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꺼풀 창비만화도서관 10
데브 JJ 리 지음, 이주혜 옮김 / 창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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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스페셜 서평단 활동에 참여하여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서평 활동을 진행했는데요. 서평 대상 도서는 데브 JJ 리 작가의 『외꺼풀』(2024, 이주혜 옮김)입니다. 찾아보니 창비에서는 '만화도서관' 시리즈를 줄곧 발행해 오고 있었더라고요. 해외 그래픽 노블을 제외하고 국내 그래픽 노블은 익숙하지 않았는데 이번 서평단 활동을 계기로 관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표지부터 동양풍이 스멀스멀 느껴졌습니다. 책의 만듦새가 좋더라고요 창비에서는 단순하면서도 몽글몽글한 감각의 표지 디자인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다른 국내 문학 출판물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지 디자인 또한 깔끔해서 개인적으로 장르 불문 가장 눈이 편안한 도서를 발행하는 출판사라고 생각해요.

표지에는 붉게 타오르는 노을이 동양적인 감각을 줍니다. 이에 더해 저는 이 책에서 주요하게 묘사되고 있는 '새' 일러스트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성장과 비상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겠지만, 저는 미음과 증오에서 멀리 떨어지는 법과 어디론가 멀리 가는 슬프고 설레는 기분을 묘사한다고 읽었습니다. 구름과 노을이 비친 바닷물도 표지 일러스트에 삽입되었는데 이것은 상황과 정념에 깊게 잠긴 어린 '데브'의 먹먹한 심리를 보여줍니다. 한편으로는 반쯤 떠오른 얼굴과 잠긴 나머지에 관한 묘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혼란으로도 읽을 수 있겠네요.

이번에 독서한 그래픽 노블 『외꺼풀』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자전적 만화 소설입니다. '외꺼풀'이라는 상관물이 주인공 '데브(정진)'와 그의 성장을 보여주는 매개로 등장하는데요, 300여 페이지를 모두 읽은 뒤에 이 책의 연출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그래픽 노블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소설이 아닌 형식을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말풍선을 따라가면서 인물들의 발화를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1회독으로는 어려운 복잡다단한 말의 이어짐들이 흥미로웠어요. 보통 만화를 보면 좁은 말풍선 안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하더라도 간결한 문장과 직관적인 언어들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해당 만화에서는 한 장 한 장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을 정도로 인물들의 발화나 묘사가 깊은 물처럼 다가왔어요. 슬픔과 분노 등 여러 감정이 선형으로 감각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조금은 둘러가며 독자에게 걸어오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감정적 격동이나 행위 일체는 일직선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장면은 이미지 연출로 적절하게 보여주었고 깊이 쌓아 올린 정념들은 대사에 응축시킨 형태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주 흥미로웠어요.

총 4장(Chapter)으로 이루어진 이 만화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가장 먼저 제 머릿속을 파고든 묘사는 주인공 '데브'의 '흘깃 보는 표정'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만화의 완전한 표정이 아닐까 싶었어요. 어쩌면 가장 문학적인 얼굴일지도 모르겠어요. '데브'가 친구, 가족, 때로는 상황을 '흘깃' 바라보며 네모 바깥의 독자를 바라볼 때-정확히는 독자 너머의 무엇을 바라본다고 느꼈지만-독자로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이야기는 깨끗하진 않았습니다. 아이에게 발생한 일들이 흔한 소년 만화처럼 깨끗이 닦아지지는 않았어요. 그럼에도 '데브'는 어디론가 미래를 향해서 걸어갈 것이고 저 또한 그렇게 믿고 싶어졌습니다. 명쾌하지는 않았지만 외려 그렇게 갈무리되었기에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미음과 폭력과 용서, 성장의 지리멸렬한 슬픔이 모두 비눗물처럼 녹아든 듯한 만화였습니다. 청소년 성장 소설과 R.F. 쿠앙의 『옐로페이스』(2024) 같은 아시안 문학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꼭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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