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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플라워 -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되는 비밀스런 이야기
스티븐 크보스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런 걸 보면 현재의 우리가 되는 데에는 아주 많은 원인들이 있는 것 같아. 우리들은 그런 원인들에 대해 대부분 전혀 알 수가 없을 거야. 하지만 비록 우리들이 어디에서 태어날 것인가를 선택할 능력은 없다 해도, 태어난 곳에서부터 어디로 갈 것인가를 선택할 수는 있어. 우린 어떤 행동을 선택할 수도 있어. 그리고 우리의 행동에 대해 만족하도록 노력할 수도 있어. - (p301 에필로그 중에서)
어린 아기가 아프고 나면 쑥쑥 자란다는 위로의 말이 있듯이 성장하는 데는 성장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건 무형, 유형의 상태이기도 하고, 육체적, 정신적 모든 상황이 포괄적으로 포함된다.
특히 십대는 이중의 성장 속에 혼란이 가중되면서 속수무책인 시기이기도 하다.
어른도 아닌 것이 아이도 아닌 것이 안개 같은 시야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오래전에 십대를 벗어나 한참이나 지나온 지금도 십대를 생각하면 희망이란 단어와 동시에 아픔을 떠올린다. 그리고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
긍정적인 의미의 성장통을 역설하면서도 아름다운 시기로만 떠올리기에는 멀미가 난다.
뿐만 아니라 성장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성장’대신 ‘성숙’이란 단어를 선택해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역시나 성숙해지는 데도 그만큼의 고비와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월플라워.
집단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이란 뜻이 있다고 하니 꽤 쓰린 말이다.
그 속에는 소외의 감정이 내비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는 좀 더 폭넓게 방관자로서 타의적, 자의적 시선이 깔려 있다.
아무도 주인공 찰리를 방관자로 내몰지는 않는다. 물론 아무도 그를 끌어들이려 하지도 않지만 말이다. 흔히 이 작품을 『호밀밭의 파수꾼』과 비교하나본데 주인공 찰리는 그리 냉소적이거나 반항적이지 않다.
그런 그가 고등학교를 들어가 방관자로서 주위의 환경과 친구, 가족들의 일상과 과거를 얘기하면서 스치듯 겪게 되는 성장통을 겹겹이 보여주고 있다.
어릴 적 따뜻하게 의지하던 이모의 죽음과 관련된 기억은 그가 성장하면서도 방관자로 벗어나 현실 속에서 망설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찰리가 기억의 족쇄를 풀고 자유로워지는 계기는 무엇일까?
뜻하지 않았던 현실의 직시였다.
물론 고통을 감내하는 시간을 보내고 난 후였지만 스치는 바람을 감지하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긍정의 신호를 확인한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삶 속에 자신의 자리를 받아들이며 서서히 ‘참여’하는 자신을 꿈꾸고 다짐한다.
나는 왜 성장소설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과거에 대한 회귀를 꿈꾸는 것도 아닌데......
찰리를 통해 나는 나와 관련된 무엇을 발견하고 싶었던 걸까?
이것저것 뒤섞인 감상을 뒤적이며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곤 했다.
찰리가 무명의 친구에게 보내는 일기가 아닌 편지는 일방적이기는 해도 상대가 있는 차이점을 갖고 있다. 고통스러워도 상대를 추구하는 본성은 우리를 월플라워로 머물러 있게 하는 상태를 거부한다. 어쩌면 그것이 희망과 행동의 출발점이 아닐지.
혼자라는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원동력은 존재와 자유의 확인이라는 과정을 겪는 찰리와 그의 친구들, 그 속에 해답이 엿보여 다행스럽다.
내가 성장소설 속에서 확인하고 싶은 해답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성장기를 거쳤다고 모든 것이 명확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미로 속에서 헤매고 벽에 부딪히고 고통을 호소해도 결국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현실이 눈 앞에 있다.
그때 성장기의 앨범을 들추듯 확인하게 된다.
누구나 방황하고 누구나 고독해하고 누구나 서툴게 실패를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렇게 성장하는 성장통을 겪어야 한뻠의 성장이 약속된다는 사실을 성장소설 속의 주인공을 통해 되새김질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월플라워의 비밀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