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밴드왜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4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여태껏 몇 편의 일본소설들을 쭉 읽어왔지만 이런 몇 대가 함께 사는 가족 소설은 처음이다. 4대의 가족과 고양이 네 마리, 그것도 모자라 길에서 강아지 두 마리를 주워 와도 크게 부담을 갖지 않고 곧 가족 내 구성원으로 합류시키는 데 거리낌이 없다.




대대로 모여 살다보니 가훈이 버젓이 권위를 갖추고 가정 내 질서유지의 근간이 되기도 한가 본데 실상 내용을 파고들어 보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식사는 가족이 모두 모여 왁자지껄하게 먹는다.’

훗타 가는 이를 실천하는 데 열성을 다하는 눈치다. 그 결과 식사시간이면 대화는 그야말로 멀티가 되고 '왁자지껄'을 넘어서 중구난방처럼 보이지만 뭐, 대화는 서로 궁금증을 잘도 해소하고 나름 효과적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이 복잡하고 정신없는 가족들에게 흥미로운 것은 한 사람이라도 식구를 늘리는 데 열심이기는 해도 어째 빠져 나갈 궁리는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일사불란한 통일을 강요하거나 목매지 않아도 각자 자기 역할과 위치가 확고하고 개성이 존중되며 서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기에 반목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사건은 쉴 새 없이 줄을 잇는다.

그러나 이 오지랖 넓은 훗타 가족에겐 사건은 가족들이 살아가는 에너지의 확인이자 기폭제이며 더욱 단단한 결속력을 다지는데 한 몫 톡톡히 하는 듯 하다.




사실 난 대가족이라는 시스템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위계질서가 무게를 더 해 누군가는 짓눌리고 존중보다 간섭이 횡횡하는 다수의 집단 살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언제부턴가 강하게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는 가운데, - 예를 들어 밥상에서 여든을 바라보는 칸이치 할아버지에게 가족 누군가가 잔소리를 한다. 그 연세에 그렇게 잡수시면 건강에 해롭다는 둥. 이 때 이 대장 할아버지 발끈해서 “먹는 것 정도는 내 맘대로 하게 냅 둬 ”하고 대꾸한다. -

이 즈음에서 나는 피식 웃게 되는데 왠지 이 칸이치 할아버지가 가련(?)하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귀엽(?)게 느껴지는 건 또 뭔지.




결국 한 권의 작품을 읽으면서 소설의 화자 곧 칸이지 할아버지의 죽은 아내 사치 할머니 영혼의 자상한 안내로 나는 어느 새 훗타 가의 일원이 되어 함께 식탁에 앉아 정신없이 수다도 떨고 듣다 일 년의 시간 속에 묻혀 흘러 간 기분이 들었다.

대가족도 구성원간의 신뢰와 애정 속에 노력을 기울인다면 꽤 즐겁고 유익한 시간과 관계를 만들어 나가겠는 걸?




고독에 매몰되는 현대 대중 소설의 소재나 주제로는 드물게 훈훈한 가족의 정이 따끈따끈한 호빵처럼 뭉치고 버무려져 배를 채우고 두둑해지는 바람에 두 손바닥으로 남몰래 슬쩍 퉁퉁  기분 좋게 두드려 보게 된다.

덤으로 나의 정신은 도쿄 외곽의 ‘도쿄밴드 왜건’이란 헌책방으로 날아가 헌책더미를 뒤지다 옆에 자리한 카페에도 들려 시원한 아이스커피로 목을 축이며 한적한 여유를 누리는 상상 속에서 벗어나기 싫어 고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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