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서경식‘이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여권을 갖게된 지 40년 이상이 흘렀습니다. 국경을 넘는 여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여권은 필요없었고 이름 역시 그대로였을지도 모릅니다. 여행은 자신을 붙잡아두고 있는 일상으로부터의 일시적인 해방이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이름을 말해야 하고, 신분증명을 요구당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행이라는 것 역시, 자신을 재정의하는 기회이기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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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가지,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움직임이 중단되는 순간입니다. 그것은 시간표에는 없지요. 아무리 빈틈없이 준비해서 출발을 하더라도 뜻밖의 장소에서 여행이 중단되는 일이 곧잘 있습니다. 열차가 안 오기도 하고, 파업으로 인해 타고 있던 열차에서 내려야 하는 경우도 있죠. 그렇게 되면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이동하던 개인이, 불현듯 목적으로부터 단절된 정지상태에 던져져 어쩔 줄 몰라 하며 주변을 둘러보다 거기서 같은 운명에 빠진 다른 사람들을 발견하게됩니다. 열차가 안 온다든가 멈춰서버린다든가 하게 되면 낯선 이들끼리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왜 안 오는 걸까요?"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같은, 혼잣말인지 말을 거는 것인지 알수 없는 웅얼거림에서 시작하여 각자 신세타령을 하는 데까지 발전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 또한 열차라는 상자가 지닌재미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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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가 언어와 언어를 연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야간열차로 빠리에 가서 『용의자의 야간열차』『여행하는알몸의 눈』『변신을 위한 아편』 의 프랑스어 번역을 번역자가 낭독하는 행사에도 참가했습니다. 하나의 텍스트가 언어의 경계를 넘어 번역이라는 변신을 이루었다는 것을 되새기며 야간열차로 국경을 넘다보면 잠든 동안에 저 자신이 변신한대도 이상할 것은 없을지 모릅니다. 실제로 아침에 목적지에닿았을 때 피부와 뼈의 느낌이 어딘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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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코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늙은 부모를 부양하고 이런저런 남자들로부터 상처를 받았음에도 씩씩하게 자신의 삶 한가운데를 터벅터벅 걸어갔다. 때론 술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하고 때론 사랑에 배신을 당해 가방 하나를 들고 여행길에 오르는 그녀는 하여간 무모했고 건강했다. 여행길에 오르는 순간 누구나 이방인이 되지만, 후미코의 말마따나 "사람들은 무한한 우주 공간에서 평범한 삶이 만들어내는 슬픔에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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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에게 지치고 세정에 질리면 여행을 떠올립니다. "사람은 그리하여 있는 그대로의 일을 이야기한다. 뜰에서 딴 과일에 대해, 푸른 이끼 사이에서 핀 꽃에 대해." 베르하렌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는데, 나에게는 여행을 가서 객지의 허망속에서 ‘있는 그대로’를 찾아내는 즐거움이야말로 그리운 천국이기에 여행벽은 점점 심해집니다. 내 영혼은 애수의 소용돌이 안에서만 생기가 넘치는 모양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도 이젠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여행만이 내 영혼의 휴식처가 되어 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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