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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평점 :
읽기가 곧 자신의 인생에서 삶이요, 앎이었다고 강력히 피력하는 노학자가 여기 있다.
김 열규.
난 선생의 다른 책을 읽어 본적이 없기 때문에 학문적 접근이나 관련된 그의 시선에 대해서 잘 모르고 또 그것을 전할 주변은 못 된다. 단지 한국학이라는 내 자신의 정체성과 깊이 연관된 문제들을 천착해온 명성만은 익히 들어온 터다.
특히, 이번 『독서』라는 책에서도 슬며시 내비쳤듯이 ‘고독’과 ‘고통’,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고민과 관심의 흔적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그가 평소 주력해온 한국인의 삶과 죽음이라는 테마가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울 수 있겠다 싶다.
그런데 한 가지 여기서 주의하도록 하자.
책에서도 밝혔듯이, 그가 여기서 말하는 독서, 즉 읽기란 책만을 주목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읽기란 세상의 모든 것이 대상화될 수 있음을 간간히 짚고 있다.
책을 넘어서 자연, 사람, 나를 둘러싼 환경 이 모든 것이 책처럼 읽히는 작업을 필요로 하며 그것도 깊이를 담아야 하는 어렵고 중요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나도 이 점에 수긍하면서 역시 인생 선배다운 지적이라고 생각했다.
체험을 통한 삶과 앎의 체득을 세상의 어떤 책의 내용과 비교할 것인가?
체험을 통한 사고가 인생을 깊이로 인도하고 자아를 풍성하게 하는 넓이로의 초대라는 것임을 무엇으로 부정하겠는가?
단, 세상의 모든 걸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간접경험이자 삶의 조언자로서 책을 가까이 하는 것임을 미리 못 박고 넘어가자.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은 은근하고 짜릿한 재미다.
그런데 그것이 독서일기라면 어떨까? 떳떳한 호기심이 빳빳하게 고개를 쳐든다.
자기의 등장이 당연한 양 호기심은 당당하게 나에게 지시한다. 어서 부지런히 책장을 넘기라고. 그것도 남의 독서일기를.
‘김열규의 책 읽기 독서’는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의 독서일기 격이다.
글을 모를 때부터 귀로 듣고 읽어내던 할머니의 구수한 옛날이야기부터 어머니의 제사와 관련된 언문 제문, 글을 읽기 시작하고 접했던 동화들과 유년기를 넘어 청소년기 때 구하기 어려웠던 책을 열심히 찾아 친구들과 돌려보던 경험들. 나라가 해방이 되고 일본인들이 돌아갔을 때 버리고 간 물건 속에서 건져 올려 갈증을 해소했던 책들, 전쟁이 터지고 부산으로 피난을 갔을 때도 미군들이 버린 것들 속에서 보석같이 여기며 찾아 읽던 책들이 그의 젊은 날 영혼의 양식이 되어 그를 키워나갔다.
끊임없는 책읽기가 그의 인생의 동반자임을 고백하는 면에서는 나의 독서에 대한 열정의 깊이를 돌아보았다.
참 보잘 것이 없구나 싶다.
또한 선생은 경험을 통한 책읽기의 방법을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장르 읽기에 따른 방법들. 또 속도와 깊이에 따른 주문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절대적인 인상을 심어준 몇 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젊은 시절부터, 아니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우물처럼 비춰준 자화상 같은 소설이나 작품들이었다는 점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노년에 여유 있게 인생을 되돌아보며 반추하면서 동반자에 대한 고백을 하듯이 써내려간 개인적 글쓰기는 책읽기에 얹혀 그의 인생을 훑고 있었다.
어찌 책읽기가 자아의 시선과 의식과 사고에 동떨어진 개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는가.
오히려 철저히 자신에 대한 거울로서 책은 존재하는 것 같다.
책읽기를 통한 솔직한 경험을 얘기하므로 김열규 선생의 인생을 읽었고, 김열규 선생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책읽기의 소중함을 배워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자신의 책 더미를 들여다보았다. 재미로 읽든, 의미를 담보로 지적 허영에 들떠 들추든, 결국 그 속에는 내가 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도 확인한다. 끊임없이 읽어나가겠지만 끊임없이 내가 그 속에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을 숨길 수 없을 듯싶다.
질기고 고단한 작업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책 읽기, 삶 읽기, 세상 읽기........
그러나 보물섬 발견을 꿈꾸는 아이의 왕성한 호기심과 꿈을 얹어 내 자신 그 일에 평생을 두고 매진할 수 있기를 넌지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