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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이아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18
에우리피데스 지음, 김기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2월
평점 :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에 이어 세번째로 읽게된 을유문화사의 그리스 비극 시리즈,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예전에 하루키 소설 속에서 묘사되었던 에우리피데스의 주특기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어떤건지, 이번 책을 읽으면서 알게되어 특별히 더 즐겁게 읽었다.
≪메데이아≫에는 <알케스티스>, <메데이아>, <힙폴뤼뤼토스> 세 편이 실려있었고, 희생, 복수, 징벌의 전형과 같은 이야기들이었는데,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탁월하고, 다채롭고 입체적인 인물들의 고뇌, 여기에 함께 분노하고 복수하는 신들의 모습이 함께 그려져 진짜 연극을 보는 것 같은 생동감이 느껴졌다.
특히나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과 그 시대의 남성 중심의 시 문학에 대한 언급까지 되어 있어,
그 시대의 여성들과 이 비극을 보았을 사람들의 반응까지 궁금해졌다.
1. <알케스티스>:
알케스티스가 죽을 운명에 처한 남편(아드메토스)대신 죽게 되지만, 헤라클라스를 환대함으로서 구원되는 이야기.
환대의 덕이 무엇인지 ("고귀한 본성은 손님 공경의 길로 내달리는 법") 보여주는 그리스 작품들의 전형같은 느낌이었다.
아폴론이 알케스티스를 (지금 죽이지 말고) 늙어서 죽게 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은 어떠냐고 타나토스에게 제안하자, 타나토스가 아폴론에게 말하길, "당신은 부자를 위한 법을 만드려는 거요. 가진자는 늙어서 죽는 것을 사들일 수 있을 거네" 라고 하는 부분에선 빈부에 대한 통찰도 느껴졌다.
알케스티스의 죽음을 두고 아드메토스와 그의 아버지 페레스와의 티키타카.
사실은 둘 다 알케스티스 앞에서 비겁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음에도, 서로를 비난하게 되는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생각들은 결국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노인들은죽기를 기도하지만 (...) 정작 죽음이 다가오면 누구도 죽고 싶어하지 않소"
"네가 너 자신의 목숨을 사랑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도 그렇다고 생각해야지."
예언-갈등-논쟁-해결, 정해져있는 구성틀에 이야기들이 짜 맞춰들어간 느낌이지만, 그 안의 대사들, 인물의 심리 묘사, 왜 나 대신 죽지 않았냐고 아버지를 몰아붙였지만 사실은 본인도 괴로운 아드메토스의 심경들이 잘 그려져있다.
2. <메데이아>:
남편 이아손이 코린토스에 망명해서, 메데이아를 배신하고 새아내를 맞이하게 되자 메데이아가 남편에게 복수 하는 이야기.
메데이아란 인물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런 입체적 여성의 존재와 서사를 주는 것이 좋았다.
메데이아가 가부장 사회에 대한 한탄하며, 여성의 지위와 불평등에 대해 말할 때, 함께 동조하는 여성 코러스의 목소리들도 좋았고 .
여성 코러스들이 남성 중심의 시 문학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도 좋았고.
"남자는 안사람과 함께 지내다 싫증이 나면 바깥으로 나돌며 마음속에 쌓인 구역질을 떨쳐냅니다. (...)
"남자들은, 우리가 가정에서 위험 없는 삶을 산다고 말합니다."
이 비극은 배신, 분노+탄원, 계략+복수+deus ex machina로 구성되어 있고, 이아손이 자신의 정당성을 변명(?)하는 장면은 거의 아침드라마급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여기에 "불의한 일 저지르며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 가장 큰 처벌을 받아 마땅해." 라고 쏘아붙이는 장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건네는 장면, 들이 통쾌하고 좋았다.
("그럼 자, 네가 할 수 있는 어느것도 아끼지 마라, 메데이아여, 계획을 세우고 계략을 짜내라.")
"거짓 맹세를 하고 환대의 법도를 위반한 자의 말을 신들은 듣지 않을 것" 이라 확신하는 메데이아.
영웅이었던 이아손이 찌질이가 되고 마녀 메데이아는 영웅이 된다.
3. <힙폴뤼토스>:
일단 이 이야기는 아프로디테의 예언으로 시작되는데 ("내 앞에서 거만하게 구는 자는 내가 넘어뜨릴 것이다") 결국 인간은 사랑을, 우주의 원리를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걸 시작부터 말하는 것 같다.
힙폴뤼토스와 파이드라 이야기는 오뒷세이아에서 잠깐 스치고 지나갔었는데, 그 때 읽었던 이야기와 또 다르게, 파이드라의 시선으로 읽히게 되는 것을 보니, 서사라는 것은 누구의 입에서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이야기에 이입하는 방향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힙폴뤼토스가 어째서 이렇게 (여신이 아닌) 살아있는 여자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도 궁금해졌고.
테세우스의 수 많은 기술이 있어도 양식 없는 자에게 양식을 가르치는 것을 탐구하지 않는다고 호통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더 많은 기술이 발전된 지금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었다.
힙폴뤼토스는 자신의 순결, 정결함을 주장하지만 그것이 옳은 답은 아니었고, 타협하지 못하고, 유연하지 못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때문에 갑자기 마무리 되는 엔딩에 비하여 중용에 이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심오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랄까.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