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꺼풀 창비만화도서관 10
데브 JJ 리 지음, 이주혜 옮김 / 창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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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스페셜 서평단 활동에 참여하여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서평 활동을 진행했는데요. 서평 대상 도서는 데브 JJ 리 작가의 『외꺼풀』(2024, 이주혜 옮김)입니다. 찾아보니 창비에서는 '만화도서관' 시리즈를 줄곧 발행해 오고 있었더라고요. 해외 그래픽 노블을 제외하고 국내 그래픽 노블은 익숙하지 않았는데 이번 서평단 활동을 계기로 관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표지부터 동양풍이 스멀스멀 느껴졌습니다. 책의 만듦새가 좋더라고요 창비에서는 단순하면서도 몽글몽글한 감각의 표지 디자인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다른 국내 문학 출판물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지 디자인 또한 깔끔해서 개인적으로 장르 불문 가장 눈이 편안한 도서를 발행하는 출판사라고 생각해요.

표지에는 붉게 타오르는 노을이 동양적인 감각을 줍니다. 이에 더해 저는 이 책에서 주요하게 묘사되고 있는 '새' 일러스트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성장과 비상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겠지만, 저는 미음과 증오에서 멀리 떨어지는 법과 어디론가 멀리 가는 슬프고 설레는 기분을 묘사한다고 읽었습니다. 구름과 노을이 비친 바닷물도 표지 일러스트에 삽입되었는데 이것은 상황과 정념에 깊게 잠긴 어린 '데브'의 먹먹한 심리를 보여줍니다. 한편으로는 반쯤 떠오른 얼굴과 잠긴 나머지에 관한 묘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혼란으로도 읽을 수 있겠네요.

이번에 독서한 그래픽 노블 『외꺼풀』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자전적 만화 소설입니다. '외꺼풀'이라는 상관물이 주인공 '데브(정진)'와 그의 성장을 보여주는 매개로 등장하는데요, 300여 페이지를 모두 읽은 뒤에 이 책의 연출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그래픽 노블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소설이 아닌 형식을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말풍선을 따라가면서 인물들의 발화를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1회독으로는 어려운 복잡다단한 말의 이어짐들이 흥미로웠어요. 보통 만화를 보면 좁은 말풍선 안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하더라도 간결한 문장과 직관적인 언어들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해당 만화에서는 한 장 한 장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을 정도로 인물들의 발화나 묘사가 깊은 물처럼 다가왔어요. 슬픔과 분노 등 여러 감정이 선형으로 감각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조금은 둘러가며 독자에게 걸어오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감정적 격동이나 행위 일체는 일직선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장면은 이미지 연출로 적절하게 보여주었고 깊이 쌓아 올린 정념들은 대사에 응축시킨 형태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주 흥미로웠어요.

총 4장(Chapter)으로 이루어진 이 만화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가장 먼저 제 머릿속을 파고든 묘사는 주인공 '데브'의 '흘깃 보는 표정'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만화의 완전한 표정이 아닐까 싶었어요. 어쩌면 가장 문학적인 얼굴일지도 모르겠어요. '데브'가 친구, 가족, 때로는 상황을 '흘깃' 바라보며 네모 바깥의 독자를 바라볼 때-정확히는 독자 너머의 무엇을 바라본다고 느꼈지만-독자로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이야기는 깨끗하진 않았습니다. 아이에게 발생한 일들이 흔한 소년 만화처럼 깨끗이 닦아지지는 않았어요. 그럼에도 '데브'는 어디론가 미래를 향해서 걸어갈 것이고 저 또한 그렇게 믿고 싶어졌습니다. 명쾌하지는 않았지만 외려 그렇게 갈무리되었기에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미음과 폭력과 용서, 성장의 지리멸렬한 슬픔이 모두 비눗물처럼 녹아든 듯한 만화였습니다. 청소년 성장 소설과 R.F. 쿠앙의 『옐로페이스』(2024) 같은 아시안 문학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꼭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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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
무라야마 유카 지음, 양윤옥 옮김 / 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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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출간된

『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2024)은

일본을 대표하는 청춘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야마 유카(村山由佳)의 장편소설이다

제6회 소설스바루 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작가는

데뷔작 『천사의 알』(1993) 등

'청춘 연애소설계의 혜성'으로 불린다

2023년 현지에서 복간된

『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2023)은

성장기의 두 청소년들이 겪는 단절과 외로움

혹은 소통의 부재 따위를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장으로 묘사한 소설로

일본 현지에서

'영원한 청춘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소설은

싹싹한 모범생의 피질을 둘러쌌지만 조금은 대담한 청소년

'에리'

실없어 보이지만 사려 깊고 약간은 비겁한 청소년

'미쓰히데'

두 청소년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청춘 로맨스 소설이다

'에리'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혼란을 겪고 있는 인물로

성 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해

겉으로는 모범생인 척

말 잘 듣는 막내 딸인 척

그런 '척'으로 인해 위태로워진 소녀이다

'미쓰히데'는서핑을 사랑하는

전형적인 쿨남(?)이지만

복잡한 가정사

특히 아버지의 병증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서핑이든 무엇이든

어떤 것에도 솔직해지지 못한 채

권태롭고 비겁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소년이다

둘은 다소 불온하게 만난다

"위태롭고 불안해서 더 아름다웠던 청춘의 비망록"

뒷 표지에 쓰인 문장이 소설을 설명하고 있다

'에리'와 '미쓰히데'는 자신의 불안과 외로움을

서로에 대한 갈망에 의존한다

정황만 놓고 보면 아주 불온하고

비상식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 둘의 주위에는

둘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제대로 된 어른이 없었기 때문에

두 인물의 비행(이라고 표현해도 될까?)을

당황스럽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독자는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쓰히데'의 어머니 캐릭터가 기억에 남았다

남편이 지긋지긋해서

어린 '미쓰히데'와 그의 누나를 두고

집을 나갔다는 흔한 설정을 가진 인물인데

죽음을 맞이해야 할 운명에 놓인

전 남편에게 존엄사를 추천하고

마지막까지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사는 듯한

그런 종류의 자유분방함이 좋았던 것 같다

사실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 인물이

정상은 아니다

'전형적'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얄팍한 서술이고

'통제가 불가한' 인물들이었다고 말하는 게

그나마 옳을 것 같다

특히 남자 주인공 '미쓰히데'가 그렇다

자기연민으로 둘러싼 그는

자신을 매우 비겁한 존재로 인식하면서도

그러한 자신만의 혼란을

'에리'를 통한 강렬한 이끌림으로 해소한다

이것은 여자 주인공 '에리'의 묘사 역시 비슷하게 느껴졌다

간혹 감정을 이해할 수 없는 서술들이 많았으나

좋았던 부분을 부정할 순 없다

이해할 수 없었던 만큼 좋았던 장면이 있었는데

가령

'에리'가 '미쓰히데'의 병든 아버지에게 드릴 하귤을

구해 '미쓰히데'에게 전화를 건 장면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아이러니하고 절묘한 상황에서

'에리'의 전화를 받은 '미쓰히데'

그에게선 폭발하는 자기연민이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장면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가

나에게는 충격이자 느낌이 되었다

한편

띠지에 '다자이 오사무' 관련 언급이 있었는데

아마도 '미쓰히데'의 하숙방에서 벌어지는

'에리'와 '미쓰히데'의 관계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하숙방이 문제가 아니라

인물들의 정동이나 그들 간의 감정적 유대가

더욱 중요한 소설임을 느낄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소설에서 데카당스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많은 사람이 기억해 대명사처럼 작용하는

'남성의 방'과 '관계'와 '권태' 때문일 것 같다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런가 하면

나는 '에리'라는 캐릭터가 조금은 아쉬웠다

'에리'는 어린 시절 그루밍 폭력 피해자였고

조금 크고 나서도 달리 달라지지 않은 상황을 겪는다

가정 환경과 캐릭터 본연의 혼란은 물론이고

여자 주인공에게 고난과 역경 설정이 참 많았다

그러나 성장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소설 속 여자 주인공 '에리'가

남자 주인공 '미쓰히데'의 성장으로의 길목

정도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첫사랑의 종료(미유키)와

우정의 탄생(미쓰히데)이

이 소설에서 '에리'가 겪는 처음과 끝이다

'솔직하지 못함'

이것이 두 인물의 갖아 큰 결함이었다면

'미쓰히데'의 경우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해

내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기대와 함께 진행됐다면

'에리'는 '미쓰히데'에 의존하는 것 외에

무엇이 변화한 인물인지

크게 알기 힘들었던 것 같다

가족 이야기를 더 해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에리'가 겪는 내외적 불안과 혼란 혹은 결함에 관해

'에리' 스스로 사유하는 장면이 나는 궁금했다

'에리' 본인이 생각하는

'성애적 관점'은 과연 무엇이었을지

나는 궁금했는데…

서사가 더 부여되었으면 좋겠는데…

조금은 아쉬운 마무리였다

하지만

좋았던 문장들도 많았다

작가가 머릿속에서 발견한

독특한 장면들

그것을 묘사하는 섬세한 문장들이 좋았다

어떤 문장들은

마치 지나가다 본

눈을 뗄 수 없어

훔쳐 본 사물이나 인물의 장면처럼

순식간이면서도

아름다웠다

400여 페이지가 넘는 해외소설

일본 소설은 오랜만에 읽었는데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간 소설이었다

권태롭고

연약한 존재들의

불온한 화합

소설을 다 읽고도

아직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뭔가 소설을 한마디로 축약할 순 없지만

이런 분위기의 소설을 좋아한다면

하룻밤만에 완독할 수 있을 만큼

어렵지 않은 소설이다

다산북스(놀)

무라야마 유카 『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2024)

서평단 리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미소 짓더니 내 입가의 멍 자국을 톡 쳤다. - P308

모조리 평면뿐인 세계에서 오직 에리만 입체적인 몸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 P153

소파 옆을 지나갈 때, 존이 눈을 감은 어머니의 관자놀이를 자꾸 핥는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는 또 몰래 울고 있었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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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되어 줄게 문학동네 청소년 72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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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소설가의 신작 청소년 소설

『네가 되어 줄게』(2024)가 출간되었습니다!

오늘은 문학동네에서 새롭게 출간된

조남주 장편소설을 읽은 후기를 짧게 써 보겠습니다.

소설을 읽기 전 표지 뒷면에 적힌

캐치프레이즈가 눈에 띄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오해가 최절정이던 순간

우리는 서로의 삶에 다녀왔다."

(p.192)


한 문장으로 소설의 줄거리를 관통하는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소설은

딸 강윤슬(14)과 엄마 최수일(45)의

'영혼 체인지'를 주된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막장'스러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교통사고로 정신을 잃은 엄마의 정신이

딸 '윤슬'의 몸으로 들어갔고

'윤슬'의 영혼은

1993년, 그러니까

엄마 '수일'의 사춘기 시절로 날아가

청소년이었던 엄마의 몸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둘의 갈등과 오해가 최고조였던 순간

엄마와 딸은 서로의 몸과 마음

그리고 시간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게 되는 이야기죠.

단순해 보이지만

각자의 시간에 어렸던 이모, 젊었던 할머니,

왈가닥 사고뭉치이면서도

어른들의 울타리 안에서

방황하는 여러 아이들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딸과 엄마가 살아온 시간대에

그러니까 '과거'와 '현재'에 공존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이죠.

저는 이 소설이

『82년생 김지영』(2016)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조남주 작가의 시선이 빛나는 작품이라 생각했습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사회 문제를 직시하고

관계의 저편으로 걸어가

관계의 내면을 파고드는 묘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윤슬이에게 사랑을 주려 애쓰고, 동시에 엄마의 사랑을 받는 윤슬이를 질투하고, 그러면서도 내 노력을 멈추지 못했다. 사랑받는 일이 당연한 윤슬이가 부럽고 궁금했다. 그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내 이상한 마음이 이 이상한 상황을 초래한 것 같다."

(p.66)



그리고

1993년의 학교 풍경과

2023년의 학교 풍경이

대비되어 비춰지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졸업한 지 오래돼서 저에게는 낯설지만

2023년, 즉 '윤슬'이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학교 풍경은 디지털과 키치와 귀여움이 넘치면서도

동시에 무언가 쫓기고 회피하고 포기하는

종류의 암면이 있었다는 것.

1993년의 학교 풍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현대의 학생 인권 의식에 밝은 '윤슬'이

과거의 폭력을 마주하며

(엄마의) 친구들과 함께

나름대로 따위의 상황을

인지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특히

자신의 키보다 높게 부착된 '(성적) 벽보'에

내로라하는 말썽쟁이 '지수'가 큰 양동이에 담은 물을 뿌려

일말의 고민 없이 벽보를 적시고

뜯어내는 장면이 재미있었는데요.

이 과정에 동요하는 교내 친구들과

아예 소화전을 열어

소화기를 작동시키는 '(엄마의 모습을 한) 윤슬'의 선택까지

하나하나 빼먹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풀 죽어 돌아서려는데 나의 반성문 메이트, 지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수는 가자! 씩씩하게 외치더니 계단이 아니라 화장실로 달려갔다. 응? 지수가 양동이를 들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양동이에서는 물이 출렁출렁 넘쳤고, 지수는 넘어질 듯 휘청거리며 계단 쪽으로 뒤뚱뒤뚱 다가왔다. (중략) 그러고는 양동이를 불끈 들어 올려 벽보를 향해 던지듯 물을 뿌렸다. 쫙! 거인이 자기보다 큰 거인에게 따귀를 맞는다면 이런 소리가 날까. 벽보는 물벼락을 정통으로 맞았고, 사방으로 물이 튀고 흘러 주변이 엉망이 됐다."

(p.118)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두 명의 청소년이 함께 공명하는 듯한 묘사까지.

술술 읽히는 청소년 소설이었지만

재미와 감동까지 놓칠 수 없는 소설이었습니다.


"세상에 나를 소중하게 여겨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벽에 걸린 달력이나 화분 같다고 생각했다. 없으면 조금 불편하고 허전하겠지만 있으면 있는 줄도 모르는 그런 존재. 언젠가 나를 진짜 아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생길까 궁금했다. 내가 먼저인 사람, 아니 전부인 사람, 나로 인해 존재하고 내가 있어야 살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내 간절한 바람이 2023년의 윤슬이를 1993년으로 불러왔던 걸까. 그럼 내가 기다리던 그 사람이 윤슬이인가."

(p.186)



문학동네

조남주 『네가 되어 줄게』(2024)

서평단 리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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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밀레니엄 도트 시리즈 9
이민섭 지음 / 아작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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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작'에서 출간된 도트 시리즈, 아홉 번째 이야기인 이민섭 작가의 『다시 한번, 밀레니엄』(2024)을 읽었다. 도트 시리즈를 받자마자 1권부터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읽으려니 끌리는 순서 대로 읽고 말았다. 전부 읽지는 못했지만. 흠, 도트 시리즈는 표지부터 흥미롭다. 원색 계열과 선명한 픽셀 그림들이 아기자기하다. 글을 모두 읽고 나면 표지의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는데, 이 작품도 그랬다. 어린 아이와 게임기로 보이는 물건 그리고 시간을 상징하는 모래시계까지. 이것을 제외하고도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면 뒷면 표지에 쓰인 짤막한 시놉시스. '아버지의 복수'와 새천년으로의 회귀까지. 나는 '타임슬립 지구촌'에서 '다시 한번 새 천년을 살아보자'는 발칙함에 이끌렸다.

시간관리국의 주요 인물 설정부터 남다르다. '미느세브'와 '혀느세브'라니. 딱 봐도 작가의 이름을 따온 인물 설정이 아닌가! 작가는 참 뻔뻔(?)하게도 자신의 이름을 차용하면서까지 유머를 고수한다. '미느세브'를 "늘 빵빵 터지는 유머를 구사하는 유쾌한"(170 지면) 인물이라고까지 묘사하니…… 예사롭지 않다. 이밖에도 재미있는 영화적 상상력이 빛나는 장면이 많았는데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회귀한 새천년 세계에서) "산부인과에서는 갓난아기들이 울지 않고 조용히 몸을 움직이고 있"는 이미지, "실제로 미래에 큰 죄를 저질러 은퇴한 모 배우"가 "2000년에서까지 일이 끊겨버"리는 이미지, "점심시간에 몰래 술을 가져와 반주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라는 장면 들.

시간관리국 요원 '서주'의 이야기 역시 흥미진진했으나 개인적으로는 회귀의 당사자성을 보여준 '현기'가 초점 화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었다는 생각에 그가 등장한 대목이 좀 더 인상적이었다. 소설은 단순한 타임슬립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회귀가 아닌 70억 전 지구인의 회귀였다는 점이 특별했다.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가차 없이 판이 커진다니, 믿을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기억이 성인의 그것을 유지한 채로 미성년자로 회귀한다니. 물론 이것은 중년이었던 '현기'와 동 세대를 공유했던 회귀자들에 한한 설정이지만 말이다.

소설은 '선택'에 관한 이야기였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많은 이야기에서 비슷한 질문을 다뤄 왔다. 모두 닮은 질문들이다. 그런데 누구도, 새천년을 살아가는 초등학생으로 돌아갈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생각은 했더라도 '범지구적 회귀'라는 설정을 쏟아 붓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 점에서 소설이 기특했다. 지레 포기하지 않고 '선택'과 '운명'에 번뇌하는 인물들을 움직여 어딘가로-그곳이 어디인지는 제각각이라는 사실이 잔인했지만-적절히 보냈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현기'가 갖는 '아버지의 복수'는 단순해 보이지만 '현기'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터닝포인트였는데 이것이 과거를 통해 해결되었다는 점이 중요해 보였다. 사소한 클리세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겐 인물들이 자신이 파 놓은 수렁에서 벗어나 '화해'하는 삶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현지인'이라는 개념에 마음이 쓰였다. 회귀자가 다수인 세계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일순간 자신의 죽음을 견지한 존재라니. 에필로그에서 모두가 현지인이었던 아이를 잠시나마 기억해주는 장면이 좋았다. 이 아이에게는 선택도 운명도 없었지만 누군가의 기억만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초점 화자 '현기'가 어릴 적 후회했던 일들을 만회하는 장면들도 좋았다. 어린 마음에 미처 신경 써주지 못한 누군가의 연약한 마음을 기억해준다는 점에서, 나는 화자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있었다.

시간관리국 요원들의 이야기는 나에겐 조금 어려운 감이 있었지만…… 그런데도 영화적 상상력이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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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도트 시리즈 5
육선민 지음 / 아작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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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작' 도트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 육선민 작가의 『비에』(2024)를 읽었다. 쨍한 보라색 표지에 담긴 기계 심장과 부러진 팔 그리고 앙증맞은 안드로이드 한 '사람'의 이야기. "낡은 안드로이드와 그를 깨운 하나의 하나뿐인 삶을 찾는 이야기. 그들의 삶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시놉시스를 보고 읽지 않을 사람이 있긴 할까? 우리는 안드로이드 이야기가 품는 모종의 노스텔지어가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A.I.』(2001)과 『바이센테니얼 맨』(2000) 들이 그렇다. 이런 작품을 보면 늘 마음이 안 좋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봇에게도 마음이 있을까?" 사실 이런 질문은 일종의 소망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어떤 로봇이 등장하든 그것은 모두 인간의 이야기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기원. 점차 살갗이 맨들맨들해지고 딱딱해지는 우리들이 목전에 둔 가공할 이야기라서 그렇다.

보모형 안드로이드에게 갖는 기대는 용도에 준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에서 우리는 언제나처럼 그 이상을 원한다. 더 사람처럼 굴었으면 좋겠다. 더 희망했으면 좋겠다. 어떤 세계를 찢고, 태어났으면 좋겠다. 보모형 안드로이드 '비에'의 이야기는 태어나는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인 우리로선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삶의 서사다. '비에'는 '하나'가 지어준 유일무이한 이름이다. 나는 처음에 '비에'라는 이름이 '다를 별'(別)의 중국어 발음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하다, 대충 그런 뜻으로 말이다. 그렇게 해석했어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소설은 정확하게 나의 기대가 오류였음을 지적해주었다. '비에'는 프랑스어로 '삶'이란 뜻이었다.

'비에'는 자신을 개조한 '하나'에게 무조건적인 애정을 품는다. 그것이 애정인 줄도 모르고 내뿜는 애정으로서 '비에'는 그것을 감출 줄 모른다.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인데, 여기서 '그렇게 태어났다'는 말은 다소 묵시론적이면서도 잔인하게 들린다. 실제로 '하나'는 원본 개체의 '보관함'으로 살도록-그녀의 유일한 재능까지-설계된 복제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비에'가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비에'는 그러한 삶을 모른다. '비에'에게 새로운 삶은 곧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예견된 미래다. 안드로이드와 인간이 공존하여 행복해지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그럴 이유가 드물기 때문일까? 이야기가 꼭 슬퍼야 하는 법은 없지만 슬프지 않을 이유도 없다.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안 좋았던 이유는 작가의 사변적 문체가 마음을 내내 긁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비에'의 삶이 '하나'와 결코 어울릴 수 없다는 미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행복할 수 없고 누군가는 그것을 안고 지지부진한 삶을 이어가야 하지만 이야기는 계속된다. 페이지 넘김이 계속된다. 이것은 인간의 이야기라서. 버려진 사람들이 '파이프' 속에서 근근히 살아남으려 애쓰는 이야기라서.

로봇의 마음에 천착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로봇의 심연, 그러니까 '비에'와 대상자인 '하나'와의 거리가 다소 가깝다는 인상을 지울 순 없었지만, 좋았다. 그리고 또 하나 좋았던 점은 이들이 향한 곳이 '기계들의 무덤'이었다는 것이다. "비에야. 이건 삶이야. 비록 우리는 소모적인 존재였지만, 이 공간에는 모든 것들이 죽어 있지만, 여기에 우리의 삶이 있어. 살아 있어."라는 '하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모두가 죽어버린, 말 그대로 '죽은 공간'에서 이들이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게 좋았다. 이곳이 자신들의 삶이라 믿는 애처로움이 마음에 들었다. 쓸모를 다해 죽은 공간에 처박혀도 그곳에서라도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 '하나'는 '비에'에게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탄생을 가르친다. '비에'에게 그녀는 잠시 신이었던 걸까?

'하나'뿐인 '하나'가 되고 싶어 스스로 '하나'가 된 복제인간은 '하나뿐인 자아'에 회의를 느낀다. 유일성에의 도덕적 혼란을 빚으며 역설적이게도 개조 안드로이드 '비에'와 그녀는 연결된다. 이런 이야기는 감정적으로 힘들지만……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보게 된다. 버려져 죽을 지도 모른다는 원초적인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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