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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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내내 슬펐다.

외로움이 있어 슬펐고, 마음이 아파 고통스러웠다.




[악인]속에 나오는 모든 이들은 어쩌면 이리도 모두 외로운 것일까?

고독이 인간 누구에게나 보편적 감정일지 몰라도 고독 속 인간에게는 보편성이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저 홀로 감당하고 견뎌야 하는 잔인한 상태로서 삶의 이면에 눌러 붙어 버티고 있는 징벌과도 같다.

그래서일까? [악인] 속 인물들은 피해자든 가해자든 헛된 욕망으로 치장하든 헐벗은 관계 속에 버려지든 출발은 외로움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악인’이란 내 머리 속에 이미 선명한 의미로 정의 내려져 있는 줄 믿었는데 점점 단언하기 망설여졌다.

‘악의’는 있을지언정 ‘악인’은 없었으며 쉽게 단정 짓는데 자신했던 내 자신이 사실은 누구에게든 비웃음을 사고 비웃곤 하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거짓말이 일상이 되어도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여자와 일상의 거짓에 서툴렀던 남자는 모순 된 입장과 상황으로 내몰리면서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시미즈 유이치는 살인자가 되고 만다.

거기다 하필 그토록 애타고 목마르게 기다렸던 사랑과 위안은 뒤늦게 나타나 곁으로 다가온다.

짓궂은 운명이지만 악인을 사랑하는 연인에게서 나는 희미하게 시미즈 유이치 못지않은 위로를 받고 있었다.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은 [나가사키]이후 두 번째다.

일본 소설에 몰리는 근래의 관심과 유행에 우리 문학계가 시기어린 야유를 쏟아내도 일본 소설에는 분명 우리에게 없는 무엇이 있다.

그렇다고 일본 문학을 찾는 독자 중에 그 속에서 대단한 뭔가를 발견했다는 고백이나 감상 또한 본 적이 없다.

그만그만한 수준에서 맴도는 것에 만족하는 데도 꽤 이력이 붙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무얼 더 바라겠는가?

우리 소설이 주지 못하는 재미만이라도 한 움큼 우리 가슴에 건네주면 그만인 것을.

그런데 [악인]은 근래에 읽은 일본소설 중에 보기 드물게 무게와 깊이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저 담담하고 건조한 문체의 작가로 알았던 요시다 슈이치에게 이런 이야기의 얼개를 짜내고 인간 내면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능력과 면모가 있을 줄 미처 몰랐다.




소설의 두께만큼이나 작품과 작가의 신뢰도 비례해 찬사를 보내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

뜻 깊은 좋은 소설이었다. 읽는 것이 즐거웠다.





인상깊은 구절

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피라미드 꼭대기의 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밑변의 돌 한 개가 없어지는 거로구나 하는 (p 439)

"요즘 세상엔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지. 자기에겐 잃을 게 없으니까 자기가 강해진 걸로 착각하거든. 잃을 게 없으면 갖고 싶은 것도 없어. 그래서 자기 자신이 여유 있는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뭔가를 잃거나 욕심내거나 일희일우하는 인간을 바보 취급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안 그런가? 실은 그래선 안되는데 말이야." (p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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