어넘어 야생의 맹수보다 더욱 독특하고 잔인한 속성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제 악이라면 그런 인간들을 지칭해야 하지 않을까?
실제 사이코패스가 세상에 제대로 설명되고 진단되는 것조차 아직도 깊은 연구가 절실하다는 사실에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쇄살인이라는 끔찍한 소재의 소설과 영화 등은 강력하게 우리의 시선을 끄는지 모른다.
프랑스판 <살인의 추억>이라는 책 띠지의 카피가 암시하듯 꽤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악의 영혼’은 의외로 내용면에서 프랑스적인 문화적 정취는 맡을 수없지만, 미국 한 지역 경찰청을 중심으로 사건해결을 위한 급박한 호흡을 유지하면서도 현장감 있는 과학수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면서 독자에게 작가는 사실성에 충실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래서 살인은 더욱 공포스럽게 느껴지고 사건 해결의 순간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역량을 발휘한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쉽게 아쉬움을 접을 수 없는 것은 왠지 난 이 프랑스 젊은 작가의 눈을 통해 저 세느강이 흐르는 파리의 어느 으쓱한 골목에서 그들 특유의 끈적끈적한 땀과 피가 뒤섞인 조금은 엽기적인 냄새가 풍기는 살인현장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프랑스인 특유의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감각으로 유럽의 고풍적 도시의 향취가 짙게 묻어난 사건과 인물과 배경을 기반으로 한 악의 대면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또 하나 평소 살인자에 대한 프로파일링의 작업과정이 무척 궁금했는데 소설 속에서나마 잠시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나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작가의 예리한 경험과 조사를 바탕으로 과학 수사의 단면들을 자세하게 표현해서 색다른 세계를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어쩌면 앞선 수사기법을 자랑하는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범인을 검거했을 우리는 악의 얼굴을 대면하게 된다.
악의 얼굴을 통해 내면에 비친 영혼을 바라보며 나는 공포가 깃든 작은 좌절을 맛본다.
찌는 여름 이제 막바지라고 하지만 더위의 기승은 수그러들 줄 모르고 있다.
시원한 한기가 그리울 때 악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도 은근하고 효과적인 피서법이 되지 않을까?
단, 악의 영혼을 들여다보되 악의 영혼이 나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일은 없도록 주의 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