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채선
이정규 지음 / 밝은세상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소리 혹은 판소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서편제가 아닐까 한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는 우리 국악 그중에서도 판소리를 널리 알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해내었다. 이정규 작가의 소설 진채선은 무너져 가던 조선말기 조선 최초 여성명창이라 불림을 받았던 실존인물 진채선의 이야기를 풀어낸 소설이다. 판소리가 우리 국악이라는 것만 알았지 구체적으로 관심을 가져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부끄러워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클래식 같은 서양 음악에 대해서는 많이 공부하면서 국악에 대한 지식이 이렇게 짧음을 이 소설로 다시 느끼게 되었다. 진채선이 사랑한 스승 신재효는 조선말 판소리를 집대성한 인물로 유명하다. 전북 고창 출신인 신재효 선생은 백성들을 구휼하는데 힘써 높은 관직에도 올랐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가,심청가,박타령,가루지기타령,토끼타령,적벽가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도리화가라는 판소리 단가와 문하에는 김세종.진해종,진채선,허금파등 많은 명창을 배출 하였고 지금도 고창에 가면 고택이 남아 있다.


소설 진채선의 이야기를 잠깐 살펴보고자 한다. 무당의 딸로 태어난 진채선은 아비를 닮아서 소리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가난하고 궁벽한 생활로 인하여 다른 스승을 모시고 소리를 배울 엄두를 못 내지만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전주대사습놀이에 참가하게 된다. 그 당시에 여성소리꾼이 없어서 진채선은 남장을 하고 출전하게 되고 그 누구보다 좋은 소리와 미색으로 관중들의 환호를 받는다. 전주대사습놀이에 참관하였던 신재효와 그의 제자 김세종은 진채선과 또 다른 출전자 김광현을 눈여겨보고 그 둘을 제자로 들이게 된다. 신재효의 밑에서 수학하게 된 채선은 그야말로 일취월장하게 되고 미색 또한 아름답게 성장한다. 득음을 하게 된 채선은 스승 신재효의 강요로 김광현과 경복궁 낙성연에 참가하게 된다. 스승 신재효는 채선을 조선 최고의 명창으로 키우고자 한양에 보냈지만 이 일로 인하여 채선, 신재효, 그리고 대원군의 아픈 사랑이 서막을 올리게 된다. 첫눈에 채선에게 반한 대원군은 권력의 힘으로 채선을 궁궐에 가두게 되고 신재효와 채선은 다시 만나지 못하는 인연이 되고 만다. 이들의 사랑이 어떻게 풀리게 될지...


조선 왕조 오백년의 명운이 다한 조선 말기는 세도정치가 판을 치게 되었고 종친이라면 어떤 수를 써서 제거하던 외척들의 눈을 피해 미치광이처럼 생활한 흥선대원군은 세도가의 감시를 벗어나 고종을 임금의 자리에 앉힐 수 있게 된다. 외척들을 숙청한 대원군은 자신의 뜻대로 조선을 이끌고 외척의 힘을 없애기 위해 간택한 명성황후와 고종에게 결국 권좌에서 밀려나게 된다. 한창 명성황후와 권력 투쟁을 하던 시기에 대원군은 채선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유일한 위안이 되어준다. 이미 무너져 가는 조선에는 세도가들의 횡포와 중인들의 신분 상승으로 나라 안이 어지러웠고 일본과 청 그리고 러시아같은 열강들에 휩싸여 나라밖도 복잡했다. 진채선이 조선 최초 여성명창으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나라사정으로 인하여 여성도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 되어서 가능 했다. 소설 진채선을 보면서 위정자나 세도가들이 얼마나 횡포를 부리는지 그리고 판소리 같은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천대를 받았는지 느끼게 된다. 남장을 하는 진채선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이런 조선시대의 남성우월주의와 신분제 때문이 아닌가 한다.

 
소설로 소리를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판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상상하기도 힘들 것이다. 특히 득음을 하게 되면 모든 사물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고 한 부분에서는 우리의 판소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느끼게 된다. 스승 신채효가 이슬 털이 목이라는 것을 가르칠 때는 명창들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득음을 위해서는 목에서 피를 세동이는 토해야하고 그 아픔을 달래기 위해서는 인분을 먹어야 하며 열린 귀를 얻기 위해서 폭포수 아래에서 수련하는 모습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부귀영화 보다 소리를 사랑한 조선 말기의 명창들...
그중에서도 스승 신재효를 사랑했고 대원군의 끊임없는 구애와 유혹에도 조선 최고의 명창이 되고자 했던 진채선...
그녀에 대하여 다시 알게 되고 우리의 판소리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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