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일 1 - 불멸의 사랑
앤드루 데이비드슨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저는 살아남아서 정말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 걸로는 충분치 않죠. 여러분의 피부는 정체성의 상징이자 세상에 내보이는 이미지였습니다. 하지만 진짜 여러분은 결코 아니죠. 불에 탄다고 여러분이 인간 이하, 혹은 인간 이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저 화상을 입은 것뿐이죠. 그래서 여러분은 사람들 대부분이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는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피부는 의복이지 결코 한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사회는 아름다움이란 한 꺼풀에 불과하든 관념을 입으로만 떠들어 댑니다. 하지만 누가 우리만큼 그걸 이해하겠습니까?” (1권 p214 중에서)

“사랑을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 2권 p251 중에서)

언제부턴가 세상이 변한 건지 내가 변한 건지 ‘낭만’을 입에 담는 게 어색하고 민망하다. 낭만을 꿈꾸고 노래하면 세상물정 모르고 또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 같아 역으로 속물적인 것을 넘어서 더 속물적으로 읽힌다.
어쨌든 이리저리 심사가 꽤 배배 꼬여 있나보다.
그런 요즘 낭만적이다 못해 철철 넘치는 소설 하나를 읽었다.
그리고 의외다 싶은 건 내가 그 흘러넘치는 낭만에 젖어 달콤한 아픔을 되새기며 감상에 젖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긴 사랑도 그냥 사랑이 아니다.
자그마치 700년을 푹 묵히고 익혀온 시간이 쩐 사랑이니 그 깊은 맛 앞에 누가, 무엇이 명함을 내밀겠는가?

『가고일』. 제목부터 수상하다.
대체 가고일이 뭐지 하는 질문은 극히 솔직하고 자연스럽다 하겠다.

‘가고일은 고딕 성당의 외벽을 장식하는 괴물 형태의 물받이 조각상을 말한다.’ (옮긴이의 글 중에서)
◆가고일=중세 유럽 건축물, 주로 사원의 지붕이나 처마 등에 붙어 빗물을 모아 흘려보내는 역할을 하던 괴물 조각상.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사원의 괴물 조각상들이 그 전형적인 사례다. 중세 사람들은 가고일이 악령을 쫓아낸다고 믿었다. (중앙일보 10월 18일자 작가 인터뷰 기사 중에서)

남자는 잘생기고 잘나가는 성공한 포르노배우. 마침 마약에 쩐 상태로 운전을 하다 환각에 빠져 그만 치명적인 교통사고로 화상을 입는다. 그러니 그 아름다움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그는 괴물 같은 외모와 망가진 육체를 갖게 된다.
자, 여기까지는 그저 극적인 상황이다 싶어 넘어가겠는데 내가 점점 몰입하게 되는 것은 그 망가진 외모로 가는 화상에 대한 치밀한 묘사며 남자의 고통어린 심리를 작가는 너무도 잘 잡아내고 있다. 마치 눈앞에서 지글지글 타오르는 석쇠 위의 오그라드는 고기 살점을 연상시키듯 아니 타는 살 냄새가 진동해 내 코를 바로 움켜쥐고 막아야 할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는 바로 막막한 주인공의 심정에 내가 눌러 붙어 병원 침대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단지 절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빈약하고 무력해 좀 더 적당한 단어를 찾아야 할 것 같아 안달하면서 미이라처럼 붕대를 칭칭 둘러 감은 피고름 고인 육체의 소유자가 된 기분이었다.
피부가 세상과 자아의 경계선으로서의 역할과 의미를 주인공의 독백 속에 귀 기울이며 깊은 현실과 한계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니 그런 그가 자신을 괴물로 자각한다 해도 감히 쉽게 동정의 감상에 젖는 일조차 무책임하게 생각되었다.

그런 그에게 여자가 다가왔다. 그 남자의 괴상한 외모 따위는 처음부터 눈길조차 주지 않는 듯하다. 얼마나 대단하고 고상한 정신의 소유자이기에?
사실은 대단한 여자의 대단한 사랑의 무게 때문이며 한순간에 가까운 현실 속에서 그의 화상으로 상처받은 육체에 매몰되기에는 너무나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가고일 조각가였다. 커다란 돌덩어리에서 비록 괴상한 몰골의 괴물 가고일을 정으로 쪼아 조각하는 작업이지만 결국 영혼 역시 생명처럼 잉태하고 간직한 또는 가둬놓은 돌덩어리에서 해방시켜 자유를 선사하는 산파로 존재한다.
그런 그녀가 괴물 가고일 형상의 살아있는 남자에게 사랑으로 영혼의 자유를 선사하는 것은 어쩌면 숙명일 것이다.
사랑! 남은 마지막 심장을 선사하고 자신은 산화하므로 마침표를 찍는 행위이자 각오가 필요한 일인지 모른다.

사랑은 비극을 동반하나보다. 소설 속에 액자소설로 작은 사랑이야기들이 들려온다.
모두가 실패한 슬픈 사랑이야기.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감정의 끈으로 영혼을 사로잡는 깊이의 연가들이다. 사랑을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켜야 한다. 나의 심장 너머로 상대의 영혼을 담아서 끝없는 세월의 장벽 앞에서도 흘러 흘러 갈 수 있는가? 자문해봐야 한다. 상대가 억울하게 지옥의 인질이 되어 애달프고 구슬프게 울며 그대를 기다려 지옥 속으로 기꺼이 찾아갈 수 있느냐 묻는다면 나는 도리질을 칠 것이다. 결국 이것이 나의 사랑의 한계일 것이다. 실패한 사랑의 이야기가 슬픈 것이 아니라 나의 연약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랑의 크기 앞에 나는 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해져서 더없이 슬프다.

『가고일』을 읽으며 나는 차마 낭만을 잃은 내 자신으로서 세상을 탓 할 수 없음을 알았다. 낭만(?) 따위에 코웃음을 치는 자신이 꽤 성숙하고 지성적인 냥 으쓱해 하는 꼴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깨달았다. 그리고 조용히 흔하디흔한 사랑 얘기가 담긴 대중가요를 한 소절 흥얼 거려본다.

결국 사랑은 인간이 하는 것인데 아름다운 외모의 인간이 하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고 그래서 더 아름다워지는 것이리라.
‘사랑’과 ‘인간의 본질’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아프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인간의 이야기로 이 가을의 시간을 채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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